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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시아로 세계로 아웃 오브 코리아

유전자는 섞일수록 강행진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프리카 케냐의 광활한 사바나 초원이 아름다운 영상으로 펼쳐지던 영화를 떠올릴 수 있겠다. 하지만 인류유전학을 연구하는 필자에게는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로 이주한 뒤 다시 여러 대륙으로 팽창해 나가면서 자연선택과 돌연변이, 도태 등에 의한 유전자 빈도의 변동, 언어와 문화적인 차이로 다양한 민족이 형성되는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진다. 이것이 소위 인류기원에 관한 모델인 아프리카 기원설이다.

요즘 한류 열풍을 보면서 ‘아웃 오브 코리아’를 생각해봤다. 대부분의 인류유전학자들은 한국인이라는 민족 집단을 동북아시아로 분류한다. 몽골인과 가까운 북방계통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한국인이 북방계 기원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 필자는 Y염색체 DNA와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한 결과 한국인이 동남아시아인 집단에서 흔히 나타나는 유전적 특징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한국인이 남방계 기원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기원한 한국인이 이제 한류라는 이름 아래 아시아로 뻗어나가고 있다면 둘 사이에 어떤 해석이 가능할까.

2003년 필자가 이끄는 연구팀은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인 집단에서 표본으로 추출한 남자 738명을 대상으로 Y염색체에 있는 유전자 마커의 유전적 변이를 분석했다. 그 결과 한국인은 주로 몽골과 동·남부 시베리아인에서 높은 빈도로 나타나는 유전자형과 함께 동남아시아와 중국 남·북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전자형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이중적인 형태를 보였다.

한국인은 동아시아의 여러 민족 중에서도 중국의 동북부 만주족과 같은 동북아시아인과 유전적으로 가장 유사했고, 중국 묘족(먀오족)이나 베트남 등 일부 동남아시아인과도 유사했다. 특히 일본인은 동아시아 내에서도 한국인, 만주족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웠다. 이는 2300여년 전 농경문화와 일본어를 전달한 야요이족이 한반도를 통해 일본 본토로 이주했음을 나타내는 유전학적인 증거이기도 하다.
 

인류유전학자들은 최근까지 한국인들을 몽골인과 가까운 북방계 동북아시아인으로 분류해왔다.


조선족·만주족과 제일 가깝다

최근 필자는 동아시아인을 대상으로 모계유전을 하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했다. Y염색체가 아버지를 통해 아들에게만 전달되는 부계유전을 하는데 비해 미토콘드리아 DNA는 어머니를 통해 아들, 딸 모두에게 전달된다. 또 미토콘드리아 DNA는 돌연변이율이 높고, 교차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인류의 진화과정 중에 일어난 돌연변이 정보를 하플로타입 상태로 분석하면 조상을 추적할 수 있다.

분석 결과 한국인은 3명 중에 1명꼴로 몽골 및 중국 중북부의 동북아시아에 많이 분포하는 하플로그룹 D 계통이 가장 많았고, 전체적으로 한국인의 60% 가량이 북방기원이었다. 남방기원으로 해석되는 미토콘드리아 DNA 계통은 약 40%에 달했다.

한국인은 동북아시아의 중국 조선족, 만주족 그리고 일본인 순으로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웠다. 그러나 중국 한족은 베트남과 함께 다른 계통에 묶여 한국인과는 유전적으로 다소 차이를 보였다. 지리적으로 동북아시아에 속한 중국 북경의 한족은 한국인과 다소 가까운 결과를 보였지만 중국 남방의 한족과는 유전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특히 만주족과 중국 동북 3성에 거주하는 조선족은 중국 한족보다는 한국인과 유전적으로 더 가까웠다.

이런 결과로 볼 때 한국인은 북방계가 다소 우세하지만 남방계와 북방계의 유전자풀이 복합적으로 이뤄진 뒤 4000~5000년 동안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 동일한 언어와 문화를 발달시키고 역사적인 경험을 공유하면서 유전적으로 동질성을 갖는 한민족으로 발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이 남방과 북방의 유전자풀이 섞였다는 것이 한류와 무슨 관계일까. 한국인은 ‘잡종강세’의 전형적인 집단이다. 전문 용어로는 ‘이형접합자 우세’(heterozygote advantage)라고 한다. 쉽게 말해 상당한 세대 동안 안정화 과정이 필요하지만 섞일수록 우세해진다는 것이다.

유전자 수준에서 열성 유전병 인자를 정상과 열성 유전자를 각각 하나씩 가진 이형접합자로 지닌 사람은 2개 모두 정상유전자를 가진 동형접합자로 지닌 사람보다 특이한 환경 조건에 적응하는데 유리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적도 근처에 살고 있는 여러 민족은 겸상적혈구 빈혈증이나 베타-탈라세미아와 같은 열성 유전자를 이형접합자로 갖고 있는 사람의 빈도가 일반 집단에 비해 높다. 유럽에 비해 아시아 지역으로 갈수록 알파-탈라세미아 환자를 더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그 지역에서 유행하는 말라리아에 잘 걸리지 않는 우월성이 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동아시아 민족 집단간 거리 계통수^미토콘드리아 DNA 하플로그룹 반도 분포를 근거로 동아시아 민족 간의 유전적 유사성 정도를 거리로 나타냈다. 한국인은 조선족, 만주족, 그리고 일본인 순으로 유전적으로 가깝다.


잡종강세가 건강한 민족 만들어

잡종강세는 유전병에도 적용된다. 근친결혼이 심한 집단은 희귀 유전병의 발병 빈도가 높고 집단의 크기가 감소하는 경우가 많다. 소수 종교인 집단인 아쉬케나지 유태인은 테이병, 카나반병, 고셔병, 니만-피크병, 가족성 자율신경실조증, 블룸증후군 등 희귀 유전병을 갖고 태어나는 신생아의 수가 일반 집단에 비해 높다. 이 밖에 이들은 유방암, 직장암, 염증성 장질환 등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을 확률이 높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와 오하이오에 사는 애미시 암만파 신도들은 수 세대 동안 자신의 집단 내에서 결혼을 해왔는데, 이들에게서 희귀 유전질환인 글루타릭 아카데미아, 조울증, 간질환 등이 많이 나타난다.

한국인은 흔히 ‘단일민족’으로 불린다. 그런데 여기서 단일민족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유전적 동질성을 획득했다는 의미이지 한국인의 기원이 하나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한국인은 동아시아 내에서 남방과 북방의 유전자풀이 복합적으로 이뤄져 형성됐기 때문에 유전적으로 다양성을 지닌 집단이다.

유전적으로 다양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집단 구성원이 갖고 있는 유전적 다양성이 세대를 통해 유지될 확률이 크다. 그리고 집단의 안정성 또한 높아진다. 유전자풀이 다양한 집단은 단순한 집단에 비해 집단이 유지되고 진화하는데 유리하다는 뜻이다.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다양한 계통들로 구성된 이후 오랜 세대를 거치면서 안정된 민족 집단으로 정착됐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인은 유전적인 측면에서 ‘건강한’ 집단이라 할 수 있다.

지난 수 천 년 동안 한국인 집단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같은 언어와 문화, 역사 등을 함께 경험하면서 하나의 민족으로 성장했으며, 적어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더욱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건강한 집단 구조가 한류의 밑바탕이 된 것은 아닐까. 동아시아인과의 유전적인 동질성이 한류라는 사회문화적 현상의 바닥에 깔려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아웃 오브 코리아로

생물학적으로 볼 때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하나의 종이다. 피부색과 얼굴 생김새가 다르지만 실제로 상대방과의 유전정보 차이는 0.1%가 채 안 된다. 요즘 민족을 구분할 때는 생물학적인 기준보다 문화와 역사적인 공통성을 더 중시한다. 인류유전학자들은 민족의 우월성을 유전학적이거나 혈통적으로 지나치게 강조하는 국수주의를 경계한다. 한류 열풍 역시 한국인의 유전적 우월성을 너무 강조할 경우 국수주의에 빠지기 쉽다.

따라서 한류와 더불어 최근 한국의 발전상은 유전적으로 다양성을 갖춘 건강한 한국인이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노력해 온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인류가 ‘아웃 오브 아프리카’였다면 한류는 이 경로를 되짚으며 제 2의 ‘아웃 오브 아프리카’, 즉 ‘아웃 오브 코리아’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대륙도 하나, 인류도 하나.' 지금은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호주 등 7개 대륙으로 갈라졌지만 수 억년 전만 해도 대륙은 거대한 하나의 덩어리였다. 인류도 거슬러 올라가면 이프리카에서 기원했다.


아프리카 기원설 : ‘아프리카 기원설 1’은 초기 인류가 약 20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현해 170만~200만년 전후 아시아 대륙으로 이주한 뒤 최근 약 3만년 전까지 유럽과 아시아 등지에 살았던 것으로 설명한다. 한편 약 6만~7만년 전 초기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로 이동한 뒤 다시 여러 대륙으로 집단 팽창했다는 이론은 ‘아프리카 기원설 2’다.

하플로타입 : 일련의 특이한 염기서열이나 여러 유전자들이 가깝게 연관돼 한 단위로 표시될 수 있는 유전자형을 가리킨다. 따라서 하플로그룹은 같은 미토콘드리아 DNA 유전자형을 가진 그룹으로 보면 된다.

이형접합자 :정상과 열성 유전자를 각각 하나씩 가진 경우를 말한다. 이형접합체, 헤테로집합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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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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