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에 가면 눈에 쏙 들어오는 독특한 건물이 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다. 무슨 모양이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 힘든 건물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만들 수 있었던 건 ‘파라메트릭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설계 방식 덕분이다. 파라메트릭 디자인은 컴퓨터를 이용한 디지털 건축의 하나로, 수학적인 원리를 이용한 설계법이다. 건물에 대한 함수를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는 설계 변수를 바꿔가며 건축물을 설계하는 방법이다.
기존에는 설계 변수를 바꾸면 처음부터 다시 기하학적 계산을 해야 했지만, 각 변수가 서로 연결돼 있어 계산이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컴퓨터가 계산을 대신해 주면서, 건축가가 도전하기 힘들었던 모양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게 됐다.
함수로 설계한다
그렇다면 초고층건물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처럼 자유로운 모양으로 설계해 만들 수는 없을까? 이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100층은 거뜬히 넘는 층수 때문에 한 층 한 층 직접 변수를 입력하며 설계안을 짜다보면 컴퓨터로 계산하더라도 몇 달은 금방 지나가 버린다. 초고층건물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처럼 자유로운 모양으로 새롭게 설계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한 가지 방법이 생겼다. 바로 단국대 초고층빌딩 글로벌 R&BD 센터에서 개발한 ‘스트라우토’라는 소프트웨어를 통해서다. 스트라우토는 파라메트릭 디자인 기법을 이용해 만든 구조 설계 자동화 소프트웨어다. 정 센터장은 “스트라우토에 한 층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고, 어떤 모양으로 할지 함수를 정해주면 초고층건물을 자동으로 설계해 준다”고 설명했다. 기본적인 정보와 함께 육면체, 나선형, 원형처럼 만들고 싶은 모양에 해당하는 함수를 알려주면 스트라우토가 다양한 안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스트라우토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던 독특한 초고층건물을 설계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스트라우토는 1주일 만에 5000~1만 개 정도의 설계안을 만들 수 있다. 그중 가장 좋은 5~10개의 설계안을 추천해 준다. 건축가는 그중에서 가장 좋은 설계안을 선택하면 된다. 스트라우토 개발을 주도한 김치경 단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자유로운 모양의 초고층건물을 설계할 때, 설계 변수가 구조와 성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가 어렵다”며, “그래서 설계안을 많이 만든 뒤 최적의 설계안을 찾는 방식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스트라우토는 용산 국제업무지구에 건설될 예정이었던 초고층건물 블레이드 타워 설계에 쓰였다. 코어 벽의 콘크리트를 어떤 두께와 강도로 할지 최적화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는데, 결과적으로 기존 재료를 약 18% 줄인 최적의 대안을 도출해냈다. 러시아 모스크바 시티 가든의 기둥 구조를 설계하는 프로젝트에도 쓰였다. 김 교수는 “그동안 해외 기술에 의존했던 자유로운 모양의 초고층건물 설계 기술을 국내 기술로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초고층보다 높은 상상 5]
수직 묘지
인구가 증가하면서 묘지를 만들 공간이 부족해지고 있다. 오른쪽은 초고층건물의 공간 활용성을 이용해 이를 해결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로 만든 수직 묘지다. 소중한 사람들을 안락하게 보살필 수 있는 미래의 묘지 형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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