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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TEST][PART1] 해저 3000m 어둠 속에서 빛난 초고에너지 중성미자

▲ KM3NeT
 

 

옥빛으로 반짝이는 아름다운 이탈리아 지중해, 이곳 약 3000m 아래 심해에는 특이한 장치들이 매달려있다. 유럽 연구자들이 지중해에서 중성미자를 관측하기 위해 설치한 ‘큐빅킬로미터 중성미자검출기(KM3NeT)’다. 2023년 2월 13일, 아직 설치 중이던 KM3NeT에 중성미자 하나가 남긴 흔적이 검출됐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큰 에너지를 가진 중성미자였다. 이 중성미자의 존재를 두고 학계는 흥분과 혼란에 휩싸였다.

 

“그물에 고래가 잡힌 격입니다. 그것도 대왕고래가요.”


2월 28일, 중앙대 연구실에서 만난 하창현 중앙대 물리학과 교수는 2월 12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된 이번 고에너지 중성미자 발견을 두고 이렇게 평했다. 중성미자는 표준 모형이 예측하는 17개 기본입자에 포함된다. 하지만 다른 물질과 거의 상호작용 하지 않아, 있어도 찾기 힘든 ‘유령 입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한 주인공은 지중해에 중성미자 검출기를 설치해 연구 중인 ‘큐빅킬로미터 중성미자검출기(KM3NeT)’ 국제 공동연구팀이다. 발표에 따르면 연구팀은 지난 2023년 2월 13일, 사상 가장 강력한 중성미자의 흔적을 검출했다. doi: 10.1038/s41586-024-08543-1 ‘KM3-230213A 사건’이라 부르는 이 관찰에서 검출된 고에너지 중성미자의 에너지는 220페타전자볼트(PeV·1PeV는 1000조 eV)에 달한다. 전자볼트는 입자의 에너지를 측정할 때 쓰는 단위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동되는 가장 강력한 입자가속기인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에서 만들 수 있는 최대 에너지가 13.6테라전자볼트(TeV·1TeV는 1조 eV) 수준이다. 즉 LHC로 낼 수 있는 에너지보다 약 1만 6000배 강한 에너지를 가진 중성미자가 포착된 것이다. 그렇다면 KM3NeT 연구팀은 어떻게 ‘유령 입자’ 관찰에 성공했을까.

 

▲ KM3NeT
고에너지 중성미자, 지중해 심해에서 검출되다
큐빅킬로미터 중성미자검출기(KM3NeT)는 크게 프랑스 지중해의 ORCA와 이탈리아 지중해의 ARCA로 나뉜다. 2023년 2월 13일, ARCA에서 고에너지 중성미자가 검출됐다.

 

유령 입자, 물속 희미한 빛으로 찾았다


중성미자는 다른 입자와 거의 충돌하지 않는다. 우주의 네 가지 기본 힘 중 약력과 중력하고만 미약하게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의’가 0%를 의미하진 않는다. 중성미자는 엄청 많으니 충분한 크기의 검출기를 만들고 오랜 시간 기다리면 검출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KM3NeT 연구팀이 운영하는 두 중성미자 검출기, ORCA와 ARCA는 중성미자의 충돌을 ‘체렌코프 현상’을 통해 검출한다. 물과 같은 매질 속에서는 빛의 직진이 방해를 받는다. 그래서 빛이 다른 입자들보다 느리게 움직이기도 한다.이때 매질 속 빛의 속도보다 전하를 가진 입자의 이동속도가 빠르면 일종의 광학적 ‘소닉 붐’현상처럼 푸른빛이 나온다. 이것이 체렌코프 현상이다. 물속을 지나던 중성미자가 물 분자와충돌하면 전자나 뮤온, 타우 입자 등이 생겨난다. 이 입자들이 빠른 속도로 튀어 나가며 체렌코프 빛을 뿜어낸다. 이 빛이 중성미자가 존재한다는 간접 증거가 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ORCA와 ARCA는 빛 한 점 들지 않는 수심 2450~3500m의 지중해 심해에 설치됐다. ARCA에만 총 12만 8340개의 빛 검출기(광증배관)가 4140개의 디지털 광학 모듈에 나뉘어 1세제곱킬로미터(km³)가 넘는 구역에 건설된다. KM3NeT의 이름에 ‘세제곱킬로미터(KM3)’가 들어가는 이유다. 만약 고에너지 중성미자가 다른 입자와 충돌해 체렌코프 현상이일어나면 여러 광증배관에서 순서대로 빛을 관측해 중성미자가 어디서 왔는지, 에너지는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가장 연약한 빛까지 볼 수 있는 수만 개의 눈이, 빛이 전혀 들지 않는 심해에 점점이 설치된 것이다. 오직 중성미자가 내는 미약한 빛만을 바라보기 위해서.


ARCA 검출기가 겨우 10% 정도 설치됐던 2023년 2월 13일, 검출기에 지표면과 거의 평행한 방향에서 입사한 고에너지 뮤온이 검출됐다. 이 방향이 결정적인 단서였다. 뮤온은 원래 대기권에서도 많이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대기권에서 만들어진 뮤온은 검출기에는 수직으로 입사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검출된 뮤온은 지표면 암반을 통과하는 수평 궤도를 지나왔다. 뮤온은 암반에서는 차폐되기 때문에 대기 뮤온은 이 각도에서는 검출될 수가 없다. 결론은 하나였다. 우주에서 온 중성미자가 암반을 뚫고 지나가다, 지중해의 물 분자와 충돌해서 뮤온을 만들었다는 것. 고에너지 중성미자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 KM3Ne
큐빅킬로미터 중성미자검출기(KM3NeT)에 쓰이는 디지털 광학 모듈들이 설치를 기다리고 있다. 디지털 광학 모듈에는 31개의 광증배관이 장착된다.

 

중성미자, 너무 강력해서 혼란스럽다


“굉장한 이벤트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많은 중성미자 연구자는 흥분과 동시에 혼란도 느끼고 있습니다.”


하 교수는 이번 고에너지 중성미자 검출을 둘러싼 연구자들의 반응을 이와 같이 요약했다. 매우 특이한 사건이 발생한 만큼, 여러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질문은 이미 약 10년 전부터 먼저 가동된 다른 중성미자 검출기인 ‘아이스큐브’에서는 왜 이런 고에너지 중성미자를 발견하지 못했는가다. 아이스큐브 중성미자 관측소는 남극 대륙의 아문센-스콧 기지에 건설된 중성미자 관측소다. 2010년 말 건설이 완료돼 지금까지 15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중성미자를 관측해 왔다. 하 교수도 이곳에 몸담고 중성미자를 연구했다.


아이스큐브 또한 KM3NeT처럼 우주에서 온 중성미자를 관측한다. 바닷물 대신 검출기를 남극 빙하에 뚫은 코어 속에 넣고 중성미자를 관찰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실제로 아이스큐브 또한 2018년 고에너지 중성미자를 관찰해 발원지를 찾아낸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doi: 10.1126/science.aat1378 그러나 이번에 KM3NeT이 검출한 고에너지 중성미자의 에너지는 아이스큐브가 관찰한 가장 강력한 중성미자 에너지의 10~20배가 넘는다. 오랜 기간 중성미자를 관측해 신뢰도가 높은 아이스큐브도 한 번도 잡아내지 못한 고에너지 중성미자를 KM3NeT이 검출할 확률이 낮다는 의미다.


전문가 사이에는 이 상황에 관해 세 가지 의견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진짜’다. “단지 아이스큐브가 운이 없었고, 우연히 ARCA에서 고에너지 중성미자가 검출된 거죠. 확률이 꽤 낮지만 가능한 결과예요.” 하 교수의 설명이다. KM3NeT 연구팀도 논문에서 다른 중성미자 관측소에 관측되지 않고 KM3NeT만 고에너지 중성미자를 관측할 확률이 0.5% 정도라 계산했다. 두 번째는 ‘실수’다. “어쩌면 KM3NeT의 작동 방식을 더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KM3NeT은 지금도 건설 중인 검출기고, 물은 얼음과는 성질이 다른 매질이라 여기에 적응해야 하죠.” 마지막, 또 다른 하나의 가능성은 새로운 물리 현상이다. 고에너지 뮤온이 중성미자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표준모형이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물리 반응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성미자와는 관련 없지만 어쩌면 가장 흥분되는 가능성이죠.”

 

▲ KM3NeT
이번에 검출된 고에너지 중성미자의 에너지는 220페타전자볼트에 달한다.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입자가속기가 만들 수 있는 최대 에너지보다 약 1만 6000배 강한 에너지를 가진 중성미자가 포착된 것이다.

 

▲ KM3NeT
지중해에 설치되고 있는 큐빅킬로미터 중성미자검출기(KM3NeT)의 디지털 광학 모듈. 렌즈처럼 보이는 하나하나가 빛을 검출하는 광증배관이다.

 

초거대 블랙홀이 만들었을까


KM3NeT이 검출한 신호가 진짜 우주에서 온 고에너지 중성미자의 것이라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누가 이 고에너지 중성미자를 만들었을까. 천문학자들이 이번 검출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고에너지 중성미자가 지금까지 발견된 적 없는 새로운 천체를 암시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주를 보는 천문학자들의 주된 관측 수단은 전자기파다. 가시광선을 비롯해 적외선부터 감마선에 이르는 다양한 전자기파로 우주에서 벌어지는 여러 현상을 관측한다. 그런데 우주는 가시광선 말고도 다양한 종류의 입자와 파장으로 차 있다. 많고 많은 중성미자도 그런 입자 중 하나다. 천문학자들의 입장에서 중성미자는 ‘우주를 볼 수 있는 새로운 창’ 역할을 한다.


실제로 그런 일이 1987년에 있었다. 1987년 2월 23일, 남반구에서 보이는 대마젤란은하의 타란툴라 성운에서 초신성이 발견됐다. 1987A로 명명된 이 초신성은 폭발하면서 빛과 함께 고에너지 중성미자를 방출했는데, 전 세계의 여러 중성미자 검출기에서 초신성에서 나온 중성미자가 검출됐다. 특히 일본의 ‘카미오칸데-II’ 실험은 2월 23일 오전 7시 35분경 10초 동안 11개의 고에너지 중성미자 신호를 검출했고, 중성미자가 온 방향이 초신성이 폭발한 방향과 일치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중성미자 천문학’의 시대가 활짝 열리는 순간이었다.


천문학자들은 이번에 발견된 고에너지 중성미자가 초신성보다 훨씬 강력한 종류의 천체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라 추측한다. 유력한 후보 중 하나는 ‘블레이저(Blazar)’다. 블레이저는 은하 중심의 초대질량 블랙홀인 활동성은하핵이 지구를 향해 뿜어내는 제트다. 블랙홀이 은하 물질을 빨아들이면서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고에너지 양성자, 감마선과 함께 고에너지 중성미자 등의 다양한 형태로 뿜어낸다.


그 말인즉슨 고에너지 양성자, 감마선, 고에너지 중성미자 세 가지가 동시에 우주의 같은 방향에서 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만 있다면 고에너지 중성미자의 기원을 알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누구와도 상호작용하지 않으려 드는 중성미자의 사회성 부족이 여기서 빛을 발한다. “양성자의 경우 전하를 가지고 있어서, 우주 공간을 가로질러 오면서 자기장에 노출되면 궤도가 꺾입니다. 우주에서 누군가 고에너지 양성자를 만들어서 던진다는 건 알 수 있지만, 어디서 던지는 건지는 알 수 없죠.” 그에 비해 중성미자의 궤도는 천체 현상이 일어난 위치에서 지구까지 일직선이다. 중성미자가 검출된 방향에서 감마선을 내뿜는 천체가 발견된다면, 이 천체가 고에너지 중성미자를 만들었을 확률이 높아진다. 하 교수는 이렇게 다양한 신호를 이용해서 우주를 관측하는 방법을 ‘다중 신호 천문학’이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입자를 내뿜는 천체 하나를 찾기 위해 입자물리와 천체물리학 커뮤니티가 뭉치는 거죠. 감마선과 고에너지 양성자, 고에너지 중성미자를 묶을 수 있는 천체를 찾는 것이 중성미자 천문학의 목표 중 하나입니다.”

▲ Kamioka Observatory, ICRR (Institute for Cosmic Ray Research), The University of Tokyo
 
▲ NASA, ESA, CSA
일본의 중성미자 검출 실험 슈퍼 카미오칸데(왼쪽)의 모습. 일본의 물리학자 고시바 마사토시는 슈퍼 카미오칸데 이전에 진행된 ‘카미오칸데-II’ 실험으로 초신성 1987A에서 나온 중성미자를 검출해 200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오른쪽은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이 촬영한 1987A의 고해상도 적외선 이미지.

 

“또다시 검출되면 천문학을 바꿀 것”


중성미자 천문학 연구자들은 이번 고에너지 중성미자 검출에 관해 아직은 어떤 결론을 내리는 것이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고에너지 중성미자가 겨우 하나 검출됐고, 어디서 왔는지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KM3NeT 연구팀은 중성미자가 온 방향에서 감마선 천체 등 12개 정도의 후보 천체를 탐색했지만 중성미자의 기원이 되는 천체를 판별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우주 어딘가에 지금까지 인류가 관측하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천체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까지 아이스큐브가 검출한 우주 중성미자 중에서도 기원이 파악된 건 15%에 불과하다.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왜 220PeV의 고에너지 중성미자만 검출됐느냐는 것이다. 확률적으로는 조금 더 낮은 에너지의 중성미자들이 더 많이 검출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 교수의 ‘그물’ 비유를 빌리자면, 중성미자를 잡는 그물에서 작은 물고기는 안잡히고 대왕고래 한 마리만 걸린 상태인 셈이다. 현재 이론적으로 추측되는 중성미자 생성 메커니즘이 맞다면, 이런 고에너지 중성미자만 만들어지는 게 어색하다.


결국은 에너지에 따른 우주 중성미자의 데이터가 더 모여야 한다. 그래야 우주를 헤엄치는 다양한 중성미자 중 작은 물고기와 큰 물고기는 몇 마리 있고, 고래는 몇 마리 있는지 우주 중성미자라는 생태계가 더 명확히 그려질 수 있다. 앞으로 KM3NeT과 아이스큐브에서 진행될 관측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다. “만약 또다시 고에너지 중성미자가 검출된다면, 중요한 부분은 검출 방향이 될 겁니다. 비슷한 방향에서 고에너지 중성미자가 다시 검출된다면, 아마 천문학을 바꿀 거대한 발견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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