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동아 독자라면 2025년 한 해 동안 다양한 양자물리학 관련 기사가 실렸던 걸 기억하실 겁니다.
양자 기술이 최근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분야일 뿐더러, 2025년은 양자역학 탄생 100주년이기 때문이죠.
그런 분위기 덕분일까요. 10월 7일 발표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도 양자 분야에서 나왔습니다.
이들의 업적을 요약하면, ‘양자 현상을 눈이 보이는 스케일로 뻥튀기했다’는 것입니다.
또 양자물리학?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양자물리학 관련 연구가 노벨 과학상을 받았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3년 전인 2022년, 얽힌 광자 실험으로 벨 부등식이 위배된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확인한 알랭 아스페, 존 클라우저, 안톤 차일링거 세 명이 물리학상을 받았죠.
2025년 물리학상은 한발 더 나아가 ‘양자컴퓨터’의 기반을 연구한 연구자 세 명에게 주어졌습니다. 그 주인공은 존 클락 미국 버클리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 미셸 드보레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 존 마티니스 미국 산타바바라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양자컴퓨터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걸까요? 초전도 양자 기술과 양자컴퓨터 분야의 전문가인 정연욱 성균관대 양자정보공학과 교수는 “원자 스케일의 미시 세계에서만 보이던 양자 현상을 칩과 회로 위에서 구현한 것”이라 설명했습니다.
양자 현상, 거시 세계에서도 볼 수 있을까
미시 세계에서는 거시 세계에 사는 우리가 보기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물질이 입자와 파동의 두 속성을 동시에 지닌다거나(입자-파동 이중성), 한 입자가 동시에 여러 상태로 존재한다거나(양자 중첩), 심지어는 벽에 던진 공이 벽을 뚫고 지나가는 것마냥, 입자가 절대 넘어갈 수 없는 에너지 장벽을 통과한다거나(양자 터널링) 하는 현상들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양자 현상을 ‘슈뢰딩거의 고양이’ 비유처럼 눈에 보이는 거시 세계에서도 구현할 수 있을까요? 물리학자들은 먼저 하나가 아닌 두 개 이상의 입자가 관여하는 양자 터널링 현상을 만들거나 관찰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거기서부터 거시 세계에서의 양자 현상 구현이 시작될 테니까요.
1978년, 영국의 물리학자 앤서니 레깃은 논문을 통해 거시적 양자 현상을 만들 수 있을지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초전도체와 초유체 현상을 연구하던 그는 초전도 회로를 사용하면 거시적 양자 터널링 현상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죠(레깃 또한 200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doi: 10.1051/jphyscol:19786555 레깃의 제안에 1980년대 초 여러 연구팀이 초전도 회로를 통해 거시적 양자 터널링 효과를 찾으려는 실험을 진행하게 됩니다. 미국 버클리캘리포니아대 물리학과 교수로 부임한 존 클락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그의 실험에 당시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존 마티니스와 프랑스에서 온 연구원 미셸 드보레가 합류합니다. 이 세 명이 실험에 사용한 회로의 종류는 ‘조셉슨 접합’이었습니다.
조셉슨 접합은 두 초전도체 사이에 아주 얇은 절연체를 끼워놓은 형태의 접합입니다. 초전도체는 전류를 저항 없이 흘려보낼 수 있고, 절연체는 전류를 통과시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조셉슨 접합 사이로는 전류가 흐르지 않아야겠죠? 하지만 영국의 물리학자 브라이언 조셉슨은 1962년, ‘양자 터널링 현상이 발생해 전류가 흐를 것’이라 예측했습니다. 공이 벽을 뚫고 지나가는 것처럼, 절연체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있는 전자의 파동이 서로 중첩되면서 전자 쌍이 절연체를 뚫고 지나간다는 겁니다. 실제로 1년 후 조셉슨이 예측한 전류가 측정됐고, 조셉슨은 이 현상을 예측한 공로로 197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다만 이 실험은 전류가 흐를 것이라는 예측을 확인했을 뿐, 전류의 흐름이 양자 현상인지를 밝히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려면 실험 장비의 잡음을 줄여 더 명확한 데이터를 뽑아야 했거든요. 클락 교수팀은 이 지점, 전류의 흐름이 거시적 양자 현상의 증거임을 밝히는 데 도전했습니다.
회로 전체를 양자화하다
클락 교수팀은 먼저 조셉슨 접합이 있는 회로 시스템을 고안해 초저온에서 전류를 흘려보냈습니다. 초전도체는 임계 온도 이하에서 저항이 없으므로, 조셉슨 접합부의 전압도 당연히 0이 됩니다.
여기서 재밌는 부분이 나옵니다. 클락 교수팀은 시스템 전체가 거시적 양자 상태라면, 조셉슨 접합에서 확률적으로 양자 터널링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 추론했습니다. 물리학자들은 초전도체의 저항이 0인 이유를, 초전도체 내부를 흐르는 전자가 두 개씩 ‘쿠퍼쌍’을 지어 움직이기 때문이라 설명합니다. 나아가 양자물리학은 초전도체 내부의 쿠퍼쌍들의 집단적인 상태가 마치 전체 회로를 채우는 단일 입자처럼 행동할 수 있다고 예측합니다. 전체 회로가 단일 입자처럼 행동한다면 양자물리학적 현상인 양자 터널링 현상도 발생할 수 있을 거고요. 양자 터널링 현상이 발생해서 전자 쌍이 절연체의 벽을 넘을 때마다 접합부에서 그만큼의 전압이 생성될 겁니다. 이 전압을 찾는 겁니다.
이들은 실험에 방해가 되는 마이크로파 잡음을 줄이는 필터를 설치해 마침내 전기 회로 위에서, 거시적 양자 터널링 현상이 발생한다는 증거를 얻어냈습니다. 미시 세계의 전자 하나가 아니라, 엄지 손톱 크기의 회로 전체가 양자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거였죠.
나아가 이들은 전압이 0일 때 조셉슨 접합에 다양한 파장의 마이크로파를 쬐었습니다. 그러자 일부 파장의 마이크로파가 흡수되면서 조셉슨 접합 시스템 전체의 에너지가 특정한 상태로만 올라갔습니다. 마치 원자 주변을 도는 전자가 특정한 에너지 단계에만 있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노벨 위원회가 설명한 전기 회로의 ‘에너지 양자화’입니다. 즉, 클락 교수팀은 엄지손톱 크기의 회로 전체가 전자처럼 행동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죠.
클락, 드보레, 마티니스 세 명이 1984~1985년에 걸쳐 국제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내놓은 논문들은 양자물리학 연구의 흐름을 바꿔놨습니다. 거시 세계에서 구현된 양자 현상은 양자물리학을 실용화하는 첫 단추였기 때문입니다.
양자컴퓨터의 씨를 뿌리다
2025년 노벨 물리학상은 양자물리학 분야에서는 예측됐던 수상이라고 정 교수는 설명했습니다. “언젠가는 노벨상을 받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노벨 위원회에서 양자역학 탄생 100주년에 맞춰 이분들께 물리학상을 드린 것 같아요.” 여기에 더해, 최근 양자컴퓨터 분야가 가파르게 성장한 점도 이 수상에 진정성을 더해줍니다. 이번 수상 연구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야로 거론되는 곳이 ‘양자컴퓨터’거든요. 이들의 실험은 양자 현상을 반도체 칩 위의 회로에서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는 초전도 큐비트를 만드는 기반 기술이 됐습니다. 실제로 노벨상 수상자 중 한 명인 마티니스는 최근 10년 동안 진행된 양자컴퓨터 붐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입니다. 그는 2014년, 초전도 큐비트 양자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구글로 자리를 옮겼죠. 그리고 5년 후인 2019년 10월, 처음으로 ‘양자우월성 달성’ 논문을 발표해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양자컴퓨터가 기존 컴퓨터의 성능을 넘었다는 거였죠. doi: 10.1038/s41586-019-1666-5
그럼에도 정 교수를 비롯해 국내외 여러 연구자는 이번 수상 공로에서 ‘양자컴퓨터’라는 표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추측되는 첫 이유는 ‘양자컴퓨터’에 상을 주기에는 아직 시기가 이르다는 겁니다. 양자컴퓨터를 대상으로 하면 노벨상 자격이 되는 연구자의 수도 더 늘고요. 더 중요한 이유는, 이번 연구가 양자컴퓨터에 국한되지 않고 훨씬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연구라는 점입니다. 이를 두고 정 교수는 “(이번 노벨상은) 트랜지스터를 만든 분한테 상을 드린 격”이라고 비유했습니다.
“트랜지스터가 노벨상을 수상했을 때(1956년), 이게 앞으로 어디에 쓰일 진 아무도 몰랐습니다. CPU나 GPU 같은 부품에 쓰인다고 누가 예측할 수 있었겠어요. 그러나 트랜지스터가 진공관을 퇴출시키고 전자공학의 새 시대를 열었다는 건 명명백백한 업적이죠. 이번 노벨상도 마찬가집니다. 앞으로 양자컴퓨터를 비롯한 양자 기술이 얼마나 발전할지, 어떻게 활용될진 누구도 예측할 수 없어요. 다만 그 시작에 이번 연구가 있었다는 건 아무도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입니다.”
한 눈에 보는 노벨상
회로 위에서 구현한 양자 터널링 현상
미시 세계에서 일어난 양자물리학 현상을 어떻게 거시 세계에서 보여줄 수 있을까?
202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은 입자 단위에 국한됐던 양자 터널링 현상을 거시 세계의 회로 위에서 보여주는 실험을 진행했다.
©Johan Jarnestad/The Royal Swedish Academy of Sciences

고전물리학의 세계에서는 가지고 놀던 공을 벽에 던지면 튕겨나온다.

그러나 양자물리학에서는 비유적으로 공이 확률적으로 벽을 뚫고 나갈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입자(공)가 에너지 장벽(벽)을 통과하는 양자역학적 현상을 ‘양자 터널링 현상’이라 한다.

01. 일반적인 도체 전선에서는 전선 내부를 흐르는 전자들이 다른 전자, 그리고 도체 물질의 원자핵과 상호작용하면서 흘러간다.

02. 초전도체 전선 내에서는 전자가 두 개씩 ‘쿠퍼쌍’을 이뤄 움직인다.
쿠퍼쌍이 만들어진 결과, 초전도체는 저항이 0인 상태로 전류가 흐른다.

03. 양자물리학은 쿠퍼쌍의 집단 상태가 마치 전체 회로를 채우는 단일 입자처럼 행동할 수 있다고 예측한다. 그렇다면, 이 회로는 초전도체가 절연체로 끊어진 조셉슨 접합에서 양자 터널링 현상 같은 양자물리학적 현상을 일으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