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30년가량 IMO 한국 대표단을 이끈 송용진 인하대학교 수학과 교수는 수학 국가대표에게 늘 “수학을 좋아한다면 수학자라는 직업을 추천한다”고 이야기해요. 수학에 재능이 있고 수학을 좋아하지만, 직업이 되면 힘들지 않을까 고민하던 학생들은 그의 말에 하나둘 마음이 움직여 수학자의 길을 선택했는데요. 그중 6명의 수학자를 만나봤습니다. 

IMO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수학자가 되는 데 IMO가 어떤 도움을 줬나요?

 

 

5살 때 영재를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뒤 방승진 아주대학교 수학과 교수님과 인연을 맺고 수학 퍼즐 등을 풀며 영재교육을 받았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KMO 겨울학교에 참가했고, 고등학생 때 IMO를 경험했지요. 어린 나이에 국제적인 경험을 하고, 공동연구의 의미도 알게 됐던 것이 수학자가 되는 데 밑거름이 됐어요.

 

IMO를 준비하며 조교나 선배에게 수학 공부뿐 아니라 진학, 진로, 군 문제까지 조언을 많이 받았어요. 예를 들면 당시 유학에 도움되거나 수학적인 일을 하는 부대가 있는지 잘 몰랐는데, 선배들이 수학자가 되는 과정에서 도움이 될 만한 여러 부대를 추천해줬어요.

 

IMO는 대학원 입학 원서를 쓸 때도 도움이 됐지요. 1993년에 졸업한 황준묵 IBS 복소기하학 연구단 단장님 이후로 제가 입학한 2002년까지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 수학과에는 한국인이 한 명도 없었어요. 학교 측에선 학생을 뽑을 때 한국 학생이 잘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가질 수 있지만, IMO라는 객관적인 근거가 있어 입학할 수 있었어요.

 

 

IMO는 함께 수학을 공부하는 재미를 일깨워줬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교내 수학경시대회에서 88점으로 1등을 했어요. 이를 계기로 중학교 때 수학 올림피아드 준비를 도와주는 학원에 다녔고, 대전에서 수학으로 내로라하는 친구들과 같이 도서관에서 수학을 공부했어요. 같이 다니면서 문제를 풀고, 이야기했던 게 너무 좋았어요.

 

중학교 3학년 말에 간 겨울학교에서는 전국구의 수학 잘하는 친구들과 합숙하면서 IMO 출신 조교들이 주는 문제도 풀어보고,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면서 선배의 비법을 흡수했어요. 그런 즐거운 기억들이 쌓이며 수학자가 되겠다고 결심했지요. 그 결심에 후회한 적이 없어요. 같은 분야 교수님들과 아침부터 저녁까지 문제를 풀고 토론하면서 그때의 재미를 지금도 느끼니까요.

 

 

IMO는 높은 수준의 수학적 훈련을 할 수 있는 기회였어요. 수학 연구와 올림피아드 수학은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풀이가 수십 쪽에 달하는 문제를 풀 때 그 문제를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작은 문제들로 잘 쪼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IMO 수준의 어려운 수학 문제를 많이 풀면 자연스럽게 그 훈련을 할 수 있어서 수학 연구를 할 때 도움돼요.

 

공동 연구하는 법도 배웠지요. IMO 준비는 홀로 외롭게 수학 문제 푸는 연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수학 문제를 토론하고,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장이에요. 수학 연구는 여러 수학자들과의 협업으로 진행되는데요. 문제를 바라보는 여러 시각, 서로 다른 능력과 기술을 어떻게 융합하느냐가 문제 해결의 핵심이지요. 이 경험을 중고생 때 해보기가 쉽지 않아요. IMO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훌륭한 친구들과 높은 수준의 수학적 토론을 할 수 있었던 것이 훗날 수학자가 되어서 큰 도움이 됐어요.

 

 

 

저는 ‘근거 없는 자신감’ 덕분에 수학 올림피아드에 입문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학습지 경시대회에 참가해서 1700등을 했는데 아주 잘했다고 착각했어요. 어릴 때라 한 학년에 100만 명은 있는 줄 알았어요. ‘2달 공부해서 좋은 성적이 나왔으니 1년 공부하면 더 좋은 성적이 나오겠지’라며 문제집을 사서 독학했고, 다음 해에 같은 대회에서 30등을 했어요. 성적이 향상되니 수학이 점점 더 재밌었고, 자신감이 생겨서 올림피아드 학원에 등록했지요. 그 이후 게임 순위를 올리듯 경시대회 수학을 공부해서 중학교 2학년 때 경기도 중등부 수학 경시대회에서 전체 2등을 했어요.

 

IMO에 출전한 경험은 정말 신기하고 낭만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외국인도 처음 봤거든요. 다른 나라 친구가 축구를 하면 우리도 끼워달라고 하면서 함께 운동장을 뛰었어요. 또 외국 학생에게 몸짓까지 써가면서 마이티라는 카드 게임을 설명하고 같이 놀았지요. 이런 일들이 기적처럼 느껴졌어요.

 

그런 좋은 기억들이 쌓이고, 대표단의 송용진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수학자의 삶을 동경하게 됐어요. “다른 건 몰라도 수학자의 삶은 아주 행복하다”며,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스스로 결정하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공동 연구할 수 있으며, 쉴 땐 쉬면서 연구할 수 있다”고 말해주셨거든요. 수학자라는 직업을 진심으로 추천하는 송 교수님을 보면서 수학자로의 진로 결정에 확신이 생겼지요.

 

 

중학교 1학년 때 겨울학교에 처음 참가했는데, 저보다 훨씬 잘하는 선배가 많으니까 수학 공부에 큰 동기부여가 됐어요.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고, IMO에 참가하고 싶다는 꿈을 꿨지요.

 

그런데 고1 말부터 슬럼프가 찾아왔어요. 문제가 풀리지도 않고 실력이 오른다는 느낌도 안 들었어요. 자꾸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껴지고, 저보다 어린 친구들이 잘해서 경쟁 상대로 올라오니 압박감을 느꼈어요. 결국 고2 때 IMO 대표에서 떨어졌죠. 그때 마음을 비우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편하게 시험에 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고3 때 IMO 대표가 되며 슬럼프에서 벗어났지요.

 

대학생이 된 이후 지금까지 정말 많은 슬럼프와 마주했어요. 그럴 때마다 IMO 대표가 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을 생각했어요. ‘마음을 비우고, 묵묵히 공부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어려운 순간을 헤쳐나갔어요.

 

 

IMO를 준비하면서 ‘내 인생은 수학이다’라는 걸 바로 결정했어요. 초등학교 3, 4학년 때부터 크고 작은 경시대회에 나가면서 이런 유형의 문제를 푸는 게 재밌었어요. 특히 어려운 규칙 찾기 문제에 더 빠져들었지요. 

 

IMO 준비는 수학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을 익히는 소중한 기회였어요. 프랑스 수학자이자 현대 대수기하학의 창시자인 알렉산더 그로텐디크는 ‘무작정 큰 힘을 줘서 호두를 깨는 방법도 있지만, 물에 살살 녹여서 어느 순간 깨지게 할 수도 있다’고 말했어요. 무작정 접근해서 깨는 것이 올림피아드 수학, 오래 연구하면서 어느 순간 말랑해지게 만들어 깨는 것이 수학 연구인 것 같아요. 그 두 가지 방법 모두 수학을 연구할 때 중요한데요. IMO 경험에서 전 이미 힘으로 깨는 방법을 알았지요. 지금은 후자를 익히는 중입니다. 수학 연구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진 않아 보이지만, IMO 준비는 수학을 풀 방법을 능동적으로 생각하는 힘도 길러줘요. 이 힘이 오늘날 연구할 때 큰 도움을 줍니다.

 

 

수학자를 꿈꾸는 청소년에게

 

신석우 : 수학 국가대표가 아쉽게 되지 못한 뒤 수학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을 봤어요. IMO에 참가하지 않아도 나중에 좋은 수학자가 되는 사람도 있어요. 허준이 교수님처럼요. 수학을 진정으로 좋아한다면 IMO 대표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길게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김린기 : 수학자가 되기까지 힘든 순간이 많아요. 대학원에서 논문은 쓸 수 있을지, 교수가 될 수 있는지 등 항상 고민의 순간에 맞닥뜨려요. 또 못 푸는 문제를 마주하면 자괴감이 들지요. 그런데 대가가 푸는 문제뿐만 아니라 보통의 수학 문제도 어려워요. 어려운 것을 인정하고 조급해지지 않게 마음을 잘 다스려서 그 시기를 잘 이겨냈으면 좋겠어요.

 

서인석 : IMO 시험 첫날 3번 문제를 풀지 못하고 나와서 너무 아쉬웠어요. 시험 끝나기 10분 전에 해결 방법을 발견했는데 시간이 모자랐지요. 지금도 그즈음 듣던 음악은 안 좋은 기분이 떠올라서 제 플레이리스트에 들어오지 못할 정도예요. 

 

하지만 돌이켜 보면 IMO 준비는 제게 큰 도움이 됐어요. 고등학생 때 이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몰입해서 공부해봤잖아요. 아쉬운 성과를 거두고 마음이 좋지 못했지만 극복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던 경험이 제 수학자 인생에 있어서 큰 자산이 됐어요. IMO 대표가 되었든 되지 않았든 이 모든 과정이 여러분의 삶에 단단한 밑거름이 되길 바랍니다.

 

최경수 : IMO 문제를 풀면서 수학은 본질만 알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10여 년 후 3번째 논문을 쓸 때도 수학은 본질만 알면 된다는 같은 경험을 했어요. 2003년 IMO 2번 문제는 ‘모든 자연수는 1 이상이다’라는 사실 하나로 푸는 문제였어요. IMO 대표가 되려고 페르마의 소정리부터 시작해서 정말 많은 정리를 공부했는데, 결국 문제를 풀려면 가장 기본적인 것만 알면 됐던 거예요. 그때 수학은 본질만 제대로 알면 된다는 걸 깨닫고 나니 단순명료한 수학이 훨씬 더 좋아졌어요. 여러분도 수학의 본질에 항상 집중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오규진 : 경시대회를 준비했다고 혹은 경시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수학과를 가는 게 맞느냐는 고민을 하는 분이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대학생 때 물리, 컴퓨터 등 다양한 수업을 들었어요. 그래도 수학이 좋았지요. 수학을 좋아한다는 본인의 느낌이 맞는지 다양한 방법으로 확인해보고 수학자라는 직업을 선택하면 좋을 것 같아요. 

2023년 09월 수학동아 정보

  • 이채린 기자
  • 손인하 기자
  • 사진

    수학동아
  • 디자인

    최서원

🎓️ 진로 추천

  • 수학
  • 통계학
  • 컴퓨터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