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바키는 바퀴(?)이름이 아니다. 누군가의 이름도 아니다. 바로‘니콜라 부르바키’라 불리던 20세기 프랑스 수학자들의 비밀모임 이름이다. 그런데 여기, 한국의 부르바키를 꿈꾸는 중학생들이 있다. 혹시 우리나라에도 수학을 흠모하는 비밀 지하 조직이라도 생긴 걸까?
중학생이 만든 수학책?!
1934년 12월 10일, 6명의 젊은 수학자가 프랑스 파리의 한 카페에 모였다. 가장 현대적인 수학책을 쓰기 위해서였다. 이는 학계에 도전적인 작업이었기에 시작부터 매우 조심스러웠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감추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어떤 한 사람의 이름처럼 보이는‘니콜라 부르바키’라는 필명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부르바키는 현재까지 34권의 <;수학 원론>;이라는 위대한 수학 교재를 탄생시켰다. 끊임없는 연구와 토론 덕분이었다.
우리나라에 이런 부르바키와 꼭 닮은 중학생들이 있다. 영훈국제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2010년 12월 기말고사가 끝난 어느 날, 영훈국제중학교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수학책을직접 만들어 보자는 김용진 선생님의 제안 때문이었다. 학생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뜨거웠다. 그중 열정과 의지로 똘똘 뭉친 23명의 학생들로 ‘용샘과 문제아들’이 구성됐다.
부르바키를 닮겠다는 원대한 꿈으로 시작한 도전, 하지만 예상치 못한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주로 문제를 풀기만 한 학생들에게‘새로운 문제를 만들라’는 도전 과제는 문제집 한 권을 푸는 것보다 어려웠다. 또한 문제를 출제하기 위해서 중학교 3년 교과 과정을 꼼꼼히 살펴봐야 했다. 서로의 다른 의견을 조율하느라 많은 시간이 흘렀고, 어느덧 겨울 방학은 시작됐다
포기란 없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자, 작업 속도를 조금 낼 수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고입 준비로 학원에서 시간을보낼 때, <;수학의 달인>; 팀은 시간이 날 때마다 학교를 찾았다. 책을 만들기 위해 때로는 밤 12시를 넘기기도 했다.
“대부분 학생들이 이전 학년의 교과 과정을 잘 기억하지 못해요. 교과서나 일반 문제집은 과정이 학년에 따라 분리 돼 있어서 단원의 흐름을 한 번에 파악하기도 불편하죠. 저희 팀은 이런 기존 수학책의 단점을 보완 했어요. 책에 반드시 흐름이 담겨 있길 바라면서요.”
“학교를 떠나면서 후배들에게 뜻깊은 선물을 남기고 싶었어요. 저희는 졸업과 동시에 학교를 떠나야 하지만, <;수학의 달인>;은 영원히 학교에 남잖아요. 물론 고등학교 입학 전에 중학교 과정을 총정리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해서 좋았고요.”
“이번 기회에‘내가 만든 책’이라는 결과물도 얻고, 전보다 모든 부분에서 성장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수학 교과 내용은 물론이고 협동심과 배려, 인내와 희생을 배웠거든요.”
“<;수학의 달인>;은 비전문가가 만든 교재다 보니 문제의 오류가 가끔 발견 됩니다. 뒤늦게 발견하는 오류와 수정사항은 수업시간마다 전하고 있어요. 조금 부족하지만 학생들 스스로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아주 대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수학 공부의 완성은‘스스로 문제를 만들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학생 스스로 한 문제를 출제하는 것은 열 문제를 푸는 것보다 더 큰 효과가 있거든요. 관련 개념을 모두 잘 알고 있어야 가능하니까요. 혹시 여러분도 수학 교재를 만들어 보고 싶다면, 수학 문제를 재구성하는 연습부터 시작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수학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을 거예요.”
직접 만든 수학책 <;수학의 달인>;
<;수학의 달인>;은 2010년 12월부터 총 4개월에 걸쳐 제작됐다. 김용진 선생님을 비롯해 3명의 선생님(심하영, 엄태형, 최종빈)과 23명의 학생들(강인서, 강은서, 고유빈, 고호영, 구본홍, 김병수, 김보미, 김지호, 박정후, 신한결, 안태영, 오원재, 윤영설, 이예담, 이지원, 임채리, 전민재, 정서우,조항만, 주형준, 최지훈, 홍종화)이 참여했으며, 상·하 두 권으로 나눠 중학교 3년 과정을 모두 담았다.
각 권은 150쪽, 7개의 단원으로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연계되는 단원은 복습과 예습을 함께 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그렇기 때문에 <;수학의 달인>; 한 권이면 중학교 3학년 과정은 물론이고, 고등학교 1학년 과정도 가볍게 훑어볼 수 있다. 수학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자랑이다. 영훈국제중학교에서는 올해부터 <;수학의 달인>;을 3학년 수학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성공 이유는 다름 아닌 탄탄한 팀워크
<;수학의 달인>; 팀은 3~4명씩 7개의 조로 나눠 한 단원씩 맡았다. 팀원들은 역할 분담이 확실했다. 물론 모두 수학을 좋아하는 학생들이었지만, 각자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쉬운 개념설명이 되길 바랐어요. 저희는 디자인적으로 예쁜 문제집은 아니어서, 학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단원이 끝날 때마다 수학과 관련된 재미난 이야기를 준비했어요.
저희는 다른 친구들이 출제한 문제를 다시 한 번 풀어보고, 작성된 풀이를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고치는 편집을 담당했어요. 선생님 입장이 아니라, 문제를 풀고 도움을 얻을 학생의 입장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 번 고민했답니다.
<;수학의 달인>;의 또다른 재미는 ‘오류를 찾아라!’입니다. 하하. 저희는 틈틈이 조모임을 통해 오류를 찾아내고 있어요. 졸업 전까지 최선을 다해 수정하려고요. 후배들이 공부할 때는 아무 문제없도록하는 게 마지막 목표입니다.
20세기 수학계를 주름잡던 니콜라 부르바키는 놀랍게도 지금까지 역사와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살아있는 20세기 최고의 수학자라 불리는‘장 피에르 세르’와, 프랙탈을 창시한‘브누아 만델브로’등 끊임없이 현대 수학자들을 배출하고 있고, 수학책을 위한 도전도 계속되고 있다. <;수학의 달인>; 팀도마찬가지다. 현재 학생들은 <;수학의 달인>; 하권을 위해 막바지 작업 중이며, 오류 0%에 도전하는 수정·보완 작업을 하고 있다. 이들이 니콜라 부르바키를 뛰어넘는 한국의 부르바키로 성장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