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아름 기자 |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수학자들은 연구를 멈추지 않았는데요, 수학동아 편집부는 수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올해 수학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연구를 꼽아봤습니다.
§ 오 놀라워라 연구상 §
수학과 물리학계를 당황시킨 컴퓨터과학자들
헨리 유엔, 젱펭 지, 아난느 나타라얀, 토머스 비딕, 존 라이트는 2020년 1월 ‘MIP*=RE’라는 짧은 제목의 논문을 온라인 논문 등록 사이트 ‘아카이브’에 올려 1982년 필즈상 수상자 알랭 콘이 제시한 추측이 틀렸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논문의 주요 내용은 콘이 1976년에 제시한 ‘콘의 임베딩 추측’과 이 문제와 관련된 양자물리학의 ‘치렐슨 문제’가 틀렸다는 것입니다. 콘의 임베딩 추측은 무한차원의 행렬을 약간의 오차를 포함한 유한차원의 행렬로 근사해서 나타낼 수 있다는 겁니다.
임베딩 추측에서는 행렬의 차원이 클수록 오차가 작아진다고 봅니다. 무한차원 행렬을 10x10 행렬로 나타낸 것보다는 20x20 행렬로 나타낸 게 더 정확하다는 거죠. 하지만 연구팀에 따르면 무한차원 행렬을 유한차원으로 나타낼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계 수학자와 물리학자들은 컴퓨터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연구 분야의 난제를 풀자 당황했습니다.
§ 떠오르는 샛별상 §
콘웨이 매듭 풀어 수학계 최고 학술지에 발표
올해 큰 주목을 받은 젊은 수학자는 리사 피치릴로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수학과 교수입니다. 2019년에 박사학위를 받은 피치릴로 교수는 최근 코로나19로 사망한 수학자 존 콘웨이가 제시한 매듭 문제를 풀어 수학계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피치릴로 교수의 연구는 수학계 최고의 학술지로 꼽히는 ‘수학연보’에 발표됐는데요,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면 11개의 교차점을 가진 3차원의 ‘콘웨이 매듭’은 4차원의 매듭을 절단한 것이 아님을 증명한 것입니다. 이 연구는 4차원에서의 매듭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는 성과라고 하네요. 매듭이론은 DNA 구조처럼 3차원의 문제를 푸는 데 많은 도움을 줬지만, 3차원에 한 차원을 더한 4차원에서의 매듭이론은 아직 확립되지 않았거든요.
§ 희망고문상 §
논문 출판 결정됐지만 수학계 인정 못 받은 수학자
자신의 증명이 검증되기를 8년째 기다리다가 결국 자신이 편집장으로 있는 학술지에 논문이 실리게 된 수학자에게 ‘희망고문상’을 드립니다. 주인공은 모치즈키 신이치 일본 교토대 교수입니다.
모치즈키 교수는 2012년 세계적인 난제인 ‘ABC추측’에 대한 증명을 논문으로 작성했는데, 무려 500쪽이 넘는 길고 복잡한 내용 때문에 아직도 검증을 받지 못했습니다. 즉 해당 분야의 어떤 수학자도 이 논문이 맞다, 또는 오류가 없다고 인정하지 않은 거죠. 결국 4월 교토대가 편집하는 학술지 ‘피림스’에서 논문 출판을 결정했습니다. 수학계는 논문 출판 과정에 모치즈키 교수가 관여하지 않았어도 소속 대학 주도로 검증한 것을 인정할 수 없다며,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ABC추측은 1 이외의 공약수가 없는 서로소인 A, B, C가 A+B=C의 관계를 만족할 때 세 수의 소인수의 곱에 0에 가까운 작은 양수를 더한 수는 언제나 C보다 크다는 내용입니다. ABC추측은 1985년 영국 수학자 데이비드 매서가 처음 제시했는데, 증명할 경우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쉽게 증명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무서운 수학도상 §
수학 논문을 발표한 살인범
2020년 수학계에 발표된 논문 중에는 섬뜩하면서도 흥미로운 사연을 가진 것도 있습니다. 바로 감옥에 수감 중인 살인범이 쓴 수학 논문입니다.
고등학교 중퇴자에 마약중독자였던 크리스토퍼 헤이븐은 2011년 살인죄로 25년형을 선고받고 미국 워싱턴주의 감옥에 수감 중입니다. 그런데 우연히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됐고, 미적분학을 공부하며 수학과 사랑에 빠졌답니다. 어느 날 수학 학술지를 보다가 편집자에게 편지를 보내 공부를 도와 달라고 부탁했고, 그중 한 명이 멘토가 되면서 공부에 정진했다고 하네요.
그 결과 정수와 분수의 합으로 표현되는 연분수에 관한 연구 결과를 ‘정수론 연구’라는 학술지에 출판했습니다. 그는 멘토에게 보낸 편지에서 “결코 죄를 씻을 수는 없지만 사회에 진 빚을 수학으로 갚고 싶다”고 말했는데요, 만일 학창시절에 그를 수학으로 이끌어줄 사람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