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동요뿐만 아니라 애국가 가사에도 무궁화가 나옵니다.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마크인 ‘나라문장’도 무궁화지요.
무궁화가 우리나라의 상징이 된 지는 1000년이 넘었다는데요
고조선부터 우리 민족과 함께한 무궁화
‘군자의 나라(고조선)에 훈화초(무궁화)가 있는데,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
기원전 800년에서 300년 사이에 쓰인 중국 지리서 <;산해경>;에 남은 기록입니다. 중국 고전인 <;고금기>;에도 ‘군자의 나라는 땅에 사방 천리로 무궁화가 많다’는 내용이 실렸지요. 고조선 때부터 한반도에 무궁화가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300년경 삼국시대부터 무궁화는 우리나라의 상징처럼 불리기도 했습니다. 897년 신라의 학자 최치원은 당나라에 보낸 나라 문서인 <;사불허북국거상표>;에 ‘근화향’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근화향과 근화지향은 ‘무궁화의 나라’라는 뜻이에요. 고려 문인 최해가 작성한 문집 <;동인지문사륙>; 등 고려시대 문서를 비롯해 조선시대 외교문서인 <;동문휘고>;에도 이런 표현이 계속 등장하지요.
이후 외세의 침략으로 우리 민족이 고통받던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에 무궁화의 의미가 나라꽃으로 크게 확대됩니다.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임진왜란 이후, 1799년 문신 홍양호는 시 <;토우기>;를 통해 ‘무궁화 삼천리’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일제강점기에 <;개벽>;이라는 잡지에서 1924년 ‘무궁화는 조선의 국화’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했지요. 2007년 어린이들과 함께 무궁화의 날을 만든 신구대학교 미디어콘텐츠과 김영만 교수는 “나라가 위태로울 때 나라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고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무궁화의 의미를 강조한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5년 동안 1000건이 넘는 역사 기록물을 찾아본 결과, 우리 민족이 유구한 기간에 걸쳐 고조선 때부터 무궁화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덧붙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