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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배아 줄기세포 치료이용, 그 머나먼 길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찬반논란이 뜨겁다. 불치병에 걸린 딸을 둔 여인이 미 국회의사당 앞에서 줄기세포 연구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난자를 채취할 때 여성은 그의 난소가 가늘고 긴 바늘에 찔리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그로 인한 부작용은 절대 무시될 수 없다.”

전문의로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부장인 김명희씨는 지난 2월 26일자 ‘주간동아’ 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호르몬을 과다하게 투여해 유도하는 과배란은 여성의 몸에 많은 휴유증을 일으킬 수 있는데, 가벼운 복통은 운이 좋은 경우고 심하면 복부에 물이 차 사망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김 부장은 이번 황 교수팀의 대담한(?) 시도와 그 화려한 성공 앞에서 인권침해 가능성이나 턱밑까지 올라온 인간 복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 현상을 ‘이상한 침묵’이라고 표현했다. 물론 세계 최초로 한국의 과학자들이 복제된 인간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얻어내 미국 등 과학선진국들의 찬사와 러브콜이 쏟아졌으므로 한민족의 자긍심이 한껏 고양될 만도 하다.

사실 선진국의 관련 연구자들은 조만간 한국이나 중국에서 이번에 황 교수팀이 발표한 것과 같은 연구결과가 나올 것으로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이 두 나라는 난자를 이용한 생명공학기술을 제어할 법률이 시행되고 있지 않는 인간배아 복제 연구의 천국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실험을 위해 무려 2백42개의 난자가 쓰였다는 사실은 비슷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외국 과학자들을 경악케 했다.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해 프랑스의 르몽드지는 “세포 주입을 통해 난치병 치료 기술을 여는 새로운 진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언론의 보도에는 과장이 섞여있다고 말한다. 치료용 줄기세포 연구에 있어 배아 복제기술이 꼭 선행돼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치료용으로 줄기세포를 얻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는 배아 줄기세포를 얻는 방법이다. 지금까지는 인공수정용으로 만든 여분의 배아를 배양해 줄기세포를 얻는 방법이 쓰이고 있다. 이번 황 교수팀의 경우 배아 줄기세포이지만 체세포를 복제한 배아를 키워 얻는 방법이다. 즉 이 기술이 확립될 경우 환자가 자신의 체세포를 제공해 배아를 얻기 때문에 치료시 면역거부반응이 없다는 큰 장점이 있다.

두번째 방법은 성체 줄기세포를 쓰는 것이다. 1960년대 개발된 이래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쓰이는 골수이식법도 골수에 들어있는 조혈모세포, 즉 각종 혈액성분을 만드는 성체 줄기세포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탯줄에 남아있는 줄기세포도 대표적인 성체 줄기세포다.

조혈모세포와 같이 줄기세포 자체를 주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줄기세포를 증식시킨 뒤 특정 기능을 가진 세포로 분화시켜야 한다. 충분한 양의 분화된 세포가 환자의 몸에 들어가야 치료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체 줄기세포는 증식력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결국 타인의 배아 줄기세포를 쓸 때의 단점인 면역거부반응과 환자자신의 줄기세포의 단점인 낮은 증식력을 모두 극복한 대안이 바로 배아 복제인 셈이다.

그러나 자궁에 착상만 시키면 복제인간이 만들어지는 배아 복제 연구에는 윤리 문제라는 암초가 숨어있다. “인간복제 의도는 전혀 없다”고 수차례 밝힌 황 교수 자신이 2월 18일 귀국기자회견에서 향후 1년간 배아 복제 연구를 중단하겠다고 밝힌 것만 봐도 문제의 심각성을 읽을 수 있다.

배아를 파괴해야만 하는 배아 줄기세포 연구 자체에 대한 도덕성 논쟁도 여전하다. 아무튼 21세기 프론티어사업단으로 선정돼 2002년 출범한 세포응용 연구사업단은 연간 1백억원의 예산중 절반 가량을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쓰고 있다. 증식력이 우수하므로 원하는 세포를 만드는 분화연구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체 줄기세포 연구에 더 비중을 두는 선진국과의 차이다.

뜻대로 안되는 세포 분화
 

수정란이나 복제배아는 초저온에서 보관할 수 있다. 이를 꺼내 자궁에 착상시키면 태아로 자라게 된다.


“글쎄요…. 현재는 여기서 멈춘 상태입니다.”


인공수정을 하고 남은 배아에서 얻은 줄기세포를 췌장세포, 즉 인슐린을 분비하는 세포로 분화시키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서울대 의대 조영민 교수는 기자의 기대감 섞인 호기심이 다소 부담스러운 눈치다.

1998년 미국 위스콘신대 제임스 톰슨 교수팀이 사람의 배아 줄기세포를 배양하는데 성공했을 때, 응용할 분야로 가장 먼저 손꼽혔던 분야가 당뇨병 치료다.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이 고장난 결과인 당뇨병은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의 10%가 앓고 있다. 따라서 줄기세포에서 췌장세포가 만들어진다면 의료계에 일대 혁신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사실 2001년 미 국립신경질환 및 발작연구소(NINDS)의 론 맥케이 연구팀이 생쥐의 배아 줄기세포를 췌장세포로 분화시키는데 성공했을 때만해도 목표가 눈앞에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 뒤 전세계 수많은 실험실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사람세포에 대한 분화를 시도했지만 아직까지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생쥐와 사람은 같은 포유류라서 별 차이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분화되는 조건이 전혀 다른 것 같아요.”


분화의 비밀열쇠를 찾고 있는 조 교수의 연구는 현재 줄기세포를 어느 정도 키운 뒤 배지에 띄워 배양하는 배상체 단계까지 와있다. 이 단계에서 일부 세포가 인슐린을 분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다음 단계에서 이 세포가 사라져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생쥐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접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췌장세포로 유도하는 유전자를 넣은 바이러스를 배아세포에 감염시켜 분화를 촉진하거나 실제 췌장의 조건과 비슷한 3차원 배양, 즉 세포를 덩어리로 키우는 방법을 최근 시작했다.

“이 단계를 넘어도 아직 첩첩산중입니다. 분화된 세포에는 종양성 세포나 다른 조직으로 분화된 세포가 섞여 있을 수 있으므로 췌장세포만을 골라내야 합니다.”

실제 지난해 독일 울름대 연구팀은 분화된 세포를 이식받은 당뇨병 생쥐의 이식부위에서 종양이 관찰됐다고 보고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쯤이나 줄기세포가 인슐린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5-10년 후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조 박사는 뜻밖에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게놈프로젝트도 처음에는 누구도 그렇게 일찍 끝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듯이, 현재의 난관을 단번에 뛰어넘을 수 있는 획기적인 계기가 있을 거란다. 물론 그 주인공이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튼 순수한 췌장세포가 얻어진다 하더라도 면역거부반응 극복을 비롯해 동물실험과 독성실험, 임상시험 등을 거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다면 분화유도가 상대적으로 쉽고 면역거부반응이 없는 성체 줄기세포를 이용한 연구는 어떨까. 조 교수는 “최근 췌장에도 줄기세포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며 “외국의 몇몇 팀에서 연구를 진행하지만 충분한 세포가 얻어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과연 증식의 어려움은 성체 줄기세포의 근본적인 한계일까.

혈관 형성하는 골수 줄기세포

올해 71세인 김숙자씨(가명)는 작년 이맘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뛰고 이마에 식은땀이 흐른다. 평소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던 김씨는 지난해 초, 발가락에 난 상처가 낫지 않아 동네의원을 찾았다가 청천벽력같은 얘기를 들었다. 동맥경화로 피가 잘 돌지 않아 발가락이 썩었고, 더 심해지기 전에 잘라내야한다는 진단이었다.

며칠 뒤 가톨릭대 의대를 찾은 김씨는 또한번 놀랐다. 어쩌면 절단수술을 받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는 얘기였다. 의료진은 김씨의 골수를 채취해 장딴지 부위에 주사했다. 도대체 발이 썩어들어가는데 의료진들은 왜 골수를 넣었을까.

“골수에 들어있는 줄기세포는 다른 조직, 즉 혈관이나 근육세포로도 분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수년 전에 밝혀졌습니다. 동물실험에서 효과와 안전성을 검증한 후 환자에게 적용했습니다.”

가톨릭대 의대 세포유전자치료연구소 소장인 오일환 교수의 설명이다. 결과는 대성공. 환자는 시술 뒤 혈관이 만들어져 피가 돌아 조직이 되살아났다. 오 교수는 “최근 독일 연구진들은 심장병 환자의 골수에서 얻은 줄기세포를 심장근육에 주입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며 “성체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는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에는 제주 한라의료원에서 간경화 환자에게 탯줄 혈액에서 얻은 줄기세포를 이식, 간기능이 회복된 사례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성체 줄기세포 연구가 더 쉽고 실현 가능성도 큰 방향일까.

“줄기세포 연구는 배아냐 성체냐를 떠나 아직 시작단계입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의 방법으로는 돌파구가 열리지 않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뭔가 근본적이고 혁신적인 해법을 찾아야해요.”

오 교수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줄기세포 연구는 ‘trial and error’, 즉 이것저것 변수를 바꿔가며 최적의 조건을 찾는 방법이 주류다. 그 결과 이만큼까지 왔지만 여기가 한계라는게 오 교수의 생각이다.

“줄기세포 연구가 열매를 거두려면 기초분야, 즉 분자생물학 연구가 뒷받침되야 합니다. 예를 들어 줄기세포가 췌장세포로 변하게 하는데 관여하는 생체분자들이 무엇인지, 그것들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지를 밝혀내야죠.”

따라서 오 교수팀에서는 줄기세포에 관련된 기초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에는 성체 줄기세포가 좀더 활발히 증식하도록 유도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고 있다. 오 교수는 “증식력이 약하다는 것이 성체 줄기세포의 한계라는 것은 이제 편견” 이라며 “몇개 안되는 골수의 줄기세포로부터 평생동안 고갈됨이 없이 계속 세포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그 증거” 라고 말한다. 즉 인체내 증식조건을 찾는다면 성체 줄기세포도 얼마든지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치료보다 미용에 먼저 쓰일 수도
 

현재 유방확대술은 실리콘이나 식염수보형물을 쓰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자신의 몸에서 얻은 줄기세포를 쓸 전망이다. 부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2월 9일 ‘네이처’ 온라인뉴스는 일본 도쿄대 요시무라 연구팀이 개발한 새로운 유방성형 수술법을 소개했다. 실리콘이나 식염수보형물 대신 환자의 엉덩이에서 뽑아낸 지방을 가슴에 넣었다는 것이다.

사실 생화학적으로 보면 유방은 70%가 지방세포로 이뤄진 지방덩어리다. 따라서 빈약한 가슴에 환자 자신의 지방을 넣어주면 면역거부반응이 없을뿐더러 느낌도 가장 자연스러운 풍만한 가슴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굳이 부작용이 큰 방법들을 써 왔을까.

사실 예전에 지방을 이용한 유방확대술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이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지방조직이 죽어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부작용이 생겼다. 그렇다면 요시무라 연구팀은 어떻게 이를 극복하려는 것일까.

연구자들은 지방세포에서 줄기세포를 찾아내 이를 배양해 증식시켰다. 그리고 엉덩이에서 얻은 지방세포와 줄기세포를 섞어 환자의 유방에 넣었다. 연구자들은 줄기세포가 새로운 지방세포를 만들고 혈관을 형성해 유방조직으로 자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현재 이 환자의 경과를 보고 추가로 30건의 수술을 진행할 예정이다.

“설득력 있는 연구입니다. 사실 줄기세포는 임상시험 등 절차가 까다로운 치료쪽 보다는 이런 미용쪽에 더 빨리 적용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유방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한 서울대 수의대 강경선 교수의 설명이다.

강 교수팀에서는 유방세포를 배양, 여기서 얻은 줄기세포를 유선조직으로 분화시키는데 성공했다. 강 교수는 “배아 줄기세포는 증식력이 왕성한 반면 원하는 조직으로 분화시키기가 매우 어렵다”며 “따라서 성체 줄기세포 중에서 증식력이 큰 것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특히 유방 줄기세포와 자궁 줄기세포에 관심이 높다.

“월경을 생각해 보십시오. 매달 자궁내막에 엄청난 조직이 생겼다가 떨어져나가는 일이 반복됩니다. 줄기세포 연구를 하다보면 ‘남자란 쓸모가 없고 역시 여성이 생산적이구나’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사실 현재 기술로는 배아 복제도 여성의 체세포만 가능하고 성체 줄기세포도 여성의 것이 응용폭이 넓다. 강 교수팀은 최근 제대혈에서 얻은 중간엽 줄기세포를 신경세포와 골세포로 분화시키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이런 결과를 갖고 기뻐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예를 들어 신경세포로 분화시켜도 이 중에는 다른 조직, 예를 들어 근육세포로 변한 부분들도 포함돼 있죠. 따라서 이 상태대로 뇌에 주입할 경우 예측못할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강 교수 역시 줄기세포 치료연구가 아직 시작단계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다만 줄기세포를 이용해 치매나 파킨슨씨병과 같은 퇴행성 신경계 질환을 치료하거나 유방성형수술을 하는 것은 5년 내에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반인들이 줄기세포의 위력을 맛볼 날도 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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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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