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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증거, 수학으로 찾는다!


지난 4월 2일 토요일 오전, 서울대 129동 강의실에서는 서울대 수리과학부 김명환 교수가 한창 대수학 강의를 하고 있었다. 대학생들이 주말에도 나와 공부 열정을 불태우나 하고 엿봤더니, 대학생이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많아 보이는 어른들이 사뭇 진지한 모습으로 수업을 듣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들은 디지털 포렌식을 공부하겠다고 모인 검찰청 소속 검사와 수사관들이었다.

대수학숫자 대신 문자를 써서 수학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

디지털 포렌식은 스마트폰과 컴퓨터, CCTV 같은 디지털 기기에 남은 정보를 분석해 범죄 증거를 찾는 수사기법이다. 김영철 서울중앙지검 수사관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첨단 사건이나 컴퓨터 범죄에만 디지털 포렌식이 쓰였는데, 최근에는 보통 사건에서도 디지털 증거가 꼭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디지털 포렌식의 중요성이 커지자 2013년 서울대는 융합기술대학원에 과학수사에 특화된 ‘수리정보과학과’를 개설했다. 현직 검사와 수사관들이 2년 동안 수학과 컴퓨터과학, 법학 등을 공부하면서, 디지털 포렌식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장을 마련한 것이다.


조작 파일 찾는 것도 수학

디지털 포렌식에서 수학의 활약은 대단하다. CCTV에 찍힌 영상은 대부분 저화질이다. 그래서 원하는 정보를 얻으려면 영상의 화질을 높여야 한다. 자세히 보고 싶은 부분 주변의 색상값을 동일한 선을 따라 바꿔가면서 영상을 복원하는데, 이때 편미분방정식을 사용한다.

편미분방정식미지수가 여러 개인 방정식에서, 특정 변수를 제외한 변수를 상수로 생각하고 미분한 함수를 포함한 방정식.

증거물이 원본과 똑같은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증거물에서 ‘해시값’을 뽑아낸다. 두 해시값을 비교했을 때 값이 다르면 조작된 파일이다. 여기서 해시값이란 서로 다른 데이터 길이가 하나로 통일되도록 데이터 하나 하나를 특정한 길이의 데이터로 대응시키는 함수의 값이다.

암호가 있는지조차 눈치 채지 못하게 데이터를 이미지나 동영상 속에 숨기는 ‘스테가노그래피’를 풀 때는 통계를 이용한다. 보통 영상에서는 화소 데이터가 균일한데, 일부러 다른 데이터를 숨기면 화소 데이터가 불규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디지털 포렌식이 수학과 밀접하다고 해도 수학 전공자들이 공부하는 어려운 수학을 검찰이 꼭 배울 필요가 있을까? 수학이 필요하다면 수학자에게 맡기면 되지 않을까?

이덕진 안산시청 검사는 “정보를 분석하는 사람은 사건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사건에 꼭 필요한 정보를 찾아오기가 어렵다”며, “검사나 수사관이 어느 정도의 내용을 알고 있어야 원하는 정보를 분석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영식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다양한 접근 방식과 새로운 방법을 고안하기 위해 디지털 포렌식의 근간을 이루는 수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찾아온 자료에서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 재빨리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싶다”고도 밝혔다.
 


 

철통 암호 개발은 정수론으로부터!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성인 수학’이나 ‘어른 수학’이라고 검색하면 수학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다시 수학 공부를 하고 싶다는 글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유난히 프로그래머가 쓴 글이 많다는 점도 알 수 있다. 실제로 서점에 가면 프로그래머를 위한 수학책이 있다. 프로그래머에게도 수학은 필수인 셈이다. 컴퓨터 언어 자체가 수학의 논리를 그대로 따온 것이고,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현실인지 가상인지 헷갈릴 정도로 생생한 장면도 수식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어쩌면 너무 당연하다.

하지만 여기에 필요한 수학은 고등학교 이과 수학과 공대에서 배우는 공업수학 정도다. 수학과 전공자가 배우는 수학까지 필요하지는 않다. 그런데 최근 ‘정수론’을 꼭 배워야 하는 IT 분야가 등장했다. 바로 암호다.

정수론정수와 소수 같은 수의 성질을 연구하는 학문.


암호 안 풀고도 자유자재로 분석하려면?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공개키 암호는 암호가 걸린 상태에서 통계 분석을 할 수 없다. 의미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선 반드시 암호를 풀어 원래 데이터로 돌려놔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여러 사람에게 개인정보가 노출된다. 가령 어떤 애플리케이션에서 현재 내 위치를 확인하고 맛집을 추천하고 있다면 누군가가 내 개인정보를 봤다는 뜻이다.

완전동형암호 기술을 이용하면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 암호가 걸린 상태에서도 자유자재로 데이터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상용화다. 아직 이 암호를 적용한 기기나 프로그램이 없다.

다행히 여러 기업들이 앞다퉈 완전동형암호 기술을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 투자와 연구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은 지문이나 얼굴, 홍채 인식으로 입력받은 정보를 완전동형암호로 암호화하는 방법을 서울대 수리과학부와 함께 연구하고 있다. 이스트소프트와 코나아이도 서울대와 함께 암호 개발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KT는 2013년 완전동형암호를 개발해 주목을 받은 천정희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를 정기적으로 초청해 프로그래머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첨단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는 암호의 토대를 이루는 정수론을 꼭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천 교수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수학을 기초로 한 암호 연구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어 국내 산업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개인정보 보호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최근 1~2년 사이 많은 기업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수학은 프로그래머의 운명

삼성전자를 다니던 2014년 천 교수에게 수업을 들은 조재익 IBM 보안사업부 부장은 기존 기기의 보안 취약점을 분석해 사물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새로운 보안 알고리즘을 개발한다. 그는 “개발자에게 수학은 숙명도 같은 것”이라며, “스마트폰을 비롯해 여러 기기에서 사용하는 보안 방식은 정수론을 이용하고 있어 강의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조 부장은 수학이라면 치를 떠는 학생이었다. 수능이 끝나고 옥상에서 수학책을 불태웠을 정도다. 어른이 되면 다시는 수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줄 알고 이 같은 일을 벌였다. 그런데 컴퓨터가 좋아 진학한 컴퓨터학과에서는 수학을 필수로 가르쳤다. 어떻게든 수학 없이 프로그래밍을 하기 위해 5년 동안 수학을 공부하지 않고 버텼다.

하지만 정보보호학 대학원에 진학하자 수학의 굴레에서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는 다시 수학책을 펴들었고 꼬박 6개월을 수학 공부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취업한 이후에는 새로운 암호 개발을 위해 정수론과 마주했다.

조 부장은 “업무에서 수학이 필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나니 그 싫었던 수학도 재밌다”며 웃었다.


 

아픈 이유 통계가 안다

기자의 선입견일지 모르지만 이과 중에서 수학하고 가장 관련 없다고 생각했던 분야 중 하나가 의학이었다. 의사가 되면 수학하고는 담을 쌓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KAIST 수리과학과와 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연구진이 공동 연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난 4월 1일에는 두 연구 기관의 첫 워크숍이 서울아산병원에서 열렸다. 내 생각이 틀렸던 걸까? 도대체 의사와 수학자가 왜 만나는 걸까?

유전체 분석의 대가는 수학자!

종양을 분석해 어떤 유전자가 암을 일으키는지 밝히는 연구를 하고 있어요. 이를 알아내면 병의 진행 상황을 예측할 수 있고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요.

그렇다면 이런 연구는 어떻게 할까요? 어떤 유전자가 암을 일으키는지 알려면 당연히 아픈 사람과 안 아픈 사람을 나눠서 봐야겠지요. 두 집단의 유전자를 비교하고,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를 ‘다중 비교’라고 하는 통계 분석을 이용해 합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유전자 데이터만 해도 50기가바이트에 달해 여러 사람의 유전자를 분석하는 일이 매우 어렵습니다. 데이터가 커지면 컴퓨터가 분석을 못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해외에서는 수학자들이 발 벗고 나서고 있어요. 대표적인 분이 인간게놈(유전체)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에릭 랜더예요. 현재 매사추세츠공과대 생물학과 교수로 있지요. 놀랍게도 이 분에게는 생물학 학위가 없어요. 전문적으로 생물이나 의학을 공부한 적도 없지요. 오직 수학만 공부했는데, 유전체를 대상으로 데이터를 분석하다 보니 유전학자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지요.

간게놈프로젝트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이렇게 5개국 연구진이 사람 유전자의 종류와 그 기능을 밝히기 위해 함께 연구한 것으로, 2003년 사람 유전자지도를 발표하면서 끝이 났다.
유전체
 유전자와 염색체를 모두 포함하는 의미로,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를 말한다.
 
병의 발생원인, 통계로 밝혀요!

질병이 발생하면 그 원인을 찾아 그 병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한 예로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던 가습기 살균제가 폐에만 문제를 일으키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도 문제를 일으키는지를 조사했습니다. 이를 밝히는 게 통계입니다. 가습기 살균제의 어떤 성분이 인체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내기 위해 ‘상관관계 분석’이라고 하는 통계 분석을 사용하거든요.

제가 하는 또 다른 일 중 하나가 다른 의사 선생님의 임상 연구를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거예요. 새로운 치료법이 나오면 몇 명의 환자에게 적용해 보고 어떨 때 좋은 결과가 생기는지 통계 분석해서 발표하지요. 모든 의사 선생님이 통계를 잘 아는 건 아니라 제가 도와드리고 있지요.

이처럼 제가 하는 일은 모두 확률, 통계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통계를 전문적으로 공부했냐고요? 아뇨. 저는 필요에 의해서 독학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야에 워낙 통계가 많이 쓰이다 보니 최근에 통계학 박사도 영입하고, 울산대 의과대학 안에 의학통계학과도 만들었습니다.
 
 

 
위상수학에서 영감 얻어요!

조각가 김주현


수학과 예술.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 네덜란드의 천재 판화가 에스허르 말고는 본 적이 별로 없다. 과연 우리나라에도 수학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가가 있을까? 궁금해서 찾아본 결과 수학 냄새 풀풀 나는 작품을 발견했다. 위상수학을 대표하는 토러스와 매듭이 LED 전구를 만나 멋지게 빛나고 있었다.

“요즘에는 뫼비우스 띠를 주제로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단순히 뫼비우스 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식물이 자라는 것처럼 작은 뫼비우스 띠 하나가 점차 커지도록 크고 작은 뫼비우스 띠 여러 개를 만들어 엮고 있지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제가 의도치 않았던 토러스가 다양하게 생긴다는 거예요.”

김주현 작가의 작품에 위상수학이 파고든 건 2008년부터다. 고등학생인 딸을 따라 서울대 토요과학 강좌에서 위상수학 수업을 듣고 나서부터 모든 관심이 위상수학으로 쏠렸다.

“그 전까지는 작품에서 항상 직선만 사용했어요. 직선이 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거든요. 강연 직후 당장 정사각형이 여러 개 늘어선 격자에서 가로, 세로 길이를 조금씩 바꿨어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갈수록 길이가 더 큰 사각형을 이어 붙인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 사각형들이 뒤틀려서 2차원 평면에 있지 못하고 3차원으로 확장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사각형의 길이를 그냥 아무 숫자로 하면 재미가 없잖아요. 등차수열, 피보나치 수열 등 다양한 수열을 이용해서 나타냈죠. 그랬더니 피보나치 수열로 했을 때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 완성됐어요.”

그런데 잠깐, 애초에 예술가가 위상수학 강의를 들었다는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수학을 좋아하지 않고서는 강연을 들으러 갈 리가 없지 않은가!

“제가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너무나도 당연했어요. 1990년대 중반 우연한 기회에 이언 스튜어트의 <;자연의 수학적 본성>;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그런데 거기에 제 작품하고 구조적으로 똑같은 나선 그림이 있는 거예요. 전 한 번도 수학을 고려한 적이 없었고 수학을 잘 알지도 못했는데, 제 예술 세계가 수학과 맞닿아 있었던 거지요.”

김 작가는 이후 수학 서적을 보면서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 그리고 2008년 위상수학을 만나 김 작가만의 예술 세계를 꽃피우고 있다.

“앞으로 제 목표는 클라인병을 주제로 작품을 만드는 거예요. 뫼비우스 띠보다는 훨씬 복잡한 구조기 때문에 앞으로 쭉 위상수학과 함께할 것 같아요.”
 

2016년 05월 수학동아 정보

  • 조가현 기자
  • 천정희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
  • 김재경 KAIST 수리과학과 교수
  • 도움

    김명환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
  • 사진

    조가현 기자
  • 일러스트

    허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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