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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자세계 조작하는 21세기 연금술

나노소재공학자의 슈퍼 낫 제조법


과거 대장간에서 만들어졌던 도구의 제작과정이 오늘날 나노소재기술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21세기 나노소재공학자 김 박사는 조선시대 대장장이 돌쇠가 만들었던 낫을 제조하는 과제를 요청받았다. 김 박사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던 어린 시절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본 낫을 떠올렸다. 할아버지 산소를 벌초할 때조차 전동제초기를 쓰는 세상에 무슨 낫이 필요할까 생각됐지만, 선조들의 전통기술을 연구하는 셈치고 일에 착수했다. 김 박사는 인터넷을 이용한 문헌조사를 거쳐 돌쇠의 낫 제조과정을 이렇게 추정했다.

돌쇠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기술에 나름대로 터득한 방법을 더해 독자적인 낫 제조 기술을 갖고 있다. 그는 쇳조각을 풍로에 넣고 가열한 후, 망치로 두드려서 낫을 만든다. 작업 도중 낫의 색깔, 표면 모양 등을 눈으로 관찰하면서, 일이 제대로 돼 가는지를 판단한다. 날을 세우는 과정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등 부분을 잘 고른 후, 나무자루에 박는 부분인 슴베를 만들면 작업이 마무리된다. 그런 후 돌쇠는 낫의 성능을 시험해본다. 숫돌에 잘 갈리는지, 풀은 잘 베어지는지, 소나무를 벨 때 날이 손상되지 않는지를 검사한다. 무언가 부족하면 가공조건을 바꿔보면서 작업을 반복했다. 숯의 종류나 양, 풍로 바람의 세기, 쇳조각의 색깔, 망치로 두드리는 세기, 두드린 후 물에 집어넣을지, 땅속에 묻어둘지 등의 조건을 말이다.

다음에 김 박사는 민속박물관에 의뢰해서 조선시대에 쓰던 낫을 구했다. 그는 평소 자신의 소재개발 방법론을 따라 낫의 미세구조를 관찰하고 특성을 측정했다.

조선시대 낫보다 얇고 날카롭게


수nm 크기의 풀러렌과 같이 이전에 없던 새로운 구조 를 갖는 첨단 나노소재가 개발되고 있다.


먼저 날, 등, 슴베 세부분에서 손톱 크기만큼 떼어(시편), 한쪽 면을 거울처럼 연마하고 화학약품에 부식시킨 후 광학현미경으로 미세조직을 관찰했다. 대략 10- 1백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 크기의 결정립으로 구성돼 있는 다결정재료였다. 다결정에서 한 결정립 내 원자들은 동일한 방향으로 일정한 규칙을 이루며 배열돼 있고, 배열방향이 다른 이웃한 결정립과는 분리돼 있다.

김 박사는 3개의 시편을 대상으로 결정립의 모양과 평균 크기를 관찰했다. 등과 슴베 의 결정립은 대체로 구형이고 평균크기가 컸다. 날의 결정립은 크기가 가장 작고 한 방향으로 많이 찌그러진 모양이었다. 한편 날 부분의 경도 수치가 가장 높게 측정됐다.

김 박사는 화학분석센터에 의뢰했던 시편의 성분분석 결과를 통보받았다. 시편은 철이 주성분이고 탄소가 수%, 규소, 망간 등의 불순물이 미량 들어있는 일반탄소강이었다. 그리고 전자현미경 관찰용 시편을 제작한 후, 투과전자현미경을 통해 1만배의 배율로 나노미터(nm, 1nm=10-9m) 영역의 구조를 조사했다. 원자배열상의 결함과 수nm 크기의 석출물을 관찰했고, 석출물의 화학조성을 전자현미경으로 분석했다.

김 박사는 낫의 미세조직 관찰결과를 현대의 철강가공기술로 해석해 낫이 만들어진 가공조건을 추정했다. 다만 가공조건은 돌쇠의 그것과는 다르게 무게, 길이, 온도, 시간, 압력 등의 정량화된 수치로 표현됐다.

그는 성능이 더 좋은 낫을 만들기 위해 소재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합금조성을 설계하고, 더 높은 강도, 적절한 인성(외부로부터 힘을 받았을 때 파괴되거나 균열을 일으키지 않는 질긴 성질)을 얻기 위한 공정과 가공조건을 설정했다. 결정립의 크기를 0.1μm, 즉 1백nm 이하로 만들면 획기적인 강도를 얻을 수 있다고 보고 그것이 가능한 가공방법을 개발할 계획인 것이다. 김 박사는 날 부분의 경도를 획기적으로 증가시키기 위해 나노미터 두께의 질화티타늄 박막을 다층으로 증착시키는 방법도 구상했다. 이렇게 되면 조선시대의 것보다 더 얇고, 가볍고, 날이 날카로운 낫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김 박사는 시장성이 없는 낫을 제조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이를 통해 개발될 나노소재기술이 다른 용도에 활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현대판 슈퍼 낫을 제조하는 과제제안서를 작성했다.

김 박사의 과제제안서는 전문용어로 쓰여 있지만, 그가 적용한 소재연구 방법론인 구조관찰-특성측정-프로세스(가공, 합성방법) 변경의 사이클을 반복하면서 최적의 소재가공조건을 찾는 과정이 담겨 있다. 즉 재료의 구조와 특성의 관계를 파악하고 프로세스를 최적화하는 작업이다. 이는 선사시대부터 내려온 인류 문명발달의 역사다.

고대 원시인은 육안으로 다양한 재료를 구별하고 이의 특성을 조사해서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냈다. 청동기·철기시대에는 광석에서 금속을 뽑아내는 획기적인 프로세스가 발명되면서 다양한 재료가 쓰이기 시작했다.

미시영역을 마이크로라 이름 붙인 시대

육안보다 더욱 자세하게 물체를 보려는 노력이 광학렌즈의 발명으로 가능해졌다. 이를 통해 인간은 마이크로 세계를 발견했다. 이때 맨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을 지칭할 때 마이크로(micro), 그 반대에는 매크로(macro)라는 접두어를 붙였다. 현미경은 microscope, 미생물학은 microbiology, 미시경제학은 micro economics, 거시경제학은 macroeconomics이다. 마이크로라는 말이면 미시세계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을 것으로 인식됐다.

당시 재료의 구조에 대한 이해도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현미경에서 관찰되는 모양을 미세조직(microstructure)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재료의 종류에 따라 다르고, 같은 재료라도 가공방법에 따라 변한다. 금속이나 세라믹의 경우, 미세조직은 1- 1백μm 크기의 수많은 결정립으로 구성돼 있다. 소재기술자들도 마이크로 수준에서 결정립의 구조를 조절하면 충분히 우수한 소재를 개발할 수 있다고 한동안 생각했다.

그러나 20세기 초 새로운 발명으로 마이크로 이하의 세계가 개척됐다. 1932년 전자현미경을 발명함으로써 마이크로 이하 세계에 대한 지적 욕구가 충족되기 시작했다. 전자현미경의 분해능은 대략 0.1nm이고 10만배 이상의 배율을 얻을 수 있다. 1980년대 들어 주사터널링현미경과 원자력현미경이 발명되면서 인간은 간접적 이미지이지만 원자나 분자의 모양을 관찰할 수 있게 됐다.

이 외에도 X선, 이온, 표면탄성파, 방사광 등을 재료에 쪼여서 재료 내 원자들과의 상호작용을 관찰하면 재료의 구조와 구성 성분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X선의 회절현상을 이용해 물체를 분석함으로써 재료의 결정구조와 성분을 원자 수준에서 이해하게 됐다.

전자현미경과 X선 회절법 등의 발명으로 1930년대에 이미 소재기술자들은 나노 단위까지 재료의 구조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조관찰기술의 발전이 바로 나노소재기술의 탄생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전통 소재기술에서 재료의 구조관찰과 분석은 마이크로 또는 나노 영역까지 이뤄졌지만, 재료의 가공은 매크로 영역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자동차용 판재의 경우 현미경으로 마이크로 영역의 조직을 분석하면서 더 얇고 강한 소재를 개발하더라도, 우리가 가공중에 취급하는 물체의 크기는 두께가 수mm, 길이가 수m다. 일상생활의 대부분 도구나 구조물은 매크로 영역인 것이다.

또다른 이유는 나노 영역에서의 독특한 물성이 매크로 영역으로 물질을 합쳐가는 과정에서 소멸·감쇠되기 때문이다. 나노 크기의 금속이나 세라믹 분말이 독특한 특성을 보임을 소재기술자들은 알았지만, 실제로 얻게 되는 분말은 수μm 이상이고, 그 이하의 분말을 제조하기란 쉽지 않았다. 초기에 나노 크기의 분말이 형성되더라도 표면적이 커서 곧 다른 분말과 합쳐져 마이크로 크기로 성장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나노 크기의 결정립을 형성하려 해도 재결정이라는 과정을 거쳐 쉽게 큰 결정립으로 성장하게 된다. 나노 영역에서 재료를 가공하고 그때의 성질을 유지시킬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축소화 이끈 반도체 제조기술

한편 물건을 아주 작게 만들어보겠다는 인류의 욕망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는데, 쌀 한알로 부처의 상을 새기거나 바늘귀 안에 찰리 채플린의 모습을 새겨넣는 재주꾼들이 있다. 이런 호기심이나 심미적 관점이 아닌 소재기술의 관점에서 축소화가 이뤄진 것이 반도체 제조기술이다.

1958년 집적회로가 발명된 이후 집적화가 꾸준히 이뤄졌다. 칩의 크기는 별로 줄어들지 않았으나 소자 선폭을 축소함으로써 그 안에 집적돼 있는 소자수가 획기적으로 증가됐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들은 많은 한계에 봉착했으나 매번 새로운 기술의 개발로 이를 극복했다. 고진공기술, 이온빔기술, 플라스마 증착기술, 플라스마 에칭기술, 마이크로리소그래피 등 수많은 기술의 등장으로, 마이크로 영역에서 소재를 가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영역의 특성을 유지시킬 수 있는 노하우를 축적해 왔다. 이 기술들이야말로 미세가공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원동력이 됐고, 결국 1백nm 이하의 소자가 가능해지면서 나노기술이 우리의 현실로 다가오게 됐다.

그럼 나노기술이란 무엇일까. 미 국가나노기술개발계획에 따르면, 나노기술은 ‘대략 1-1백nm 길이 영역에서 원자, 분자, 초분자를 조작해 이들의 미소한 구조로부터 근본적으로 새로운 특성과 기능을 갖는 재료, 소자, 시스템을 창제하는 기술’이다. 국제순수응용화학연합은 이를 ‘다양한 물리 또는 화학적 방법으로 1-1백nm 범위에서 기능성 재료나 구조를 제작하는 기술’로 정의했다.

나노기술의 정의와 분류를 원용해 필자는 나노소재기술을 ‘1백nm 이하의 영역에서 재료를 가공해 새로운 특성을 창출하거나, 비록 매크로 영역에서 가공을 하더라도 미세구조가 1백nm 이하의 요소를 가지며 획기적으로 특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재료 조작 기술’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매크로 영역에 응용되는 나노기술


인간은 미시영역으로 점점 내려와 재료의 구조를 관 찰했다. 광학현미경으로 전자현미경으로 나노세계에 진입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아무리 좋은 특성을 보이는 나노소재기술이라도 우리의 생활에 유익하게 응용되지 않으면 헛일이다. 소재는 그 쓰임새에 따라, 구조재료, 환경재료, 에너지재료, 전자재료, 광학재료, 자기재료, 생체재료 등으로 분류되며, 각 용도에 따라 요구되는 소재의 특성은 실로 다양하다. 예를 들어 자동차, 배, 고층빌딩에 사용되는 구조재료는 강도, 연성, 인성 등의 기계적 특성이 중요하다. 전자제품의 핵심소재로 쓰이는 전자재료는 전기저항, 전도도, 유전율 등 전기적 성질이 특성평가의 잣대가 된다.

나노소재기술이 나노미터 영역에서 물질을 다루는 기술이지만 그것을 실생활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매크로 영역으로 확장해야 한다. 그래야만 활용도가 증가하고, 시장이 형성돼 경제성이 확보될 수 있다. 나노소재기술이 발전할수록 그 기술을 벌크화하는 과제가 더욱 부각될 것이다. 즉 나노기술을 기존산업에 연결 내지 접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여러 분야에서 나노소재기술이 응용되면 우리 삶의 질에 혁신을 불러올 수 있다. 나노구조재료의 개발로 구조물의 수명이 연장되고, 재료의 사용량이 줄게 돼 경량화가 이뤄진다. 나노기공과 촉매의 개발로 깨끗한 공기와 물을 유지 관리하게 돼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우리 몸에 별 거부감이 없는 생체재료로 의료품, 진단장치, 인공장기 등을 개발해 건강생활과 수명연장에 기여하게 된다. 나노소재기술의 적용으로 초고속 광대역 정보인프라 구축이 앞당겨져서 우리들은 더욱 진보된 정보화 사회에 살게 될 것이다.

중세시대 연금술사들은 구리와 납 같은 금속으로부터 금과 은을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온갖 노력을 다했다. 이들의 꿈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그때 개발된 약품과 실험기구들은 근대화학의 발달에 기여했다. 오늘날까지 소재기술은 연금술사들이 상상한 것처럼 금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 이상의 진보를 인류에게 제공했다. 21세기 나노소재기술은 중세의 연금술에 비견될 수 있는 과학적 도전이다. 우리는 과거에 그래왔던 것처럼 불가능의 한계를 극복하고 기술혁신으로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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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강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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