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슈퍼맨’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브는 날기는커녕 이제 걷지도 못하고 있다. 말에서 떨어지면서 척추를 다쳐 꼼짝없이 휠체어에 갇혀 지내게 된 것. 그러나 슈퍼맨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줄기세포로 손상된 척추 신경세포를 재생한다는 것이 그의 꿈이다. 서울대 수의대 황우석 교수와 같은 학교 의대 문신용 교수 연구팀은 슈퍼맨을 꿈이 현실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해낸 것이다.
세계를 놀라게 한 기자회견
황우석 교수 연구팀은 한국시간으로 지난 2월 13일 오전 4시 미국 시애틀에서 개최된 특별기자회견에서 여성의 난자에 성인의 체세포 핵을 이식하는 방법으로 배아를 복제해냈으며, 이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황 교수는 “이제까지 인간배아를 복제해낸 경우는 있으나 복제한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해 따로 배양하는데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배아 복제와 줄기세포 배양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 논문을 지난해 세계적인 과학전문지인 ‘사이언스’에 제출했으며, 2월 4일 최종적으로 게재 통보를 받았다.
정자와 난자가 만난 수정란은 세포 분열을 거듭하면서 점점 뼈나 심장 등의 인체 각 부분의 장기로 분화된다. 줄기세포(stem cell)는 수정란에서 이처럼 모든 장기가 만들어지는 근원이 되는 세포. 몸을 구성하는 2백10 종류의 세포로 자랄 수 있어 생명체의 근간을 이룬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줄기세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채 10년이 되지 않았다. 1998년 10월 미국 위스콘신대 제임스 톰슨 박사와 존스홉킨스대 존 기어하트 박사는 인간의 배아로부터 줄기세포를 배양했으며 이 줄기세포로 신경세포, 심장근육세포 등 다양한 종류의 세포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와 함께 이식의학(transplantation medicine)이라는 새로운 질병 치료 개념이 생겨났다. 당뇨병, 파킨슨씨병, 골관절염과 같이 세포가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소멸되는 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 줄기세포를 이식하면 손상된 세포를 정상세포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복제된 배아를 여성의 자궁에 착상시키면 복제 아기가 탄생된다. 이번 연구결과에 대해 인간 복제에 한걸음 더 다가섰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질병 치료용 줄기세포를 얻기 위한 배아 복제는 아기를 출산시키는 인간 복제, 또는 생식 복제(reproductive cloning)와 구별해 치료용 복제(therapeutic cloning)라 부르고 있다. 세계 모든 언론은 황 교수의 연구를 소개하면서 일제히 “치료용 복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최초로 입증했다” 고 보도했다.
황 교수팀의 배아 복제는 기본적으로 복제양 돌리를 만드는 것과 동일한 방법을 사용했다. 환자 자신의 체세포로 만든 배아이기 때문에 여기서 얻은 줄기세포를 자신에게 이식하면 면역거부반응이 없게 된다.
연구팀은 자원 여성 16명에게 난자가 배아 복제와 줄기세포연구에 이용된다는데 동의하는 서약서를 받고 호르몬을 주사해 보통 때보다 많은 난자를 생산하게 했다. 한명당 한두번씩 난자를 채취해 모두 2백42개의 난자를 얻었다. 이 난자에 체세포인 난세포를 삽입하고 전기충격을 가해 세포융합을 일으켰다.
연구팀은 세포융합이 완결된 배아 가운데 30개를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는 배반포기까지 배양하는데 성공했다. 줄기세포는 배반포기 배아에 있는 내부세포덩어리에 존재한다. 연구팀은 줄기세포를 뽑아낼 만한 20개의 내부세포덩어리를 확보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한개의 내부세포덩어리에서만 성공적으로 줄기세포주(株)를 확립했다. 세포주란 몇 차례 분열하면 죽는 보통의 세포와 달리 특수 처리해 다른 세포로 분화되지 않고 영원히 분열하도록 만든 세포를 말한다. 기본틀에서 똑같은 종이인형을 찍어내 듯 무한 증식이 가능한 것. 세계 최초로 복제 배아에서 줄기세포주를 확립했지만 아직도 성공률은 턱없이 낮은 것이다.
황 교수는 “복제 배아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는 일반 배아 줄기세포와 아무런 차이가 없었으며 다른 세포로 성장하는 것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우선 복제 배아에서 추출한 줄기세포와 불임 치료 과정에서 나온 냉동배아로 만든 줄기세포를 비교했다. 그 결과 형태적으로 서로 다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복제 배아 줄기세포는 체외 배양 과정에서 정상적인 신경세포 분화 형태를 보이기도 했다. 또 복제 배아 줄기세포를 쥐의 고환에 삽입했더니 12-13주 뒤 생식질의 전형적인 세가지 세포 형태가 만들어지는 것도 확인됐다.
8세포기 ‘마의 장벽’ 돌파
인간 배아 복제는 2001년 미국의 어드벤스트 셀 테크놀러지(ACT)사가 제일 먼저 성공했다. 호세 시벨리 박사는 황 교수팀과 마찬가지로 핵을 제거한 사람의 난자에 난구세포를 삽입해 배아를 만들어냈다. 이 배아는 6세포기까지 분열하다가 죽어버렸다. 그래서 복제 전문가들에게 배아를 세번까지 분열시킨 8세포기는 ‘마의 장벽’으로 통했다.
최근에는 아예 인간 배아 복제와 이를 통한 줄기세포 배양이 인간과 같은 영장류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4월 미국 피츠버그대의 제럴드 섀튼 박사는 ‘사이언스’ 에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는 복제 과정에서 난자의 핵을 제거할 때 세포 분열에 필수적인 방추체가 이상을 일으켜 배아가 정상적으로 자랄 수 없다는 회의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황 교수팀이 추출한 배아 줄기세포는 이제까지 연구의 모든 한계와 회의론을 일시에 뒤집은 것이다.
황 교수는 “이번 연구는 기존의 인간 배아 복제 방법과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난다” 며 성공비결을 소개했다.
다른 동물과 달리 사람의 난자는 표면이 매우 끈적끈적하다. 소를 복제하는 경우 미세 유리관을 난자에 찔러 넣어 핵을 제거하는데, 이 방법을 사람의 난자에 적용하면 유리관과 난자가 달라붙거나 난자가 터져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황 교수팀은 난자에 미세한 구멍을 내고 압력을 가해 포도알을 짜내듯 핵을 뽑아내는 방법을 이용했다.
핵을 제거한 난자와 체세포의 핵을 융합시킨 다음에는 DNA 유전자를 수정란 초기 상태로 되돌리는 ‘재(再)프로그램’ 과정이 진행된다. 황 교수팀은 논문에서 융합과 동시에 유전자를 재프로그램하는 기존의 방법 대신, 2시간 동안 기다렸다가 다시 유전자를 작동시켰더니 다른 동물의 배아 복제와 맞먹는 25%의 복제 성공률을 얻었다고 밝혔다. 유전자를 재프로그램하는 화학물질의 적용시기 및 방법과 복제된 배아를 키우는 배양액도 새롭게 개발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배양약의 경우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포도당 대신 과당을 이용했다. 황 교수는 "이번에 새로 개발한 기술들은 모두 특허 출원한 상태"라고 밝혔다.
‘원재료’ 도 배아 복제 성공에 큰 기여를 했다. 황 교수팀의 연구결과를 접한 해외 과학자들은 무엇보다도 건강한 상태의 난자를 대량 확보한데 놀라움을 표시했다. 시벨리 박사는 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난자가 2백개 이상이었다고? 와우!” 라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에 비해 2001년 당시 시벨리 박사가 인간 배아 복제에 사용한 난자는 불과 19개였다.
난자 제공자들의 숨은 공로
시벨리 박사는 ‘뉴욕타임스’ 와의 인터뷰에서도 “난자가 많았기 때문에 복제 기술을 완벽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며 “14가지(실제론 12가지) 새로운 복제 방법을 시도할 수 있었다” 고 말했다.
체세포도 한몫 했다. 황 교수는 “복제에 필요한 재료인 체세포와 난자 두 가지를 같은 여성에게서 채취했다는 점도 이번 연구의 특징” 이라고 말했다. 체세포로는 난구세포가 사용됐다. 난구세포는 난자 주변에서 마치 구름처럼 모여서 영양분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난자와 동시에 뽑아낼 수 있다.
섀튼 박사도 “난자의 핵을 제거하는 독특한 방법과 함께 난자를 제공한 동일인의 난구세포를 핵이식용 체세포로 이용한 점이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인” 이라고 평가했다.
동물에서는 수컷의 체세포로도 복제가 더러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컷의 체세포는 암컷의 난자와는 본질적으로 이질적이어서 복제 성공률이 낮다는 것이 정평이다. 참고로 복제양 돌리는 암컷의 유선세포로, 1998년 세계 최초의 복제 쥐의 경우도 황 교수팀과 같은 암컷의 난구세포로 복제에 성공했다.
남성 체세포 복제 연구 필요
그런데 일부에서는 동일인의 난자와 체세포를 이용했기 때문에 실제로 복제가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즉 난자가 정자의 도움없이 스스로 분화해 배아로 자라나는 단성생식(parthenogenesis)도 가능하다는 말.
만약 남성의 체세포를 복제에 이용했다면 단성생식 논란이 있을 수 없다. 줄기세포에서 남성에게만 있는 Y염색체가 있다면 복제가 제대로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배아 복제는 여성의 체세포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Y염색체가 없다.
연구팀은 대신 줄기세포의 유전자를 조사했다. 정상적인 수정과정에서 배아는 부모로부터 염색체를 하나씩 물려받는다. 그런데 동일한 기능을 하는 유전자가 부모 양쪽에서 받은 염색체에서 모두 발현되면 유전적 이상이 발생한다. 따라서 한쪽 유전자만 발현되도록 조절해야 하는데, 이를 각인유전자(imprinted gene)라고 한다.
단성생식으로 배아가 만들어졌다면 어머니의 염색체만 받게 되므로 각인유전자도 어머니의 것만 있게 된다. 반면 복제에 사용된 체세포는 정상적인 수정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이것으로 복제된 배아 또한 부모 양쪽으로부터 받은 각인유전자를 모두 갖게 된다.
연구팀은 시벨리 교수로부터 단성생식으로 만든 원숭이 배아 줄기세포를 받아 각인유전자의 발현을 비교 조사했다. 실험 결과 황 교수팀이 배양한 줄기세포에서는 체세포와 마찬가지로 어머니와 아버지의 각인유전자가 둘 다 발현됐지만 원숭이 줄기세포에서는 어머니의 각인유전자만 발현됐다. 즉 복제가 제대로 이뤄졌다는 것.
이번에 확립된 줄기세포는 말하자면 ‘여성용’ 이라고 할 수 있다. 남성인 슈퍼맨에게는 아직 길이 먼 셈. 황 교수도 “앞으로 남성의 경우엔 어떤 체세포를 이용해야 복제 성공률을 높일 수 있는지 연구할 계획” 이라고 밝혔다. 또 배반포기까지의 배아 복제 성공율은 높은 반면 줄기세포주를 확립한 비율이 낮은 점도 좀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연구는 정보통신부 IMT-2000 출연금과 과학기술부 세포응용연구 프론티어사업단(사업단장 서울대 의대 문신용 교수)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지난해 2월부터 5월까지 진행됐다. 논문의 저자들은 서울대 수의대와 의대, 농업생명대, 한양대 의대, 가천의대, 미즈메디병원 의학연구원 등 소속이 다양했다. 한양대 의대는 난자 채취를 담당했으며 미즈메디병원과 가천의대는 줄기세포 배양에,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배아 줄기세포를 쥐에 이식하는 실험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15명의 저자 가운데 순천대 자연대 박기영 교수는 실제 연구에 참여하지 않고 이번 연구의 윤리적 타당성을 검토했다. 현재 대통령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인 박 교수는 황 교수가 광우병 내성소를 복제할 때도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세계 최초 치료용 복제 성공
1. 복제양 돌리와 줄기세포의 만남
2. "10년 뒤 노벨상 받는 제자 기대"
3. 배아 줄기세포 치료이용, 그 머나먼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