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O 대표 6명 중 4명이 고3이에요. 고3이라면 입시 준비 때문에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기 마련인데요. 이런 금 같은 시간을 IMO에 참가하는 데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Q. 언제 IMO 대표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나요?
이지후, 정유찬 : 초등학교 4학년 때 한국수학올림피아드(KMO), IMO 문제를 처음 접했어요. 답만 내는 게 아니라 풀이 과정을 다 써내는 올림피아드 문제가 수학의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올림피아드 문제를 재밌다고 여기며 풀다 보니 어느덧 수학 국가대표에 가까워졌어요.
배준휘 :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자신 있는 것으로 대표를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생각해요. IMO를 알게 된 뒤 좋아하는 수학으로 국가대표가 돼보고 싶었죠.
이규동 : 초등학교 6학년 때 참가한 겨울학교에서 어려운 수학 문제를 ‘숨은 고수’처럼 휙 풀어내는 IMO 출신 대학생 조교를 보며 수학 국가대표를 동경했어요.
진영범 : 초등생 때 좋아하는 과목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러다 수학을 좋아하게 됐고, 정점에 오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는데, 그게 수학 국가대표라고 생각했습니다.
Q. 대회를 한 달 앞둔 6월에는 거의 매일 8시간씩 집중교육을 받았어요. 이번 IMO에 큰 도움이 됐나요?
이지후 : 당연히요. IMO 출신 조교가 제공하는 예상 문제를 계속 풀거든요. 주말마다 모의고사도 보고요. 친구들과 어떻게 풀었는지 서로 설명하고, 토론하면서 문제를 푸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토론하느라 점심 메뉴를 주문하는 걸 까먹을 때도 있었죠. 출국 전날엔 3대 3으로 팀을 나눠 문제를 푸는 대결도 했어요.
배준휘 : 이때 매우 도전적인(쉽게 풀 수 없는 어려운 문제) 기하 문제 2개를 끝까지 풀려고 애써봤어요. 한 문제는 6시간 동안 고민했고, 다른 문제는 일주일 내내 끙끙대며 풀려고 노력했어요. 결국 못 풀었지만 그 시간 동안 기하 실력이 올랐어요. 또 기하의 세계는 끝이 없고, 제 실력이 한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아 더 열심히 공부했죠.
이규동 : 집중교육에서 밈을 만들었는데요. 어떤 문제건 조금 생각해보고 “에이~ 자명한 문제(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네!”라고 외치는 거예요. 그 말을 한 뒤 문제를 풀면 두려웠던 마음이 사라지고 문제가 쉬워 보여요. 나중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 말을 외치면서 문제를 풀었어요.
Q. IMO를 치르며 여러 위기를 겪었을 것 같아요.
정유찬 : 전 정말… 시험 내내 너무 떨렸어요.
최우진 : 시험 첫째 날 2번을 조금 풀어봤는데, 방법을 알 것 같아서 3번으로 바로 넘어가서 열심히 문제를 풀었어요. 3번을 오래 푼 뒤, 2번으로 돌아왔는데 알고 보니 제가 문제를 잘못된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었던 거예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해서 너무 아쉬워요. 자만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진영범 : 시험 둘째 날, 5번 문제를 잘못 이해하고 풀고 있다는 사실을 시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깨달았어요. 완전 패닉이었죠. 바로 머릿속을 깔끔하게 지운다는 생각으로 화장실을 다녀온 뒤, 방향을 잡았어요.
배준휘 : 영범이도 화장실…? 저도요. 5번 문제를 시험 시간인 4시간 30분 중 2시간 동안이나 고민했어요. 여러 방법을 시도하려고 해도 자꾸 처음에 했던 방향으로 돌아와서 진전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화장실을 갔다 오면 무조건 다른 방향으로 시도해보자는 결심을 했어요. 화장실을 4번 갔다 오고 나서야 문제가 풀리더라고요.
Q.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됐던 순간이 있다면요?
배준휘 : 선발 과정에서 미끄러질 수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많았어요. 그런데 시험장에서 규동이 “형은 99% 될 거야”라고 말해준 게 큰 힘이 됐어요. 제가 실력을 인정하는 친구가 그렇게 말해주니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정유찬 : 대표 선발 최종시험 1일 차 때 문제 하나를 잘 못 풀었다는 생각에 너무 우울했어요. 그때 영범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영범도 그 문제를 못 풀었다는 거예요. 알고 보니 영범은 그 문제를 풀었다고 하면 제가 다음날 시험에 영향을 받아서 집중하지 못할까 걱정돼서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더라고요. 너무 고마웠어요.
이지후 : 이번 결과에서 아쉬운 부분도 있었는데, 모든 친구가 “너라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는데 내가 다 아쉽다”, “힘내” 같은 말을 많이 해줘서 금방 기운을 차렸어요.
수학자와 1대1 고민 상담하는 특권
Q. 우리나라 대표단 부단장으로 이번 IMO에 참가한 남경식 KAIST 교수가 “이번 국가대표가 나를 찾아오면 언제든지 이야기를 들어주고 도움주겠다”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IMO를 통해서 좋은 인연이 많이 생기나봐요.
배준휘 : 맞아요. 대표단에는 단장, 부단장 자격으로 수학과 교수님이 포함되는데 가까이에서 이야기 나눌 기회가 많아요. 이번엔 교수님 5분이 참가했죠. 수학자가 되면 어떤 점이 좋은지, 수학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생한 조언을 들을 수 있어요. 이번에 유화종 서울대학교 교수님과 단둘이 수학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눴는데 수학자란 꿈을 꾸는 데 동기부여가 됐어요. 고등학생이 쉽게 하기 어려운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최우진 : IMO 대표들끼리도 엄청 친해져요. 초중생 때부터 계절학교에서 서로 알고 있었던 경우가 많은 데다, 함께 여러 교육을 받고 외국에서 동고동락하며 시험을 치르니 끈끈해지죠.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없어요.
진영범 : 맞아요. 시험 첫 날 오후에 준휘 형, 규동과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대학 수학 이야기를 했어요. 위상수학에 대한 깊은 대화를 하면서 수학에 대한 호기심이 커졌어요.
정유찬 : 이번 대회가 한국과 가까운 일본에서 열려서 코디네이터로 IMO 한국 대표 출신 선배가 많이 참여했어요. 선배들과 밤마다 만나서 수학에 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눴던 시간이 너무 소중해요.
이지후 : IMO를 준비하면서 수학을 좋아한다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는 친구를 많이 만났어요. 그 친구들과 미래를 함께 고민할 수 있으니 어떤 진로를 결정하든 계속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것 같아요. 저도 이번 IMO에서 진로에 관한 고민이 깊어질 때면 규동과 밤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Q.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IMO를 할 건가요?
이규동 : 당연히 하죠. 제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 앞으로 어떻게든지 큰 영향을 끼칠 것 같거든요. 깊이 사고하는 법도 길렀고요. 저는 외국에 나가본 경험이 거의 없었는데. 외국에 와서 전 세계에 같은 관심사를 가진 친구가 이렇게 많다는 것을 체감한 것만으로도 너무 특별해요.
배준휘 : 저는 초등생 때부터 수학 올림피아드 준비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여러 실패와 좌절을 겪었어요. 그러면서 어려운 일을 극복하는 방법을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진영범 : 저도 수학 올림피아드를 준비하면서 좋았던 기억도 있고 슬펐던 기억도 있는데요. 많은 경험을 하면서 어려움은 잘 극복하고 힘들었던 시간은 지나가고 나면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최우진 : 나라를 대표해서 다른 나라에 가는 경험은 고등학생 때 하기 힘든 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투자한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소중해요.
정유찬 : 수학 올림피아드를 준비하며 다른 사람과 함께 문제를 많이 풀어봤어요. 그 과정에서 나와 다른 의견을 들어보고, 내 의견을 설명하는 소통 능력을 배웠어요. 또 이번 시험을 치르면서 저의 부족한 점을 많이 깨달았는데요. 내년에는 이를 보완해서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싶어요.
이번 대회에서 머릿 속에 콕 박힌 순간
6명의 대표에게 이번 IMO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을 물으니 대부분 ‘IMO 시험장’이라고 대답했어요. 스포츠 경기장으로도 쓰이는 전시장을 시험장으로 바꾼 거라 크기가 커서 모든 참가자가 한데 모여 시험을 봤거든요. 지금껏 대표들이 참가한 IMO에선 참가자들이 여러 교실로 나뉘어져 시험을 치렀대요. 진영범 대표는 “어마어마한 넓이와 높은 층고 때문에 웅장함이 느껴졌다”고 했고 최우진 대표는 “오히려 사람이 많은 게 체감이 되어서 긴장이 더 많이 됐다”고 답했습니다.
국가대표들은 같은 목표로 대회에 참가한 외국인 친구들을 만났던 점도 빼놓을 수 없대요. 이규동 대표는 “시험이 끝난 뒤, 뒷자리에 있는 몰도바 대표에게 수학 문제를 설명해줬다”면서, “5번 문제 답이 뭔지 물어보기에 신나서 설명을 해주고 서로 ‘Good luck’이라고 인사도 했는데 수학으로 금방 친구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어요. 배준휘 대표도 “작년 IMO에서 사귄 대만, 코스타리카 친구와 이번에도 만났는데 너무 반가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만점으로 금메달을 받은 배준휘 대표는 “폐막식 때 만점자로 무대에 올라가 상장을 받았던 순간이 가장 뿌듯했다”고 밝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