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가 얼마나 짧은 시간인지 실감할 수는 없지만, 찰나와 같은 시간은 우주가 탄생하면서 시작됐다. 또 우주 탄생 직후 찰나보다 짧은 시간에 우주가 ${10}^{30}$배나 커지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찰나에 벌어지는 우주의 신비를 벗겨보자.
아우구스티누스 가라사대
현재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우주는 빅뱅이라는 대폭발로 탄생했다고 믿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빅뱅이란 말을 한번쯤은 들어서 알고 있다. 일반인은 태초에 빅뱅이 있었다고 하는 말을 들을 때 그 전에는 어떠했느냐고 묻고 싶어 입을 근질거린다.
영국의 천재 과학자 스티븐 호킹이 쓴 ‘시간의 역사’에는 다음과 같은 대화가 소개돼 있다. “신은 우주를 창조하기 전에 무엇을 했는가?” “신은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지옥을 만들고 있었다.” 이 우스갯소리를 소개하는 이유는 빅뱅 이전에, 정확히 말하면 우주가 탄생하기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질문이 사실 성립하지 않는 질문이란 말을 하고 싶어서다.
빅뱅우주론에 따르면 빅뱅이란 공간의 시작일 뿐 아니라 시간의 시작이기도 하다. 빅뱅 이전에는 시간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빅뱅 이전이란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호킹이 든 예처럼 북극점에 서서 더 북쪽이 어디인지를 묻는 질문과 같다. 북극점에서 움직일 수 있는 곳은 남쪽뿐이다.
시간이란 개념은 사실 우주가 시작하기 이전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것을 처음으로 지적한 사람은 빅뱅이란 개념이 나오기 훨씬 전 시대의 성인(聖人) 아우구스티누스다. 그는 “시간이란 신이 창조한 우주의 특성”이라며 “우주가 시작되기 전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찰나와 같이 짧은 시간이건, 137억년의 우주 나이처럼 긴 시간이건, 시간은 우주와 함께 탄생했다. 찰나는 우주가 탄생하는 순간 태어난 셈이다.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짧은 시간
우주가 빅뱅에서 시작됐다는 아이디어는 미국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의 관측 결과에서 나왔다. 1929년 허블은 당시 세계 최대 망원경으로 여러 은하를 관측해 은하들이 거리가 멀수록 더 빠르게 멀어진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즉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했던 것이다.
팽창하는 우주라는 블록버스터의 필름을 거꾸로 돌린다면? 지구, 태양, 은하 등 우주의 모든 물질은 결국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온도와 압력이 높은 상태의 한 점에 모일 것이다.
1970년대 호킹은 로저 펜로즈와 함께 일반상대성이론을 바탕으로 우주 탄생 순간에 크기가 0인 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우주가 무한히 작은 점인 특이점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바로 빅뱅 특이점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아는 과학으로 빅뱅 특이점을 설명할 수 없다. 팽창하는 우주라는 영화 필름을 거꾸로 돌리는 상황에 비유한다면 이는 현대 과학으로 더 이상 감을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 시점이 바로 우주가 빅뱅으로 탄생한 지 ${10}^{-43}$초가 되는 순간이다. 이 짧은 시간을 플랑크 시간이라고 한다. 플랑크 시간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짧은 시간이다.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한 순간부터 플랑크 시간 동안 자연계에 존재하는 4가지 힘(강한 핵력, 약한 핵력, 전자기력, 중력)이 하나로 통합돼 있었다고 과학자들은 생각한다. 또 이 짧은 시간 동안 시간과 공간조차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모호하고 불연속적이다. 문제는 이 빅뱅 찰나를 기술할 물리학이 아직 없다는 데 있다. 현재 빅뱅 순간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결합시키려고 노력 중이다.
우주가 탄생한 후 플랑크 시간이 지나자마자 4가지 힘 가운데 중력이 독립해 일반상대성이론의 적용을 받는다. 남은 세 힘은 그때부터 우주가 탄생한 후 ${10}^{-35}$초가 지날 때까지 대통일이론(Grand Unified Theory)으로 통일돼 설명된다. 검증은 안됐지만 타당성 있는 이론이다.
우주가 탄생한 후 ${10}^{-35}$초가 지나면 원자핵을 뭉쳐 있게 하는 강한 핵력이 독립하고 ${10}^{-11}$초가 지나면 전자기력이 방사능 현상에 관여하는 약한 핵력과 갈라진다. 20세기 후반 과학자들은 이 두 힘을 통일하는 이론을 제시했는데, 1980년대 이 통일된 힘이 예측한 고에너지 입자들이 가속기 실험에 발견됨으로써 이 이론은 확고한 인정을 받게 됐다. 기존의 이론들로 우주 탄생 ${10}^{-11}$초 후부터 현재까지 잘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다.
10${}^{30}$배의 뻥튀기, 인플레이션
우주 초기에 또 하나의 중요한 찰나가 있었다. 바로 급팽창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이 일어난 시기다. 인플레이션 이론에 따르면 빅뱅 후 플랑크 시간이 지난 바로 뒤에 우주가 가속적으로 부풀어 그 크기가 찰나보다 짧은 순간에 10${}^{30}$배 이상 커졌다고 한다.
우주 초기에는 물질과 빛이 뒤엉켜 있어 빛이 자유롭게 다닐 수가 없었다. 하지만 빅뱅 후 30만년이 지나면 비로소 빛이 물질과의 상호작용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다. 이때 출발한 빛이 현재 우주배경복사로 관측되고 있다.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한 결과에 따르면 우주의 어느 방향에서나 동일한 정보가 온다. 이는 우주의 등방성이다.
또 우주배경복사를 관측하면 우주공간의 모양을 알 수 있다. 우주배경복사에 나타나는 뒤틀림의 정도가 중간에 거쳐 온 우주공간의 모양을 무심결에 드러내기 때문이다. 최근 우주배경복사의 관측결과에 따르면 우주는 매우 평탄한 것으로 밝혀졌다.
인플레이션 이론은 우주의 등방성과 평탄함을 설명하기에 적합하다. 이론에 따르면 빅뱅 후 ${10}^{-35}$~${10}^{-32}$초 사이에 우주의 크기가 ${10}^{-33}$cm 정도에서 ${10}^{-3}$cm 이상으로 커졌다고 한다. 우주 초기에 에너지 분포가 방향에 따라 달랐다고 해도 엄청난 팽창을 겪으면 이런 차이가 사라지고 우주는 등방성을 갖게 된다. 또 풍선을 엄청 크게 불면 불기 전에 둥글게 보이던 풍선 표면은 평탄하게 되고 만다. 즉 평탄한 우주가 되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이론의 또 하나의 매력은 이 메커니즘이 오늘날 여러 천체를 탄생시킨 씨앗을 자연스럽게 뿌려준다는 점이다. 급격한 공간 팽창은 이전의 에너지 불균일성을 지웠을지 모르지만 이 팽창을 일으키던 기운은 위치마다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양자역학적 흔들림’이라는 미세한 차이를 갖는다. 이 양자역학적 불균일성이 자라서 현재 태양 같은 별, 은하, 은하단 등으로 태어난 것이다.
우주 초기에 인플레이션이란 엄청난 뻥튀기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우주뿐 아니라 인간도, 지구도 탄생하지 못했으리라. 우주가 탄생하고 찰나도 되지 않은 순간에 우주엔 너무도 큰 사건이 벌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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