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구석기 시대로 시간 여행 온 걸 환영해. 우리는 바위에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 어제는 바다 위를 힘차게 헤엄치는 고래를, 오늘은 멋지게 활 쏘는 모습을 그렸어. 물론 실물보다 조금 더 잘생기게 말이야. 후후. 그런데 있잖아, 우리 낙서가 후대엔 대단히 의미 있는 자료가 된다던데?
우리 때는 말이야, 글자가 없었어. 그래서 돌에 그림을 그리며 일과를 기록했지.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암각화가 있어. 무려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다고!
바위에 그림을 새기다
암각화는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인 선사시대 사람들이 바위나 절벽에 그린 그림이에요. 뾰족한 돌 등으로 그림을 새겼어요. 사람들은 흙, 뼈에도 그림을 그렸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림이 대부분 사라졌어요. 하지만 암각화는 생명이 길어 선사시대를 지나 약 1만 년 후인 지금까지도 볼 수 있습니다.
문자가 없었던 선사시대에 그림은 중요한 소통 수단이었어요. 사람들은 바위에 사냥 등 하루 일과를 기록했고, 건강과 풍요를 빌었어요. 한국선사미술연구소 이하우 소장은 “암각화를 찾기 전에는 몇몇 유물로 인류를 분석했지만 암각화가 발견되면서 당시 삶을 더 폭넓게 분석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1860년 경남 남해군 양아리 암각화가 발견되며 암각화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지금까지 전국에서 약 30개의 암각화가 발견됐지요. 울산에 있는 반구천의 암각화는 그중에서도 중요한 암각화로 꼽혀요.
반구천의 암각화는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이하 대곡리 암각화)와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이하 천전리 암각화)를 통틀어 말합니다. 1970년 2.7m 높이의 천전리 암각화가, 1971년 12월 4.5m 높이의 대곡리 암각화가 차례로 발견됐어요. 두 암각화는 신석기 시대와 그 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돼요.
5월 26일, 국가유산청은 반구천의 암각화가 이코모스●로부터 ‘등재 권고’를 통지받았다고 밝혔어요. 등재 권고를 받으면 이변이 없는 한 세계유산으로 등재돼요. 이코모스는 “한반도 사람들의 예술성을 보여주는 걸작”이라고 설명했어요.

돌로 깨서 만든 석기인 뗀석기를 이용해 사냥과 채집을 하며 생활했다.

돌을 갈아서 만든 도구인 간석기를 이용해 먹을거리를 구하고 구운 토기를 만들어 사용했다.

청동으로 만든 농기구를 이용해 농사를 지었으며 벼와 같은 곡물 농사가 시작됐다.

단단한 철로 만든 도구가 발달했고, 철제 농기구가 만들어지면서 농업 생산성이 향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