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전 세계에 팬데믹 사태가 벌어졌다. 바이러스 매개의 급성 호흡기 질환인 코로나19 때문이었다. 2019년 말 중국 우한시에서 시작된 코로나19는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대륙을 넘어 남극까지 퍼져 나가면서 전 세계를 뒤덮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2023년까지 보고된 전 세계 확진자 수가 7억 명이 넘는다.
우리나라에서는 2020년 1월 20일 최초 감염자가 발생했고, 이에 따라 정부는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시행했다. 3년이 넘는 사투 끝에 2023년 8월 31일 코로나19 법정 감염병 등급이 2급에서 4급으로 내려갔다. 이때까지 기록된 우리나라 감염자 수는 3,400만여 명으로, 이는 인구의 약 66.8%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릴 당시 의료진은 물론 수학자도 방역 전선에 뛰어들었다. 수학자는 데이터 분석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상황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전파 양상을 예측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가수리과학연구소와 대한수학회 주도로 ‘코로나19 수리모델링 태스크포스(TF)’가 만들어졌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WHO도 각각 ‘COVID-19 Surge’와 ‘CovidSIM’을 운영하며, 코로나19를 막기 위해 수학 모형을 활용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전염병을 막는 데 수학의 역할이 크다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알려졌다. 수학 모형을 통한 전염병 전파 예측은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도록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는 정책 결정을 내릴 때에도 주요한 근거가 된다. 우리 정부도 코로나19 방역 정책을 수립할 때 코로나19 수리모델링 TF가 발행한 보고서를 활용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수학 모형을 이용하면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서 백신을 얼마나 확보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고령자보다 취학 아동이나 그 부모에게 가장 먼저 백신을 접종시키는 게 감염의 확산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것도 수학 모형을 이용한 결과다.
18세기, 처음으로 전염병 연구에 수학 모형 도입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전염병 확산을 계산하는 수학 모형을 처음 만든 사람은 스위스 수학자 다니엘 베르누이다. 그가 살던 18세기 유럽에서는 매년 *천연두로 3,000~15,000명이 사망했다. 1766년 베르누이는 사람들이 천연두 때문에 얼마나 죽었는지 수학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힘이 약한 천연두 균을 우리 몸에 접종시키면 천연두를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 줬다.
이후 20세기부터 전염병에 관한 수학 모형이 체계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영국 수학자 윌리엄 하머는 영국 런던에서 발생한 홍역이 어떻게 유행하는지에 대한 수학 모형을 제시했고, 병리학자 로널드 로스는 말라리아의 확산 모형을 세웠다. 로스는 이 공로로 1902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전염병 연구의 대표 모형 SIR
1972년 스코틀랜드 생화학자 윌리엄 커맥과 전염병학자인 앤더슨 맥켄드릭은 초기 조건과 시간에 따른 변화를 설명하는 방정식으로 전염병의 확산을 예측하는 모형을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사람, 동물을 막론하고 전염병에서 가장 많이 활용하는 수학 모형인 ‘SIR 모형’이다. 이들은 SIR 모형을 이용해 1905년 인도 뭄바이와 1665년 영국의 한 마을에서 발생한 홍역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를 정확히 예측했다.
SIR 모형에서는 사람의 질병 상태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현재는 감염돼 있지 않지만 면역력이 없어 감염의 가능성이 있는 개체(S), 이미 감염돼 있고 다른 개체를 감염시킬 수 있는 개체(I), 면역력이 있고 건강한 상태에 있는 개체(R)다. 연구팀은 전염의 진행에 따라 세 가지 상태가 어떻게 순환하는지에 관심을 뒀다.
SIR 모형에서 감염된 개체(I)는 υ의 감염률로 이웃한 건강한 개체(S)를 감염시키거나, δ의 회복률로 면역력을 가진 건강한 상태(R)가 된다. R 상태의 개체는 더는 감염되지도 않고 다른 개체를 전염시킬 수도 없다. 따라서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에는 감염된 개체는 사라지고 건강한 개체인 S 또는 R만 남는다.
SIR 모형은 스페인독감처럼 많은 사람이 죽거나 천연두처럼 병에 걸렸다가 나으면 후 천적 면역력을 얻어 다시 병에 걸리지 않는 전염병을 연구하는 데 적합하다.
2006년 미국 전염병학자 제라도 초웰은 SIR 모형을 이용해 스페인독감 환자 수를 계산했다. 스페인독감은 1918~1920년에 걸쳐 당시 세계 인구의 2%에 해당하는 약 5000만 명의 목숨을 빼앗은 전염병이다. 위 그래프는 약 5개월 동안 스위스 제네바 병원에서 보고한 실제 환자 수와 수학 모형으로 계산한 환자 수를 그린 그래프인데, 두 그래프 모양이 거의 일치한다.
용어 설명
*천연두 : 기원전 1000년경부터 수천 년 동안 인류를 위협한 전염병이다. 19~20세기 백신 접종이 이뤄지면서 감염자가 줄었고, 1977년 이후로 감염자가 나타나지 않자 WHO가 1980년에 천연두 박멸을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