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우회할 길은 없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전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일약 세계적인 스타 과학자가 된 황우석 교수. 그는 자신의 연구가 일으킬 윤리적 논란에 대한 고민을 먼저 토로했다.
인간 배아 복제는 인간 복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하나의 생명체일 수도 있는 배아를 파괴해야 한다는 문제, 그리고 난자 제공자에게 호르몬 주사로 과배란을 억지로 유도해야 한다는 문제 등을 갖고 있다.
황 교수는 이번 연구에 참여한 연구원들과 배아 복제 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지 논의를 거듭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서울대 의대 문신용 교수와 안규리 교수 등이 배아 복제만이 면역거부 반응을 완전히 해결하는 방법이라며 연구를 격려했다고 한다.
연구 중단하고 비판 경청할 것
황 교수는 “호르몬 및 마취주사를 맞아야하고 이틀 정도 메스꺼움이 있는 등 부작용을 알면서도 난자를 무상으로 제공해준 여성들의 헌신 없이는 이번 연구가 성공할 수 없었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렇지만 “생명윤리법이 제정되던 상황에서 배아 복제를 시도한데 대한 비판은 겸허하게 받겠다”고 밝혔다.
일부에서 우려하는 인간복제에 대한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며 다만 인간 배아 복제와 여기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입증하고자 하는 학문적 욕구와 사명감만 있었다는 것. 그렇지만 황 교수는 앞으로 1년 정도 모든 연구를 중단하고 사회각계의 의견을 진지하게 청취하겠다고 밝혔다.
황우석 교수는 1999년 복제소 ‘영롱이’를 탄생시키면서 단숨에 스타 과학자로 떠올랐다. 이어 복제 한우 ‘진이’를 탄생시켰으며 최근에는 광우병 내성 소와 장기이식용 돼지 복제에도 성공한 바 있다.
그의 연구가 발표되면 늘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는다. 심지어 김대중 대통령은 복제 한우가 태어나자 직접 이름을 지어줬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직접 연구실을 방문해 격려하기도 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지나치게 언론을 의식하고 정치적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이제 언론이 제발 저에 대한 관심을 거둬줬으면 합니다. 저를 기다리는 현미경 앞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황 교수는 아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언론에 이름이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바빠도 찾아온 기자들을 거부하지 못하는 자신의 성격이 언론의 과도한 관심을 유발한 측면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게다가 정치권에 절친한 사람들이 여럿 있어 그들에게 과학계의 목소리를 전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받게 됐다는 것. 이제는 그런 역할도 다른 과학자에게 넘기고 싶다고 말했다.
과학자가 직접 과학 대중화 나서야
그러나 황 교수에 대한 이런 비판도 유치원생에서부터 일반인들에 이르기까지 대상을 가리지 않고 과학을 알리기 위해 헌신한 그의 노력을 깎아 내리지는 못한다. 그는 불쑥 찾아오는 어린 학생들을 직접 만나 생명과학자로서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해준다.
“부모가 과학자의 삶을 권유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과학정책을 만드는 사람이 하겠습니까. 그 역할은 과학자들이 직접 맡아야 합니다.”
황 교수는 과학대중화에 헌신하고 있는 서울대 최재천 교수를 소개하면서 사이언스나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하는 것만큼 중요한 과학자의 일을 하고 있는 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연구 업적을 기준으로 이런 노력이 폄하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황 교수의 연구실에는 일년 내내 휴일이 없다. 연구원들의 하루 일과는 새벽 5시경 가락동 축산물시장에 가서 신선한 소, 돼지의 난소를 가져오면서 시작된다. 그때부터 지루한 난자 추출 작업이 시작된다. 그럼에도 불평하나 없다.
“애완동물 임상의로 가면 안락한 삶이 보장됩니다. 그 10분의 1도 못되는 생활을 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우리 연구실에 들어온 학생들이 우리나라 과학의 희망입니다.”
이 학생들은 황 교수의 ‘패밀리’가 된다. 일년 내내 같이 생활하고 한솥밥을 먹고 황 교수가 학비를 해결하니 가족에 다름 아니란 것. 이 패밀리들이 세계 각지로 나가 줄기세포 연구, 기초 생명과학 연구, 각종 동물 복제 연구 등의 권위자가 돼 있다. 그리고 언제든 패밀리의 ‘아버지’가 부르면 달려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
그렇다면 황 교수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이번 연구의 한계는 동일 여성에서 받은 난자와 체세포로 배아를 복제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남성이나 난자를 제공하지 않은 다른 여성들은 치료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후속 연구를 사회가 용납해주면 남성의 체세포와 난자 제공자와는 다른 여성의 체세포의 복제에 성공해 인간 배아 복제의 모든 토대를 닦고 싶습니다.”
황 교수는 이 모든 연구는 “6개월의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또 이번 연구에서는 다양한 복제조건을 시험해보느라 난자가 많이 사용됐지만 다음에는 수십개 정도로 줄일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물론 난자 관리에 대한 정부 지침이 마련되면 그에 따른다는 전제 하에서다.
다른 목표는 국제 공동연구로 진행될 예정이다. 황 교수는 윤리적 논란이 큰 인간 난자 대신 인공 세포질을 만들어 체세포를 복제하면 인간복제의 우려를 말끔히 씻을 수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국제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배아 복제의 핵심은 체세포의 유전자를 발생 초기로 돌리는데 있다. 연구팀은 이를 잘 활용하면 언젠가는 복제를 통하지 않고도 체세포 자체를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는 수정란 상태로 만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역시 황 교수팀의 다음 연구목표가 될 전망이다.
스톡홀름서 만찬 열고파
이번 연구로 엄청난 부자가 되지 않겠냐는 외신의 예상과 달리 특허 로열티 60%는 서울대에, 40%는 참여 연구원들에게 고루 분배됐다. 돈에 초연한 연구팀의 자세는 시애틀에 갈 때는 이코노미 클래스에 여러 도시를 거쳐가는 비행기를 골라 탔다는 데서 잘 알 수 있다. 현지에서는 40달러가 안되는 허름한 호텔에서 4명이 함께 지내며 라면과 즉석 밥으로 하루 두끼를 때웠다고 한다.
황 교수는 그렇게 아껴 모은 돈으로 체류 마지막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세계적인 과학자들을 초청해 1천6백50달러짜리 만찬을 열었다. 그동안 세계 학회를 참가하면서도 말 한번 붙이지 못한 과학자들이 기꺼이 이 만찬에 참석해 연구팀의 성과를 축하했다고 한다.
특히 줄기세포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로저 페더슨 교수는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과 19세기 후반 미국 실리콘밸리의 IT혁명을 이어 다음 세상은 한국발 생명공학 혁명이 될 것”이라며 황 교수에게 여자친구에게 줄 사인을 부탁했을 정도.
연구팀은 페더슨 교수를 비롯, 미국 피츠버그대의 제럴드 섀튼 교수,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한스 쉘러 박사 등과 국제 공동 연구를 하기로 잠정 합의를 봤다고 한다.
황 교수는 소에게 꼴을 먹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때부터 소에 대한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는 것. 그 꿈은 복제소를 거쳐 치료용 배아 복제까지 이뤄냈다. 그렇다면 10년 뒤 그의 꿈은 무엇일까.
“제 꿈은 분명합니다. 10년 뒤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 앞에서 똑같은 만찬을 마련한다는 것이죠. 지금 눈여겨보고 있는 두명의 제자가 물론 주인공일 것입니다. 만찬비용은 이번처럼 비행기와 호텔비를 아껴 마련해야겠지요.”
줄기세포가 치료용으로 실용화되려면 1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황 교수를 비롯한 과학자들의 거의 공통된 의견이다. 스톡홀름 시청은 매년 노벨상 시상식이 개최되는 곳이다. 하루 3-4시간만 자는 그의 고된 연구생활이 10여년 뒤 후배 과학자의 영광으로 꽃피울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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