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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같은 효과에 숨은 부작용, 식욕억제제

[엣지 사이언스]

 

 

다이어트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식욕억제제는 ‘궁극의 약물’로 통한다. 단 기간에 수kg를 감량했다는 ‘간증’이 넘쳐난다. 그런 글엔 어느 병원에서 처방 받았는지 묻는 댓글도 심심찮게 보인다.


비만 치료용으로 개발된 식욕억제제는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디에틸프로피온 등 여러 종류가 있고 병원마다 처방하는 식욕억제제와 용량이 조금씩 다르다. 각 약물의 부작용도 환자마다 다르기 때문에 환자들은 효과는 좋고 부작용은 적은 약을 찾아다닌다.


식욕억제제가 뇌에서 식욕을 앗아가는 원리는 비슷하다.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등의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량을 증가시킨다. 한창우 한양대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커피 100잔을 마신 효과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몸을 긴장 상태로 만들어 식욕을 감소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단1. 처방 기준, 지켜지지 않는 경우 있어

 

문제는 엄격한 의사의 진단에 따라 처방 받아 사용해야 하는 식욕억제제가 필요 이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굳이 이 약을 처방 받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대거 처방 받고 있다. 지난 3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식욕억제제 처방 기준을 체질량지수(BMI) 30kg/m2라고 공고했다. 원래 BMI 25kg/m2가 기준이었지만 좀더 엄격하게 높였다. 하지만 다이어트 커뮤니티에서 이 약을 처방 받았다며 자신의 키와 몸무게를 공개한 회원들 가운데 BMI 30kg/m2을 넘지 않은 경우가 여럿 있었다. 대학비만학회의 비만 기준으로 정상 범위(18.5~22.9kg/m2)인 사람도 종종 보였다.


다이어트 커뮤니티에서 자주 회자되는 서울의 한 비만클리닉에 직접 가봤다. 의사를 만나기 전 체중과 키를 재고, 수면과 우울 상태, 평소 식습관 등을 묻는 문답지에 답을 채웠다. 기자의 BMI는 19kg/m2로 표준 체중에 해당한다. 처방 기준에 턱없이 모자라지만 식욕억제제를 처방받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저녁을 먹지 않아야 효과가 좋다’는 조언과 함께 약이 빼곡히 적혀 있는 처방제를 손에 넣었다. 식욕억제제(펜터민 성분)를 포함해 지방흡수억제제, 위장운동촉진제, 편두통예방제, 현기증완화제, 위산분비억제제, 이뇨제 등 총 13종류의 3주치 약이었다.


약의 정체에 대해 전문가에게 물어봤다. 조영규 인제대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각종 비만치료제와 이뇨제, 소화제, 항우울제 등을 혼합한 전형적인 비만약 칵테일 처방”이라며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절대 처방해서도 안 되고 먹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무분별한 처방은 최근 10~20대 사이에서 비정상적으로 마른 몸매를 선망하는 ‘프로아나족(찬성한다는 뜻의pro와 거식증(anorexia)을 결합한 신조어)’의 욕망을 채우는 수단이 되고 있다. 남인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식약처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식욕억제제를 처방 받은 전체 환자 가운데 91.7%는 여성이었다. 이는 남성의 비만률이 여성보다 높은 현실과 배치된다. 보건복지부의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보면, 2019년 기준으로 남성의 비만율은 41.8%인 반면 여성은 25%에 불과하다. 마른 체형에 대한 과도한 욕망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조 교수는 “비만치료제는 본래 체지방 증가로 인한 대사질환의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서 개발됐다”며 “예뻐지고 싶은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어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살이 조금만 쪄도 자기 관리를 못하는 사람으로 평가하는 사회가 낳은 일”이라고 덧붙였다.

 

진단2. 부작용 나타나도 끊지 못해

 

식약처가 식욕억제제를 4주 이내만 복용하도록 권고하는 이유는 중독성이 있는 마약성 약물이기 때문이다. 미국 마약단속국(DEA)은 마약성 의약품을 중독성 정도에 따라 총 5단계로 분류하는데, 식욕억제제 의약품은 비교적 중독성이 적은(등급이 높은) 단계로 분류된다. 예를들어 펜터민은 4단계, 펜디메트라진은 3단계다. 생리적인 중독성은 상대적으로 낮다는 뜻이다. 하지만 ‘살을 빼야 한다’는 심리적 욕구가 더해져 식욕억제제를 끊지 못해 정신과를 내원하는 환자도 있어 문제가 크다.


국내에는 4주 이상 처방 받고 복용하는 일이 오히려 더 흔하다. 식약처에 따르면 2019년 7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식욕억제제 처방을 받은 130만 1156명의 환자 가운데 의료기관 중복 방문 등으로 사용기준 4주를 초과해 처방 받은 환자의 비율은 75%에 달했다. 의사의 판단에 따라 예외적으로 최대 3개월까지 처방할 수도 있지만, 전체 환자의 38.7%는 이조차 넘겨 3개월을 초과해서 처방을 받았다. 중독일 가능성이 크다.

 


중독이 문제인 이유는 부작용 때문이다. 식욕억제제는 가벼운 우울증이나 수면장애부터 환각, 발작까지 다양한 부작용을 일으킨다. 한 교수는 “부작용을 심각하게 겪고 있으면서도 약을 끊지 못해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비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음식에 대한 강박 때문에 식욕억제제를 끊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1년 이상 식욕억제제를 복용한 경험이 있는 서울 구로구의 한 여성은 “식욕억제제를 먹으며 집중력이 떨어졌고 매일 잠도 설쳤지만 살이 빠지는 효과가 너무 좋아 끊지 못했다”고 말했다.


특히 폭식증이나 거식증 등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에게 식욕억제제는 위험한 약물이다. 노성원 한양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섭식장애 환자들은 식욕억제제 부작용이 더 잘 나타난다”며 “이들에겐 반드시 충동을 억제하는 정신과적 치료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식약처 역시 이를 고려해 섭식장애 환자에게는 식욕억제제 처방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가정의학과나 정형외과, 내과에 설치된 비만클리닉에서 버젓이 처방되고 있다. 노 교수는 “중독은 삶을 망가뜨릴 수 있는 문제”라며 “효과가 빠른 만큼 부작용이 크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식약처는 식욕억제제 오남용 문제를 인식하고 안전사용 기준을 벗어나 처방하는 의사들에게 두 차례 서면 경고를 했다. 권고 처방 기간인 3개월 이상 식욕억제제를 처방해 지난해 9~10월(1차) 두 달간 적발된 의사는 192명, 올해 1~2월(2차)은 37명이었다. 처방이 금지된 청소년, 어린이에게 처방한 의사도 같은 기간 153명, 24명이었다. 하지만 현재 마약류인 식욕억제제를 오남용해 처방한 의사를 처벌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 남 의원은 10월 20일 국정감사에서 “현장에서는 관행적으로 식욕억제제 오남용이 진행되고 있지만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부작용 신고접수를 활성화할 방안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진단3 . 비만 치료는 스스로의 의지가 핵심

 

비만치료제가 유행처럼 번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0년대 초에는 지방흡수억제제인 ‘제니칼’이 인기였다. 제니칼은 소화 과정에서 지방을 분해하는 효소인 리파아제(리페이스)의 활성을 억제하는 약물이다. 김주영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제니칼은 지방을 변으로 배출하기 때문에 환자들이 불편함을 호소하는 약”이라며 “당시 승인을 받은 비만치료제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유행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제니칼 이후 중추 신경에 작용하는 ‘리덕틸’ ‘벨빅’ 등이 등장했는데, 각각 심혈관 질환 위험과 암 발생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나 판매가 중단됐다. 현재는 중추신경을 자극해 식욕을 억제하는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디에틸프로피온 외에 당뇨병치료제로 쓰이다 체중감소 효과가 확인돼 비만치료제로 승인받은 ‘삭센다’의 인기가 높다. 삭센다는 식후 혈당을 떨어뜨리는 GLP-1 유사체가 주요 성분이다. 이 성분이 체내에서 포만감을 유발해 식욕을 떨어뜨린다. 


비만치료제의 유행은 여러 해 동안 식지 않고 새로운 약물로 계속 옮겨가고 있다. 체중 감량이 그만큼 더디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첫 걸음인 식이 조절부터 쉽지 않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비만대사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김 교수는 “식이 조절을 시작한 지 1개월 정도가 되면 기초대사량이 떨어져 적게 먹어도 체중이 줄어들지 않는 대사적응 단계에 진입하는데, 이때 많은 환자들이 자신이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한다”며 “식사량이 줄어들면서 우울감이나 음식에 대한 강박이 나타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최소한의 약물 치료”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약물 치료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진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격려하고 좌절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비만클리닉에서는 6개월~1년 간 체중의 5~10% 감량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아마 체중 감소를 원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약은 ‘먹어도 체중이 늘지 않는 약’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출시된 약도 몇 가지를 제외하면 대부분 장기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약이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지만, 체중 감량의 긴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식이 조절’과 ‘운동’이다. 한 교수는 “약물은 비만 치료의 보조 역할일 뿐”이라며 “주인공은 운동과 식이 조절인데 주인공과 보조자가 뒤바뀌는 순간 약물에 의존하는 좀비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뇌에 작용해 먹고 싶은 욕망을 사라지게 하는 마약류 의약품 ‘식욕억제제’의 오남용 문제가 심각하다. 약을 처방받는 사람이 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식욕억제제를 끊지 못해 중독을 호소하는 환자도 늘고 있다.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처방이 금지된 청소년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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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박영경 기자
  • 일러스트

    김대호
  • 디자인

    이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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