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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테라피] 영화 인셉션 과 인간의 그림자

기계를 사면 사용 설명서가 들어 있다. 버튼은 어디에 있는지, 주의할 사항은 무엇인지 설명서에 적혀있는 대로 하면 크게 실수할 일이 없다. 하지만 인간을 위한 사용 설명서는 어디에도 없다. 누구나 몸 하나만 가지고 태어난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사용(?)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한 사람에 대해 속속들이 알기란 직접 낳은 부모라도 불가능하다. 부모는 자신의 경험과 가치관, 기대치를 근거로 자식을 추측할 뿐이다. 그래서 종종 자식들로부터 “저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러세요?”라는 반항어린 대답을 듣기도 한다. 인간은 자신에 대한 정보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드라마를 쓰는 것이다.



가족이라 더 모르는 정신병



필자는 영화 ‘인셉션’이 인간이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는 남의 꿈을 조작해 원하는 정보를 표적의 마음 속에서 얻어 내는 침입자다. 그는 의뢰인으로부터 경쟁 관계에 있는 사람의 무의식 속에 아버지와의 갈등을 심어달라는 요구를 받는다. 코브는 꿈속에 꿈을 만드는 복잡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임무를 수행해나간다.



의식이다. 일찍이 꿈속에 세상을 설계하는 법을 알았던 코브는 아내와 함께 꿈속에 자신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 산다. 하지만 어느 순간 더 이상 꿈의 세계에서만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곳에서 나오려고 한다. 하지만 아내는 현실로 돌아온 뒤에도 오히려 현실이 꿈의 세계라고 믿었다. 결국 아내는 꿈(사실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호텔에서 떨어져 자살하고 코브는 아내를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코브의 꿈에 등장하는 아내는 난폭하고 포악스러운 모습이다. 왜 그럴까.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코브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모습일까. 필자가 생각할 때는 코브의 무의식 속에 원래부터 난폭하고 포악한 모습의 아내가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보통 가정에서의 모습과 사회 생활을 하는 대외적인 모습이 같지 않다. 밖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이 가정에서 드러난다. 이 때문에 가족은 나의 가장 적나라한 모습을 보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오히려 가족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게 만든다. 정신질환이라고 여겨질 만한 행동이 이어지는데도 가족들만 그가 정신병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가족들은 단지 그의 단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병이 심해지고 있는데도 가족들은 그가 점점 더 못되게 군다고만 생각한다. 가족은 그의 단점이 장점을 다 뒤엎어 오로지 단점만 남았을 때가 돼서야 정신병임을 인정하게 된다.



무의식을 마주 대할 용기



필자의 환자 중에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성실한 아내와 어머니라고 생각하는 여성이 있었다. 그런데 병이 심해지자 그녀는 다른 사람은 전혀 배려하지 않는 광폭한 모습으로 변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것은 평소에도 그녀의 성실성 밑에 숨어 있던 모습이다. 그녀는 원래 고집이 세고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생각하는 타입이었다. 그것이 평소에는 그녀의 친절하고 성실한 장점에 가려 있다가 병이 심해지자 나타난 것이다. 심리학자 카를 융은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지만 내 안에 존재하는 어두운 면을 가리켜 ‘그림자(shadow)’라고 불렀다.







코브의 아내도 마찬가지다. 그녀 역시 어두운 무의식에 너무 많은 자리를 내어준 탓에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무의식은 개인의 비밀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공간이다. 때문에 온갖 심리적인 과정이 일어나지만 정작 자신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우리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재빨리 커튼을 내리는 이유는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 자기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하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영화의 또 다른 줄기인 피셔(킬리언 머피 분)의 스토리도 마찬가지다. 그는 코브가 꿈을 통해 무의식을 조종하고자 하는 대상이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 받지 못했다는 피해의식 속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피셔가 무의식에서 아버지를 찾아가는 과정의 배경은 아름다운 해변이 아닌, 눈발이 흩날리는 겨울산이다. 그만큼 그의 마음속은 얼어붙어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자기만의 생각이었음을 꿈을 통해 알게 된다. 아버지의 비밀 금고 속에는 어린 시절에 그와 함께 가지고 놀았던 바람개비가 들어 있었다. 이 영화는 자신을 아는 과정이야말로 가장 지난한 일임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서 꿈을 설계하는 소녀처럼 자신을 아는 사람은 설사 남이 내 무의식에 들어와도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소녀는 자기 자신에 대해 숨김없이 드러내고 자유롭기 때문에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상대방의 문제인지 아는 혜안을 갖고 있다. ‘자신을 아는 것만이 자신을 이기는 것’이라는 소크라테스의 진리가 인셉션의 주인공들에게 필요한 말이 아닐까. 1                      

2010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양창순 양창순신경정신과 원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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