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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4 지구온난화 늦춰줄 한 줌의 '소각재'

중금속 빼고 염소 제거하는 토종기술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지만 쓰레기는 태우면 재를 남긴다.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쓰레기 배출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2005년에는 매일 평균 4만 8398톤의 쓰레기가 쏟아져 나왔다. 하루 동안 국민 1인당 0.99kg의 쓰레기를 배출한 셈이다. 생활쓰레기의 절반 정도는 재활용되고 나머지는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최근에는 매립지가 부족해지면서 소각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쓰레기를 태우면 부피가 처음의 10분의 1로 줄어든다.

하지만 소각한 뒤 발생하는 재도 만만치 않아 그 양이 연간 40만 톤을 웃돈다. 게다가 가정에서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담아 배출하는 폐기물을 한꺼번에 태운 재 속에는 카드뮴이나 구리, 납, 수은 같은 중금속이 다량 들어있다. 소각재의 90% 이상이 매립되는 현실로 볼 때 심각한 토양 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얘기다. 소각재를 안전하게 처리하고 재활용할 방법이 시급한 시점이다.
 

2007년 말 소각재 속 중금속 성분을 안정시키고 염소를 제거하는 연구플랜트가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들어섰다.


재활용 방해하는 김치?

소각장 안에서 850~900℃의 높은 온도로 쓰레기를 태우면 비산재(fly ash)와 바닥재(bottom ash)가 발생한다. 비산재는 수십 μm(마이크로미터, 1μm=${10}^{-6}$m) 크기로 작고 가벼워 집진설비로 포집한 뒤 중금속과 다이옥신을 걸러 배출한다. 바닥재는 미처 타지 못했거나 타지 않는 성분으로 구성된다. 무게가 무거워 소각장 바닥에 가라앉고, 비산재보다 유해물질이 적게 포함돼있는 대신 철이나 유리조각, 도자기 성분이 많다. 비산재와 바닥재의 발생 비율은 약 1 : 9 정도로 소각재의 재활용은 곧 바닥재를 재활용한다는 의미다.

유럽연합(EU)은 공동으로 ‘사마리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생활쓰레기 소각재로 모래 같은 천연골재를 대체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독일이나 프랑스, 덴마크는 매년 소각재의 60~90% 정도를 재활용해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건축용 벽돌의 원료로 쓴다. 네덜란드와 스웨덴의 소각재 재활용률은 거의 100%에 육박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소각재를 재활용하기 어려워 대부분 매립 처리한다. 그 까닭은 우리의 식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05년을 기준으로 국내에서 배출되는 생활쓰레기의 38.5%는 음식과 채소. 먹다 버린 떡볶이나 통조림, 배추김치, 만두 찍어먹던 간장까지 고스란히 소각로로 직행한다. 서양에 비해 짠 음식을 많이 먹는 식단 탓에 우리나라에서 배출되는 소각재 속 염소(Cl) 성분은 굉장히 높다. 소금(NaCl)에서 염소가 분리돼 나오기 때문이다. 생활쓰레기 1kg을 태운 소각재 속에는 약 30g의 염소 성분이 포함돼있는데, 이는 일본의 2배 수준이며 미국과 유럽의 최대 7배에 이른다.

분리되지 않은 채 버려지는 플라스틱도 소각재 속 염소 함량을 높인다. 예를 들어 전선이나 튜브, 호스를 이루는 PVC는 폴리염화비닐이라는 정식명칭에서 보듯 염소가 들어있는 플라스틱이다. PVC를 소각하면 유독한 화합물인 다이옥신이 발생한다. 다이옥신은 탄소 원자 6개로 이뤄진 벤젠고리에 염소가 결합한 화합물로 체내에 축적되면 내분비장애를 일으킨다. 다행히(?) 다이옥신은 비산재에 주로 포함돼있어 바닥재를 재활용할 때 따로 처리하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소각재 속에 들어있는 염소가 소각재의 재활용을 가로막는다는 데 있다. 염소 성분이 포함된 소각재는 수질을 오염시키고 철근을 부식시키기 때문에 건축자재로 활용할 수 없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하 지질연)은 21세기 프런티어사업 자원재활용기술개발사업단의 연구과제로 2000년대 초반부터 소각재 재활용의 걸림돌인 염소를 제거하고 중금속까지 회수하는 기술을 연구했다.
 

생활쓰레기와 소각재^2005년 기준으로 하루 동안 배출된 생활쓰레기는 4만 8398톤에 이르고, 그 중 27.7%가 소각됐다. 소각재 속에는 해로운 중금속과 염소 성분이 들어있다(자료:환경부 2005 전국폐기물 발생 및 처리현황).

 

이산화탄소로 소각재 길들이기

소각재를 처리하는 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구성된다. 먼저 소각재 속 철 성분을 자석으로 빨아들인 뒤 알루미늄, 구리, 도자기 같은 비철류를 분리한다. 흙이나 모래처럼 보이는 재가 마지막으로 남는데, 여기서 염소 성분을 제거하기 위해 이산화탄소를 주입한다. 왜 하필 이산화탄소일까.

소각재 속 염소 성분은 염화물의 상태로 존재하는데, 물에 잘 녹는 수용성 염화물과 녹지 않는 난용성 염화물로 나눌 수 있다. 염화칼륨(KCl)이나 염화나트륨(NaCl), 염화철(FeCl₂) 같은 수용성 염화물의 경우 물로 잘 세척해주면 되지만 난용성 염화물(Ca₂Al(OH)${}_{6}$Cl·7H₂O)은 좀처럼 제거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고집불통 난용성 염화물도 이산화탄소를 만나면 스르륵 녹아나온다. 비밀은 바로 탄산화반응에 있다.

난용성 화합물이 이산화탄소와 반응하면 탄산칼슘(CaCO₃)과 수산화알루미늄(Al(OH)₃)을 만들고, 염소 성분은 염산(HCl) 형태로 녹아나온다. 이때의 염소는 수용성 염화물과 마찬가지로 물에 잘 녹기 때문에 소각재에서 쉽게 제거할 수 있다.

마치 옷에 묻은 기름때가 물에는 잘 지워지지 않지만 세제를 넣으면 녹아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기름때를 난용성 염화물에, 세제를 이산화탄소에 비유하면 이산화탄소라는 세제가 소각재 속 염소 성분을 깨끗이 빨아준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산화탄소는 소각재 속 중금속을 안정시키는 역할도 한다. 생활쓰레기를 태우면 비소나 카드뮴, 수은, 납 같은 다양한 중금속이 만들어진다. 이들 중금속은 소각재 속 다른 성분과 반응해 화합물을 만들거나 산화물 형태로 존재하는데, 매우 불안정한 상태이므로 토양이나 대기로 노출되면 환경을 오염시킨다. 그러나 소각재에 이산화탄소를 넣어주면 흙을 구성하는 광물성분과 이산화탄소가 반응하며 소각재 표면에 단단한 탄산염 층을 형성한다. 이 층은 소각재에서 중금속 성분이 흘러나오지 못하게 하는 코팅제 역할을 한다.

지난해 6월 필자는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소각재를 깨끗이 ‘정화’하는 공정으로 일본소재물성학회에서 최우수논문상을 받았다. 지난해 말에는 1시간에 200kg의 소각재를 깨끗이 처리할 수 있는 연구플랜트를 국내 최초로 만들었고, 곧 산업현장에 적용할 예정이다. 소각재를 맘껏 재활용할 수 있고 발전소나 소각로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사용하므로 지구온난화도 줄일 수 있다. 여기에 탄소배출권을 인정받으며 생기는 경제적 이익까지 더하면 일석삼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환경부는 생활쓰레기 소각재를 벽돌이나 도로 골재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소각재 처리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올해 말쯤 발표할 예정이다. 재(再)활용이 아닌 재(滓)활용인 셈이다. 백해무익해 보이던 소각재의 몸값을 껑충 뛰게 만든 것은 국내의 쓰레기 배출 현실에 맞는 토종 과학기술이다. 덕분에 ‘한 줌의 재가 돼 사라진다’는 말 대신 ‘한 줌의 재가 지구를 살린다’고 표현할 날이 멀지 않았다.
 

국내에서 배출되는 생활쓰레기의 38.5%는 배추김치 같은 음식과 채소가 차지한다. 여기에 소금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 소각재 속 염소 성분도 높아진다.


Interview 자원재활용기술개발사업단 이강인 단장
‘쓰레기 제로’ 꿈꾸며 자원 재활용에 박차를 가한다

시대에 따라 재활용의 트렌드도 변한다. 과거에는 빈 병과 폐지, 고철을 엿장수에게 주고 빨랫비누나 엿가락으로 바꿨다. 1995년 쓰레기종량제가 시행되면서 쓰레기 배출량은 줄고 재활용률이 상승했다. 21세기의 재활용 트렌드는 ‘환경을 위한 설계’다. 제품을 제작하는 단계부터 유해물질을 쓰지 않고 재활용하기 쉬운 재료를 골라 쓴다. 이 과정에서 두꺼운 브라운관TV는 LCD TV로 대체됐고 납이나 카드뮴은 퇴출됐다.

과학기술부 지정 21세기 프런티어사업 중 하나인 자원재활용기술개발사업단은 지난 2000년부터 재활용의 세계적 트렌드를 선도하기 위해 박차를 가해왔다. 처음 3년간은 재활용 기술을 개발했고 2003~2006년에는 이 기술을 적용한 연구플랜트를 지어 실용성을 꼼꼼히 검토했다. 오는 2010년까지는 이제껏 거둔 성과들을 산업현장에 하나둘씩 적용하는 작업을 해나갈 계획이다.

“사람이 태어나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쓰레기도 재활용해 순환자원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석유로 만든 플라스틱을 다시 석유로 재활용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원재활용기술개발사업단 이강인 단장은 ‘순환자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흙에서 자란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들고 이를 재활용해 재생 종이를 탄생시키는 것처럼 진정한 재활용이라면 재활용 마크의 모양처럼 계속 순환해야 한다. 사업단의 궁극적인 목표는 재활용으로 자원을 확보하고 에너지를 절약하며 지구 환경을 보호하는 데 있다.

에너지 빈국인 우리나라는 재활용에서 뜻밖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사업단은 지난 8년간 폐플라스틱에서 석유를 뽑아내는 연구를 추진해 연간 3000톤의 플라스틱을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또 전자제품 쓰레기에서 귀금속을 회수하는 기술은 LCD에 바로 적용될 정도로 고효율과 실용성을 두루 갖췄다.

이 단장이 즐겨 쓰는 말은 ‘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낡고 오래된 쓰레기도 재활용으로 새롭게 거듭날 수 있다’는 그의 신념이 담겨있다. ‘쓰레기 배출이 없는 나라, 쓰레기가 곧 자원인 나라’라는 목표를 향해 사업단의 질주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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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안지환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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