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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현지취재, 미국 라인연구센터

컴퓨터 게임하며 염력을 개발한다

초능력 연구의 대명사인 라인연구센터를 찾았다. 카드나 주사위 같은 고전적인 초능력 연구 도구들이 뇌파탐지기, 비디오, 컴퓨터로 바뀌고 있다. 일반인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초능력은 가능할 것인가.

"이웃 사람들은 저희들이 마법사나 주술가인 것처럼 쑤근대곤 합니다. 그래서 지난 10월31일 할로윈(Halloween)축제 때 연구소를 일반인에게 공개했습니다. 아이들과 손을 잡고 온 부모들이 처음에는 긴장된 눈으로 여기저기를 살피더니 이내 안심하는 표정이더군요."

1996년 11월4일 초능력 연구의 본산인 미국 라인연구센터를 찾았을 때 여직원이 담담하게 던진 첫마디였다. 라인연구센터의 '라인'은 1927년 듀크 대학 심리학과에서 초감각지각(ESP, extrasensory perception)과 염력(PK, psychokinesis)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해 세계적으로 초능력 연구를 촉발시킨 라인 교수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1962년 라인 교수는 대학에서 퇴직하면서 자유로운 연구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인간본성에 관한 연구재단'을 설립했고, 1995년 라인 교수가 태어난지 1백년을 기년해 이름을 바꾼 것이 현재의 연구센터다. 이곳에서는 박사급 연구원 10여명이 연구에 임하고 있는데, 대부분 심리학 전공자다.

만나기로 약속한 브로튼 소장을 기다리는 동안 여직원은 1층에 있는 자료실로 안내했다. 자료실에는 라인 교수가 1937년 펴내기 시작한 정기간행물 초심리학회지(Journal of Parapsychology)를 비롯해 초자연현상에 대한 각종 희귀서들이 빽빽히 차 있었다. 라인 교수가 초창기에 초능력자들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고전적인 장면들도 사진집에 가득했다.

곧 브로튼 소장이 2층에서 내려왔다.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50대 중반의 인자한 인상이었다. 초능력에 어떤 종류가 있는지부터 얘기가 시작됐다.

초능력이란 무엇일까

"흔히 말하는 초능력을 우리는 초심리학(parapsychology)이라 부릅니다. 심리학(psychology) 앞의 첨자(para)는 '옆에'(beside)또는 '넘어서'(beside)의 뜻입니다. 즉 기존의 심리학에서 사용되지 않는 방식으로 특이한 능력을 연구한다는 의미입니다. 라인 교수는 초심리학을 크게 ESP와 PK로 구분했습니다. ESP는 텔레파시, 직관, 원격투시처럼 인간의 5감을 뛰어넘는 어떤 감각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현상이고, PK는 마음먹은대로 물체를 움직이는 능력입니다."

라인 교수가 시작한 '고전적인' ESP실험은 카드맞추기. 별, 사각형, 원, 십자형, 물결무늬가 새겨진 5장의 카드를 5장씩 준비해 무작위로 섞은 뒤 한장을 뽑았을 때 그 무늬를 맞추는 실험이다. 이때 우연히 맞출 확률은 5분의 1이다. 즉25장 중 5장을 맞추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실험 결과는 달랐다. 한 사람당 8백번씩 실험을 하고 통계를 내보니 5장 이상을 맞춘 사람들이 적지 않게 발견됐다. 물론 10장 이상을 맞춘 특수한 학생도 있었다.

이후 1960년대 초반까지 초심리학자들은 카드맞추기 실험을 활발히 진행했다. 그러나 오래 반복하다보니 지루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일상 생활에서 ESP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고 싶었다.

"새로운 전기는 1964년 여름 뉴욕 브루클린 마이모니데스 의료센터에서 마련됐습니다. 당시 정신분석학자 어윈 박사는 꿈을 꿀 때 ESP능력이 발견된다는 점을 알아냈습니다."

어윈박사의 초기 연구

어윈 박사의 머리에 연결된 전극은 옆방의 뇌파 탐지기에 연결돼 있었다. 옆방에서 플로스키라는 연구원은 졸지 않으려고 잡지르 뒤적거리며 반응을 기다렸다. 또다른 방에서 한 연구원은 텔레파시로 어윈 박사에게 정보를 전달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어윈이 잠들었다는 신호를 받으면 많은 그림 중 하나를 임의로 꺼내 정신을 집중해서 어윈에게 영상을 보내는 일이었다.

탐지기의 펜이 떨리기 시작했다. 눈동자를 많이 움직이며 꿈을 주로 꾸는 렘(REM)수면 단계에 이른 것이다. 플로스키는 어윈이 막 꿈꾸기 시작했다고 판단하고 다른 방에 신호를 보냈다.

몇분 후 렘 수면이 끝나자 플로스키는 어윈 박사를 깨워 무슨 꿈을 꾸었는지 물었다. 어윈은 잠을 덜 깬 목소리로 말했다. "폭풍, 비바람…내가 예날에 오클라호마를 여행했을 때 폭풍이 다가오는 생각이 다시 난다." 몇분 후 그는 다시 생각에 잠기며 말했다. "예전에 살았던 뉴멕시코의 기억을 느꼈다. 뉴멕시코를 둘러싼 산들이 많았다."

다시 잠든 어윈 박사에게 계속 실험이 진행됐다. 다섯번째와 마지막에 어윈 박사는 2차대전에 사용되던 선전문구를 떠올렸다.

어윈 박사가 꾼 꿈의 정체는 다른 방에서 텔레파시를 보내던 연구원이 본 그림 내용이었다. 그림은 멕시코 혁명가 자파타를 묘사한 것이었다. 군인들이 줄을 지어 행진하는 모습, 무장한 남자들, 숄을 걸칠 부인들. 그리고 어두운 산과 음산한 구름이 담겨 있었다. 또 자파타의 추종자들은 멕시코 계통의 인디언이었다. 어위 박사가 말한 꿈과 거의 일치하는 장면들이었다.

학자들은 보다 흥미로운 실험을 계획했다. 꿈을 꾸면서 미래의 사건을 예측할 수 있을까. 실제로 이 일이 실험실에서 실현됐다.
 

ESP 측정 장치. 피실험자가 잠이 들면(왼쪽), 옆방에서 뇌파 탐지기를 통해 수면 상태를 확인한다(가운데). 꿈을 꾸는 상티에 이르면 다른 방에 잇는 초능력자가 임의로 선택된 TV화면을 보며 이 영상을 텔레파시로 잠든 사람에게 보낸다(오른쪽).


영매 베센트는 진짜 초능력자인가

1969년 영국인 영매(靈媒)베센트가 마이모니데스 연구센터에 초대됐다. 베센트는 평소처럼 잠을 자고 꿈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림은 그날 밤이 아닌 다음날 아침에 선택됐다. 즉 베센트는 연구원이 어떤 그림을 선택할지 미리 꿈을 꾸는 것이다.

"큰 콘크리트 빌딩…위층으로 가는 환자…흰옷을 입은, 의사 옷같은…" 베센트가 묘사한 내용이었다. 세번째 꿈에서는 느낌을 기록했다. "사람들의 적대감…내 느낌으로 그들은 의사와 병원 사람들이었다."

다음날 아침 한 연구원이 임의의 그림 하나를 선택했다. 그 전에 베센트의 기록물은 이미 다른 곳으로 우편으로 보내져 있었다. 선택된 그림은 놀랍게도 병원의 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었다. 반 고호의 작품 '성레미의 병원복도'였다. 베센트는 8회를 실험했고, 이 중 7회를 거의 맞춰냈다.

1978년 기금 지원이 중단되자 마이모니데스 연구센터의 실험은 막을 내렸다. 1988년 팀 일원이던 보한과 캘리포니아 대학 통계학자 우츠는 전체 연구 결과를 통계학적으로 평가했다. 실험이 우연히 성공할 확률은 50%로 볼 때 마이모니데스 실험 결과는 83.5%의 확률을 보였다.

라인연구센터의 실험

라인연구센터는 마이모니데스의 실험전통을 이어받았다. 실험 대상자는 특정인들에서 일반인들로 확장됐다. 잠을 자게 하는 대신 몸의 긴장을 풀게 유도한다는 점과 약간의 테크닉이 개량된 점이 달랐다.

브로튼 소장은 실험실이 있는 2층으로 안내했다. 그러면서 연구소에서 행해지는 실험을 보여줬다. 절반으로 갈라진 탁구공을 두 눈에 붙이고 눈을 뜬 채 편안한 의자에 길게 누워 긴장을 푼다. 이어폰을 통해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조명은 붉은 색. 이렇게 외부세계의 시각과 청각 정보가 차단된 채 15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실험이 시작된다. 다른 방에서는 '훈련된' 한 사람이 비디오 화면에서 임의로 한가지 그림을 선택한다. 30분 정도 그림을 응시하면서 옆바에 누워있는 사람에게 영상을 전달한다.

30분 후 텔레파시를 받은 사람에게 선택된 그림을 포함한 4가지 그림이 제시된다. 그는 자신이 전달받은 영상을 떠올리며 그림을 택한다. 정상적인 경우 맞출 확률은 4분의1. 현재까지 실험 결과 통계적으로 훨씬 웃도는 수치가 나오고 있다.

마음대로 물체 움직이는 능력,PK

다시 이야기는 PK쪽으로 옮겨졌다. 'PK'하면 숟가락을 구부리는 유리 겔러의 모습이 가장 쉽게 떠오른다. 브로튼 소장은 "숟가락 구부리기가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것이 사실"이라며"최근 집단적으로 모여서 '구부러져라' 하고 소리치는 집단적인 PK파티가 종종 열린다" 고 설명한다. 재미있는 점은 이들의 대부분이 격무에 지친 워싱턴의 관료들이라는 사실이다. 흥미 위주의 실험보다 과학적인 연구가 중요하다고 보는 브로튼 소장으로서는 이런 현상이 못마땅한 눈치였다.

PK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 역시 라인 교수로부터 시작됐다. 그가 행한 방법은 주사위 던지기. 보통의 경우 한 면이 나올 확률은 6분의1이다. 그런데 어느 면이 나오라고 마음을 먹을수록 그 면이 나올 확률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아졌다. 특히 PK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거의 마음먹은대로 주사위를 던지곤 했다.

하지만 주사위를 던지고 맞추는 방법은 무척 지루했다. 뭔가 눈에 보이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옛소련의 초능력 연구

이 증거는 1970년 10월 옛소련 레닌그라드 호텔의 한 방에서 마련됐다. 동구와 서구의 과학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중년의 쿨라지나 부인이 남편과 함께 방에 들어섰다. 손에는 조그만 나무성냥갑 상자가 들려 있었다.

옛소련의 과학자가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몇분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하자 참석자들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손을 뻗쳐 성냥갑 가까이에 대고 정신을 집중했다. 갑자기 성냔갑이 그녀를 향해 몇cm 정도 끌려왔다. 그녀는 같은 일을 다시 한번 반복했다. 그러자 사회자는 "준비가 끝났다"고 알리며 참석자들을 방으로 불렀다.

탁자 위에 유리를 잘개 썬 조각들이 놓여졌다. 그 위에 과학자들이 준비한 자성이 없는 원통형 물체가 세워졌다. 그녀가 정신을 집중하자 물체가 유리를 헤치며 끌려왔다. 과학자들은 이 장면을 '정신 없이' 카메라에 담았다.

옛소련의 물리학자들은 1978년부터 1984년까지 쿨라지나 부인을 상대로 연구를 진행시켰다. 연구는 레닌그라드의 정밀역학ㆍ광학연구소, 모스크바의 무선공학ㆍ전자연구소와 바우만 고등기술원 등에서 활발히 진행됐다. 레이저를 쏠 때 투과하는 가스의 물리적 성질을 변화시켜 레이저의 강도를 감소시킨 점이 특히 관심을 끌었다.

그녀는 정신을 집중할 때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 같았다. 심장박동이 1분에2백40회까지 증가했으며, 실험 후 체중이 1.4kg정도 감소했다. 또 손 주위에 정상인과 달리 강한 자기장이 형성됐다. 그러나 이 현상들이 염력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쿨라지나 부인은 상당한 능력을 갖춘 초능력자였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을 발견하기가 수비지 않아 실험이 잘 진행되지 못했다. 만일 작은 능력이라도 감지할 수 있는 기계가 있다면 보다 충분한 실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인연구센터의 ESP실험 장면. 반으로 자른 탁구공을 눈에 붙인 채 텔레파시를 수신할 준비를 갖춘 모습이다.


마이크로 PK시대 개막

"1970년 여름PK연구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습니다. 라인연구센터에서 미국 보잉과학연구소 물리학자 슈미트 박사가 획기적인 실험기구를 만들었죠. '마이크로PK'시대가 개막됐습니다."

슈미트 박사는 한변이 30cm, 높이10cm정도의 알루미늄 상자 위에 작은 전구 9개를 원형으로 배열했다. 상자 안에는 방사성원소(스트론튬 90)가 들어있었다. 방사성원소가 자연적으로 붕괴하면 전자들이 튀어나와 제멋대로 움직인다. 이때 전자는 튀어나와 제멋대로 움직인다. 이때 전자는 몇가지 수준의 에너지를 방출한다.

슈미트 박사는 전자의 방출 에너지가 두가지 종류(A,B)로 감지되도록 조작했다. 또 이 에너지의 자극을 받으면 전구가 켜지도록 장비를 설치했다. 마지막으로 A수준의 에너지가 방출되면 전구가 오른쪽으로 켜지도록 만들고, B수준의 경우 왼쪽으로 켜지도록 장치했다. 이때 어느 순간에도 전구는 하나만 켜지도록 돼 있었다.

보통의 경우 방사성원소의 붕괴가 시작될 때 전구가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켜질 확률은 반반이다. 그래서 불이 양쪽으로 왔다갔다하는 현상이 쉽게 발견된다.

하지만 의식을 집중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오른쪽으로 켜지라고 의식을 집중하면 보통의 경우보다 오른쪽으로 켜지는 비율이 높아진다. 성냥갑을 움직이게하는 정도의 능력이 없어도 PK를 쉽게 감지할 수 있는 기계가 탄생한 것이다.

몇년 간 실험한 결과 한쪽으로 켜질 확률을 50%로 볼 때 그 비율이 52-53%까지 증가하는 사례가 많이 등장했다. 최고치는 76%였다.
 

염력의 증거. 유리공 안에 곧은 철사를 넣은 뒤 제멋대로 구부러지게 만든 모습이다.


즐기면서 배운다

최근 라인연구센터는 이 기계를 좀더 '부드럽게' 개량했다. 즐기면서 실험하는 게임기계를 만든 것이다.

2층에 마련된 PK방에는 컴퓨터 한대가 놓여 있었다. 화면 왼쪽 중심에 커서가 깜박이고 있다가 시작 버튼을 누르면 오른쪽으로 점을 찍어간다. 이때 점은 위쪽이나 아래쪽 중 어느 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프로그램돼 있다.

보통의 경우 점이 위나 아래로 찍힐 확률은 각각50%다. 따라서 일정 시간 동안 점들이 그런 그래프를 평균내면 중간값이 나타난다. 화면에서 보면 중간 위치에 직선을 그려나가는 셈이다.

하지만 사람이 어느 한방향으로 의식을 집중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위쪽으로 커서가 움직이라고 의식을 집중하고 평균을 내보면 중간보다 위쪽으로 움직인수치가 나온다.

브로튼 소장은 "누구나 이 '게임기계'로 수백번 이상 연습하면 눈에 띄게 값이 달라진다"고 장담한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돋보였다. 그래서 1974년 이후 매년 8주간 진행돼 온 여름학기프로그램 참가자들은 다른 것보다 이 기계에 쉽게 적응하는 편이다.

이틀 간의 취재일정을 끝낼 시간이 다가왔다. 문 밖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 지붕에서는 여름에 닥친 허리케인으로 망가진부위를 공사하느라 시끌했다. 브로튼 소장이 멋적은 듯 어깨를 으쓱대며 밝게 웃었다. 별다른 수익사업을 별이지 않으면서 연구와 교육에만 전념하는 비영리단체의 대표다운 모습이었다(인터넷주소:http://world.std.com/~rhine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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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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