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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플래시 터뜨리는 황의 법칙

나노와 퓨전의 합작 드라마

‘무어의 법칙은 이제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 이 법칙은 트랜지스터 하나에 숫자를 하나 이상 저장하는 플래시 공학 같은 새로운 개발품들 때문에 이미 낡은 것이 돼 버렸다’ 1998년 2월 4일자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옳았다. 이듬해 삼성전자는 128메가비트(Mb) 플래시메모리를 출시했고, 2004년 8기가비트(Gb) 플래시메모리까지 개발해 6년 동안 1년에 정확히 2배씩 용량을 늘렸다. 플래시메모리는 2년에 2배씩 반도체 용량이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을 추월했다. 동시에 메모리의 용량이 1년에 2배씩 증가한다는 ‘황의 법칙’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플래시, 질까 뜰까

플래시메모리가 이렇게 뜰 줄 짐작이나 했을까. 2000년대 초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인용 컴퓨터 산업의 성장이 느려지면서 덩달아 반도체 산업도 내리막길을 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반도체 중에서도 메모리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 중 플래시는 ‘뜨거운 감자’였다.

컴퓨터나 디지털 기기의 메인메모리로 사용하는 D램은 512메가비트(Mb)만 돼도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없다. 하지만 플래시메모리는 ‘다다익선’이다. 휴대전화, 디지털카메라, MP3플레이어 등 디지털 기기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가 플래시기 때문. 이미지, 동영상 등 용량이 큰 데이터를 자유롭게 저장하려면 플래시메모리의 용량이 커야했다.

2003년 미국 스탠퍼드대 전기공학과 톰 리 교수는 “플래시메모리는 비례의 법칙이 잘 들어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플래시메모리의 용량이 무어의 법칙을 따라 무한정 증가하지도 않을뿐더러 크기도 더 작아질 수 없다는 것이다. 당시 2005년이 지나면 기존의 기술로는 더 이상 플래시메모리를 작게 만들기 힘들어질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왔다.

그런데 이게 웬걸, 곧 플래시메모리는 무어의 법칙을 추격하더니 이내 앞질렀다. 삼성전자 이승백 반도체 총괄부장은 “지금까지 PC라는 말이 반도체 마차를 이끌었다면 앞으로는 모바일이라는 말이 반도체 마차를 이끌 것”이라며 “황의 법칙은 이런 디지털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예측한 것”이라고 말했다.

황의 법칙은 2002년에 등장했다. 그해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반도체회로학술회의(ISSCC)에 참석한 삼성전자 황창규 사장은 ‘메모리 신성장 이론’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당시 황 사장은 “모바일 성장의 원년은 올해다”라며 “모바일기기를 중심으로 플래시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플래시메모리가 새로운 반도체 산업을 이끌며 제2의 메모리 전성시대를 연다는 것.

나노와 퓨전이 열쇠

플래시메모리의 선두 주자는 단연 황의 법칙의 산실인 삼성전자. 비법은 ‘나노’와 ‘퓨전’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전문가들은 플래시메모리가 65나노미터(nm=10억분의 1m)의 벽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60nm 플래시메모리를 선보였다.

용량도 8Gb로 세계 최대였다. 인텔은 올해 65nm 공정기술을 적용할 예정이며, 다른 경쟁사들은 아직 90nm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는 삼성전자가 수년간 시장을 지배해온 노어(NOR) 플래시메모리를 버리고 낸드(NAND) 플래시메모리를 선택한 것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낸드 플래시메모리는 음성이나 화상 등 용량이 큰 데이터를 저장하는데 적합하다. 디지털카메라, MP3플레이어, USB드라이브 등에 쓰이는 것이 모두 낸드 플래시메모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낸드 플래시메모리도 집적도나 전력소비, 속도 등에서 문제를 드러낼 것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내놓은 해결책은 노어와 낸드의 장점을 결합한 퓨전 메모리 ‘원낸드’.

원낸드는 이름 그대로 노어와 낸드 플래시메모리의 장점을 메모리 하나에 담았다. 낸드 플래시메모리에서 데이터 처리를 담당하는 S램과 논리회로를 하나의 칩에 집적했다. 데이터 읽기 속도가 빠른 노어 플래시메모리의 장점과 저장능력이 뛰어난 낸드 플래시의 장점을 모두 갖췄다. 그렇다면 황의 법칙은 앞으로 얼마나 계속될까? 플래시메모리에만 국한 시키면 분명 한계가 있다. 플래시메모리의 ‘원죄’다. 플래시메모리는 기술적으로 일면 모순되는 성질을 가졌기 때문이다. 플래시메모리는 전기 제품이다.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전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플래시메모리는 전기가 없어도 데이터를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플래시메모리에서는 전기가 제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게 제어하는 ‘스위치’가 가장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트랜지스터다. 메모리를 물병으로 보면 물병을 채우는 물방울 하나가 전자, 물방울을 들여보내고 내보내는 스위치가 트랜지스터다. 물병을 강제로 비우지 않는 한 한번 물병에 들어온 물방울은 바깥으로 새지 않는다. 플래시메모리가 전원이 나가도 데이터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은 이런 방식이다.

플래시 다음은 미지수

그런데 저장된 전자가 스위치를 타고 밖으로 빠져나오는 경우도 있다. 서울대 물리학부 노태원 교수는 “실리콘 트랜지스터가 2nm에서 양자역학적 한계를 보이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트랜지스터 하나에는 전자가 나오는 소스(source), 전자가 흘러들어가는 드레인(drain) 그리고 둘 사이의 전자의 흐름을 조종하는 게이트(gate)와 게이트 산화막이 있다.

컴퓨터는 전자가 소스에서 드레인으로 흐르면 1로, 흐르지 않으면 0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트랜지스터의 크기를 계속 줄이면 게이트 간격도 같이 줄어드는데, 이 때 간격이 너무 좁으면 터널링 현상이 일어난다. 게이트에 전압을 걸지 않았는데도 소스와 드레인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전자가 스스로 건너 뛰어버리는 것. 그래서 데이터가 제멋대로 흘러나와 오염되거나 사라진다. 이것이 양자역학적 한계다.

서울대 재료공학부 황철성 교수는 “2015년 쯤 20nm 트랜지스터가 상용화될 것이며, 2020년까지는 지금의 플래시메모리가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삼성전자를 비롯해 세계 반도체 기업들은 벌써부터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 뛰어들었다. 실리콘 트랜지스터를 대신할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이 이들의 공통 목표. 플래시메모리의 바통을 이어받을 차세대 반도체메모리는 지금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있다.

노어(NOR)와 낸드(NAND) | 플래시메모리를 구성하는 셀의 연결 방식에 따라 노어(병렬)와 낸드(직렬)로 나뉜다. 노어는 데이터 처리 속도가 빨라 휴대전화에 주로 쓰이고, 낸드는 저장 용량이 커 디지털카메라, MP3플레이어 등에 쓰인다.

킹 오브 메모리

차세대 반도체메모리의 승자는 누가 될까? P램, F램, M램, 스핀트로닉스, 나노튜브와 나노와이어 등 세계적으로 기업마다 주력하는 종류도 다르다. 하지만 최후의 승자가 누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P램, F램 그리고 M램을 소개한다.

상전이 메모리(P램, Phase Change)

작동원리 : 전류가 흘러 온도차이가 생길 때 물질에 상변화(Phase Change)가 일어나 결정이나 비정질 상태로 변한다. 이 때 저항이 낮은 결정상태를 0으로(a), 저항이 높은 비정질 상태를 1로(b) 인식해 데이터를 저장.
장점 : 비휘발성. 데이터 저장 용량이 큼.
단점 : 기록 시간이 오래 걸림
 

상전이 메모리(P램, Phase chage)


강유전 메모리(F램, Ferroelectricity)

작동원리 : 강유전체의 분극 특성을 이요해 데이터를 저장. 분자가 전류와 반대방향의 극성을 띠면 저항이 커서 전류가 잘 흐르지 못하고(a), 같은 방향이면 저항이 작아 전류가 잘 흐른다(b).
장점 : 비휘발성. 전력소모 적음. 상대적으로 비용 저렴.
단점 : 집적도 높이기 힘듦. 반복 사용 어려움. 내구성 취약.
 

강유전 메모리(F램, Ferroelectricity)


강자성 메모리(M램, Magnetoresistance)

작동원리 : 강자성체의 자화 방향으로 데이터를 저장한다. 방향이 일치해 저항이 낮으면 0(a), 방향이 달라 저항이 높으면 1(b)로 인식한다.
장점 : 비휘발성. 수행속도 빠름. 반복 사용 가능.
단점 : 강자성체 사이 간격에 한계가 있어 집적도 높이기 힘듦. 상대적으로 비용 많이 듬.
 

강자성 메모리(M램, Magnetoresist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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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이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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