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사회자(사람) 여러분, 모두 환영합니다. 오늘 이 자리는 감자 회원의 게놈 클럽 가입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우선 신입 회원을 간단히 소개해 드리죠. 감자는 쌀, 밀, 옥수수와 함께 세계 4대 식량작물입니다. 게다가 줄기를 식용으로 쓰는 식물 중에서는 최초 가입이죠. 자, 감자를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감자 안녕하세요, 감자입니다. 저를 이 자리에 있게 해주신 ‘감자 게놈 국제컨소시엄’에 이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저의 게놈을 꼼꼼히 분석해 주신 영국, 미국 등 세계 26개 연구소의 과학자 여러분이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특히 차세대 게놈해독(시퀀싱) 기계를 써서 저를 게놈 클럽에 하루라도 더 빨리 가입하게 밀어준 베이징게놈연구소(BGI)에 감사합니다. 아, 왜 이렇게 눈물이 나죠.

너 혹시 가짜감자?

사회자 저기 1기 회원 애기장대께서 손을 드셨네요. 감자 회원이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인데요.

애기장대 저분이 정말 감자가 맞습니까? 슈퍼에서 본 감자랑 다르게 생겼는데….

사회자 그러고 보니 좀 다르네요. 보통 감자는 동글동글 탐스럽게 생겼는데 당신은 길쭉하시군요. 감자보다 오히려 고구마 같은데요?

감자 네, 잘 보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잘 아는 감자는 아닙니다. 보통 감자는 유전자 수가 많습니다. 유전자 중에 단백질을 만들 수 있는 것만 해도 3만 9000개나 되죠. 같은 형질을 결정하는 유전자를 4개씩 갖고 있는데 이 유전자끼리도 서열에 차이가 납니다. 이게 다 사람들이 농사지을 때 씨를 이용하지 않고 감자의 일부분을 잘라 심어왔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이처럼 감자는 유전자가 복잡해서 분석하기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감자 같이 중요한 작물이 그동안 게놈 클럽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죠. 하지만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된다고 판단한 과학자들은 감자의 게놈을 좀 단순화하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원래 감자 게놈의 반만 가지고 있는 저를 선택한 것이죠.

애기장대 그럼 당신은 진짜 감자가 아니라는 말이잖아? 당신 같은 가짜가 어떻게 신성한 게놈 클럽에 들어올 수 있지?

감자 가짜라니요, 섭섭합니다. 저는 참고서라고 할 수 있어요. 새로운 염기서열을 조립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참고할 수 있는 게놈이 있으면 다른 종의 게놈을 해독할 때 여기에 맞추면 되니까 훨씬 쉬워집니다. 이제 저의 게놈을 기준으로 동글동글한 감자의 염기서열을 붙이기만 하면 전체 게놈이 완성되는 거죠.

사회자 자, 어쨌든 우리 게놈 클럽에 들어왔다는 건 게놈 신분증을 가졌다는 겁니다.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다 알지 않습니까? 힘들게 들어온 만큼 모두 다 환영해 주시죠.




식물 게놈 이야기

아무튼 반갑습니다. 저는 식량작물 분과 회장을 맡고 있는 쌀입니다. 작물 회원이 한 명 더 늘었군요. 하하하.
감자 죄송하지만 회장님, 저는 식량작물 분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니, 세계 4대 식량작물인 감자가 식량작물 분과에 안 온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요?

감자 저는 주요 작물이긴 합니다만 사실 가지과 식물입니다. 얼마 뒤 저희 가지과 식구인 토마토와 고추도 게놈 클럽에 들어온다고 했으니 그들과 함께 가지과 분과를 차릴 생각입니다.

감자가 토마토, 고추와 한 식구라니! 의외군요. 노르스름한 색으로 보나 담백한 맛으로 보나 우리 식구인 줄 알았습니다.

감자 토마토와 고추의 게놈을 다 분석하면 우리가 왜 모습이 서로 다른지 정확히 알 수 있겠죠. 지금까지 분석한 결과를 보면 고추는 1900만 년 전에, 토마토는 600만 년 전에 저와 헤어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을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해 진화하며 이렇게 모양, 색, 맛이 모두 전혀 다른 식물이 돼 버린 거죠. 사실 게놈을 분석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진화의 순서를 알아내기 위한 겁니다.

옥수수 그리고 보니 신기하군요. 왜 당신들 중 고추만 매콤한 건가요?

감자 그건 매운맛을 내는 유전자(캡사이신 합성효소 유전자)가 다르게 진화했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게놈을 분석해 알아낸 것이죠. 특히 이 유전자는 씨가 들어있는 ‘태좌’에 많이 발현되기 때문에 그 부분이 다른 곳보다 더 맵습니다. 혹시 고추가 너무 매워서 못 먹겠다면 이 부분을 빼고 먹으면 좀 덜 매울 거예요.

옥수수 우와, 그럼 매운맛 유전자를 감자 선생님에게 더 넣어주면 매콤한 감자가 되겠군요? 공장에서 따로 양념을 뿌리지 않아도 매콤한 감자칩을 만들 수 있겠어요.

사회자 자, 이쪽으로 모실게요. 여기는 채소 분과입니다.

오이 처음 뵙겠습니다. 그동안 말씀 많이 들었어요. 감자도 저희처럼 식이섬유와 비타민이 풍부하다고 들었습니다.

감자 아유, 별 말씀을요. 제가 식량작물 중에는 많이 가진 편이지만 어떻게 채소와 비교하겠어요.

오이 게놈 연구가 발전해 풍부한 비타민과 식이섬유를 감자 선생님께 더 보충해 드리는 날이 왔으면 좋겠군요. 아, 이쪽은 에너지 분과 회장 포플러입니다. 탄소 화합물인 셀룰로오스를 많이 가진 분이라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죠. 바이오에탄올 들어보셨나요? 바로 그걸 포플러가 만들 거래요. 지금은 만드는 비용이 너무 비싸지만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우리 게놈 클럽에 에너지 분과가 생겼으니까 곧 바이오에탄올을 쓸 수 있을 겁니다.

감자 만나서 반갑습니다. 앞으로 자주 뵙죠. 사회자님, 저기 끝에 앉아계신 분은 누구시죠?

사회자 네, 저분은 과일 클럽 회장인 포도에요. 주로 와인을 만드는 분이고요. 근데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성미가 워낙 까다로워서….

감자 그래도 인사는 하고 가야죠. 안녕하세요?

포도 손 좀 치워줄래요? 당신같이 흙에서 뒹굴던 식물들은 병균이 많기 마련이죠. 나는 병균이라면 질색이에요. 우리 과일 식구들은 달콤한 맛 때문에 병균이 아주 좋아하죠. 감자 그 심정 이해합니다. 저도 병 때문에 심하게 고생한 적이 있어요. 1840년대 아일랜드에서 돌림병이 크게 번지는 바람에 우리를 주식으로 삼던 사람들이 다 굶어 죽을 뻔했대요. 사람들은 이때를 ‘아일랜드 대기근’이라고 부르죠. 이들이 먹을 것을 찾아서 고향을 떠나 정착한 곳이 바로 미국이래요. 제가 오늘날의 미국을 탄생시킨 셈이죠. 그런데 이번에 제 게놈을 분석하면서 병균을 물리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했대요. 글쎄, 저에게 병에 저항하는 유전자가 무려 800개나 있다는 거예요. 이 유전자들을 잘 활용하면 병충해에 강한 식물을 만들 수 있겠죠?

포도 오, 감자 덕에 우리도 좀 혜택을 받을 수 있겠군요. 저는 지긋지긋한 병 때문에 하루하루 살기가 너무 힘들답니다. 앞으로 당신만 믿고 있겠어요.

사회자 생산량을 늘릴 수 있겠군요. 식물 생산량을 늘리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하루에 2400명이나 굶어 죽는다고 하네요. 하지만 쌀이 게놈 클럽에 가입하면서 생산량을 40%나 늘릴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이게 바로 식물 게놈 클럽의 힘이죠. 앞으로 더 많은 식물이 게놈 클럽에 들어오면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을 굶주림에서 구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우리 식물 게놈 클럽이 있어 아주 든든합니다.
 




우리는 동물 게놈 클럽

돼지
아직 클럽 회원후보긴 하지만 질병 유전자 연구에 저를 빼면 섭섭합니다, 사회자님.

사회자 아, 거기 계셨군요. 이쪽은 동물 게놈 클럽입니다. 식물의 병 저항성 유전자를 동물에서는 면역 관련 유전자라고 말하죠. 동물 게놈 클럽에서도 병에 저항성을 가진, 그러니까 면역력이 강한 동물을 만들기 위한 연구가 활발합니다. 특히 가축은 밀집 사육을 하기 때문에 한 마리가 병에 걸리면 모두 감염되기 쉽죠. 그래서 더 튼튼한 동물을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돼지 우리 면역 유전자를 연구하면 사람에게도 유익합니다. 우리는 사람과 병원균을 공유하기 때문이죠. 재작년에 크게 유행했던 신종플루(H1N1) 바이러스도 원래 우리가 갖고 있던 바이러스인 거 다들 아시잖아요. 돼지 게놈을 연구해 면역력을 높일 방법을 찾으면 사람에게도 바로 적용할 수 있답니다.

고양이 야옹, 저도 말이죠.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감염되는 바이러스와 비슷한 걸 많이 갖고 있어요. 사람의 에이즈 바이러스인 HIV의 사촌 FIV부터 사스(SARS) 바이러스와 비슷한 FeCoV까지. 왜 이렇게 바이러스가 많은 건지 제 게놈 좀 봐주세요.

돼지 반대로 면역력을 낮추는 연구를 하면 이종장기를 이식할 때 생기는 면역거부반응을 줄일 수 있지요. 면역 유전자 중에 혈액형 유전자도 있다는 사실 아시죠? 게놈 연구 결과 사람이 ABO 혈액형 유전자를 갖고 있는 반면 돼지는 AO 혈액형 유전자만 갖고 있다는 것을 새로 알았습니다. 사람과 돼지의 혈액형을 맞춰서 장기를 이식하면 면역거부반응을 더 낮출 수 있을 거예요. 감자 와, 동물 게놈 클럽에서도 중요한 일을 하는군요.

식물 게놈 클럽이 세계 사람들의 배고픔을 해결한다고 하지만, 어디 사람이 풀만 먹고 삽니까? 우리는 예전부터 사람과 같이 살며 고기와 우유로 사람들을 먹여 살려왔습니다. 제가 사람과 같이 산 지도 벌써 8000년이 넘었군요. 사람들은 이 시간 동안 우유와 고기를 잘 생산하도록 우리를 골라왔어요. 특히 온순한 성격을 가진 소를 선택했죠. 그래서 우리 유전자 중에는 온순한 성질과 관계된 유전자가 많을 수도 있답니다.

저도 한마디 할까요? 저는 사람과 가장 먼저 살기 시작한 동물이죠. 1만 4000년쯤 됐습니다. 사람들은 저의 특별한 형질을 알아내 선택적으로 교배시켰어요. 그 결과 3kg짜리 치와와부터 54kg에 달하는 그레이트 데인까지 400개가 넘는 다양한 품종을 만들었답니다. 이렇게 품종을 개량하다보니 심장병, 암, 귀 질환 같은 유전질환이 많이 생겼어요. 그런데 무려 360개가 넘는 병이 사람과 비슷해요. 우리 게놈을 분석한 결과 사람의 유전질환을 고칠 수 있는 가능성도 많이 발견했대요. 동물은 식물보다 사람과 비슷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많은 동물의 게놈을 분석하고 싶어하죠. 척추동물 1만 종의 게놈을 모두 분석하겠다는 ‘10K 프로젝트’가 대표적입니다. 호주에만 사는 코알라, 캥거루와 애완용으로 인기있는 게코 도마뱀 같은 동물이 포함됩니다. 세계 43개 게놈 연구소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동물의 게놈을 분석하면 게놈을 이용해서 이들을 구분하는 ‘유전자 바코드’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유전자 바코드? 제 원산지 확인할 때 쓰는 것 말인가요?

네, 특히 검역과 동물 관련 법의학적 사건해결에 유용하게 쓸 수 있죠.

감자 우리 식물 분과도 1000종의 서로 다른 식물 게놈을 분석하겠다는 프로젝트가 시작됐습니다. 식물은 보통 동물보다 게놈이 복잡하기 때문에 DNA대신 mRNA를 해독해 게놈을 밝혀내기로 했대요. DNA에 담긴 정보가 mRNA로 전달되는 건 아시죠? mRNA만 분석하면 실제로 단백질을 만드는 게놈, 즉 생명 기능이 들어 있는 게놈만 알아낼 수 있어요. 이제 최대한 많이 게놈을 모으려는 경쟁이 시작됐습니다. 게놈이 바로 돈이거든요.

사회자 사람도 마찬가지에요. 이미 1000명의 개인 게놈 프로젝트가 진행 중입니다. 앞으로는 개인별로 게놈을 분석해 맞춤의학 시대를 열 거라고 하네요. 오늘 여러분을 모시고 여러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다음 파티에는 또 어떤 동물이나 식물이 신입회원으로 들어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군요. 우리 회원이 많아질수록 더 멋진 세상이 오겠죠.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Intro. 웰컴 투 게놈 클럽
Part1. 동물 1만 종 게놈 해독한다
Part 2. 게놈 클럽 신분증 직접 만들어보다
Part 3. 합성생물, 차세대 게놈 클럽 주인공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1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신선미 기자, 도움 박찬규 건국대 동물생명공학부 교수, 최도일 서울대 식물생산과학부 교수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농업학
  • 산림·작물·원예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