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킬 박사는 ‘착한 마음’과 ‘악한 마음’을 완전히 분리하는 방법을 연구하다 비극을 맞는다. 수학자들도 비슷하게 ‘모순과 거짓’ 없는 수학을 만드는 데 평생을 바친다. 과연 수학자들은 지킬 박사와 달리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이 순간”
스스로 실험대상이 되기로 결심한 지킬 박사가 나지막이 ‘지금 이 순간’을 부르기 시작한다. 그 순간 비장한 분위기가 객석을 휘감는다. 노래가 절정으로 치닫을수록 지킬의 간절한 희망은 더욱 절절하게 와 닿는다. 마음 한켠에선 안타까움 역시 점점 짙어간다. 그 간절함의 끝이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이기 때문이다.
런던의 실력 있는 의사이자 과학자인 지킬 박사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위해, 사람의 정신을 선과 악으로 분리하는 약을 연구한다. 악한 마음을 약물로 없앨 수 있다면, 아버지도 다시 건강을 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병원 이사진이 실험에 반대하면서 지킬 박사의 꿈은 위기에 처한다. 실의에 빠진 지킬 박사는 마침내 스스로를 실험대상으로 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바로 이 순간 누구에게나 익숙한 그 노래, ‘지금 이 순간’이 흘러나온다.
그러나 지킬 박사의 용기는 비극으로 이어진다. 약물에 의해 깨어난 ‘또 다른 나’ 하이드는 마음 가는 대로 난폭한 행동을 일삼는다. 통제력을 잃은 지킬은 점점 하이드로 변한다. 심지어 하이드가 자신이 좋아하는 여인 루시마저 공격하자 지킬은 큰 충격에 빠진다.
하이드가 실험에 반대했던 이사진을 하나둘 제거하면서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자신이 하이드를 멈출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지킬은 루시에게 어서 런던을 떠나라는 편지를 보내는데….
보물섬 작가가 만들어낸 어벤져스의 조상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원작은 1886년 스코틀랜드의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발표한 단편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이상한 사건>;(이하 지킬 박사와 하이드)이다. 스티븐슨은 해적이 남긴 보물의 찾아 떠나는 소년의 모험담인 <;보물섬>;의 작가로도 유명하다. <;보물섬>;은 <;원피스>;나 <;캐리비안의 해적>; 같은 ‘해적물’의 조상격인 작품이다. <;보물섬>;에는 우연히 얻은 보물지도, 믿었던 친구의 배신, 마지막 결투 같은 해적물의 특징이 모두 담겨 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나온 1800년대 영국, 사람들은 과학과 이성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만심에 취한 채, 겉으론 도덕적인 척했지만 속으론 돈과 쾌락만을 쫓고 있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는 ‘약물’에 의해 쓰러져가는 과학자와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지배층의 민낯을 통해 당시의 위선적인 사회상을 비판하고 있다. <;보물섬>;이 어린 시절 몸이 약해 이루지 못한 작가의 꿈이라면,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모험을 마치고 돌아온 소년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쓴웃음이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이후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중인격’을 다룬 수많은 작품이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캐릭터는 ‘헐크’다. 감마선에 노출된 과학자가 괴력의 존재로 변한 헐크는 누가 봐도 하이드와 닮아 있다.
진리를 찾는 완벽한 방법Ⅰ
지킬 박사가 인간의 정신에서 악을 완전히 분리해, 착한 마음만 남기려 했던 것처럼 수학자들은 거짓 없고 완벽한 수학을 만들고자 한다. 설령 답이 맞아도 풀이과정에 오류가 있으면 가차 없이 점수가 깎이는 서술형문제의 가혹함은 이런 결벽증 덕분이다.
순수한 수학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 참인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하지만 소중한 모든 것이 그렇듯, 진리 역시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진 않는다. 참을 찾기 위해선 그만큼 노력이 필요하다. 무작정 맨땅에 부딪힐 수는 없는 일. 모험을 함께할 튼튼한 도구와 훌륭한 가이드북이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이라는 두고두고 쓸 만한 수학의 도구를 마련했다. 삼단논법은 그 중에서도 가장 튼튼한 도구다. 삼단논법을 이용하면 두 가지 참으로부터 안전하게 새로운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자세한 내용은 1월호 ‘수학나라에 간 피노키오’ 참고) 삼단논법에 기초한 연역법은 지금도 수학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증명법이다.
훌륭한 가이드북을 펴낸 사람은 유클리드였다. 가이드북의 이름은 ‘원론’. 원론 속에는 언제 어디서나 참인 기하학의 공리가 담겨 있다. 처음 가보는 곳도 지도만 있으면 찾을 수 있는 것처럼, 공리는 새로운 기하학적 진리를 찾아가는 지침이 된다.(3월호 ‘수학의 소금, 피타고라스 정리’ 참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유클리드의 ‘원론’은 2000년 넘게 수학뿐 아니라 모든 학문의 길라잡이가 된다. 참과 거짓을 구별하고 진리를 찾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두 가지를 익히고 배워야 했다.
뮤지컬과 소설 속 지킬은 서로 다르다?
명망 있는 의사 지킬 박사가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인격 하이드와 갈등을 겪는다는 큰 줄기는 같지만, 구체적인 내용에서 두 작품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뮤지컬에선 지킬 박사가 병든 아버지를 치료하기 위해 약을 만들었지만, 원작 소설에선 도덕과 관습에 억눌린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일깨우고 싶은 욕심에 연구를 시작한다. 소설 속 지킬은 자유분방한 제2의 자아에 빠진 오만한 과학자의 모습이지만, 뮤지컬에선 아버지를 위해 어쩔 수없이 악마가 된 ‘착한 이미지’가 주로 부각된다. 지킬 박사와 로맨스를 이루는 엠마와 루시도 모두 뮤지컬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진리를 찾는 완벽한 방법Ⅱ
영원할 것만 같던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과 ‘유클리드 기하학’의 명성은 새로운 강자의 차지가 된다. ‘직선 밖의 한 점을 지나면서 이 직선과 만나지 않는 직선은 단 하나다’나 ‘삼각형 내각의 합은 항상 180°로 일정하다’ 같은 공리가 항상 참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유클리드 기하학은 ‘쌍곡기하학’, ‘타원기하학’ 같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에게 자리를 내준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처럼 일반적인 문장으로 이뤄진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은 ‘p→q’ 같은 표현으로 가득한 ‘기호논리학’에게 바통을 넘겨준다. 알파벳과 ‘∼’ 같은 기호로만 구성된 기호논리학은 생활언어를 쓰면 생기는 애매모호함을 해결해 준다.
‘찬이는 고등학생이고 수학동아를 읽는다’와 ‘찬이는 고등학생인데도 수학동아를 읽는다’는 두 문장을 생각해 보자. ‘찬이는 고등학생이다’와 ‘찬이는 수학동아를 읽는다’는 문장이 참이라면, 두 문장은 모두 진실이다. 문장이 참이기 위한 조건이 서로 같다. 참과 거짓을 결정하는 조건만 따져보면, 똑같은 문장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냥 읽어보면 두 문장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두 번째 문장에선 ‘철수는 고등학생이 됐는데도 여전히 수학동아를 읽는다’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만약 ‘p(찬이는 고등학생이다) & q(찬이는 수학동아를 읽는다)’처럼 기호로 쓴다면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기호논리학을 기틀을 닦은 독일의 수학자이자 논리학자였던 프리드리히 루트비히 고틀로프 프레게는 기호를 쓰면 논리학도 수학처럼 참과 거짓이 항상 명확히 가려지는 학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너져 내린 믿음
약물로 하이드를 자신의 의지대로 다룰 수 있을 거란 지킬 박사의 꿈이 무너진 것처럼, 수학처럼 완벽한 논리학을 꿈꾼 프레게의 포부는 짧은 편지 하나로 물 건너간다. 편지의 내용을 조금 쉽게 써보면 다음과 같다.
“미용사가 한 명 있다. 이 미용사는 머리를 손질하지 못하는 사람의 머리를 손질해 준다. 하지만 머리를 손질할 수 있는 사람의 머리는 손질해 주지 않는다. 과연 미용사의 머리는 누가 손질해 줄까?”
언뜻 보면 너무 쉬운 질문 같다. 그런데 잠깐. 미용사는 머리를 손질할 수 있는 사람의 머리를 손질해 주지 않는다. 따라서 미용사가 자기의 머리를 손질할 수 있는 경우는 자신이 머리를 손질 못하는 경우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미용사는 ‘머리를 손질할 수 있다’는 미용사의 기본 정의에 맞지 않게 된다. 편지를 쓴 수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이름을 따 이런 역설을 ‘러셀의 역설’이라 한다. 문장을 기호로 바꿔도 역설은 사라지지 않는다.
‘질문 자체가 틀렸다’거나 ‘그런 미용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하면 이런 역설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완벽을 추구하는 수학자들은 당연히 거기서 만족하지 못했다. 24세의 젊은 청년 괴델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괴델은 ‘불완전성 정리’를 통해 ‘참인 모든 명제를 증명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밝혀낸다. 그토록 오랫동안 ‘참과 거짓’을 완벽히 가려내고자 했던 노력이 허탈해지는 순간이었다.(3월호 ‘나는 수학자다, 앨런 튜링’ 참고).
참과 거짓, %로 판단한다
악을 완전히 없애려다 하이드가 된 지킬 박사와는 달리, 비록 참을 완벽히 가려내는 데 실패했지만 수학자들은 비극을 맞지 않았다. 참과 거짓의 문제를 비율로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도입하면서 모험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의 수학자 로트피 애스커 자데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참과 거짓 두 가지만으로 이뤄져 있지 않다는 데 주목한다. ‘수학동아 독자가 이 기사를 이해한다’는 문장은 100% 참도 아니고 100% 거짓말도 아니다. 모든 독자는 자기 나름대로 기사를 읽고 해석한다. 그 정도를 참과 거짓으로 딱 나눠 판단하긴 어렵다.
자데는 1965년 각 원소가 집합에 속하는 정도로 표시되는 ‘퍼지 집합’을 발표한다. 퍼지 집합에 따르면 원소는 1(완전히 집합에 속하는 경우)과 0(완전히 집합에 속하지 않는 경우) 사이의 값을 갖는다. 1이 완전한 참이라면, 0은 완전한 거짓이다.
그런데 자데는 자신의 이론을 발표할 학술지를 쉽게 찾지 못했다. 참과 거짓은 완전히 구분된다는 전통적인 입장에서 그의 이론은 헛소리에 가깝게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비율’은 참과 거짓이 뒤섞여 있는 실제 세상에서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세탁기에서 인지과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퍼지 이론이 쓰이고 있다.
결국 지킬 박사는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헤어지는 운명을 맞이한다. 인간의 힘으로 ‘선과 악’을 완전히 분리하겠다는 오만함 때문이었을까? 진실만을 완벽히 가려내기 위해 달려온 수학자들의 노력도 물거품이 됐다. 하지만 지킬 박사와 달리 수학자는 여전히 자신의 꿈을 쫓아가고 있다. 길이 막혔다고 주저앉아 포기하지 않고, 다른 길을 찾아 진리의 모험을 떠나는 수학자의 굳센 의지가 그 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