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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디지털 한류 이끄는 '별의 전사들'

과학기술에 예술의 주문을 걸어라

지 난 해 10 월 중국 항저우를 방문했을 때 중국인 교수가 내게 한국에 관한 놀라운 얘기를 하나 해줬다. 그 교수는 내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으로 재임하고 있다는 소식을 막 들었고, 내 과학적 연구 성과를 수년간 알고 있던 터라 내가 자발적으로 한국에 갔다는 설명에 적지 않게 놀랐다.

그는 난데없이 “한국은 매우 창조적인 나라이지요. 한국 연속극과 인터넷 비디오 게임은 중국에서도 대유행입니다”라고 말을 꺼냈다. 나는 이에 관해 더 물어봤는데, 그의 아내 역시 한국 연속극에 푹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우리 부부는 함께 한국 연속극을 즐겨 봤는데 드라마의 인물들이 너무나 아름다웠다”고 덧붙였다. 아마 이 말은 그의 아내가 그에게 해준 얘기일 것이다. 나는 이 같은 얘기를 항저우와 싱가포르에 있는 내내 들었다.

정작 한국인들 자신은 전혀 창조적이지 않기에 창조성을 기를 특별한 학교가 필요하다고 얘기하지만, 이미 아시아 전역에서 한국은 ‘창조성’으로 높은 명성을 쌓고 있었다. 일본에서 한국을 ‘창조적’이라고 칭찬하는 편은 아니지만 ‘한류’라 일컬어지는 일본 내 한국 연예산업의 큰 인기는 이를 증명하고 있다.
 

휴대전화를 비롯해 LG전자의 모바일 제품을 선전하는 이동 차량. LG전자는 현재 미국에서 톱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다. 얼마 전에는 세계적인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싸이언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모습이 파파라치에게 찍히기도 했다.


창조성은 한류와 같은 말

한국의 이런 성공적인 수출품들은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실상은 문화 상품이지 기술 상품이 아니다. 물론 한국은 철강, 자동차, 플래시메모리 등 기술관련 상품을 대량으로 수출하고 있다. 하지만 한류의 주요 수출상품들은 지적소유권에 관련된 서비스품목들이다. 그리고 한국 제품들이 시장 장악력이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한 예로 중국에서 한국 영화사들은 영화 ‘와호장룡’과 성룡의 영화들을 전 세계로 배급한 홍콩 영화사들과 시장 쟁탈전에서 훌륭한 결과를 거두고 있다. 한국의 인터넷 게임 역시 중국 본토 업체들은 물론 미국, 일본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최근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한국의 스타크래프트 TV 프로그램이 영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내 아들로부터 “한국 인터넷 게임 방송프로그램도 우리 대학에서 호평을 얻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한국의 경쟁국들을 당황케 하는 것은 한국이 종래 제조업 분야에서 서비스업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전환의 신속성과 능력이다. 한국의 변화는 숨 가쁠 정도로 빠르다. 중국과 같이 자부심이 강한 나라조차도 한국을 자신보다 훨씬 ‘창조적’인 국가로 간주하고 있다.

중국인들이 이를 걱정할 만 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인들은 ‘한국’하면 ‘저렴한 수공업품, 자전거 그리고 주방용품을 만드는 나라’ 정도로 인식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창조성, 곧 한류 열풍의 비결은 기술의 커뮤니케이션에 있다. 기술 자체를 판매하다가 기술을 기반으로 한 제품을 판매하게 된 것이다.

이는 과거에도 흔한 일이었다. 로마인들의 발명품인 콘크리트는 흔한 건축 재료가 됐고, 독일에서 고안된 인쇄기는 영화산업에 쓰이는 값싼 구성요소가 됐고, 프랑스에서 발명된 사진술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다. 영국에서 발명된 증기엔진은 선박업과 철도업에 유용하고, 미국에서 발명된 TV는 광고를 전달하는 편리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기술에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해

이런 현상은 경제발전의 자연스런 수순이기에 그런 변화를 이해하는 것도 어렵지는 않다. 왜냐하면 경쟁업체들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기술이 상용화되기 때문이다. 결국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는 매매과정을 통해 기술 자체에 대한 가치는 하락하게 된다. 예를 들어 고난도 교육을 받은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세일즈맨을 보조하기 위해 고용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프로그래밍 기술이 충분하더라도 소비자에게 다가설 수 없다면 마케팅이 더 중요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이란 결국 상대방과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예술과 협력하게 된다. 작가, 시인, 화가, 작곡가 그리고 댄서 등은 말없이도 빠르고 효과적으로 상대방과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건설업자는 설계사와, 자동차 제조업체는 그래픽 디자이너와, 컴퓨터 회사는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와 협력하게 된다. 아무리 기술 자체가 뛰어나도 소비자에게 전할 메시지가 없으면 그 기술은 팔리지 않는다.

단지 과학기술 관련 제품만 이런 규칙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메시지라도 정작 필요로 하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단지 아름다움만을 위해 무언가를 구입할 만큼 한가롭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하지만 이런 예외들은 매우 드물고 틈새시장에 국한될 뿐이다. 그러므로 제품과 예술성 모두가 중요하다. 첨단기술 제품은 예술과의 결합을 통해 뛰어난 상승효과를 낼 수 있다. 한류의 주축인 첨단 IT 제품들도 예술과의 결합이 이뤄낸 성과라고 볼 수 있다.

과학기술은 ‘마법’, 공식은 ‘주술’

과학기술은 문학가들이 늘 탐구하고자 해온 원시적이고 강렬한 비유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는 흔히 컴퓨터를 인조인간의 한 종류로 묘사한다. 또 휴대전화는 죽은 자들과 대화할 수 있는 매개체로, 고속 자동차는 시간여행의 수단으로 그리고 전기 장난감과 전자제품은 악마의 도구로 묘사되곤 한다. TV에서 ‘X 파일’과 같은 SF 드라마를 시청한 적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비유에 조금이나마 오싹했을 것이다.

예술가들 또한 이런 강렬한 이미지를 종종 활용한다. 그러기에 SF는 예술의 한 장르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사실 SF의 핵심은 기술적인 방법이 아니라 ‘마법’에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종종 과학에 심취하게 되고 예술가들이 과학에 심취하면 상승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

변호사나 은행가, 사업가 등 부유한 직업을 가진 사람은 과학자를 아마추어나 어린애 정도로 치부하며 비웃기도 하지만 이는 중요한 사실을 알아채지 못해 범하는 커다란 오류다.

과학자는 중요한 어떤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마법과 같은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고 이를 규명하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사물들 사이의 추상적 관계를 통해 세계를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으며, 그 추상적 관계는 곧 마법의 ‘주술’과 같다.

이런 태도의 극단적인 경계에는 모든 사물을 방정식으로 공식화하려는 수리물리학이 있고, 이 학문은 오로지 선택받은 자만이 이런 방정식을 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선택받은 자는 곧 주술을 이해하는 ‘마법사’와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왜 예술적이야 하는가 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특히 한국처럼 뛰어난 소수 위주로 교육이 편중된 나라에는 더욱 필요하다.

부모들은 자녀마다 성숙도가 단계별로 다르며, 어떤 아이는 뛰어난 수학 실력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더라도 언어능력은 미숙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언어능력이 부족한 것은 성장하면서 보완되지만 불행히도 대학입학시험은 그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따라서 부모들은 자녀들의 직업 안정성을 염려해 과학기술계로 자녀를 유도한다(나 역시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었고, 내 아들도 마찬가지며 대부분의 내 제자들 역시 그러하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므로 아직 언어능력이 충분히 배양되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갑절의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음악을 비롯한 예술적 재능은 수리능력과 많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므로 극히 선별적인 제도로 학생들을 선발해서 그 학생들의 진로를 화학자, 물리학자, 기술자로만 제한하려는 한국의 교육풍토는 어정쩡한 상태에 있다. 왜냐하면 이미 이들 직업군은 과잉 공급된 탓에 악화되는 중이기 때문이다.

과학+ 예술이 한류의 미래다

이미 경제는 예술가들을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한국의 휴대전화가 세계에서 ‘명품’으로 인정받는 이유 중 하나도 과학기술 이외에 디자인 등 예술적인 요소가 잘 결합됐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런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만 이해해도 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는 쉬워진다. 해결책이란 과학기술교육을 예술교육과 융합시키는 것이다. 현재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학제의 전면적인 개편보다는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했을 때 배워야 할 과목을 바꾸기만 하면 된다. 수리과학 영재를 양성한다는 현행 취지 대신 과학기술인상과 창조적 예술가상을 모두 추구하도록 전환하면 된다.

이 해결책의 장점은 학생들이 본래 원하던 것을 하도록 하는데 있다. 예술과 과학의 접목은 새로움과 오래됨의 관계라 할 수 있다. 오래됨이란 태초부터 인간 유전자내에 존재해 사람들 마음속에 이미 있었음을 뜻한다. 새로움이란 경제성장을 이끌고 앞으로 국가를 지탱할 것은 전통적인 과학기술이 아니라 예술과 결합된 새로운 과학기술이라는 현실을 한국인들이 직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구조적 사고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한류를 경험하며 벌써 ‘혁신’을 통해 아시아 시장을 장악하는 등 이 과제를 훌륭히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구조적 사고의 변화 역시 제대로 이뤄질 거라 확신한다. 과거 IMF의 충격이 한국을 더욱 적극적으로 바꾼 결정적 계기이나 다음 기회를 위해 더 이상의 설명은 미룬다.

한국은 지금 한류라는 사회·경제·문화·기술적 변화를 겪고 있다. 내가 한국의 변화과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이유는 미국에서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에게 그렇듯이 내게도 그 변화과정은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우주’라는 책을 저술했고, 이 책에서도 특히 ‘별의 전사들’(Star Warriors)이라는 장을 통해 감정을 정리하려고 했다.

그 장의 맨 끝 부분은 한국의 현재 상황과 관련이 깊다. “인간의 상태란 마음의 약함과 제약에 따라 나락에 떨어지고, 우리를 둘러싼 대지가 이름을 붙일 수 없으리만치 광대하다는 것이 슬픈 현실이지만, 광대한 대지를 낙관하며 거침없이 탐험하려는 젊은이들이 있기에 축복된 것이라.”
 

한국의 인터넷 게임은 중국, 일본을 비롯해 미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인터넷 게임은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류를 이끄는 대표적인 문화상품이다.


젊은 그대, 당신이 ‘별의 전사’

부유한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과학기술인이 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고 은행가, 의사 그리고 축구 감독 같은 안정된 직업을 갖길 원하지만 이에 반기를 들고 꾸준히 과학자의 길을 가는 이들이 있다.

낡은 것들이 변화에 의해 절멸되면 새로운 것들이 마치 봄의 새 잔디처럼 그 자리를 메우고, 창조적인 부활의 순환은 역사보다 깊고 세대를 초월한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역작 ‘화성인 연대기’(Martian Chronicles)라는 책은 발견을 향한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제대로 포착했다. 이 책의 무대는 지구인이 식민지로 개척한 화성이며, 지구에서 온 이주민들은 주거지 근처, 지금은 폐허가 돼버린 고대화성의 문명에 대해 궁금해 한다.

어느 날 주인공은 아내와 두 자녀에게 마침내 화성인들을 찾아냈다며 가족을 안내한다. 그는 차를 몰고 가족을 사막 가운데 있는 유령마을로 데리고 간다. 으스스한 정적은 발자국 소리에 동강나고, 아버지는 이윽고 가족을 낡은 분수가로 이끌고 가서는 “화성인들이 이 안에 있다”며 분수 속을 쳐다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속에 나타난 것은 외계인이 아니라 수면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이었다.

오늘 분수대 속을 뚫어지게 바라보면 그대가 보는 것은 여러분을 응시하는 화성인이 아니라 미래와 과거를 동시에 존재하는 희미한 당신의 메아리, 즉 아주 오래 전에 사멸한 별의 전사일지어다.

그리고 브래드버리의 소설처럼 그들이 그 위대한 도시를 건설했다는 사실과 당신이 그들을 보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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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로버트 로플린 총장
  • 번역

    이현경 수석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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