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래의 모습이 담겨 있어. 고래 사냥이 언제 처음 시작됐는지, 어떤 도구로 고래를 잡았는지 기록돼 있지. 더불어, 신라 왕족이 다녀간 흔적도 남아 있단다.
고래 사냥과 활쏘기의 흔적을 찾다
대곡리 암각화에는 신석기 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약 350여 점● 있어요. 고래 사냥이 언제 처음 시작됐는지에 대해 오랫동안 의견이 분분했는데, 대곡리 암각화 덕분에 신석기 시대부터 고래 사냥이 시작됐다는 것이 밝혀졌어요.
암각화에는 혹등고래 등 고래 7종이 새겨져 있어요. 특히, 작살에 찔린 고래, 새끼 고래를 등에 업은 어미 고래 등이 생생히 담겨 있지요.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전호태 교수는 “고래의 생태와 사냥 과정이 자세히 묘사된 암각화는 전 세계적으로 드물기 때문에 의미가 깊다”고 강조했어요.
대곡리 암각화에서는 활쏘기의 흔적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슴 등 육지 짐승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지요. 한반도에서는 옛날부터 활로 짐승을 사냥했지만 그 모습이 암각화에 남은 사례는 많지 않아요. 이하우 소장은 “대곡리 암각화에서 식량이 되는 사슴 등이 아닌, 그 동물을 공격하는 거대한 동물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는 모습이 발견됐다”고 말했어요. 전호태 교수는 “활쏘기 모습을 보면 한반도의 활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신석기부터 신라까지, 시대를 넘나들다
천전리 암각화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신라 에 이르는 그림과 문자가 약 770여 점● 새겨져 있어요. 암각화 왼쪽에는 사슴과 같은 신석기 시대의 동물, 사냥 모습이 그려졌지요. 사냥꾼으로 보이는 활 쏘는 사람이 동물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암각화 위쪽에는 청동기 시대에 그려진 동심원, 동그라미, 물결형, 나선형, 동그라미 등 기하학적 무늬가 있어요. 이러한 문양들은 해, 번개, 비 같은 자연현상을 상징했을 것으로 추측되지요.
암각화의 아래쪽에는 신라의 그림과 문자가 남겨져 있어요. 천전리 암각화 주변에 있는 천전리 계곡이 신라 화랑들이 수련하던 장소였기 때문이에요. 신라와 관련된 암각화 기록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원명과 추명입니다. 원명은 525년, 신라 법흥왕의 동생 사부지 갈문왕이 이곳을 방문했다는 기록이고, 추명은 539년 갈문왕이 다시 이곳을 찾았다는 것을 기록한 글이에요. 전호태 교수는 “신석기 시대의 사냥 모습과 신라 시대의 기록이 같은 바위에 남겨진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보충 설명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최종 실측 보고서 기준(울산대학교 반구대 암각화 유적보존연구소,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