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의 부분’이 같다?
기독교 문화 속에 살았던 중세 유럽 사람은 시간을 초월해서 무한한 창조력을 가진 신을 믿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무한의 정체에 관해서도 끊임없이 논의했다. 대부분은 무한이 ‘끝도 없이 커지는 상태’라는 데 동의했다. 이렇게 끝도 없이 커지는 상태로만 보는 무한을 ‘가무한’이라고 부른다. ‘n이 무한대로 가면’, ‘총합이 무한히 커지면’과 같은 표현에도 가무한의 개념이 들어있다.
하지만 가무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자연수 집합과 자연수 제곱의 집합을 떠올려 보자. 자연수 1, 2, 3, 4…는 그 제곱인 1, 4, 9, 16…과 일대일로 짝을 지을 수 있다. 그렇다면 자연수 집합과 자연수 제곱의 집합은 원소의 개수가 같을 것이다. 즉, 두 집합의 크기가 같다. 그런데 1, 4, 9, 16…은 원래 자연수 집합의 일부분이다. 따라서 집합이 자기 자신의 일부분과 크기가 같은 이상한 일이 생긴다.
무한을 상태가 아니라 수처럼 크기를 비교할 수 있는 대상, ‘실무한’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가무한에 대한 믿음이 강력했기 때문에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기원전 6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철학자 필로포노스는 태어나는 아기의 수와 자라나는 머리카락의 수를 관찰한 뒤 각각이 무한하다고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무한은 세 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종국에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무한보다 더 큰 것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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