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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첨단 고무로 무장한 움직이는 댐

메마른 하천을 되살리는 첨단비법

하천은 인간에게 필요한 물을 공급해줄 뿐 아니라 문화를 만드는 공간이다. 그런데 비가 조금만 오지 않으면 중소규모의 하천은 금새 바닥을 드러내 문제가 된다. 언제라도 물이 흐르는 하천을 만들기 위해 진행되는 다양한 연구를 살펴보자.
 

하천은 단순히 물이 지나가는 길 이상의 중요한 의미 를 지닌다. 사진은 하천의 흐름에 식물이 끼치는 영향 을 조사하는 모습이다.


하천에서 물을 구경하기가 힘들다! 한강과 같은 큰 하천 주변에 사는 사람은 어쩌면 이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작지만 아름다운 하천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 말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을 표현한 것인지 알아챘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하천이 심각하게 메말라가고 있다. 한강의 경우는 댐으로 중무장하고 있어 아직 도드라지지 않지만, 규모가 작은 하천의 경우에는 조금만 비가 오지 않아도 바닥까지 드러내 보인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하천이 말라가는 현상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하천에 적용된다. 4대강 중의 하나인 금강마저도 비가 오지 않으면 실개천으로 변해버릴 정도니 말이다.

하천이 메마르면서 사용할 물이 부족해 공장을 멈추고 농사를 포기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지금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마시는 물마저도 구할 수 없는 끔직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하천이 하천다운 모습을 갖추고 안정적으로 흐를 강물을 확보하는 기술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다.

우리 곁을 흐르고 있는 하천은 단순히 물이 지나가는 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는 동서를 막론하고 모두 하천 주변이다. 예를 들어 4대 문명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서 꽃을 피웠는데,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란 단어의 원 뜻도 ‘강 사이의 땅’이다. 우리나라도 서울에는 한강이 흐르고 있고 평양에는 대동강이 있으며, 대부분의 도시 주변에는 크든 작든 하천이 흐르고 있다.


하류로 갈수록 적은 수량

하천이 문명과 깊이 관련되는 이유는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하천은 우리에게 필요한 물을 공급해주는 취수원으로 중요하다. 더러운 것은 쓸어서 바다로 내보내는 청소부 역할도 한다. 또 배가 지나다니는 교통로로도 이용된다. 폭우가 쏟아질 때는 물에 잠기지 않도록 넘치는 물을 빨리 바다로 흘려 보내서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배수로 역할도 한다. 무엇보다 하천은 자연을 즐기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며,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문화를 형성시켜준다.

그러나 하천이 메마르면서 더이상 이런 중요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이렇게 하천이 말라가는 현상을 전문용어로는 ‘건천화’(乾川化)라 부른다. 건천화는 물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하천이 말라가는 것일까.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하천의 수량은 빗물과 하천 주변의 지하수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중 빗물은 우리나라의 경우 여름에 집중돼 그대로 바다로 흘러간다. 따라서 땅속으로 하천과 연결돼 있는 지하수가 평소 하천의 수량을 결정하는 중요한 원천이다.

그런데 농번기에 가뭄이 들면 많은 우물을 개발해 일시에 엄청난 양의 지하수를 뽑아 쓴다. 꼭 가뭄이 아니라고 해도 하천 주변에 자리잡고 있는 수많은 상가에서 우물을 개발해 많은 양의 지하수를 뽑아 쓰고 있다. 이와 같은 지하수의 무분별한 사용이 하천 건천화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하수는 작은 도시나 관개시설이 없는 지역에서는 물 공급원이 되는 소중한 자원이다. 그런데 지하수를 과다하게 개발하면 지하수위가 하천수위보다 내려간다. 이러면 지하수가 하천에 물을 공급하기는 커녕 오히려 뺏어가 하천의 건천화가 더욱 가속된다. 우리나라의 일부지역에서는 하천의 수량이 하류로 갈수록 오히려 줄어드는 기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는 지하수를 얼마나 뽑아 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례다.

더욱이 비교적 상류에 위치한 농업용 저수지는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평소 하천의 흐름을 막고 있다. 상당한 양의 물이 상류에서부터 상수관을 통해 도시로 공급되고, 도시에서 하수로 변해 하류에 위치한 하수처리장까지 하수관을 통해 이동한다. 결과적으로 하천에서 흘러야 하는 물의 상당부분이 도관을 흐르는 셈이다. 이와 같은 하천의 인위적으로 단절로 건천화가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천은 단순히 물이 지나가는 길 이상의 중요한 의미 를 지닌다. 사진은 하천의 흐름에 식물이 끼치는 영향 을 조사하는 모습이다.



빗물 모으는 월드컵 경기장

평소에 안정적으로 강물을 유지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은 댐이다. 실제 한강과 같은 하천은 상류에 있는 대규모 저수용량의 다목적댐이 평소에 조절·방류하고 있으므로 건천화 문제로부터 안전한 편이다. 그러나 환경·생태적인 측면과 사회적인 문제들을 고려했을 때 댐 건설은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물론 모든 하천에 무작정 댐을 건설할 수도 없다. 대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건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단추는 하천의 원천인 지하수의 양을 늘리는 일이다. 지하수는 주로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든 것이다. 그런데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녹지는 사라지고 아스팔트가 도배돼 있다. 이로 인해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는 면적이 증가했다. 인간의 편리를 위해 필요한 시설들이 지하수의 물을 보충할 기회를 상당부분 빼앗아버린 셈이다.

이 때문에 도시 곳곳에 공원과 같은 녹지를 만들어 빗물이 지하에 잘 스며들도록 도와주는 일이 필요하다. 과학자들은 이와 같은 녹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에 어떤 나무를 선택해 어떻게 배치했을 때 물을 가장 효과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지를 밝혀내고 있는 것이다.

지하수 보충이라는 간접적인 방법 외에도 때에 따라서는 인공시설을 직접 상류에 설치해 인위적으로 하천에 물이 흐르도록 조절할 필요가 있다. 최근 대구시는 도심을 흐르는 신천의 수량을 확보를 위해 하수처리수를 강물로 이용하는 방법을 선보였다. 하수처리장에서 나온 하수처리수를 펌프를 사용해 대구의 상류 지역으로 끌어올리는 방법이다. 대구시는 현재 하루 10만t에 이르는 하수처리수를 9.1km의 송수관으로 보내 신천에 방류하고 있다.

신천에 적용한 기술은 하천의 건천화를 막는데 뚜렷한 성과를 보였다. 하지만 엄청난 양의 물을 수송해야 하기 때문에 유지관리비가 많이 든다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그래서 규모가 작은 하수처리장을 하수가 발생하는 중간중간에 여러개 설치하자는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처리한 물을 가까운 하천에 바로 되돌리면 좀더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부산시와 경기도 안양시는 현재 하수처리장의 방류수를 유지용수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하천은 말라가는데, 비가 올 때 한꺼번에 빗물을 흘러보내는 일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빗물을 체계적으로 모아 하천에 이용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외국의 경우 빗물을 저장할 수 있는 시설을 건설해, 이에 대한 연구를 상당히 진행했다. 빗물을 저장하는 시설은 비가 많이 내릴 때 홍수에 의한 피해를 경감시킴과 동시에 모아진 빗물은 나중에 서서히 배출함으로써 하천의 수량을 확보하는데 도움을 준다.

독일 뮌헨 부근의 탄광촌에서는 주택의 지붕마다 빗물을 모으도록 고안된 집수장치가 설치돼 있다. 이 집수장치로 모아진 빗물은 풀이 자라고 있는 수로를 통과하면서 오염물질이 제거된다. 오염물질이 제거된 빗물은 배수로를 통해 하천으로 방류된다. 탄광촌에 적용된 빗물 이용 기술은 하천의 양과 질을 동시에 확보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빗물을 이용하는 기술이 개발돼 적용되고 있다. 월드컵 경기장 10개 중에서 인천, 대전, 전주, 서귀포 등 4개 경기장은 빗물 이용을 고려해 설계됐다. 지붕이나 운동장 바닥과 부지에 떨어지는 빗물은 모두 한곳으로 모아지는데, 이 물은 하천에 다시 방류된다.

지하수나 빗물을 아무리 잘 모아도 하천에서 제대로 이동하지 못하면 건천화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이 때문에 하천이 어떤 모양을 갖춰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실제 이런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제방이나 강바닥을 고치고 하천을 정비하고 있다.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도시화가 되면서 변형된 하천을 자연적인 모습 그대로 복원해 휴식공간으로 꾸미고 있다. 직선이 된 하천에 원래처럼 굴곡을 주고 나무와 풀을 강변에 조성해 하천의 흐름을 늦추고 있다. 하천의 흐름을 늦추면 한꺼번에 흘러가는 빗물이 줄어들고, 자연정화가 일어날 시간을 벌 수 있다. 이와 같은 자연형 하천 기술은 하천 수량을 늘리고, 수질을 개선하며, 생태계가 복원된다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첨단 고무로 무장한 움직이는 댐



바람 불어넣는 댐 고무보

최근에는 고무보(rubber dam)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고무보는 말그대로 고무로 만들어진 댐이다. 풍선처럼 바람을 불어넣으면 고무로 된 댐이 완성돼 물을 저장할 수 있고, 물을 저장할 필요 없을 때는 바람을 빼면 된다.

댐처럼 규모가 크지 않고 또 생태계 완전히 단절시키지 않기 때문에 고무보는 환경적인 문제가 거의 없다. 그러면서도 하천의 수위와 수량을 확보하는 일에 효과적이다. 또 설치가 쉽고 유지관리도 거의 필요 없다. 현재 고무보의 수명은 약 30년 정도다. 

다양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고무로 만들어진 댐이 과연 안전할지 걱정될 수 있다. 최근 뛰어난 강도와 내구성을 지닌 클로로프렌 고무복합제와 같은 재료가 개발되면서 고무보의 안전성을 높이고 있다. 클로로프렌 고무복합제는 3-4겹의 나일론으로 돼 있어 뛰어난 강도와 내구성을 자랑한다. 또 고무보를 금속판으로 보강해 물에 떠내려오는 물질에 의한 파손과 같은 위험성을 줄이기도 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높은 고무보는 일본 후쿠시마현 쿠로타니강에 있는 수력발전용으로 높이가 6m다. 고무보의 높이를 증가시키기 위해 여러개의 고무복합체를 조합하는 등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곧 세계기록은 네덜란드의 람스포(높이 8.2m)로 바뀔 전망이다. 국내 기술로 1988년에 대전 대덕연구단지 내에 고무보가 최초로 설치됐는데, 현재 50여곳에 건설됐거나 건설중에 있다.

하천유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일은 심각한 문제가 됐다. 메마른 하천을 되살리기 위한 기술개발은 시급한 과제로서, 하천의 기본적인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하천유지용수의 확보기술 개발은 필수적인 요소다. 하천수의 부족과 수질오염 문제는 자치단체 간에 분쟁이 발생하는 등 중요한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앞으로 물의 이용을 둘러싸고 상류지역의 주민과 하류지역의 주민들간에 심각한 갈등을 겪을 것이다.

지속가능한 하천을 실현하기 위해 진행되는 다양한 연구를 통해 하천에 항상 맑고 깨끗한 물을 안정적으로 흐르게 할 수 있다면, 물부족 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건전하고 활발한 하천문화의 정착도 기대할 수 있다.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우리의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강, 늘 푸른 물이 흐르는 강을 넘겨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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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심명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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