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측이 요구하는 통신개방의 내용은 VAN과 무선통신 및 위성통신서비스로 집약된다.
우리나라에 대한 미국의 통신시장개방압력이 더욱 거세어지고 있다.
10월초 '칼라 힐스'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의 방한과 10월 중순 노대통령의 방미를 전후해 미국측은 최대한의 구체적인 성과를 얻기 위해 집요한 공세를 펼쳤다.
수년 전부터 통상법 301조를 앞세운 미국의 개방압력에 밀려 한국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수입장벽을 헐고 남은 것은 통신과 쇠고기 등 농산물분야 뿐이다. 그러나 농산물수입개방이 눈에 뻔히 보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농민들의 반발도 만만찮은 반면 통신분야는 개방압력의 내용이 무엇인지 어떠한 결과를 빚을지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사람조차 드물 정도이다.
미국이 가장 관심을 갖고 개방을 요구하는 분야는 통신분야 중에서도 첨단통신서비스 부문이다. 가전산업에 이어 반도체 컴퓨터분야에서도 일본에 경쟁력을 잃고 있는 미국은 첨단통신분야에서만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기술수준이 우위라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통신기술은 전통적으로 국방산업의 일환으로 미국이 심혈을 기울여 투자해 왔기 때문이다.
통신분야에서 미국의 목표는 크게 두 부문으로 나눠진다.
그중 하나가 부가가치통신망(VAN)의 개방이다. VAN은 간단히 말해 컴퓨터통신을 이용한 정보서비스를 일컫는다. 최근 컴퓨터보급이 늘어나고 그 이용이 사회 전영역으로 확산되면서 VAN산업은 가장 유망한 산업분야로 각광받게 됐다.
VAN산업에서의 성패는 빠르고 정확한 정보와 편리한 서비스에서 결판난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다국적기업들은 월등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일례로 국내에 VAN관련 규제조항이 없었던 85년에 재빨리 컴퓨터단말기를 설치한 시티뱅크 서울지점은 국내 52개 은행과 기업을 상대로 금융서비스장사를 벌여 지난해 1백8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이는 1백80여개의 지점망을 가진 상업은행의 당기순이익보다 많은 액수이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독점이 관련 기술을 육성하는 데 장애가 됐다고 주장, 민간업체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미 재벌기업들은 거의 미·일 다국적기업과 합작으로 VAN사업을 준비하고 있어 그 열매가 해외로 유출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미국이 또하나 눈독을 들이고 있는 분야는 무선통신 및 위성통신서비스부문이다. 구체적으로 자동차전화(카폰) 무선호출(삐삐) 휴대용전화 소형위성지구국(VSAT) 고속데이터전송서비스(IBS) 등이 여기에 속한다.
주한미군은 전기통신공사의 위성지구국을 통하지 않고 독자적인 VSAT를 설치, 곧바로 미국본토와 통신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이다. 뿐만 아니라 직접 송수신한 내용을 한국내 가입자들을 상대로 장사까지 하겠다는 얘기다.
카폰 무선호출 등 이동통신서비스 시장도 국내에서 이제 막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유망한 산업분야. 특히 이 분야야말로 군산복합체의 막대한 투자로 미국의 기술수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업계에서는 이 분야의 시장개방이 이뤄지면 순식간에 국내시장을 휩쓸어버릴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 외에도 △정부의 통신장비구입시 미국업체의 참여 △광케이블 및 교환기제조에 미국의 투자허용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 분야는 이미 미국의 시장지배가 실질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큰 비중을 두고 있지 않다.
통신개방에 따른 피해나 영향은 단기간에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중추신경을 남에게 빼앗긴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