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컴퓨터와 친해져라. 그후의 문제는 사용자의 노력과 창의성에 달려 있다.
컴퓨터는 전자 계산기에서 발전한 것이고, 그 궁극적 목표는 인간생활을 편하게 해주기 위한 것이라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흔히 컴퓨터라는 말만 들어도 겁부터 집어먹고 압도 당하거나 컴퓨터에 관하여 아는 것이 별로 없으면서도 마치 스위치나 키보드만 두드리면 모든 일을 척척 해내는 만능기계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된다.
약 4년 전에는 나 자신도 컴퓨터에 관하여 문외한이었다. 의대 졸업 후, 무의촌에 근무하면서 한가한 시간을 메꾸어 줄 소일거리 대상으로 선택한 것이 애플기종의 컴퓨터였는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나는 이 친구에게 사로 잡혀 밤을 하얗게 새워가며 키보드를 두드리게 되었다. 비록 이과계통의 공부를 하였다고 하지만, 컴퓨터라는 단어조차도 생소했던 터라 처음 시작할 때는 그저 이 괴물이 무엇하는 기계인가를 아는 정도로 만족할 생각이었다. 더구나 시골에서 근무를 하는 형편이고 대도시에 나가는 것이 큰 행사로 생각 될 처지여서 어차피 독학을 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모니터와 애플 본체 그리고 디스크드라이버와 조이스틱만을 거금(?)을 투자하여 시골 보건지소에 설치하여 놓았다.
처음 애플 앞에 앉아 전원 스위치를 켤 때의 흥분과 긴장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맨 처음 돌려 보았던 프로그램이 Know Your Apple 이라는 애플 입문 패키지었고 Lode Runner라는 게임도 밤 늦도록 했다. 그러나 그 날 이후로 나는 컴퓨터가 제공하여주는 무궁무진한 세계에 빠져 들기 위하여 마치 수험생이 된 기분으로 공부를 하게되었다. 각각의 기계 명칭에서부터 시작하여 하드웨어를 이루는 작은 부분의 기능들, 각종언어, 워드프로세서의 의미와 사용법, 데이타베이스, 스프레드 시트, 그래픽, DOS, CP/M, 프린터 사용법 등 이러한 개념들을 이해하고 실제로 프로그램들을 복사해 와서 사용서를 보면서 실행시켜 보는데는 남다른 고생과 노력이 뒤따랐다. 써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구하기 위하여, 이해가 가지않는 부분들을 배우기 위하여 서울과 광주를 헤매고 다닌 일은 웃지못할 추억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컴퓨터에 관하여서는 항상 즐거웠다.
요즈음 나는 IBM PC/XT 호환 기종을 사용하고 있다. 주로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하여 편지나 보고서 등의 서류를 작성하고, 데이타베이스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도서목록이나 저널 등의 목록을 관리한다. 통계나 도표 등이 필요한 때는 기존의 프로그램들을 응용하여 쓰고, 가끔 심심 풀이로 게임도 즐긴다. 그러나 나는 이 기계가 할 수 있는 기능의 20%정도도 활용을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우선 보다 큰 기능을 하기 위해 필요한 주변 장치들의 가격이 개인이 부담하기에는 너무 비싸다는 것. 전문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는 것(한글로 된 프로그램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또한 전반적인 컴퓨터에 관한 인식의 부족 때문에(의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특히)아직도 비능률적이고 답습적인 사무처리가 주를 이루고 있어 컴퓨터 사용의 기회가 적다는 점 등을 들수 있겠다. 물론 이외에도 한글처리의 통일화, 순수 국산 기종의 생산과 보급, 전체 국민의 컴퓨터 교육과 질적 향상 등 숱한문제점들이 산재해 있으나 아마추어에 불과한 나 자신이 언급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현재 각 병원과 의학대학에는 컴퓨터 단층 촬영기를 위시하여 엄청난 양의 기계들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컴퓨터 처리되고 있다. 그러나 그 성능이 우수하고 최첨단의 기술 집약체인 만큼 고장이 생겼을 때 속수무책인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본다. 이 것은 특수과학 기술 분야에 대한 낙후성도 원인이 있겠지만, 병원의 주역인 의사들 자체의 컴퓨터나 전자공학에 관한 무관심 또한 한 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점차 컴퓨터에 관한 이해가 늘어서 몇몇 병원이나 대학에서는 컴퓨터가 제몫을 단단히 해내고 있기는 하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컴퓨터를 전공하지 않은 전문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개인용 컴퓨터 사용에 관하여 굳이 조언을 드린다면, 우선 경험자와 상의하여 용도에 알맞는 기종을 구비하고(요즘은 각종 신용 카드를 이용하여 장기 분할 판매도 가능하다), 굳이 베이직을 비롯한 각종 언어를 다 배우려고 애쓸 필요는 없으며, 하드웨어에관한 간단한 이해와 DOS나 프린터조작법 등의 최소한의 지식을 습득하고 나서 흔히 사용되는 워드프로세서와 데이터베이스 또는 스프레드 시트의 프로그램들을 이용하여 간단한 실무에 적용시켜가는 것이 자연스럽게 컴퓨터와 친근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후에 컴퓨터가 지닌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전적으로 사용자의 노력과 창의성에 달려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