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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기후위기 시대의 ‘뉴노멀’ 터뷸런스 대비 현장에 가다

    박동현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국내 항공기들이 맞닥뜨린 난기류는 무려 2만 7896건이었다. 2023년에 비해 35.6% 증가한 수치로, 항공기 운항 횟수가 늘어난 것을 고려해도 가파른 상승이다. 기후위기가 더욱 심각해질 다음 세기엔 비행기를 목숨 걸고 타야 할까. 다행히 과학기술 현장에선 기후위기 시대의 ‘뉴노멀’에 발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조종사를 양성하는 비행학교, 그리고 하늘길을 관제하는 항공기상청에 다녀왔다. 

     

    박동현

    5월 27일 한국항공대 비행교육원 소속 학생들이 조종사가 되기 위한 비행 시뮬레이터 훈련을 받고 있다.

     

    “Ready to departure(이륙 준비).”

     

    5월 27일 방문한 경기 고양의 한국항공대 비행교육원. 김인규 비행교육원장의 안내에 따라 시뮬레이터 훈련장에 들어섰다. 그곳에선 예비 조종사들이 비행 시뮬레이션에 한창이었다.


    “마치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는 것 같아요.” 예비 조종사들이 관제사와 소통하는 모습은 언뜻 보면 VR기기를 쓴 채 비행 게임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김 원장은 이 말에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모의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경비행기 C-172를 가상 현실에서 조종하는 훈련입니다. 비행기 내 조종 환경을 똑같이 모사해 비행을 체화하는 과정이죠. 비행은 자칫 작은 실수에도 큰 인명 피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훈련을 숱하게 반복합니다.”


    비행교육원에서는 이렇게 한국항공대 소속 예비 조종사들의 항공 이론과 모의 비행 등을 교육한다. 경북 울진과 제주의 비행교육원 분원에서는 실제 항공기를 타고 훈련한다. 국내 항공사에서 26년을 근무했던 김 원장은 2021년부터 이곳 교육원에서 비행 교육을 이끌며 수많은 조종사를 배출했다. 그런 그도 나날이 변화무쌍해지는 기후와, 그로 인해 나타나는 터뷸런스(난기류)는 큰 고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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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행기 조종석 계기판은 비행 중인 항공기의 상태와 환경 정보를 조종사에게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조종사들이 주시하는 주요 정보로는 고도계, 속도계, 방위계, 엔진 계기, 항법 장비 등이 있다.


     
    조종사에겐 ‘음주 차량’ 같은 난기류

     

    “조종사에게 난기류는 도로에서 자동차 운전을 하던 도중 갑자기 음주 차량을 마주하는 것과 같아요.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일이죠. 갈수록 심해지는 난기류 때문에 교육에도 고심이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난기류는 이미 조종사와 승무원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다. 항공사 재직 당시 근무 기간의 절반 이상을 안전 부서에서 근무했던 김 원장은 “전체 사고 중 난기류 사고가 단연 가장 많았다”고 말했다. “1년에 최소 몇 건씩은 난기류 관련 사례들이 꼭 발생해요. 아직은 극적인 차이는 없지만, 향후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기후위기 시나리오처럼 흘러간다면 난기류 사고는 늘 수밖에 없습니다. 난기류와 마주할 때마다 안전벨트를 매지 못한 채 무방비인 객실 승무원이 주로 많이 다치고요.”


    IPCC는 기후변화와 관련한 전 지구적 위험을 평가하고 국제적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기구다. IPCC는 미래의 기후를 기후위기 시나리오별로 분류한다. 김 원장이 언급한 경우는 SSP5-8.5 시나리오로, 인구와 화석연료 사용이 지금처럼 계속 늘어나는데, 온실가스 감축 노력은 없는 경우다. 기상 전문가들은 SSP5-8.5 시나리오에서는 청천 난류가 2배가량 늘어날 것으로 진단한다. 난기류 관련 교육의 필요성이 커지는 이유다.
    현재 항공사에서는 조종사들에게 1년에 두 번, 상반기와 하반기에 걸쳐 주기적으로 보수 교육을 시킨다. 기상 관련 교육 역시 매년 꾸준히 진행한다. 관제 센터와 소통하기 위한 항공 용어와 기상 정보 등을 주기적으로 반복 학습하는 것이다. 하지만 난기류에 대응하기엔 여전히 미흡하다고 김 원장은 말했다. 그는 “이상기후에 대한 내용도 교육에 속해 있지만, 정확히 난기류에 대응하는 교육은 부족한 실정”이라며 “난기류 대응 비행은 실전에서 훈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말했다. 훈련으로 돌연한 난기류 상황을 재현하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자료: 한국항공운항학회지

    난기류를 맞닥뜨린 항공기의 기압고도(ALT) 그래프를 보면, 난기류 진입 평균 80초 전 (x축의 -80 지점 부근)부터 변동 폭이 커지기 시작해, 진입 직전에는 초당 400~500ft에 달하는 급격한 변화율을 보인다. 이는 기압고도의 변동 폭이 커지는 걸 인지하면 난기류 진입 전에 예측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예측 못한 흔들림, 1초의 대응으로 막는다

     

    “몇 초라도 미리 알고 피하는 법밖에 없어요.” 조종사들은 난기류를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묻자, 김 원장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하지만 청천 난류나 대류운 근처 난류의 경우 맑은 날에도 발생하며, 맨눈으로 식별하기도 어렵다. 그럼 어떻게 잘 피해야 한다는 걸까. 그는 이 질문에 항공난류 조기 인지 가능성에 대한 자신의 연구 논문으로 답했다.


    그는 2021년 보이지 않는 난기류를 사전에 예측하기 위해 어떤 데이터를 확인해야 하는지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김 원장은 항공사에서 수집한 실제 비행 데이터를 활용했다. 조종간을 잡은 조종사의 시야에는 수십 개의 수치들이 보인다. 항공기 고도와 엔진 상태, 기상 정보 등 여러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그중 김 원장은 난기류를 앞두고 어떤 수치가 변화하는지 알아봤다. doi: org/10.12985/ksaa.2018.26.4.036


    이를 위해서 QAR(Quick Access Recorder) 데이터를 들여다봤다. QAR은 마치 USB처럼 항공기의 각종 운항 데이터가 담긴 장치다. 모든 비행기에는 QAR이 달려 있어 비행할 때마다 데이터가 기록된다. 이착륙 때는 1초마다 데이터가 저장되고, 장거리 항공 시에는 4분에 한 번씩 저장된다. 비행 도중 항공기 흔들림이나 난기류 등의 변수가 발생하면 1초 간격으로 다시 데이터가 기록된다. 항공기의 블랙박스는 오로지 국토교통부의 사고 조사 시에만 열 수 있기 때문에, 김 원장은 항공사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QAR을 연구용 데이터로 택했다.


    김 원장은 QAR에 저장되는 여러 가지 데이터 중 ‘조종사들이 식별 가능’하고 ‘계기판에서 쉽게 보이’며, ‘터뷸런스와 연관된’ 데이터를 몇 개로 추려냈다. 그가 주목한 변수는 총 5개. 항공기의 기압고도(ALT), 지시대기속도(IAS), 수직 강하율(IVV), 외부 기상 온도(SAT), 받음각(AOA)이다.


    김 원장은 “난기류를 앞둔 항공기는 고도와 자세가 돌변하고 속도도 급변한다”면서 “이때 수직 강하율 같은 수치들이 확연히 치솟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종사들이 계기판에서 이런 수치들을 미리 인지하고 있으면 난기류를 만나기 전에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일평생 조종간을 잡던 그가 난기류에 대한 논문까지 쓴 이유는 단 하나다. 1초라도 미리 알면 조종사를 비롯한 승무원과 승객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김 원장의 향후 목표는 QAR 데이터를 이용해 조종사들의 ‘난기류 리터러시’를 키우는 것이다. 그는 조종사들이 난기류를 미리 감지할 수 있는 판단력을 스스로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본적으로는 관제센터와 소통하며 미리 난기류를 파악해 회피하거나 우회하도록 교육합니다. 하지만 비행 시 수많은 돌발상황이 동반되기에 회피할 수 없는 경우도 많죠.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난기류를 뚫고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다만 미리 알고 맞는 것과 전혀 모른 채 맞닥뜨리는 건 차이가 커요. 제일 위험한 게, 예상 못한 상황에서 난기류에 들어갔을 때죠. 그래서 난기류 예측에 대해 연구하게 된 겁니다. 난기류로 기체가 흔들릴 거라는 걸 기내 방송으로 예고하면 부상자를 훨씬 줄일 수 있거든요. 조종사들이 난기류를 조금이라도 먼저 인지하도록 교육을 개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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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뷸런스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개개인이 안전 수칙을 지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김인규 비행교육원장은 “안전벨트만 착용해도 부상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2027년, 난기류 예측은 ‘확률’로 본다

     

    “2027년에는 시스템에 난기류 생성 확률이 실시간으로 표시될 겁니다.” 


    5월 30일 서울역에서 만난 김애란 항공기상청 주무관은 난기류 대비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항공기상청은 항공기의 안전과 경제적 운항을 위한 기상 정보를 수집하는 기상청 소속 기관이다. 김 주무관이 언급한 시스템은 ‘스마트 항공 예보 시스템’으로, 난류를 예측할 수 있는 지수 총 70개를 참고해 실시간으로 난기류 확률을 보여준다.


    난기류 등 기상 상황을 알리는 항공 예보 시스템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공항과 항공사는 이런 시스템을 통해 날씨 현황을 즉각 판단할 수 있다. 다만 현재는 난기류의 유무만을 예측 가능하다. 이런 예측이 빗나가면, 난기류가 없다고 판단된 항공편도 예상치 못한 난기류와 마주할 수 있다. 


    항공기상청은 퍼센트(%) 확률로 난기류 발생 여부를 보다 세밀하게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 일종의 ‘확률 내비게이션’인 셈이다. 레이더 관측 자료를 활용한 EDR(표준 난류 지표) 탐지 기술, 인공지능(AI) 및 위성 영상을 활용한 대류운 부근 청천 난류 탐지 기술, EDR 관측 자료를 활용한 항공 난류 예측 모델 등 현재 항공기상청에서는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다. 기상 관측 기술 개발팀에서 근무했던 김 주무관은 “AI에 난기류와 대류운 등의 구름 형태를 입력해 한국의 주요 항로에서 난기류가 생성될 확률을 학습시키고 있다”며 “주요 항로의 난류, 대류운을 예측해서 2027년도부터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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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기류는 막을 방법이 없어요. 아무리 예측 기술을 개발하고 회피 교육에 나서도 한계가 있죠. 결국엔 우리가 기후변화에 좀 더 신경쓰는 방법뿐입니다

     

    자료: 항공기상청
    항공기상청은 ‘KTG(한국 터뷸런스 가이던스)’라는 난기류 예측 일기도를 제공하고 있다. 흰색은 안전, 초록색은 약한, 노란색은 중간 강도의, 빨간색은 심한 난기류가 있을 것으로 예측되는 지역이다. 2027년에는 난기류 발생 여부를 퍼센트 확률로 더 정밀하게 예측하는 시스템을 공개할 계획이다.
     

     

    결국은 바뀔 하늘길, ‘기후 보호’가 유일한 답

     

    기후위기 시대, 난기류는 인간의 노력으로 막기 어려운 영역에 있다. 결국은 어떻게 대응하는가다. 국토교통부는 항공사와 난기류 정보 공유 확대, 조종사와 승무원 등 항공 종사자 역량 강화, 난기류 위험성 대국민 홍보, 국제기구와의 공조 등 난기류에 대한 대책을 2024년 8월 발표했다.  


    항공기상청은 난기류를 예측할 수 있는 고성능 AI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며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 중이다. “태풍 예측은 현재 기술력으로도 가능한데 대류운 근처의 난기류 예측은 어려워요. 대류운 근처에서 발생하는 난기류는 대류운에서 상당히 떨어진 지점에서 발생하기도 해서 까다롭거든요. 난기류 생성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고성능 AI가 필요한 이유죠.”


    기후위기로 강력해지는 태풍 또한 우려 대상이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엔 구름 띠가 생기는데, 조종사들은 구름 띠가 있을 땐 태풍이 끝났구나 하며 그냥 안심하고 가요. 하지만 태풍 가장자리에 난기류의 영향이 그대로 남아있기도 합니다. 태풍 가장자리에 발생하는 난기류는 레이더로도 안 잡혀요. 이런 난기류까지 모두 잡아낼 수 있도록 연구를 계속할 계획입니다.”


    김 주무관은 결국엔 비행기가 다니는 하늘길이 바뀔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며 인터뷰를 마쳤다. 


    “현재는 난류 예측 시스템에 의해 난류가 있으면 비행기가 얼마간 우회 비행하는데, 해가 갈수록 우회하는 거리가 더 길어지고 있습니다. 우회 거리가 길어지면 항공 거리가 더 늘어나 항공이 지연되고 비용이 증가하겠죠. 뿐만 아니라 항공기 이착륙 시에도 난류의 일종인 ‘급변풍(방향과 속도가 갑작스럽게 변하는 바람)’이 더 늘어나고 있어요.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회항하거나 착륙하지 못한 채로 하늘에서 ‘뺑뺑이’를 도는 사례도 증가 추세죠. 2019년부터 2023년까지 한국에서만 급변풍으로 102건이나 회항했어요. 결국엔 영구적으로 하늘길을 바꾸는 악수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동시에 기후 보호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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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7월 과학동아 정보

    • 박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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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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