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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디지털 우주의 빅뱅

플래시 세대를 위하여

미국의 에드윈 허블은 1929년 모든 은하가 지구에서 멀어지고, 멀수록 더 빠르게 멀어진다는 법칙을 발견했다. 풍선을 불면 그 표면에 있는 점들이 서로 멀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허블의 법칙이 우주가 하나의 점에서 대폭발을 일으켜 계속 팽창한다는 빅뱅 이론의 기초가 됐다.

우주를 ‘미터’(m)와 ‘초’(sec)라는 공간과 시간의 기본단위로 잴 수 있다면, 디지털 우주는 ‘비트’(bit)와 ‘헤르츠’(Hz)라는 사이버 시공간의 기본단위로 측정할 수 있다. 그러면 디지털 우주의 팽창을 규명하는 디지털 허블의 법칙은 없을까?

반도체의 집적도가 2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은 지금까지 디지털 우주의 팽창을 설명하는데 가장 적합한 도구로 평가돼 왔다. 그래서 ‘무어의 곡선’‘무어의 시간’ ‘무어의 속도’ 같은 파생 용어들이 잇달아 등장했다.

‘황의 속도’로 진화하는 기술

뉴욕타임스는 지난 98년 2월 무어의 법칙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선언했다. ‘무어의 법칙은 이제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 이 법칙은 트랜지스터 하나에 숫자를 하나 이상 저장하는 플래시 공학 같은 새로운 개발품들 때문에 이미 낡은 것이 돼 버렸다’고 논평한 것이다.

여기서 플래시 공학은 플래시메모리 기술을 가리킨다. 플래시메모리는 전원이 끊겨도 정보가 지워지지 않는 기억소자로, 섬광(flash)처럼 빠르게 정보를 저장하거나 삭제할 수 있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노트북PC를 비롯해서 휴대전화, 디지털카메라, MP3플레이어 같은 휴대용 장치에 널리 쓰인다.

‘황의 법칙’은 이 플래시메모리를 중심으로 보면 집적도가 1년에 2배씩 증가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플래시메모리는 지금까지 황의 법칙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에 과연 무어의 법칙을 넘어설 것인가 하는 것이 호사가들의 관심사였다. 황의 법칙은 플래시메모리 뿐 아니라, 플래시메모리를 쓰는 디지털 장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플래시메모리를 사용하는 휴대전화의 벨 소리나 카메라의 화소도 1년에 2배씩 성능이 향상됐다. 이 사실은 이번에 처음 밝혀진 것이다.

이뿐 아니다. 하드디스크를 비롯해 휴대전화의 크기, 배터리 사용 시간, 인터넷 트래픽에 이르기까지 플래시메모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기술이나 제품의 성능도 1년에 2배씩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쯤 되면 디지털 우주는 ‘황의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플래시 기술의 영역은 메모리 분야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 매크로미디어가 1997년 개발한 동영상 제작 소프트웨어도 ‘플래시’라 불린다. 일반 동영상에 비해 파일 크기가 작고 속도가 빠르며 이미지가 깨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플래시는 애니메이션(엽기토끼, 졸라맨), 코믹송(올챙이와 개구리, 숫자송, 당근송), 게임(퍼즐보드, 어드벤처, 심리테스트) 분야에서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플래시 하드웨어와 플래시 소프트웨어로 구성된 플래시 환경에서 플래시 제품을 사용하는 세대를 ‘플래시 제너레이션’(Flash Generation)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나이로 보면 지금 10대에서 30대에 이르는 세대다.

플래시 세대의 공간은 한국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세계적으로 플래시메모리는 물론 플래시 소프트웨어까지, 플래시 환경은 한국이 단연 앞서기 때문이다. 이 플래시 세대를 이끄는 기업이 바로 삼성이고, 플래시 세대의 촌장이 황창규 사장이다.

효리 세대의 플래시 문화

이효리는 플래시 세대의 강력한 아이콘이다. 그래서 플래시 세대는 ‘효리 세대’라고도 불린다. 최근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애니모션’(Anymotion)은 이효리가 주도하는 플래시 세대의 상징적인 ‘뮤비’다. 강한 비트의 힙합댄스 장르에 랩을 섞고, 크럼핑(Krumping)이라는 브레이크댄스가 화려하기 때문에 ‘애니모션’은 이온음료처럼 쉽게 플래시 세대의 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애니모션’의 줄거리는 영화 ‘플래시댄스’와 그대로 겹쳐진다. ‘플래시댄스’의 제철소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던 제니퍼 빌즈의 이미지가 ‘애니모션’에서 이효리에게 투영되는 것이다. 잠깐! 이효리도 한 때 용접공이었던 사실을 기억하는가? SBS 드라마 ‘세잎클로버’에서 이효리는 얼굴에 검댕을 묻히고 조선소에서 용접하는 장면을 소화해냈다.

불꽃이 튀는 용접은 플래시 세대의 중요한 모티브다. 용접은 뭐든지 자를 수 있고 뭐든지 녹여 붙일 수 있다. 절단과 접합을 원하는 대로 순식간에 하고 싶다는 것이 플래시 세대의 강렬한 욕구이기 때문이다. 쇠처럼 단단한 기성세대의 고정관념을 절단하고, 신세대의 모든 것을 접합시켜 보고 싶은 욕망이다. 이 욕망은 ‘플래시댄스’의 주제곡 ‘What a feeling’에 나오는 가사 ‘Take your passion and make it happen’으로 설명할 수 있다.
 

1983년 개봉된 영화 '플래시 댄스'의 포스터. 플래시 세대의 아이콘인 이효리의 '애니모션' 뮤직비디오 감독은 이 작품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플래시 세대가 마음대로 자르고 붙인 것을 기성세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플래시 세대는 스스로 그것을 ‘엽기’라고 설명했다. 이 ‘엽기’가 점점 심해져 그들 자신도 설명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은 그것을 ‘아 ’ 하다고 둘러댔다.

기성세대의 눈에는 플래시 세대가 ‘막무가내 보이즈’처럼 보이지만, ‘그때그때 달라요’라고 핑계 대고, ‘그 까짓 거 대충대충’ 얼버무리는 ‘품행제로’의 세대는 아니다. 아무리 학교가 ‘봉숭아 학당’처럼 엉망이어도 순진한 ‘건빵 선생’을 짝사랑하고 당당한 ‘불량 주부’를 꿈꾸는 젊은 세대다.

플래시 세대는 목표가 ‘왜 없어’, 우리는 ‘혼자가 아니야’라고 주장하며, ‘미친 소’처럼 온갖 ‘접속사’로 세상을 연결하면서 ‘어쨌든 석세스’를 추구하는 ‘본능에 충실’한 세대다.

디지털 우주가 1년에 2배씩 ‘황의 속도’로 팽창하는 가운데, 쉽게 기록하고 쉽게 지워 버릴 수 있는 플래시메모리와 용량이 작으면서도 속도가 빠른 플래시 소프트웨어가 만들어낸 플래시 문화는 앞으로 새로운 한류(韓流)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플래시 세대는 휴대전화, 디지털카메라 등 플래시 메모리로 무장하고 세상과 소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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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허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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