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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OUTRO] 특이점 이후에도 우리는 행복할까

▲Creative Commons

미래에 개인이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각자가 자신만의 의미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즉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AI), 생명과학, 기후, 우주 개척. 각 분야에서 도래할 특이점이 무엇이고, 그것이 언제 올지를 살폈다. 마지막 남은 질문은 그 멀고도 가까운 미래를 살아갈 우리, 인간 존재 안녕이다. 상상조차 충분히 되지 않는 급격한 변화 이후에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거대한 변화에 앞서 우리가 왜 두려움을 느끼는지, 행복한 내일을 위해 풀어야 하는 숙제는 무엇인지 김애령·신상규 이화여대 인문과학원 교수, 천현득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김태희
2025년 12월 4일 이화여대에서 만난 신상규 인문과학원 교수는 “의미 찾기가 중요한 시대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66년, 왜 우리는 행복을 걱정할까?”

 

 과학기술과 인간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부터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신상규 교수 I 기술은 항상 인간을 바꿔왔어요. 인간과 기술은 공진화하는 존재였죠. 보통 기술을 도구라고 생각했는데, 단 한 번도 기술은 수동적이었던 적이 없어요. 인류 역사에서 문명의 변화를 추적했을 때 기술로 인한 최초의 가장 큰 변화는 농업혁명이었어요. 농업을 출현 이후, 인류의 생각과 행동 양식은 물론 삶의 방식과 사회제도가 완전히 바뀌었죠. 다만 그런 변화에 주목하지 않았을 뿐이에요. 그 이후엔 인쇄술과 산업혁명이 다시 한번 그 전의 인간과 그 이후의 인간을 바꿨어요. 특히 인쇄술은 인간의 지식 구조를 완전히 바꿨죠. 오늘날 고도로 발전한 학문 역시도 그 어떤 물적 기반 기술 없이는 그렇게까지 발전할 수 없었을 거예요. 영국 철학자, 루치아노 플로리디 영국 옥스퍼드대 정보윤리학 교수는 “기술이 인간 정체성 자체를 재설계(re-engineering)한다”고 주장해요. 기술은 인간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다시 쓰게 만드는 힘, 인간 개개인을 재구성하는 힘이란 거죠.


 지난 40년 동안 과학기술이 크게 발전해 왔어요. 지금 우리는 그냥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요. 그런데 앞으로 40년 동안 과학기술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어요. 왜 그럴까요?


 
천현득 교수 I 기술 발전의 가속화와 기술에 대한 의존도 때문입니다. 인터넷, 스마트폰, 인공지능(AI) 등 기술 발전 속도가 정말 빠른데, 어느 쪽에서는 이를 빠르게 수용하기 위해 애를 쓰고 또 한 쪽에서는 적응하지 못해서 고생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불안해할 수밖에 없어요. ‘내 일자리는 괜찮나’ ‘인간의 존재 가치는 어떻게 찾아야 하나’ ‘우리 사회는 이대로 유지될 수 있나’ ‘인류 공동체가 계속 유지될 수 있나’ 이런 다양한 차원에서의 실존적 불안을 겪고 있는 거죠. 그리고 이런 불안은 생산성 중심주의, 능력주의, 결과주의와 결합됐다고 보입니다. 값싸고, 효율적이고, 빠르고,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 인정받는 사회 시스템 안에서 (결과를 내지 못하는 인간이 된다는 것은) 두려울 수밖에 없죠.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어떻게 찾고 있는지 궁금해요. 특히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존재 가치를 바꿨는지도 궁금하고요.

 

천현득 교수 I 우리는 육체적인, 신체적인 활동을 외주화하는 데 위협을 느끼지 않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이동한다고, 굴착기로 땅을 판다고 위협받는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정신적인 능력을 어딘가에 의존할 때 위협을 느낍니다. 시작은 기억이었고, 현재는 추론, 미래에는 상상력이 인간을 위협하는, ‘외주화된 능력’일 거예요.


우리가 정신적인 능력에서 인간 존재의 가치를 찾는 건 근대적 유산이에요.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인간이 인간됨을 정신세계에서 찾는 거죠. 지금도 다리를 다쳐서 의족을 끼더라도 ‘나’는 ‘나’입니다. 이런 근대적 사상은 현재도 주류이고 사회적, 법적 토대도 이런 사상 위에 마련돼 있어요. 뿌리 깊게 말이죠. 


과거에는 외주화를 끊임없이 받아들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앞서 얘기한 ‘생산성’ 측면에서 도움이 됐거든요. 모든 연락처나 일정을 다 기억하지 못해도 어디 저장되거나 기록된 걸 보고 효과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죠. 그런데 오늘날 기술 발전의 양상은 기술이 인간의 생산성에 도움을 주는 부차적인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아예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죠. 과학기술에 대한 주도권과 통제력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생기는 이유예요.

 

▲Shutterstock
1873년 프랑스 시사잡지, 마가신 피츠토레스케에 실렸던 산업혁명기 방적공장 내부 그림. 산업혁명은 방적기 개량으로 시작한 기술 혁명이었으며, 인간의 삶은 혁명을 전후해 완전히 바뀌었다.

 

 인간은 과학기술 발전에 힘입어 다양한 영역에서 해방을 꿈꿔왔어요. 노동해방부터, 질병해방…. 우주 개척은 중력해방이라고 볼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런데 지금까지 인류가 무언가로부터 해방된 것 같진 않아요.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해서였을까요? 아니면 해방이란 목표 자체에 성찰이 필요할까요?

 

천현득 교수 I 사람들은 늘 꿈꿔요. 도달할 수 없더라도 꿈은 꿀 수 있어요. 불로불사란 꿈은 고대에서부터 꿔왔던 꿈이었고요. 그리고 분명 그런 해방에 대한 욕구가 지금까지 기술 발전의 큰 동력 중에 하나였죠. 또 기술이 충분히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는 얘기죠. 사람은 만족하지 않거든요. 


영원히 사는 것이나 우주로 가는 것, 또 예쁜 외향과 뛰어난 두뇌를 위해 유전자를 조작해 만드는 맞춤아기(designer baby) 등, (무엇에 해방된 미래를 그리는) 담론은 트랜스휴머니즘적인 아이디어에 기반해요. 사실 신석기 시대 사람이 보면 지금 2026년의 우리가 트랜스휴먼으로 보일 거예요. 이미 기술적으로 강화된 삶을 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기술적인 강화의 목표가 지금처럼 단순히 사회 내의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서라면 행복과 멀어지는 일이에요. 그렇기에 (기술 발전이 당연해보이는 이때에) 무엇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꿈꾸는 것이 아닌, 무엇을 지향할지에 관해 고민해야 해요.

 

▲김태희
2025년 12월 2일 서울대에서 만난 천현득 과학학과 교수는 우리가 정신에서 인간 존재의 가치를 찾고 있어 생각을 대신하는 AI 발전에 불안해한다고 설명했다.

 

▲Creative Commons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근대 존재론적 명제를 남겼다.

 

 2066년, 40년 뒤의 인간과 사회를 위해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하는 질문은 무엇이 있을까요?

 

천현득 교수 I 미래의 인간이 고정돼 있지 않다는 게 가장 중요한 점이에요. 누군가가 그들의 삶의 방식과 사회의 구조를 만들어요. 그리고 누가 어떻게 만드는지가 중요한 질문일 거라 봅니다. 반대로 생각한다면 2066년의 인간은 어떤 모습이면 좋겠는지, 어떻게 살아가면 좋겠는지, 사회는 어떻게 구조화되면 좋겠는지를 상상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상상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의 본성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하고요. 보통 사람들은 과학기술이 보편적이고 중립적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착각입니다. 과학기술에는 가치가 개입돼 있어요. 그렇기에 어떤 가치를 어떤 방식으로 개입해야 좋을지, 혹은 나쁠지에 대해 생각하고 또 화두를 던져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과학기술과 앞으로의 과학기술은 인간에게 다른 의미를 가질지도 궁금해요.

 

신상규 교수 I 다를 거예요. 지금까지 인간은 기술과 협업을 해왔지만 앞으로는 인간의 개입이 줄어들 겁니다. 때문에 인간이 직업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찾는 지금 형태의 사회구조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초등학생부터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교육을 하고 있어요. 일종의 직업 교육인 거죠. 좋은 대학에 가려는 이유도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서니까요. 그러니까 직업이란 것을 갖기 위해 거의 20년 동안 직업 교육을 받는 셈입니다. 그런데 미래 사회에서 직업은 일종의 사치품이 될 가능성이 있어요. 직업을 갖고 싶어도 못 갖게 되는 거죠.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문제 되는 건, 인간의 중요한 특성인 ‘의미 찾기(meaning making)’ 때문이에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의미 찾기인데, 사람들이 각자의 행동에 이유를 만들어내고, 가치나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 게 모두 의미 찾기죠. 그로부터 삶의 의미나 자긍심을 얻고, 주변의 인정을 받기도 해요. 그런데 현재 인간은 의미 있는 ‘좋은 삶’을 ‘좋은 직업’을 통해 누리는 구조 속에 살고 있어요. 

 

 물론 지금도 일을 하면서 자아를 실현하는 것만이 행복한 삶은 아니지만 일을 하지 않고 평생을 산다는 게 상상이 잘 안돼요.

 

신상규 교수 I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방식대로 미래에도 살아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노예제가 당연했던 시기가 있었고, 성차별이 완연했던 사회가 있었잖아요. 그런데 그 시대의 사람들이 특별하게 지금 우리보다 더 나쁜 사람들이었던 건 아녜요. 인간의 생각은 시대와 환경, 기술, 물적 구조와 분리될 수 없었을 뿐이에요. 그런 관점에서 접근해 보면 사회 제도, 규범적 가치가 바뀔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에는 지금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유효하지 않을 수 있어요. 과시 조건도 바뀔 수밖에 없고요.


일을 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게 지금의 관점에서는 굉장히 이질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근본적인 변화인 것도 아녜요.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 시대도 있었거든요. 그리스 시대 철학자들만 하더라도 놀면서 생각하는 게 그들의 삶이었어요. 또 어떤 역사 속에서 대부분의 특권층은 그냥 놀았어요. 평생을요. 완전히 똑같진 않지만 유사하다고 추정할 수 있는 선례죠. 

 

특이점 이후의 미래를 상상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질문 중 하나는 ‘일’이다. 자동화와 인공지능이 확산되면 인간은 더 적게 일하거나, 일을 하지 않게 될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존 다나허 아일랜드국립대 법학과 교수는 자신의 저서 ‘생각을 기계가 하면, 인간은 무엇을 하나?’에서 일에 대한 뿌리깊은 오해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은 인간이 만든 기이한 발명품이다” 

‘우리는 이것을 준비하고, 이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것에 투자하고, 이것을 위해 공부하고, 이것에 대해 불평한다. 그리고 이것을 하면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다. 여기서 말하는 이것이란 바로 일이다.’ 다나허 교수는 금전적 보수를 대가로 하거나 금전적 보수를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수행하는 모든 (육체적, 정서적, 인지적) 활동을 ‘일’이라 정의하며, 이런 기이한 발명품이 기술 발전으로 서서히 사라진다고 말했다.  

 

“일은 구조적으로 나쁘다” 

‘나 또한 내 직업을 사랑하며 직업은 내 존재의 핵심이다. 하지만 일은 구조적으로 나쁘다.’ 다나허 교수는 일이 구조적으로 나쁜 이유를 총 다섯 가지로 구분한다. 우선 고용 계약과 고용 상태는 관리자가 노동자의 삶을 부당하게 지배하는 구조로 노동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수많은 갈래로 쪼개진 노동은 노동자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또한 노동의 대가로 받는 보상도 분배 불공평의 문제가 있으며, 일에 할애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 노동이 삶을 장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사람이 일을 할 때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 일이 구조적으로 나쁜 이유다. 

 

“일 시스템을 폐기하는 것이 낫다” 

 

다나허 교수는 ‘포스트워크(post-work) 사회’를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포스트워크 사회란 대부분의 사람이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다. 기술 발전으로 인해 일이 불필요해지거나 모든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가 다른 방식으로 제공되기 때문이다.  

 

“삶의 자동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다나허 교수는 기술 발전으로 인간의 일이 서서히 없어지는 ‘인간의 곁다리화(obsolescence)’는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일 이외 영역에서의 삶의 자동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기술이 삶에 미치는 영향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며, 객관적인 현실 세계와 단절되지 말아야 하고 오랫동안 집중하는 능력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세계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선택의 자율성과 도덕적인 능동성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GIB

 

 그렇다면 일하지 않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무엇을 하면서 행복할까요?

 

신상규 교수 I 새로운 의미 찾기가 계속될 거예요. 저는 예술과 문화, 스포츠가 더 중요해지는 시대일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소수가 그것들을 수행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그걸 보는 거였다면 앞으로는 주체적인 참여자로 적극적으로 향유할 거예요. 


다만 의미 찾기는 정해진 답이 있는 게 아녜요. 개인이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각자가 자신만의 의미화 과정을 거쳐야 해요. 즉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생각은 기본적으로 언어를 통해 이뤄지고요. 그런데 이미 AI가 사람들의 생각을 대신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언어를 개발하고, 고민할 기회가 없어지고 있는 거예요. 지금도 학생들이 AI로 과제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죠. AI가 만들어준 ‘정답’에 익숙해지면, 사람들의 생각하는 능력은 퇴보할 거예요.


의미 찾기가 중요한 시대에,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어요. 좋은 사회, 좋은 미래가 아닙니다. 더 늦기 전에 현재의 교육 구조를 어떻게 바꿀지 고민해야 합니다.

 

▲Shutterstock
2019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시위대가 캠비 다리를 가득 채웠다.  김애령 이화여대 인문과학원 교수는 미래를 상상함에 있어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를 무엇으로 정의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2066년, 더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2066년에도 행복하기 위해서는 행복이 무엇인지부터 이야기해야 해요. 행복은 뭘까요?

 

김애령 교수 I 다들 행복하길 원하지만, 행복이 무엇인지를 잘 몰라요. 불행하지 않는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고, 또 어떤 행복은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는 상태이기도 하잖아요. 또 어떤 행복은 선명하지도 않고요. 어떨 때는 지나고보니 그때 행복했더라며 뒤늦게 깨닫기도 해요. 그런데 행복을 수량화할 수 있다 생각하고 또 비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죠. 모든 사람이 행복하려면 ‘행복 담론’을 깨야 해요. 행복을 어떤 상태로 고정하지 않아야 해요. 정상성과 규범 안에서 행복이 고정되면 그 담론 중심에 들어갈 수 없는 많은 사람을 내몰아 내거든요. 행복하기 위해서는 행복에 대해 말하지 않아야 하는 그런 아이러니가 있는 거죠. 

 

 행복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이 행복에서 우리를 멀어지게 한단 얘기 같아요. 과학기술이 바꿀 미래에서의 삶으로 이야기를 좁힌다면, 무엇이,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요?

 

김애령 교수 I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그런 얘기를 했어요. “챗GPT를 그냥 쓰지 말고, 그 작동 원리라도 알고 난 다음에 써보면 어떻겠냐”고요. 챗GPT만이 아니라, 다른 과학기술을 사용할 때도 맥락을 아는 게 필요해요. 오늘날 기술은 매끈하게 우리 앞에 놓여있어요. 사용하기 쉽게요. 그런데 원리를 알고, 기술에 얽혀있는 것들을 알면 기술을 다르게 볼 수 있게 돼요. AI 서비스 뒤에 있는 기업과 자본, 프로그램 개발자, 데이터 분류하는 노동자, 콘텐츠 검수자, 데이터, 전력 등이요. 이런 관계와 기술이 우리 앞에 놓인 과정을 이해하면 기술을 쓰는 방법도 달라질 거고, 기술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질 거예요.


한국은 인구당 챗GPT 유료사용자 비율이 전 세계 1위인 국가예요. 기술을 받아들이는 게 당연한 사회죠. 그런데 우리와 같지 않은 삶이 지구 어딘가에는 또 있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훨씬 울퉁불퉁하거든요. 우리와 같지 않은 삶이 지구 어딘가에는 분명 있어요. 그런 삶을 배제하고 만드는 상상은 나쁜 이야기예요. 미국 페미니스트이자 사상가인 도나 해러웨이 캘리포니아주립대 의식사학과의 명예교수가 “이 세상에는 더 좋은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어요. 여기서 말하는 이야기는 소설이나 역사서에 쓰인 문장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상적 토대를 가리킨 표현이죠. 문학은 물론 역사, 철학도 다 저마다의 이야기 안에 있어요.

 

▲김태희
2024년 12월 10일 이화여대에서 만난 김애령 인문과학원 교수는 기술의 영향력이 커지는 오늘날 “기술의 맥락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해가 될 듯 말 듯 해요. 사상적인 이야기 말고, 실제 언어로 쓰인 이야기에서도 미래를 보는 데 도움되는 게 있을까요?

 

김애령 교수 I SF 얘기를 해볼 수 있을 거 같아요. SF는 미래 세계와 과학적 발전이 야기하는 결과를 얘기하는 것 같지만, 실제론 ‘오늘’의 얘기예요. 지금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극적으로 만든 거죠. 그러니까 결국 문제는 지금 사회를 어떻게 보는가에 있어요.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를 무엇으로 볼 것이냐, 그리고 그런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를 고심해야 해요.


해러웨이는 직선적으로 흐르는 시간이 아니라, 축적된 과거와 미래적 실재가 포함된 ‘두터운 현재’를 말해요. 과거가 누적돼 지금이 있고, 오늘이 미래에 영향을 주니까요. 그러니 막연한 불안으로 미래를 미리 걱정하기보다 지금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용어 설명
 외주화(outsourcing) : 기업이나 조직이 내부에서 수행하던 업무를 비용 절감, 효율성 향상 등을 위해 외부 업체나 제3자에게 맡겨 수행하게 하는 것을 뜻했다. 최근에는 인간이 스스로 수행하던 능력이나 기능을 기술, 도구, 타자에게 맡겨 대신 수행하는 과정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 : 초인본주의. 과학기술을 이용해 사람의 정신적, 육체적 성질과 능력을 개선하려는 지적, 문화적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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