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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탐독] 세상을 들어 올리는 지렛대 과학자들의 실험실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달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드라마에서 그리는 20년 전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죠. 도대체 과학은 어떻게 우리의 생활을,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꿀 정도의 힘을 가지는 것일까요.
반 세기 전의 과학자들도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일부 과학자들은 실험과 경험에 바탕을 둔 합리적인 과학이론이 바로 그 힘의 원천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과학자들은 객관성과 개방성 등의 가치에 주목했습니다. 이들은 실험을 통해 이론을 끊임없이 검증하는 과학자 사회의 특성이 과학을 특별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지식을 함께 공유하고,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찾고 있습니다.

 

1881년 파스퇴르의 탄저균 연구


과학기술학자들은 과학지식이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고, 과학자들은 어떤 사람들인지를 직접 보고 싶어했습니다. 과학기술학자들이 과학자들의 공간인 실험실에 들어갔습니다. 마치 아프리카 부족을 연구하듯 과학자라는 특별한 부족을 옆에서 관찰하고 그 문화와 과학지식의 생산 과정을 탐구한 것이죠.
이들이 발견한 점은 놀랍게도 실험실에서 벌어지는 일이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과학자들은 계속해서 실험을 하고 이를 통해 이론을 검증하고 발전시켰지만, 이것만 봐서는 다른 지식에 비해 특별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세계 각국의 정부는 과학 지식을 생산하고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자원을 계속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번에 소개할 논문에서는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의 연구를 통해 실험실에서의 실천이 사회에서 큰 힘을 내는 방법을 탐구했습니다.
1881년 프랑스 언론의 관심은 파스퇴르의 실험실과 배양접시 속 미생물 군락을 향했습니다. 당시 유럽 전역의 농가는 이따금 발생하는 탄저병으로 인해 가축을 잃고 있었습니다. 이때 수의학과 접점이 없던 파스퇴르는 직접 농장 안으로 들어갑니다. 여기에서 수의사와 농부에게 농장과 탄저병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리고 농장에서 얻은 미생물의 포자를 가지고 자신의 실험실로 돌아왔습니다.
사회의 큰 문제였던 탄저병의 원인은 실험실 안에서 밝혀졌습니다. 배양접시에서 자란 미생물, 탄저균입니다. 도저히 다룰 수 없었던 탄저병도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파스퇴르는 탄저균의 독성을 약화한 후 동물에 주사했습니다. 이들은 탄저병에 걸리지 않거나 약하게 앓았고, 독성이 있는 원래의 탄저균에 노출되더라도 죽지 않았습니다. 파스퇴르는 그의 실험실에서 원하는 만큼 탄저병을 발생시키고, 또 예방할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입니다.

 

실험실에서 프랑스 전역으로 확장되다


논문의 저자인 브뤼노 라투르 프랑스 파리정치대 교수는 이후의 이야기에 주목했습니다. 실험실에서 얻은 이 기술은 다시 농장으로 나가서 같은 결과를 보여야만 사람들이 파스퇴르를 믿게 될 테니까요. 실험실에서와 같은 결과를 얻는 방법은 바로 농장을 실험실로 만드는 겁니다. 파스퇴르는 프랑스 푸이 르포르의 한 농장에서 실험을 계획합니다. 동물의 일부에는 약화시킨 탄저균을 주사하고 다른 동물들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탄저병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가축은 당연히 파스퇴르의 탄저균 주사를 맞은 동물이었습니다. 이렇게 파스퇴르의 실험실에서 진행된 실천이 농가로 확장되면서 파스퇴르의 실험은 성공하게 됩니다.
파스퇴르의 사례에서 실험실의 경계는 파리에 위치한 작은 공간이기도 했다가 프랑스 전역의 농가로 확장되기도 합니다. 라투르는 이처럼 실험실의 경계가 흐려지고 과학의 힘이 사회 전체로 확산되는 과정이 ‘번역’과 ‘네트워크’를 통해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파스퇴르는 농가에서 일어나는 일을 실험실에서 미생물학이라는 자신의 언어로 번역했습니다. 그렇게 개발한 기술은 또 다른 과학인 통계학과 도량형학이라는 네트워크를 통해 배포돼 탄저병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무기가 됐습니다. 탄저병이 얼마나 발생했는지, 그의 연구 이후에 탄저병으로 죽은 가축의 수가 얼마나 줄었는지를 보여줄 통계가 없었다면 파스퇴르는 자신의 기술을 다른 이들에게 설득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바로 이 네트워크를 통해서 실험실에서의 성공이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것이죠.

마음껏 실패할 수 있는 공간


그렇다면 이렇게 확산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라투르는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외부인의 눈을 피해 마음껏 실패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과학자들이 항상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과학자들이 더 정직하고 엄격해서가 아니라 바로 마음껏 실수할 수 있는 실험실이 있는 덕이라는 것입니다. 실험실에서 실수를 반복하다가 확실성을 얻을 때야 비로소 밖으로 나온다는 것이죠. 그래서 라투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에게 실험실을 달라. 그러면 내가 세상을 들어올리리라.”
마지막으로 논문에서 라투르는 중요한 통찰을 말합니다. ‘믿을 만하며 권위를 가진 대표가 되는 것’이 정치라면 파스퇴르는 완전히 정치적인 인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파스퇴르는 실험실에서 탄저병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얻고 이를 실험실 밖,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했습니다. 파스퇴르는 탄저병과 연관된 모든 것들(탄저균, 가축, 수의사, 농부 등)의 대변인이 된 것입니다. 실험실의 내부와 외부의 구분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과학과 정치의 이분법이 파괴되고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정치란 우리들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국회에서 법을 만드는 것을 포함해서 사람들의 보편적인 가치관과 행동 양식 등 모든 것을 아우릅니다. 그리고 실험실 안에서 수차례 실패를 극복하고 사회로 나온 과학자들의 연구는 사람들의 삶에 이정표이자 지침이 됩니다. 라투르와 이후 과학기술학자들의 연구는 과학과 법, 민주주의의 관계로 점차 확장하기 시작합니다.
한때 과학과 정치는 엄격하게 분리된 것, 과학은 정치로부터 독립된 순수한 것이어야만 한다는 믿음이 있었으나 이제는 이 둘의 분리를 말하는 과학자는, 적어도 과학기술학 분야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아직도 실험실에 있는 과학자들이 사회와 유리되어 자신만의 호기심을 좇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요, 아니면 세상을 바꿀 힘을 만들어내는 이들로 보이나요. 이제 다시 실험실을 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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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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