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육부 “학교서 다루지 않은 내용,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수능을 불과 150여 일 앞둔 시점, 사실상 수능 출제의 가이드라인이 제시돼요. 6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보고를 받던 중 “과도한 배경지식을 요구하거나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을 수능에서 출제하면 사교육에 무조건 의존하라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거든요. 얼마 뒤인 6월 19일 교육부는 잘못된 사교육계의 관행을 척결하겠다며 수능에서 초고난도 문항을 가리키는 이른바 킬러문항을 내지 않겠다는 방침을 발표해요.
2. ‘입시 전략 바꿔야 하나?’ 시름 깊어진 수험생
정부의 방침 때문에 올해 수능이 평년보다 쉽게 출제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공부 방향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수험생들은 큰 혼란에 빠졌어요. 정부의 방향을 환영하는 입장도 있지만,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출제 방향을 이야기하는 것은 수험생의 혼란을 부추긴다’, ‘재수생이 늘어나서 오히려 사교육비를 늘린다’부터 ‘킬러문항이 도대체 무엇이냐’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어요. 그러자 교육부는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 치 수능과 올해 6월 모의평가(모평)를 분석해 26개 문제의 킬러문항 예시를 공개했어요. 수학 영역에선 9문제가 포함됐어요.
3. 수학 영역에서 초고난도 문항 사라진 9월 모의평가
이후 실시된 2024학년도 수능 9월 모평 수학 영역의 수준은 6월 모평 대비 평이한 편이라는 평가를 받았어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10월 4일 발표한 9월 모평 채점 결과에 따르면 수학 영역의 경우 표준점수 최고점이 144점으로, 지난해 수능 145점보다 1점, 6월 모평 151점보다 7점 하락했거든요. 서울 지역 고등학교 수학 교사 A 씨는 “초고난도 문항이 없어진 대신 킬러문항보다 한 단계 아래 난도인 ‘준킬러문항’의 개수가 늘어났다”고 설명했어요.
반면 수학 영역 만점자는 지난해 수능 934명, 지난 6월 모평 648명이었는데, 이번 9월 모평 2520명으로 크게 늘었어요. 최상위권 변별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자 교육부는 “전국 의대 모집 정원이 3000명 가까이 되기 때문에 (만점자) 2500명 정도 수준으로 충분히 변별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올해 수능은 9월 모평과 유사한 문제 유형과 난도로 출제될 거란 분석이 유력해요.
킬러문항 사라질 수 없다!
취재 과정에서 킬러문항이 언제 처음 등장했냐고 물어보니 5년, 10년 심지어 15년 전이라는 등 다양한 답변을 들었어요. 이렇듯 킬러문항 논란은 이번에 처음 불거졌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반복되는 이슈였어요. 수능에서 변별력이 나날이 중요해지며 시험에서 한두 문제는 누구나 쉽게 풀 수 없는 킬러문항이 나왔으니까요.
수학과 국어 영역은 최상위권 대학에 지원하려면 대부분 응시과목으로 선택해야 한 데다, 2018학년도 수능부터 영어 영역이 절대평가로 바뀌면서 이 두 영역에서 최상위권 변별력을 높여야 했지요. 그래서 킬러문항의 난도가 점점 높아지며 사교육계에서 문제집, 강의 이름에 ‘킬러’라는 이름을 붙이고 킬러문항에 대비하느라 분주했습니다.
그런데 6년 전부터 킬러문항이 교육적인 목적에 어긋날 정도로 어렵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어요. 정답률을 낮추기 위해 교육과정 외의 내용 또는 지나치게 꼰 문제를 출제해 사실상 비싼 사교육비를 내고 엄선한 문제를 반복해 푼 학생에게 유리해졌다는 거예요. 이 때문에 2019년에는 킬러문항에 뿔난 학생과 학부모가 해당 문항이 고교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났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벌이기도 했어요.
이렇듯 킬러문항 논란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 논란을 곱게 보지 않는 시각도 있습니다. 오히려 과거 한 수능 출제위원의 말에 따르면 2019년 소송을 계기로 내부에서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수능에서 킬러문항을 줄이는 방향으로 출제해오고 있었다고 해요. 일각에선 이번 킬러문항 논란이 정치 싸움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비판도 나와요.
킬러문항 논의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의미인데요. 킬러문항이 사라질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 있어요. 지금부터 조금 더 깊이 들어가 알아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