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나오는 범죄 심리학자들은 범인들의 거짓말을 쪽집게처럼‘콕’집어낸다.그들은 범인들의 말이나 행동에서‘거짓 증거’를 여지없이 잡아낼 수 있다는데….아무리 철저하게 거짓말을 해도 숨길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원초적 본능’에서 여자 주인공 샤론 스톤은 형사들의 신문 도중 ‘다리를 꼬는’ 뇌쇄적인 행동으로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과연 그녀는 자신의 섹시함을 과시하기 위해 다리를 꼰 것이었을까. 아니면 남자 주인공인 형사 마이클 더글라스를 유혹하기 위해서였을까.
영화 속에서는 그랬겠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다리를 꼰 동작이 그녀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가리키는 증거가 됐을지도 모른다. 만일 유능한 범죄 심리학자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는 샤론 스톤의 거짓말을 명쾌하게 가려냈을 것이다(그랬다면 아쉽게도 그 뒤에 이어진 주인공의 애정 행각은 포기해야 하니 영화 보는 재미가 반으로 줄었을 것이다).
이처럼 범죄인들의 행동이나 말을 통해 진실과 거짓말을 과학적으로 가려내는 것이 바로 ‘범죄 심리학’이다. 쉽게 말하면 ‘살아있는 거짓말 탐지기’를 만드는 것이다. 범죄 심리학자들은 범인들이 거짓말을 하면 자기도 모르게 말이나 행동을 통해서 ‘거짓말을 한다는 증거’가 나온다고 말한다. 치밀한 시나리오 하에 거짓말을 해도 숨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국내에서 범죄심리학을 연구하고 있는 김종률 검사(춘천고등검찰청)는 그 원인을 ‘불안감’이라고 설명한다. 김 검사는 지난 6월 9일 서울 성균관대에서 열린 한국심리학회 춘계 심포지엄에서 ‘형사피의자에 대한 행동 분석’이라는 주제의 범죄 심리학 논문을 발표해 많은 관심을 끌기도 했다.
불안감과 죄책감이 자백 부추겨
김 검사는 “범인이 아무리 그럴듯하게 거짓말을 해도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 속에는 불안감이 가득하다”며 “이 때문에 말이든 행동에서든 거짓말을 가려낼 수 있는 단서들이 나오게 된다”고 설명했다. 즉 들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죄책감, 거짓말이 계속되면서 뭔가 아귀가 맞지 않을 때의 당혹감 등이 겹쳐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자백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자신의 처를 칼로 찔러 죽인 범인이 있다. 그는 “처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인가”라는 평범한 질문을 받아도 자신이 처를 죽이던 장면을 순간적으로 떠올리기 때문에 말과 행동에 변화를 보인다. 이처럼 수사관은 범인에게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자극을 던지고, 이에 대한 범인의 반응을 통해 진실을 하나하나 밝혀가게 된다. 형사 콜롬보가 쓸데없어 보이는 질문을 계속 던지는 과정도 이같은 질문을 통해 범인의 심리를 파악하려는 것이다.
쉽게 알 수 있는 ‘거짓말 행동’은 무엇이 있을까. 거짓말쟁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가장 전형적인 행동은 이른바 ‘입 가리기’다. 범인들은 거짓말을 할 때 자신도 모르게 코와 입을 손으로 가리거나 덮는다. 거짓말이 자신의 입에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코와 입을 가렸다고 거짓말이 진실이 될까. 너무나 어이없는 생각이지만 우리의 무의식은 이렇게 생각한다(배우자나 아이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 때 코와 입을 유심히 보자).
손으로 눈을 비비거나 눈꺼풀을 긁는 것도 대표적인 ‘거짓말 행동’이다. 보통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면 남을 제대로 쳐다보기 어렵다. 범인들 역시 거짓말을 하면서 수사관을 보지 않기 위해 일부러 눈을 비비거나 눈꺼풀을 긁는다. 재미있게도 범인들은 거짓말을 하면서 자신의 몸을 다듬거나 치장하려고 한다. ‘쓰레기차가 먼지를 막기 위해 지붕을 덮는다’는 농담과 비슷하다. 범인들은 거짓말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추하다고 느낀다. 이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개선하려고 한다. 옷에서 실 보푸라기를 뜯거나 먼지를 터는 행동이 대표적인 ‘몸 다듬기’ 행동이다. 이밖에 여성들은 보석을 손질하거나 손톱을 검사하기도 한다.
샤론 스톤의 자기 방어 행동
영화 ‘원초적 본능’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샤론 스톤이 영화 속에서 보여준 다리 꼬기도 거짓말 행동 중 하나다. 물론 다리를 꼬았다고 해서 무조건 거짓말은 아니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도 형사 앞에서 다리를 꼰다.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범인들이 거짓말을 하면서 보여주는 다리 꼬기는 다르다. 범인들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다. 이런 식으로 범인들은 마음 속의 불안을 노출한다. 범인들의 다리 꼬기는 어딘가 불안하거나 굳어 보인다.
‘언제 다리를 꼬느냐’도 거짓말을 가려내는데 중요하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은 형사가 심문할 때 어려운 질문이 나오면 대개 두발을 바닥에 붙인다. 심문이 진행되면서 이 사람은 편안한 기분을 느끼게 되고, 다리를 꼬거나 기지개를 펴는 등 몸을 이완시키는 행동을 한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다리를 꼰 자세로 심문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샤론 스톤도 다리를 꼰 상태에서 심문을 받는다). 특히 거짓말쟁이는 단단하고 근육이 수축된 형태로 다리를 꼰다. 실제로 심문 현장에서 거짓말쟁이는 한쪽 발을 다른 쪽 허벅지 위까지 끌어올려 발목을 잡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전반적으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은 심문 중 다양한 자세나 행동을 보여준다. 거리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처음의 자세에서 잘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정신의 에너지’를 지키기 위해서다. 쉽게 생각해보자. 거짓말쟁이는 거짓말을 하는데 많은 정신적 에너지를 쓴다. 따라서 행동할 에너지가 부족하다. 따라서 범인의 자세는 얼어붙는 경우가 많다. 심문이 진행되면 진실한 사람들은 점점 편안해지며, 형사 쪽으로 다가간다. 이들은 대화 도중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다양한 손동작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누구를 때리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면 자신도 모르게 손이 올라가 남을 칠 자세가 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경직되고 물러서려고 한다. 특히 일부 거짓말쟁이들은 일부러 형사 쪽으로 다가서고 형사를 똑바로 본다. 이는 형사에 대한 도전적인 자세다. 샤론 스톤 역시 심문 도중 이런 자세를 보인다. 또 손은 대개 무릎 위에 올려놓거나 심지어 엉덩이 밑에 감춰버린다. 실제 미국에서는 이런 사건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경찰에 강도를 당했다고 신고했다. 두 남자가 8천6백달러를 훔쳐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형사와의 대화 내내 그의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아무런 손짓을 하지 않았다. 뒤에 이 남자는 자신의 절도를 감추기 위해 강도 사건을 꾸며냈다고 고백했다.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해봐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한다. 범죄 현장에서는 ‘눈은 진실과 거짓말의 창’이다. 용의자가 형사나 검사와 얼마나 눈을 맞추느냐는 거짓말을 가려낼 수 있는 중요한 단서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진실을 말할 때 눈을 맞추고, 거짓말을 할 때 다른 곳을 본다고 말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거짓말을 하는 상대에게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해”라고 말하는 것은 그런 이치다(연인들도 자주 그런 말을 한다). 그러나 무조건 그런 것은 아니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도 때때로 다른 곳을 보고, 거짓말쟁이도 눈을 계속 맞추곤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눈을 보고 거짓말을 알 수 있을까. 노련한 형사들은 대화 내용이나 주제와 관련해 용의자가 언제 시선을 맞추고 떼는지를 보고 거짓말을 가려낸다. 예를 들어 “당신은 그때 어떤 행동을 하고 있었지?”처럼 생각이 필요한 질문에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은 잠시 눈을 떼고 생각에 잠긴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시선을 계속 유지하는 경우가 있다.
얼굴 표정은 어떨까. 얼굴 표정은 어떤 면에서 진실과 거짓말을 가장 잘 말해준다. 놀란 얼굴은 눈이 커지고, 턱이 떨어지며, 입을 벌린다. 그러나 바보가 아닌 이상 범인들은 자신의 얼굴 표정을 감추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한다.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범인의 얼굴 표정에 속아넘어가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는 용의자는 심문 중 미소를 지을 수 있지만 그의 얼굴 표정은 스트레스 때문에 긴장된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불안하다. 특히 예상하지 못한 형사의 질문에 용의자의 표정은 순간적으로 달라진다. 노련한 형사는 순간적인 얼굴 표정의 변화를 눈치채 범인을 잡는다.
말할 때 억양이나 속도 등도 거짓말을 가리는데 중요하다. 연구에 따르면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질문에 대해 평균 0.5초 정도 기다렸다가 답을 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평균 1.5초 정도 걸린다. 거짓말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작아지는 것도 거짓말을 한다는 증거다. 형사들의 추궁이 이어질 경우 거짓말하는 범인은 목소리가 줄어들고, 입에서 우물거리곤 한다. 이는 마치 아이가 잘못을 저지르고 겁이 난 상태에서 부모의 추궁에 “안했어요”라고 대답하지만 그 목소리는 속으로 기어 들어가면서 고개를 무의식적으로 숙이는 것과 같다.
거짓말하는 사람들일수록 말이 짧다. 진실한 용의자는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을 설명하려고 할 뿐 자신이 범인으로 몰리는데 별로 걱정하지 않기 때문에 말을 길게 한다. 그러나 거짓말하는 용의자는 진실을 감추려고 할 뿐 아니라, 자신의 말에서 단서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일부러 말을 짧게 한다. “몰라요” “안했어요”처럼 단답형의 대답을 하는 것도 거짓말쟁이의 특징이다. 범인은 거짓말할 경우 생략이나 회피하는 반응을 보일 때가 많다. 즉 “돈을 훔쳤느냐”는 질문에 “나는 돈을 갖고 있지 않다”(훔쳤지만 다른 사람에게 줬을 수도 있다)는 식으로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거짓말을 희석시켜 불안감을 줄이는 것이다.
거짓말은 감출 수 없다
거짓말 행동만 있는게 아니다. ‘진실 행동’도 있다. 형사들은 범인이 진실을 말하기 전에 꼭 보여주는 행동이 있다고 말한다. 턱을 손으로 문지른 뒤 하늘을 보고 한숨을 쉰다는 것이다. 수사관들은 이런 행동을 보면 ‘이제는 자백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한다.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궁예도 마지막 순간에 하늘을 바라보며 세월의 덧없음을 이야기한다. 인생을 정리하거나 ‘이제 다 끝났다’라는 생각이 들면 자기도 모르게 하늘을 보는 것이다. 윤동주 시인이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기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범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다양한 거짓말 행동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어떤 행동을 했다고 해서 꼭 거짓말을 한다고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다리를 꼬았다고, 눈을 회피했다고, 손이나 입을 가렸다고 해서 “당신이 범인이지”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평생 ‘형사 콜롬보’는 되지 못한다.
거짓말을 가려내려면 신문 도중 여러 가지 행동과 말의 내용, 억양, 속도 등을 감안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특히 범인이 교묘한 지능범이고 연기에 능할수록 범인들은 보지 못하는 평면 유리를 통해 행동을 분석하거나 비디오 등으로 녹화해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 노련한 형사들은 범인을 심문한 비디오테이프를 수십번 돌려보며 거짓말의 증거를 찾기도 한다. 미국 등 수사 선진국에서는 거짓말 행동을 가려내는 심문 기법을 형사나 검사들에게 체계적으로 가르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이런 방법을 제대로 가르치는 곳이 없다. 김종률 검사는 “하루빨리 수사관들에게 이런 교육을 도입해야 하며, 기자 등 사람을 상대하는 진실을 찾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의문이 하나 남는다. 요즘 범죄자들이 얼마나 똑똑한데 수사관들이‘거짓말 행동’을 유심히 보고 있다는 것을 모를까. 그렇다면 철저하게 거짓말 행동은 감추고 진실 행동만 한다면 수사관을 멋지게 속여넘길 수 있지 않을까. 영화‘유주얼 서스펙트’의 주인공 캐빈 스페이시처럼 말이다.
수사관들은 고개를 젓는다. 거짓말 행동은 워낙 무의식적인 행동이라서 감출 수가 없다는 것이다. 기침과 가난과 사랑을 감출 수 없는 것처럼 거짓말 행동도 감출 수 없다.
처음에는 거짓말 행동을 감출 수 있어도, 시간이 지나고 물적 증거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범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 행동을 한다고 수사관들은 말한다 (그러니 죄를 짓지 말고 사는 것이 상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