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가을, 세계가 주목하는 ‘노벨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인공지능(AI)에 쏠린 작년과 달리, 올해는 어느 때보다 다채로웠죠.
물리학상은 양자컴퓨터의 핵심 기술을 완성한 미국 과학자 3명에게 주어졌고, 화학상은 혁신적인 다공성 물질인 금속-유기 골격체(MOF)를 만들어낸 국제 연구팀이 차지했습니다. 생리의학상은 우리 몸의 면역 시스템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지 비밀을 푼 3인의 과학자들에게 영광이 돌아갔습니다.
세 분야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를 탐구하고 조작한 연구라는 공통점이 있었는데요. 이번 수상자들의 발견이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그들의 업적이 품고 있는 미래를 쉽고 명쾌하게 풀어드립니다.
기자는 생명과학과를 나왔습니다. 학과 수업 중 ‘면역학’의 악명이 높았는데, 면역계가 엄청나게 복잡해서 외울 게 많았거든요. 그러니 10월 6일 발표된 2025년 노벨 생리의학상이 면역계 연구에 주어진 것도 놀랍지 않습니다. 면역계는 다양한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체계입니다. 그런데 이번 수상 업적은 좀 특이합니다.
면역계가 바깥으로부터 우리 몸을 지키는 게 아니라, ‘면역계로부터 우리 몸을 지키는 원리’를 발견했거든요.
면역세포가 베푸는 자비, 면역관용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면역계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작동하는 체계’입니다. 세균은 물론 바이러스, 기생충 같이 몸에 이상을 일으키는 외부 침입자를 인식하고, 그들을 효과적으로 무력화해 몸에서 제거해내는 것이 임무입니다.
그렇기에 면역계의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나’와 ‘이물질’을 구분해 침입자를 인식하는 능력인 겁니다. 아무리 강력한 대포를 지니고 있어도 적군이 아닌 아군에게 포화를 퍼붓는다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처럼요. 실제로 가끔 내 몸을 지켜야 할 면역세포가 공격하라는 이물질 대신 내몸을 공격하는 ‘팀킬’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물론, 몸은 면역계가 팀킬을 하지 않도록 막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면역관용(Immunologic tolerance)’, 혹은 ‘자기관용(Self tolerance)’이라 부릅니다. 면역관용은 어디서 작용하냐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먼저 ‘중추관용(central tolerance)’은 T세포나 B세포 같은 면역세포를 만드는 과정에서 일어납니다. 면역세포 생산 과정에서 자가 반응성, 즉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면역세포를 골라내 제거하죠. 그래서 중추관용은 면역세포가 만들어지고 성숙되는 1차 림프 기관인 골수나 가슴샘(흉선)에서 일어납니다. 이곳을 나와 이물질의 차이를 가르치는 학교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런데, 중추관용으로도 팀킬 면역세포를 걸러내지 못한다면요? 온몸으로 퍼진 면역세포가 팀킬을 저지르기 못하도록 막는 또 다른 면역관용 반응이 바로 202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말초관용(peripheral tolerance)’입니다. 신체의 말초 부위에서 일어나는 면역관용 반응이란 뜻이죠. 말초관용을 밝혀 노벨상을 탄 연구자는 메리 브렁코 미국 시스템생물학연구소 시니어프로그램매니저, 프레드 람스델 미국 소노마바이오테라퓨틱스 과학고문, 그리고 사카구치 시몬 일본 오사카대 석좌교수입니다.
말초관용의 열쇠를 발견한 시몬 교수
말초관용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여기서는 다양한 면역세포 중 ‘T세포’에만 집중해 설명하겠습니다. T세포는 우리 몸의 면역반응을 담당하는 중요 면역세포입니다. 감염된 체세포를 파괴하는 ‘킬러 T세포’, 다른 면역세포를 활성화시키는 ‘헬퍼 T세포’ 등 다양한 종류로 구성되죠.
T세포의 세포막에는 ‘T세포 수용체’라는 특수 단백질이 박혀있습니다. 이 수용체가 센서 역할을 해서, 감염된 세포 표면에 있는 바이러스 단백질과 결합하면 면역 반응을 개시하죠. 놀랍게도 각각의 T세포가 가진 수용체는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집니다. 수많은 다양한 유전자가 재조합되면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중추관용은 가슴샘에서 T세포가 만들어질 때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만약 새로 만들어진 T세포의 수용체가 가슴샘의 세포와 결합하게 되면, 그 T세포는 팀킬을 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돼 제거됩니다. 이 중추관용은 이미 1945년 학계에 처음으로 보고됐고, 중추관용의 메커니즘을 설명한 프랭크 맥팔레인 버넷과 피터 메더워는 196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죠. 그 이후로 면역학자들은 면역관용이 중추관용으로만 생성된다고 여겨왔습니다.
여기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 사카구치 시몬 교수입니다. 1980년대 초, 시몬 교수는 태어난 지 3일 된 생쥐에서 가슴샘을 제거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가슴샘이 사라지면 T세포 발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면역체계가 약해질 거라 생각했죠.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슴샘이 사라진 생쥐의 면역체계가 과하게 작동하기 시작했고, 불쌍한 생쥐는 다양한 자가면역 질환에 걸렸죠.
그렇다면 이 생쥐에게, 쌍둥이에게서 분리한 성숙된 T세포를 넣어주면 어떻게 될까요? T세포가 더 많아지니 면역체계가 더더욱 과열되려나요? 그런데 T세포를 주입받은 생쥐의 자가면역 질환이 가라앉았습니다. 이 실험 결과는 중추관용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면역관용이 있다는 사실을 암시했습니다. 즉, 면역세포 중 누군가가 과열된 T세포를 통제하고 가라앉혔다는 뜻이죠.
시몬 교수는 10년 넘게 바친 연구 끝에, 1995년 ‘조절 T세포’를 찾았다는 논문을 국제학술지 ‘면역학 저널(The Journal of Immunology)’에 발표합니다. 조절 T세포가 몸속 세포를 공격하는 T세포를 발견해 공격을 막는 역할을 했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학계는 조절 T세포의 결정적 증거를 원했습니다. 이 증거를 찾은 사람들이 다른 두 수상자, 메리 브렁코와 프레드 람스델이었습니다.
비듬투성이 쥐에게서 말초관용의 증거를 찾다
1990년대 당시 자가면역 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던 회사에서 근무하던 브렁코와 람스델은 ‘스커피(scurfy)’라 불리는 쥐 혈통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영어로 스커피는 ‘비듬투성이’라는 뜻인데, 이 생쥐들은 피부가 비듬처럼 벗겨지는 특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스커피 생쥐들은 태어나자마자 T세포가 자신의 장기를 공격하는 상태였습니다. 브렁코와 람스델은 스커피의 어떤 유전자가 돌연변이 됐는지 찾아낸다면, 해당 돌연변이가 자가면역 질환 치료제를 만드는 데 핵심 돌파구가 되리라 생각했죠.
둘은 X염색체의 약 50만 개 염기서열에 속한 20개의 유전자 중 실제 돌연변이를 찾아냈습니다. 2001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둘은 ‘FOXP3라는 이 유전자는 인간에게도 있고, FOXP3에 돌연변이가 있는 인간 또한 IPEX(심각한 자가면역 질환)를 앓는다’고 보고했죠. 나아가 2년 후 시몬 교수는 FOXP3가 조절 T세포의 발달을 조절한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즉, FOXP3 유전자가 조절 T세포의 기능을 조절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조절 T세포가 말초관용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조절 T세포가 작동하는 말초관용의 기작을 마침내 밝혀낸 것입니다.
‘조절 T세포’ 조절에 건강의 미래 달렸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이라면, 말초관용의 발견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쉽게 파악되실 겁니다. 조절 T세포를 조절할 수 있다면, 앞으로 여러 질환 치료의 신기원이 이뤄질 수 있을지도 모르거든요.
첫 번째 신기원은 자가면역 질환 분야입니다. 면역계가 우리 몸을 팀킬하면서 생기는 병을 자가면역 질환이라고 하죠. 꽃가루 알레르기부터 루푸스병, 자가면역성 갑상선질환, 제1형 당뇨병까지, 자가면역 질환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조절 T세포를 인위적으로 늘려주는 식으로 자가면역 질환을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조절 T세포 증식을 촉진하는 인터루킨-2 같은 물질을 투여하거나, 아예 조절 T세포를 증식시켜 다시 넣어주는 거죠. 면역반응을 줄이는 것이 중요한 또 다른 분야는 장기이식입니다. 장기이식의 걸림돌 중 하나는 수술받는 사람의 신체가 타인의 장기를 ‘이물질’로 받아들여 공격하는 경우입니다. 조절 T세포의 활성을 조절할 수 있다면 이 걸림돌을 넘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암세포 치료에서는 조절 T세포가 쳐놓은 벽을 뚫는 방식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면역계는 원래 종양을 인지하고 파괴해야 하지만, 어떤 종양은 조절 T세포를 활성화해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도 하거든요. 말초관용에서 시작된 연구가 의학계에 어떤 혁신을 가져다줄지, 미래가 더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한 눈에 보는 노벨상
팀킬 면역세포를 막는 방법
면역계는 대단하지만, 가끔씩은 잘못 작동한다. 외부 물질이 아닌 우리 몸을 공격하는 것이다. 이를 막는 메커니즘을 ‘면역관용’이라 부른다. 면역관용은 중추관용과 말초관용의 두 단계로 작동한다. 2025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말초관용을 발견한 연구자 세 명에게 수여됐다.
© The Nobel Committee for Physiology or Medicine. Ill. Mattias Karlén
T세포가 몸을 지키는 방법

01.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는 내부에서 바이러스를 분해한 뒤 조각을 세포막에 위치시킨다.
02.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T세포는 각자 특수한 모양의 ‘T세포 수용체’를 세포막에 단 상태다.
03. 만약 T세포 수용체와 바이러스 조각이 결합하면, T세포가 활성화되며 면역반응을 시작한다. 면역반응에는 다른 면역세포를 불러 모으거나 감염된 세포를 파괴하는 등의 반응이 포함된다.
팀킬 면역세포 제거하는 면역관용
면역관용 1단계: 중추관용

01. 가슴샘은 T세포를 만드는 기관이다. 가슴샘에서 만들어지는 T세포는 모두 표면에 각자의 특이한 T세포 수용체를 갖는다.
02. 가슴샘에 있는 세포 중에는 표면에 인체에서 만들어진 단백질 조각을 품고 있는 세포도 있다. 가슴샘에서 만들어진 T세포 중 팀킬을 할 수 있는 T세포의 수용체는 이 단백질 조각과 결합한다.
03. 가슴샘 세포와 결합한 T세포는 제거된다. 이 과정을 중추관용이라고 부른다. 중추관용을 통과한 T세포가 온몸으로 퍼져 면역반응을 한다.
면역관용 2단계: 말초관용

01. 중추관용 단계에서 걸러지지 않은 팀킬 T세포는 몸의 말초 부위에서 인체 세포와 결합해서 팀킬을 시작할 것이다.
02. 팀킬을 막기 위해 조절 T세포가 개입한다. 조절 T세포는 T세포의 팀킬을 인지하면 면역과정에 개입해 자가 면역반응을 막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