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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몸치' 탈출 특급 작전

춤은 움직이는 거야

서울 강남에서 유명 댄스학원을 운영하는 김영우씨(27)는 경력 10년차의 전문 춤꾼이다. 고교시절 우연히 시작한 춤이 이제는 자기 만족을 넘어 남들 앞에 당당히 나서길 갈망하는 몸치들의 구세주로서 손색이 없을 정도가 됐다. 나이트댄스가 전공인 그는 라틴댄스에서 재즈댄스까지, 그리고 최근엔 ‘배꼽춤’ 벨리댄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춤을 섭렵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처음엔 자신이 정말 ‘몸치’가 아닐까 걱정했다고 한다.

“1000명 중 3~4명은 될까요? 이 사람들을 제외하곤 몸치란 없어요. 대부분 춤을 춰보지 않아서 쉽게 나서기 힘들어서 하는 말이죠.”지금도 매일 그의 학원엔 ‘몸치탈출’을 기대하며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들의 상담 전화가 쏟아진다. 최근 들어 부쩍 남녀를 불문하고 춤을 배우려는 문의가 늘었다. 자기 표현의 시대에 벌어지는 재미있는 풍속도다.
 

개성만점 '자기 표현 시대'에서 춤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는 코드로 떠올랐다. 노력 여하에 따라 돌아오는 평가는 달라진다. 한 힙합댄스 연습실에서 춤 동작을 익히고 있는 젊은이.


스스로 몸치라 부르는 사람들

전문가들이 보는 몸치들은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몸치들은 춤을 거부한다. 춤을 추는 자리를 피하기 일쑤. 등 떠밀려 무대에 나와도 박자를 타지 못하고 뻣뻣하다. 춤을 가르쳐도 실력은 크게 늘지 않는다. 연습량을 늘려도 여전한 ‘저주받은’ 몸도 있다.

국내 정상급 연예인들의 춤선생으로 유명한 홍영주씨는 “대다수 몸치는 박자치”라고 말한다. 빠른 박자감을 읽지 못하고 몸을 맡기지 못한다는 얘기. 그는 또 “몸치 특성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개념에 대해 반드시 완벽히 이해하려고만 하는 고지식한 측면이 발견된다”고 말한다. 물론 응용동작은 꿈에도 꾸지 못한다. 하지만 홍씨는 이들이 절대로 구제불능은 아니라고 말한다. 노력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노력으로 몸치의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일까. 선천적인 몸치는 정말 없는 것일까. 몸치는 일반인과 특별한 신체적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눈으로 드러나는 신체적인 한계는 없다는 것. 운동제어 전문가인 이화여대 박승하 교수는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에 비해 운동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 몸치란 팔다리 길이를 늘이는 감각이나 거리 인지와 동작 예상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뜻한다는 얘기다.

자기 몸을 움직여 감정을 표현하는 춤에서 공간지각과 자기 몸의 움직임을 인식하는 능력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런 능력은 운동감각이 발달하는 4~7세 때 집중적으로 발달한다. 춤의 기본 동작 중 하나인 회전운동과 팔다리 뻗기를 통해 운동 감각을 몸으로 익혀야 하는 시기가 바로 이 때다. 이 시기에 충분한 자극을 받지 못하면 성장한 후 운동치(몸치)가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자기 몸 동작을 인식하는 수준과 하나의 표현을 위해 팔, 목, 허리 등 신체 여러 근육을 조절하는 협응 능력도 이 때의 학습 수준에 따라 평생을 좌우된다. 하지만 박 교수는 “몸치는 박자와 공간 정보를 해석하는 능력도 떨어지기 때문에 단지 운동 능력이 부족한 사람으로만 정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두뇌의 동작 인식 기능이 떨어지는 경우에도 몸치로 전락할 수 있다. 연세대 체육교육과 육동원 교수는 몸 동작을 분석하는 뇌회로 이상과 연습부족으로 인한 근육과 골격 기능의 저하를 몸치 원인으로 꼽는다. 태어날 때부터 동작을 분석적으로 이해하는 두뇌회로가 발달하지 않은 경우에 해당한다. 일종의 모방인 춤을 배우기에 뇌회로 이상은 치명적이다.

이와 관련해 영국 런던 대학 인지신경과학연구소의 패트릭 해거드 박사가 발레 댄서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는 눈길을 끈다. 춤과 같은 어떤 숙련된 몸동작을 바라볼 때 그 몸동작에 익숙한 사람과 문외한인 사람의 뇌반응이 다르다는 것.

어떤 동작을 직접 하거나 남이 하는 동작을 구경할 때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거울신경이라는 뇌세포는 다른 사람의 몸동작을 배우거나 모방하는 데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몸치는 이 거울 시스템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있는 사람일 수 있다는 얘기다. 서울대 인지과학연구소 박형생 박사는 “몸치는 자기 스스로를 인식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방향, 거리, 움직임 등 직접 보지 않고 자기 몸의 쓰임새를 아는 동작지각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해석이 선천적인 몸치의 존재를 인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박형생 박사도 “댄스처럼 복잡한 몸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운동협응 능력이 타고난 것인지 후천적인 학습에 의해 개선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두고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시작해야

올해로 재즈댄스 경력 5년, 고전무용까지 합쳐 춤 경력 15년인 이란영씨는 평소 음악만 나오면 자연스레 몸을 흔든다. “필(느낌)이 오는대로 몸을 맡겨요. 머릿속에 생각하게 되면 동작이 엉키죠.” 물론 음악의 장르는 불문한다. 고유의 박자감이 몸속을 타고 흐르듯 인위적인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다수의 댄스 강사들은 “댄서를 비롯해 춤꾼들은 대부분 음악적 감각도 탁월하다”고 입을 모은다. 각자 타고난 리듬감이 있다는 것.

육 교수는 “오랜 반복 학습을 통해 몸의 신경과 근육이 박자에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물체의 고유 진동수처럼 개인마다 고유한 리듬이 있다는 것. 후천적인 연습이 아니라 타고난 자신 만의 리듬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를 표현하는 것도 결국에는 몸의 근육과 뼈. 꾸준히 몸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새로운 동작을 익히는데 한계가 많다. 근육 역시 익숙한 동작에 좀 더 잘 반응한다. 따라서 학습과 연습 정도에 따라 리듬감의 표현 수준은 달라진다. 물론 나이든 후엔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운동감각이 있다. 운동감각 중 시간과 속도, 순간적으로 힘을 줬다 빼는 감각은 성년이 돼서는 쉽게 향상되지 않는다. 무용가가 되기 위한 험난한 훈련이 대개 어린시절에 시작된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성장이 끝난 성인 몸치들은 무대 뒷구석 신세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일까. 전문가들은 “결코 그렇지는 않다”고 입을 모은다. 얼마나 빨리 배우느냐의 문제이지 결코 영원히 춤과 담쌓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꾸준한 연습을 통해 자기에게 맞는 기술을 찾아낸다면 몸치 탈출은 가능하다.

육 교수는 “나이에 제약받는 힘과 테크닉 같은 몇가지를 제외하고 자신만의 리듬감과 표현력을 찾아낸다면 오히려 더 원숙미 넘치는 춤동작을 펼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영우 원장은 “춤을 잘 추기 위해서는 먼저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특징, 자기 몸에 맞는 춤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한다. 여성보다 근육 밀도가 높아 유연성이 부족한 남성은 스트레칭을 통해 근육을 풀어주는 것이 좋다. 또 근육을 뭉치게 만드는 웨이트 트레이닝은 춤과 상극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여성의 경우 근육 밀도가 낮아 유연성이 좋고 가슴과 골반이 발달해 화려하고 난이도가 높은 춤을 추기엔 적당하지만 근력이 약하고 순발력과 지구력이 떨어진다는 약점이 있다. 따라서 기초체력을 꾸준히 기르면서 스트레칭과 탁구, 테니스를 통해 유연성과 순발력, 지구력을 늘려야 한다. 자신만의 맞춤형 춤을 알아내는 것도 중요하다. 뚱뚱한 체형과 마른 체형, 보통 체형에 적당한 춤이 따로 있다는 얘기다. 미국의 체육과학자 W. 셀든 박사의 이론을 따르는 이같은 구분은 실제 국내 일부 몸치탈출 클리닉에서 사용되고 있다.

키는 크지만 지방량이 적으며 근육이 길고 얇은 체형은 운동 능력이 떨어지므로 관절과 근육, 몸의 유연성을 기르는 연습이 필요하다. 몸의 유연성 기르기에 효과가 있는 웨이브 동작이나 골반과 허리 유연성 향상에 좋은 테크노댄스는 마른 체형에 맞다. 반면 골반이 크고 넓으며 몸무게와 체중이 쉽게 증가하지만 부드러운 근육 조직을 가진 뚱뚱한 체형은 뛰어난 운동신경을 바탕으로 운동량이 많은 춤을 통해 체중 조절 효과를 노려야 한다.

하지만 이같은 체형별 맞춤형 춤 연습도 꾸준한 시간 투자와 연습이 뒤따라야 한다.

육 교수는 “모든 운동이 그렇듯 결코 춤 실력이 어느 순간 확 올라가지는 않는다”고 강조한다. 실력의 상승기와 하강기가 반복되면서 서서히 춤꾼으로 거듭난다는 얘기다.
 

운동감각은 4~7세때 집중적으로 발달한다.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춤을 시작하라는 말은 맞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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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박근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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