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 이어폰을 꽂은 여성이 횡단보도 앞에 신호를 기다리며 서있다. 팝송 ‘문 리버’를 흥얼거리는 그녀의 고개와 어깨가 조심스럽게 리듬을 탄다. 옆에서 누군가가 그녀의 옆구리를 콕 찌른다. 그러자 조용한 멜로디가 “랄랄라~”하는 흥겨운 음악으로 바뀌면서 그녀가 본능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조용한 음악에는 우아하게, 흥겨운 음악에는 발랄하게. 심지어 혼자 있다가도 신나는 음악이 나오면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들썩들썩한다. 춤과 음악은 도대체 어떤 점이 닮았길래 이렇게 단짝친구처럼 붙어다닐까.
리듬은 본능이다
“태초에 리듬이 있었다.” 독일의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한스 폰 뷜로우는 이렇게 말했다. 낮과 밤이 계속 바뀌고, 바닷가에서는 끊임없이 파도가 밀려들어왔다가 부서진다. 아기가 자라 어른이 돼 다시 아기를 낳는다. 먼 옛날부터 인류는 주기를 갖고 반복되는 변화, 즉 ‘리듬’ 속에서 살아왔다. 인류학자 프란츠 보아스는 “인간은 질서와 리듬에 대한 기본 욕구가 있다”고 주장했다.
‘리듬’(rhythm)이라는 말은 라틴어 ‘리드모스’(rhythmos)에서 유래했다. 리드모스라는 단어를 거슬러 올라가면 독일어의 ‘라인’(rhein), 영어의 ‘리버’(river)에 닿는다. 즉 ‘흐른다’는 의미다. 춤이나 음악은 모두 시간예술이다. 춤을 추거나 보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건 그 안에 리듬이 있기 때문이다.
리듬이 소리로 표현되면 음악이다. 음악의 리듬은 수많은 음이 정해진 박자 위에서 움직일 때 임의의 악센트나 길이 변화가 규칙적으로 출몰하면서 나타난다. 리듬이 인체의 동작으로 표현된 게 춤이다. 무용인류학자 아드리언 캐플러는 그의 논문에서 “음악과 마찬가지로 춤은 패턴으로 이뤄진 인간 행위”라고 적고 있다. 몇 가지 동작을 조금씩 변형시켜 다양하게 구성한 다음 계속 반복하기 때문이다.
음악의 멜로디와 춤의 동작은 잘게 나뉘는, 즉 ‘분절’(articulation)의 속성을 갖고 있다. 음악의 경우 조성이나 박자가 달라지거나 악기편성이 바뀌는 몇 개의 큰 단위로 나뉘고, 그 안에서 멜로디 변화에 따라 다시 작은 단위들로 나뉜다. 이는 다시 큰악절(8마디), 작은악절(4마디), 동기(2마디), 마디, 그리고 음표로 나뉜다. 쉼표나 이음줄 같은 기호도 이 같은 분절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춤도 마찬가지다. 여러 동작이 묶여 반복되는 큰 단위가 있으면 그 안에 세부 동작이 모여 이뤄진 여러 개의 작은 단위가 있다. 무용 연습 때도 하나의 동작을 몇 개의 부분동작으로 나눠 익힌 다음 부분동작들을 유연하게 이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춤과 음악의 분절 속성은 언어와 매우 비슷하다. 글도 문단, 문장, 구, 단어, 음절, 음소로 나뉘기 때문이다.
동물 몸짓은 춤이 아니다
“새가 노래하고 동물이 춤을 춘다는 표현을 흔히 하죠? 이건 은유적인 표현이지 실제로 동물의 소리나 몸짓을 학계에서는 음악이나 춤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분절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에요.”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우광혁 교수의 설명이다. 무용수나 연주자가 분절을 어떻게 만들고 자연스럽게 이어 작품으로 구현해내느냐에 따라 관객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 언어에서도 분절이 잘 이뤄지지 않으면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데이트’라는 문장은 분절이 잘못됐다.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데이트’라고 해야 비로소 뜻이 통한다.
리듬이 특히 잘 느껴지는 노래나 동작이 있고, 도무지 리듬이 있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반복되는 부분의 길이가 짧고 간결할수록, 즉 정형성이 많이 드러날수록 리듬을 알아채기 쉽다. 국악을 예로 들면 민속악의 굿거리나 세마치장단이 판소리의 진양장단보다 더 리드미컬하게 들린다.
춤이나 음악에서 리듬을 느낀 사람들은 다음에 어떤 동작이나 어떤 음이 나올지 예측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예측대로 진행되면 무의식적인 쾌감을 느끼는데, 이를 무용이나 음악이론가들은 ‘미적 쾌감’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런데 아주 간단한 리듬이 계속 되풀이돼 예측한 그대로만 진행되면 어떨까. 사람들은 금방 지루하다고 여길 것이다.
그래서 안무가나 작곡가는 사람들이 알 듯 모를 듯하게 리듬에 변화를 주는 전략을 쓴다. 예측이 빗나간 것을 인식하면 사람들은 주의를 집중하게 되는데, 이를 이론가들은 ‘미적 긴장감’이라고 말한다. 우광혁 교수는 ‘무용의 동작과 리듬’이라는 그의 책에서 “미적 쾌감과 긴장감을 번갈아가며 잘 연출해야 훌륭한 작품”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음악은 춤의 동반자
춤과 음악은 이런 공통점 덕분에 함께 발전해왔다. 실제로 우리에게 익숙한 춤 이름이 곧 음악 이름인 경우가 많다. 왈츠는 독일 농민들이 추던 렌틀러가 화려한 무도회용 춤으로 발전한 것이다. 차이코프스키의 3대 발레음악인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에도 각각 특징 있는 왈츠곡이 들어있다. 매력적인 동작으로 많은 애호가를 확보하고 있는 탱고도 19세기 후반 아르헨티나 하층민 사이에서 생겨난 민속음악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안무가 중에는 음악가인 사람이 많다. 이것도 춤과 음악이 닮은꼴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20세기 최고 안무가로 불리는 뉴욕시립발레단의 창시자 조지 발란신은 러시아의 유명한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와 피아노 2중주를 했을 정도. 춤과 음악이 조화를 잘 이루면 서로 상승효과를 내기도 한다.
“음이 잘게 나뉜 부분에서는 동작을 작게 하고, 선율이 올라가면 점프를 하죠. 저음의 악기로 연주한 곡에 맞출 땐 진한 의상을 입어요. 가는 목소리의 여성가수가 부른 성악곡을 쓰면 가벼운 의상의 여자무용수를 주인공으로 하구요. 이런 점들을 신경쓰면 춤과 음악이 더 잘 어울릴 수 있습니다.”
피아노를 전공하고 발레반주를 전문으로 하는 김은수 무용음악가의 생생한 경험담이다.
춤과 음악의 또다른 공통점은 기록이 쉽지 않다는 것. 무용학자들은 춤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무보(舞譜)를 사용한다. 음악에서 악보를 쓰는 것처럼 말이다. 가장 많이 알려진 무보 기록법이 ‘라바노테이션’(Labanotation)이다. 무용이론가인 루돌프 라반이 창안한 방법으로 건축학, 미술학, 수학, 운동과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의 개념을 바탕으로 무용수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기호로 만들었다.
그러나 3차원 공간에서 이뤄지는 사람의 동작을 2차원 평면인 무보에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악보를 봐도 베토벤과 똑같이 연주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무용교육 현장에서는 무보를 그다지 많이 활용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아직도 춤은 대부분 몸에서 몸으로 전수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무용이론가인 최해리 월간 ‘몸’ 편집장은 “춤에는 테크닉뿐 아니라 추는 사람 특유의 정서가 담겨있기 때문에 춤을 기록하는 게 가능할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다”며 “정서를 중요시하는 우리나라나 아프리카에는 무보법을 반대하는 무용가도 있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춤을 비디오 같은 영상으로 기록해두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제 과학이 춤 기록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때다. 수십 년 뒤 후손들이 첨단기술로 개발된 새로운 무보를 보고 떨기춤이나 웨이브댄스 ‘작품’을 공연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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