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간으로 내년 1월 1일 오전 9시에는 1초가 더 생긴다고 한다. 8시 59분 59초 다음에 8시 59분 60초라는 윤초가 추가되는 것이다.
수학적으로 1초는 8만6400분의 1일이다. 하지만 달의 조석력 등으로 지구의 자전속도가 서서히 느려지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삼으면 계산에 문제가 생긴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1초를 세슘원자에서 방출된 빛이 91억9263만1770번 진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새롭게 정의했다. 즉 세슘원자시계를 이용해 측정한 원자시와 천문시 사이에 발생하는 차이를 보정하기 위해 윤초를 넣은 것이다.
1초밖에 안되는 윤초를 무시할 정도로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통신이나 항해, 항공, 금융시스템에서는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1초 차이로 항로를 벗어나 엉뚱한 곳으로 갈 수 있고, 금융 거래에서는 기업의 생사가 결정되기도 한다.
과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리에서 대부분의 입자에게도 1초는 영겁의 시간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입자는 200개가 넘지만 이 중 1초 이상 존재하는 입자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나머지는 태어나는 그 순간 바로 사라져버린다. 왜 그럴까.
내 운명은 붕괴
쿼크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광자와 렙톤, 메손, 그리고 바리온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기본입자라고 생각됐다. 하지만 가속기 실험과 함께 수백 개의 메손과 바리온이 발견되면서 기본입자 수가 엄청나게 늘어나자 물리학자들은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 미국 스탠퍼드선형가속기센터에서 진행된 일련의 실험으로 양성자와 중양성자(양성자 하나와 중성자 하나가 결합된 핵)가 전자 전하의 -1/3 또는 +2/3를 갖는 더욱 작은 입자로 이뤄져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1970년대 초 메손과 바리온이 쿼크라고 불리는 기본입자들로 구성된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졌다.
그런데 왜 처음부터 쿼크를 찾지 못했던 것일까. 수많은 렙톤과 메손, 바리온 중에서 안정된 입자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전자와 양성자 정도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입자들은 붕괴해 안정된 전자나 양성자로 변환된다. 쿼크 중에서도 무거운 것들은 가장 가벼운 u쿼크나 d쿼크로 변환된다.
쿼크와 반쿼크가 모여 메손을 이루고 쿼크 세 개가 합쳐져 바리온을 이루는 등 쿼크가 절대 혼자 존재하는 법이 없다는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도 이들이 변환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 처음부터 쿼크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생성되자마자 찰나의 수명이 다해 붕괴해버리면 이들의 일생도 끝난다. 그 찰나를 잡지 못하면 그들은 태어나지 않은 것과 매한가지다.
그런데 이들이 찰나의 일생을 사는 것은 ‘운명’이기도 하다. 우주가 생성되는과정을 보자. 우주는 붕괴를 통해서 평형상태에 도달했다. 밀도와 온도가 무한대인 하나의 점이 일순간 붕괴되면서 에너지를 사방으로 분산시켰고 이로 인해 지금의 우주가 만들어졌다. 대부분의 입자가 찰나에 붕괴되는 것도 이런 평형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찰나의 순간에 입자들은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예를 들어 양성자와 중성자가 서로 변환될 때 파이중간자를 방출하거나 흡수하는데, 이 때 파이중간자의 수명은 약 1억분의 1초다. 이 짧은 순간에 입자들은 서로 ‘적’인지 ‘친구’인지 정보를 교환하고 결합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입자의 수명을 측정하는 이유는 뭘까. 입자의 수명은 서로 다르다. 수명을 알아내면 입자에 작용하는 힘에 대한 결정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힘 약할수록 수명 길어져
자연계에는 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의 네 가지 힘이 존재한다. 모든 입자들은 중력에 의해 서로 끌어당긴다. 전하를 띤 입자는 전자기력에 의해 끌리거나 밀린다. 중력과 전자기력은 모두 무한대의 거리까지 작용하는 힘이며, 질량이 0인 중력자나 광자에 의해 전달된다.
반면 강력과 약력은 핵반응 현상에 관여하면서 매우 근접한 거리에서만 효력이 있다. 강력은 쿼크들을 결합시켜 바리온을 만들고, 다시 바리온들을 결합시켜 핵을 만든다. 약력은 입자를 붕괴시킨다.
강력과 약력이라는 이름은 전자기력과 비교해 상대적인 힘의 크기에 따라 붙여졌다. 강력은 전자기력보다 약 1000배 이상 크고, 약력은 전자기력보다 약 1만배 이상 작다. 넷 중 가장 작은 힘은 중력으로 약력보다 약 1032배나 작다.
입자 사이에 작용하는 힘의 크기에 따라 힘이 작용하는 시간이 결정된다. 강력이 관여하는 반응은 약 10-24초 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이 시간은 빛이 양성자 지름에 해당하는 1펨토미터(1fm =10-15m)를 통과하는 시간에 불과하다. 강력보다 상대적으로 힘의 크기가 작은 전자기력이 관여하는 반응은 조금 길어져 10-20~10-16초 정도 지속되고, 이보다 더욱 작은 약력이 관여할 경우에는 10-13~10-6정도로 늘어난다.
렙톤 중 하나인 뮤온은 평균 2.2×10-6초를 산 다음 전자 1개와 중성미자 2개로 깨진다. π+나 π-처럼 전하를 가진 파이중간자는 평균 2.6×10-8초를 산 다음 뮤온 1개와 중성미자 1개로 붕괴하고, 이 뮤온은 다시 전자 1개와 중성미자 2개로 붕괴된다. 이들의 반응시간을 보면 뮤온과 전하를 가진 파이중간자는 모두 약력에 의해 붕괴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반면 같은 파이중간자라 하더라도 중성의 파이중간자(π0)는 평균수명이 8.4×10-17초고 광자 2개로 깨지므로 약력이 아닌 전자기력에 의한 붕괴라고 할 수 있다. 또 페르미가 처음으로 발견한 델타 바리온은 생성된 뒤 평균 5.5×10-24초밖에 살지 못하고 이내 양성자 1개와 파이중간자 1개로 붕괴하기 때문에 이는 강력에 의한 붕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물론 이 파이중간자는 약력에 의해 다시 붕괴한다).
모든 것은 힉스 손에
입자의 찰나는 어떻게 측정할까. 델타 바리온은 약 ${10}^{-23}$초 안에 붕괴되고 사라지는데 현재 기술로는 이렇게 짧은 순간에 붕괴되기 직전의 델타 바리온을 직접 확인하고 그 성질을 연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다. 델타 바리온이 붕괴하면서 생성된 양성자와 파이중간자를 측정하는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입자는 죽어서 다른 입자를 남기는 격이다.
양성자와 파이중간자 각각의 운동량을 측정한 다음 이들의 불변질량을 이용해 스펙트럼을 구한다. 이 스펙트럼의 최대치에 해당하는 불변질량이 델타 바리온의 질량이고, 봉우리의 폭이 델타 바리온의 평균수명의 역수가 된다.
현재 이런 방법을 이용해 알고 싶은 영순위 입자는 힉스다. 힉스는 모든 입자가 질량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기본입자다. 입자들은 힉스가 만드는 힉스장과 상호작용해 입자 고유의 질량을 갖는 것이다. 예컨대 전자는 힉스장과 약하게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질량이 겨우 9.1×10-31kg 밖에 되지 않지만 양성자는 힉스장과 강하게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질량이 전자질량의 2000배나 된다. 만약 힉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물질과 우주가 현재의 질량을 갖게 되는 과정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중요한 입자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실험으로 발견되지 않아 물리학자들의 애를 태우는 입자가 힉스이기도 하다. 힉스가 전자와 같이 수명이 무한대로 안정된 입자인지, 그렇지 않으면 뮤온처럼 일순간 존재하다 붕괴하는 불안정한 입자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힉스의 수명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론이 존재하지만 힉스가 여러 경로를 통해 붕괴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하다. 우리 주변에서 매우 무거우면서도 안정된 힉스입자를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이를 뒷받침해 준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붕괴 형태는 힉스가 뮤온 4개로 붕괴하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충돌에 의해 생성되는 모든 뮤온의 운동량을 측정해 이들의 불변질량 스펙트럼을 얻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이를 위해 스위스 제네바 근처에 있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는 2007년 8월 완공을 목표로 대형 강입자 충돌가속기(LHC)를 짓고 있다. 7조eV로 양성자를 가속시키고 가속된 양성자들을 1초에 수억 번 정면충돌시켜 입자가 생성되기 전인 빅뱅 직후의 고에너지 밀도 상태를 만든 뒤 이로부터 우주가 팽창하면서 입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실험실에서 재현할 계획이다. 만약 힉스입자가 존재한다면 불변질량 스펙트럼에서 힉스봉우리가 나타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봉우리가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다
학부 은사님 중 한 분이 “물리학이란 ‘왜’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를 연구하는 것”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왜’는 신의 영역에 속하고, ‘어떻게’는 인간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이다. 입자의 수명만 놓고 보면 어쩌면 신은 태어나자마자 사라지는 입자의 정체를 인간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그토록 짧은 수명을 주진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이제 인간은 ‘왜’라는 질문을 거듭한 끝에 찰나보다 짧은 입자의 존재를 확인할 뿐 아니라 입자의 세세한 특징까지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우리는 어쩌면 이미 신의 영역에 한 발 들여 놓았는지도 모른다.
기본입자| 현재 표준모형에서는 6종류의 쿼크(u, d, c, s, t, p)와 6종류의 렙톤(전자, 뮤온, 타우온, 3가지 중성미자)이라는 기본입자가 물질 세계의 끝을 구성한다고 설명한다. 쿼크는 양성자(d쿼크 1개, u쿼크 2개)나 중성자(d쿼크 2개, u쿼크 1개)를 구성한다. 렙톤은 내부구조도 없고 부피도 거의 없는 점입자에 가까우며 강력을 제외한 전자기력, 약력, 중력이 작용한다.
다 양 한 길 이 의 순 간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가장 짧은 순간은 귀가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0.0001초다. 맨눈으로 볼 수 없는 원자나 분자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은 이보다 훨씬 짧은 순간에 일어난다.
0.0001초 | 외부 자극에 귀가 반응하는 시간
0.001초 | 야구 방망이와 공이 접촉하는 시간
0.2초 | 뇌에서 근육까지 명령이 전달되는 시간
0.4초 | 테니스 공이 코트를 가로질러 건너오는데 걸리는 시간
3초 | 휴대전화로 통화할 때 요금이 부과되지 않는 시간
4초 | 신경에서 신호가 100m 전달되는데 걸리는 시간
15초 | TV 광고 시간
25초 | 윈도XP 평균 부팅시간 (최단 부팅시간 10초)
3분 45초 | 우주 모든 물질의 98%가 만들어지는데 걸린 시간
10분 | 소장이 음식물을 1cm이동시키는데 걸리는 시간
10분 35초 | 화성탐사선 패스파인더가 보낸 신호가 지구에 도착하는 시간
10-43초 | 플랑크 시간. 현대물리학이 적용할수있는가장짧은시간
10-27초 | 초미니 블랙홀이 존재할 수 있는 시간
150아토초 | 수소원자에서 전자가 원자핵을 한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
350펨토초 | 엽록소 사이의 에너지 전달 시간
150 펨토초 | 효소가 유기물에 산소를 붙이는 시간
10-6초 | 원자폭탄에서 원자핵의 핵분열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시간
2.2×10-6초 | 뮤온의 수명. 660m 움직일 수 있지만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라 수명이 늘어나 지상에 도달
0.1초 | 눈한번깜박이는데 걸리는 시간
0.47초 | 박찬호가 던진 공이 타석에 도착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
1.3초 | 디지털카메라를 켜고 끌 때 걸리는 시간
9.77초 | 자메이카의 아사파 파월이 갱신한 육상 남자 100m 세계신기록(2005년 6월 기준)
20초 | 정자가 1mm를 이동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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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주는 뻥튀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