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질 급한 화산의 레시피가 만든 흑요석
흑요석은 약 70%의 이산화규소에 철, 마그네슘 등의 불순물이 섞여 만들어진 준 광물이다. 화산이 이산화규소가 풍부한 마그마를 지상으로 내뱉으면, 원자배열을 이룰 새도 없이 급속히 식으면서 자연 유리가 만들어지는데, 바로 흑요석이다.
지난 호에 소개한 플린트가 인류의 여명을 열어준 오른손 같은 소재라면 흑요석은 왼손 같은 존재다. 상대굳기는 5.5로 유리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고, 충격을 받으면 조개껍질 모양의 날카로운 날을 가진 형태로 깨진다.
인류는 이 날카로운 날을 도구 삼아 수렵활동을 했다. 날카로운 날로 동물의 가죽을 예리하게 해체해 추위를 피할 따뜻한 의복을 만들었다. 고기도 손쉽게 자를 수 있어서 영양가 높은 식단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이런 흔적은 전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흑요석을 깨뜨렸을 때 생기는 날카로운 날 끝은 두께가 3nm(나노미터, 1nm는 10억 분의 1m)에 불과해 오늘날의 칼보다 훨씬 더 예리하다. 심지어 수술용 메스보다 더 예리해, 지금도 정밀한 수술이 필요한 곳에는 이 흑요석 날을 이용한다.
흑요석을 잘 연마하면 아주 매끈한 면을 얻을 수 있어 거울로 사용할 수도 있다. 포함된 불순물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색과 아름다운 패턴을 갖고 있어서 보석 또는 공예품으로도 쓰인다. 한반도에서는 백두산 지역에서 발견되는데,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가 백두산 흑요석으로 만들어졌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현재 1만 원 권의 배경이기도 하다.
우주의 ‘충격적인’ 레시피로 만든 유리
우주 공간을 떠돌던 대형 유성체가 지구에 엄청난 속도로 떨어질 때, 타고 남은 유성체가 지표면과 충돌하면서 그 여파로 독특한 유리가 만들어진다. 이 충돌로 분화구가 만들어지고, 충격에 의한 열과 압력으로 암석이 녹아 대기권 바깥으로 튕겨나갔다가 다시 낙하한다. 이때 대기와의 마찰열로 암석이 녹았다 다시 굳어진 것이 텍타이트다.
특히 리비아사막유리(위 왼쪽)와 몰다바이트는 반투명한 아름다운 색감 때문에 보석의 소재로도 쓰인다. 특히 이집트 투탕카멘의 가슴장식에 사용된 여러 보석 중 하나가 리비아사막유리다(위 오른쪽 가운데의 큰 보석).
스마트한 레시피로 문명의 주도권을 좌지우지한 인류의 유리
인류가 유리 만드는 방법을 알아낸 것은 기원전 1500년 경이다. 사막에서 모닥불을 피워 요리를 하던 중에 우연히 모래가 불에 녹으면서 생긴 투명한 액체를 발견한 것이다. 이산화규소가 주성분인 모래를 가열하면 유리가 된다. 인류는 이 제조법을 발전시켜 다른 원소를 양념처럼 첨가해 입맛에 맞는 새로운 유리를 제조했다.
‘기본맛’인 투명한 창호 유리와 금속 이물질을 첨가한 아름다운 채색 유리, 순도를 올린 광학 유리, 열 충격에도 쉽게 깨지지 않는 내열유리 등 유리는 현대문명의 필수 소재로 발전했다. 최근에는 초박형 평면 디스플레이의 기판과 빌딩의 스마트 아트월 등의 첨단 기기에도 쓰이고 있다.
인류의 유리 제조 기술이 문명의 주도권을 동양에서 서양으로 옮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관점도 있다. 과학사에 따르면, 18세기 이전까지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이 문명의 우위에 있었다. 종이와 화약, 나침반 등이 동양에서 처음 발명됐다. 하지만 도자기 제조 기술을 중시한 동양과 달리, 거주 문화에 유리창을 도입한 서양은 유리 제조 기술에 집중했다.
이 기술이 광학 기술에 적용되면서 먼 곳까지 볼 수 있는 망원경과 미세한 사물을 관찰하는 현미경, 화학반응을 지켜볼 수 있는 실험기구와 안경 등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사고실험에 머물던 과학이 급속하게 발전할 수 있었고, 문명의 주도권이 동양에서 서양으로 옮겨갔다.
이지섭(director@naturehistory.com)
광물 수집가이자 이야기꾼. 현재 희귀광물 3000여 점을 전시하는 ‘민 자연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디스플레이 등 여러 분야에 30년 넘게 근무하다 부사장으로 퇴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