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능력을 자랑하는 물곰에게도 어려운 게 있어. 바로 인공 번식! 과연 실험실 속에서 로맨스가 피어날 수 있을까?
지난해, 남극 킹조지섬의 뵈켈라 호수에서 물곰들이 유유자적하며 기어다니고 있었어요. 별안간 세종과학기지 연구팀이 호수의 퇴적물을 퍼 올리며 물곰은 호수를 떠나게 됐지요. 과학자들은 세종과학기지 연구실로 퇴적물을 가져와 현미경으로 관찰했어요. 신종 물곰인 ‘닥틸로비오투스 오비뮤탄스(Dactylobiotus ovimutans)’가 세상에 처음 알려지는 순간이에요. 크기 700~800μm로, 평균보다 조금 큰 이 물곰은 남극 빙하 호수에서 윤형동물●이나 클로렐라를 먹으며 살아왔어요.
이제 신종 물곰은 머나먼 여정에 올라요. 우리나라 첫
쇄빙선●인 아라온호의 냉장고 한 칸에 몸을 싣고 인천시 송도에 위치한 극지연구소로 향한 거예요. 사실 며칠을 굶어도 끄떡없는 물곰에게 어렵지 않은 항해지요. 물곰의 진짜 모험은 실험실에서 시작돼요.
●쇄빙선 : 수면의 얼음을 부숴 극지방의 항로를 열기 위한 특수한 장비를 갖춘 배.
●윤형동물 : 주로 연못이나 호수 같은 담수에 사는 무척추동물.
4월 6일, 기자는 물곰을 만나러 극지연구소로 갔어요. 극지연구소 실험실에서 김지훈 연구원이 물곰의 인공 번식을 위해 물의 pH 농도와 온도를 조절하고 있었지요. 여기에 물곰이 편히 걸어 다닐 수 있도록 미끄러운 유리 플레이트 바닥에 하얀 젤리 같은 ‘아가로스 겔’을 깔았어요. 인공 번식을 위해 물곰이 원래 살던 남극 빙하 호수와 최대한 비슷한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는 거예요.
김지훈 연구원은 “이제 남은 임무는 물곰 스스로 해야 한다”며 “수천 종의 물곰 중 인공 번식에 성공한 종은 40종도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어요. 작년 6월, 김지훈 연구원의 기다림에 응답한 물곰이 드디어 새로운 생명을 낳았어요. 그런데 알의 모양이 제각각이었어요. 김지훈 연구원은 “알의 모양이 다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어요. 마지막으로 물곰을 연구하며 인상 깊었던 순간을 묻자 “물곰이 이따금 위를 쳐다보며 앞발을 흔드는 모습이 마치 나에게 건네는 인사처럼 느껴진다”고 대답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