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 년 동안 유전학자들이 추측만 하던 문제가 어느 정도 풀렸습니다. 코 모양이 기후와 관련이 있다는 내용인데요. 춥고 건조한 지역에 사는 사람의 콧구멍은 좁고 길쭉하고, 덥고 습한 지역에 사는 사람의 콧구멍은 넓고 짧게 진화했다는 겁니다. 간단해 보이는 이 가설을 증명하는 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걸까요?
“엄마는 날 왜 이렇게 낳았어요?”, “나는 잘 낳았는데 네가 그렇게 큰 거다.”. 어릴 때 부모님과 종종 나눈 대화예요. 이 대화에서 옳은 건 누구일까요? 사실 그 답을 찾는 건 쉽지 않아요.
눈 색깔이 검거나 푸른 것, 키가 크거나 작은 것, 피부색이 어둡거나 밝은 것처럼, 생김새의 특징과 성질을 ‘형질’ 또는 ‘표현형’이라고 해요. 형질은 30억 쌍의 유전자 염기서열 조합과 외부 환경의 영향이 더해져 결정돼요. 그래서 76억 명이나 되는 지구인이 모두 다르게 생긴 거지요.
이렇게 복잡한 생물 다양성을 분석하고 패턴을 찾으려면 수학이 꼭 필요해요. 방대한 정보를 처리하는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초기의 유명한 유전학자는 유명한 통계학자이기도 했어요. 다윈의 진화론을 따르는 학자들이 같은 종 안에서 나타나는 다양성을 수학으로 분석하기 시작했고, 이 개념이 발전해 현대 수리통계학으로도 이어졌죠.
유전학은 경우의 수가 너무 많고 돌연변이 같은 변수도 있어서 계산이 복잡하고 예측도 쉽지 않아요. 또 집단유전학은 변화가 느리고 표본도 커서 더욱 정교한 통계 분석이 필요하죠. 생물학, 혹은 수학 지식 하나만으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둘이 힘을 합치면 도통 풀리지 않던 문제도 풀 수 있어요.
콧구멍 크기 결정하는 기후?
1800년대 말 영국의 인류학자이자 해부학자인 아서 톰슨은 춥고 건조한 나라 사람들은 코가 좁고 길고, 덥고 습한 나라사람은 코가 뭉툭하고 넓다며 코 모양이 기후와 관련 있을 거라고 주장했어요. 이걸 ‘톰슨의 코 법칙’이라고 해요.
경험에서 볼 때 톰슨의 코 법칙은 잘 맞는 듯했어요. 하지만 법칙을 증명할 수 있는 과학적인 근거가 전혀 없었죠. 많은 과학자가 톰슨의 코 법칙을 검증하려 했지만 죽은 사람의 뼈를 연구했을 뿐, 살아있는 사람의 유전자로 연구에 성공한 사람은 없었어요.
그런데 201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집단유전학 연구팀이 적어도 어느 정도는 기후에 따라 코 모양이 진화했음을 밝혔어요. 코 모양 중에서도 특히 콧구멍의 기하학 구조가 기후와 연관이 있다고 말이에요.
연구팀은 조상이 같은 서아프리카인, 동아시아인, 북유럽인, 남아시아인 네 집단을 대상으로 코모양 특징을 분석했어요. 코 전체 너비, 코밑 너비, 코 높이, 코 끝 길이, 콧날 길이, 전체 코 면적, 콧구멍 면적을 재고 3차원 모형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이 수치와 각 지역의 온도와 습도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는지 조사했죠.
‘Qst-Fst 비교법★’을 써서 집단 사이의 생김새 차이를 알아본 결과, 콧구멍 구조가 온도, 절대습도와 관계가 있다는 걸 알아냈어요. 코는 들이마신 공기가 몸에 들어가기 전에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데, 이런 역할을 하기 쉽도록 기후에 맞게 적응하면서 지금의 코 모양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Qst-Fst 비교법★
집단 사이의 유전 정보 차이를 나타낸 값을 비교해, 특정 생김새가 유전자의 무작위성과 자연선택 중 어느 쪽에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 추론하는 유전통계학 분석 방법.
연구를 이끈 아슬란 자이디는 “우리 연구는 일부 코 모양이 기후의 영향을 받았음을 뒷받침한다”며, “그러나 진화는 매우 복합적인 과정이므로 한 가지 이유로 코의 생김새가 결정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어요.
자이디의 말처럼, 이 결과 하나로 ‘콧구멍 모양은 기후에 따라 결정된다’고 단정 지으면 안 돼요.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다는게 곧 참이라는 뜻은 아니거든요. 지금 기술로는 ‘그럴 가능성이 크다’까지 밝힐 수 있어요. 앞으로 유전통계학이 더 발전한다면 유전자를 진짜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날이 오기까지 수학은 유전학에서도 계속 바쁠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