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은 은하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에게는 기억에 남을 달이다. 1일과 21일 흥미로운 관측 결과가 연이어 발표됐기 때문이다. 1일 천문학자들은 오랫동안 나이 어린 은하로 주시하고 있었던 ‘I 쯔비키 18’의 나이가 실제로 5억살에 불과하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허블우주망원경 관측을 통해서 발견했다고 밝혔다.
21일에는 또 다른 천문학자들이 자외선우주망원경 갤렉스(GALEX)로 1억~10억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36개의 밝고 콤팩트한 아기 은하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프랑스 광학연구소, 그리고 연세대 이영욱 교수팀이 함께 만든 갤렉스는 2003년 4월 28일에 발사된 이후 성공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자외선 관측위성이다.
은하에서 1억 살은 갓난아기
옆에서 지켜보던 아이가 핀잔을 준다. “아빠, 1억살짜리 아기가 어딨어?” 천문학자들은 어떻게 나이가 수억 살인 은하를 아기 은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빅뱅의 순간을 거쳐서 탄생했는데, 이때부터 우주는 팽창을 거듭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우주가 생성된 직후부터 오늘날까지 팽창해온 시간이 약 137억년인데, 이것이 바로 ‘현재 우주의 나이’가 된다. 태양계가 속해있는 우리은하가 형성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20억년 전의 일이다. 즉 우리은하의 나이가 120억살이라는 뜻이다.
우주의 나이나 우리은하의 나이와 비교해보면 1억살짜리는 물론 10억살짜리 은하도 비교적 최근에 태어난 어린 아기 은하라고 할만하다. 좀 더 확실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현재 우주의 나이를 하루 24시간으로 줄여보자. 대부분의 은하들은 새벽 1시쯤 형성되기 시작해서 동틀 녘이면 이미 원숙한 은하가 된다. 반면에 나이 5억살짜리 은하는 밤 11시가 돼서야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은하의 나이는 우주의 나이에 비하면 다루기가 까다로운 개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은하의 나이는 그 은하에서 ‘가장 오래된 별’의 나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가 탄생한 직후 고온과 고밀도의 조건 속에서 쿼크와 양성자의 생성을 시작으로 전자와 중성자를 거쳐서 수소와 헬륨 원자핵에 이르기까지 우주 물질의 기본적인 재료들이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생성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우주 초기에 만들어진 원소는 수소와 헬륨인데, 이들로 이뤄진 가스 구름들이 서로 충돌하고 뭉쳐지면서 원시은하가 형성됐다. 이미 별이 생성되고 있는 가스 구름들끼리 합쳐지기도 하고, 가스 구름들이 뭉쳐진 이후에 별이 생성되기도 했을 것이다. 밀도가 높아진 가스 구름 속에서 수소의 핵융합이 시작되면 빛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때서야 비로소 별이 생성된 것이다.
별이 생성되면 은하의 나이를 계산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은하가 형성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5억년 전에 첫 별이 생성되기 시작했다면, 그 은하의 나이가 바로 5억살인 것이다. 물론 별이 아직 생성되기 이전 상태인 가스 구름만으로 이뤄진 원시은하가 존재할 수도 있다. 은하가 태어나기 전인 태아 상태인 셈이다.
천문학자들은 그동안 빅뱅 이후 약 10억년 정도 흘렀을 무렵부터 대부분의 은하가 집중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이해해 왔다. 새로운 은하의 형성 비율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급격하게 낮아져서 최근에는 아주 작은 난쟁이 은하를 제외하고는 새로운 은하가 거의 형성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왔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서 아기 은하를 발견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갤렉스로 관측한 결과 놀랍게도 우리로부터 비교적 가까운 20~ 40억 광년 거리에 있는 밝고 콤팩트한 아기 은하들을 발견한 것이다. 더구나 나이가 1억~10억년 정도인 이들 아기 은하는 100억년 이전의 우리은하의 모습과 아주 비슷한 특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기대하지 못했던 우리은하의 옛 모습을 닮은 아기 은하가 있고, 우주에서는 여전히 은하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관측 결과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마치 멸종된 것으로 여겨졌던 공룡이 우리 집 앞마당에 불쑥 모습을 드러낸 것과 같다고나 할까. 이제 우리은하의 어린 시절을 닮은 아기 은하들을 가까이서 자세히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천문학자들이 벌써부터 ‘살아 있는 화석’인 이들 은하의 연구를 통해서 우리은하 형성의 비밀을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벼운 원소로만 구성돼
자외선 우주망원경 갤렉스가 이런 중요한 발견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갤렉스가 현재 자외선 영역을 관측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관측 장비라는 점이다. 젊은 별은 대부분의 에너지를 자외선 영역에서 분출하기 때문에 나이가 젊고 뜨거운 별들로 구성돼 있는 나이 어린 은하들은 자외선 영역에서 가장 잘 관측될 것이다.
둘째로 갤렉스는 전체 하늘을 체계적으로 관측하는 전천(全天)탐사 망원경이라는 점이다. 이전에는 충분히 넓은 지역에서 충분히 많은 은하들을 관측하고 조사하지 못했기 때문에 새로운 아기 은하를 발견할 수 없었다. 실제로 천문학자들은 갤렉스의 전천탐사 관측 자료에 나타난 수많은 은하들을 분석한 뒤에야 36개의 아기 은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헥크만 박사를 선두로 한 공동 연구팀은 갤렉스가 2003년 8월부터 2004년 1월 사이에 얻은 전천탐사 관측자료를 분석했다. 이들은 관측된 수많은 은하들 가운데 자외선 영역에서 밝은 빛을 내는 은하들을 찾아냈다. 젊은 별들로만 구성된 아기 은하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선택된 은하들은 또 다른 전천탐사 프로젝트인 슬로언 디지털 전천탐사 관측자료 결과와 비교·분석하는 작업을 거쳤다.
슬로언 디지털 전천탐사 프로젝트는 전천탐사전용 광학망원경으로 지상에서 광학 영역을 관측하는 프로젝트인데, 수백만 개의 은하들의 특성을 알려줄 자료를 쏟아내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퀘이사나 활동성 은하와 같은 특이한 은하들이 제외됐고, 최종적으로 74개의 은하가 선택됐다. 이들 가운데 실제로 나이가 어린 은하들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슬로언 관측에서 얻은 중(重)원소의 함량을 비교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우주 초기에 생성된 원소는 수소와 헬륨뿐이고, 산소, 질소, 탄소와 같은 중원소는 별의 진화 과정에서 생성됐다. 은하에서 제일 먼저 탄생한 제1세대 별들은 수소와 헬륨만으로 이뤄진 가스 구름 속에서 생성됐을 것이다. 이 별들 내부에서 수소는 핵융합 반응의 결과 헬륨으로 변해가고, 별들이 더욱 진화해 가면서 탄소, 질소, 산소 같은 중원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편 별은 죽어가면서 초신성 폭발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 때 별 내부에서 만들어진 중원소가 우주 공간으로 날아간다. 이렇게 해서 수소와 헬륨뿐 아니라 중원소가 존재하는 가스 구름이 생겨났다. 별의 진화가 제``2, 제``3세대를 거치면서 중원소가 더욱 더 풍부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중원소의 함량은 점차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중원소 함량이 높은 은하는 자외선 밝기가 크다고 하더라도 아기 은하 후보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
이런 긴 분석 과정을 거쳐서, 중원소 함량이 아주 적고 자외선 밝기가 우리은하에 비해서 10배 정도 밝으면서 크기는 1/10∼1/4 정도 되는 36개의 아기 은하 후보가 최종적으로 선택됐다. 자외선 밝기와 은하의 색 등의 특성을 이론적인 별 진화 모형과 비교한 결과, 이들 은하들의 나이가 1억∼10억년 정도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기 은하 존재 이유 아직 몰라
한편 허블우주망원경 관측을 통해서 나이가 5억살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진 ‘I 쯔비키 18’은 사실 꽤 유명한 천체다. 중원소 함량이 아주 적고 활발한 별 탄생 영역이 관측되고 있어서 오랫동안 나이가 아주 어린 은하로 생각돼 왔다. 다만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을 뿐이다. 이 은하는 우리로부터 아주 가까운 거리인 약 4500만 광년 떨어져 있어서, 허블우주망원경으로 관측하면 이 은하 내의 별 가운데 일부가 개별적으로 보인다.
미국 버지니아대 튜안 박사팀은 이 점에 착안해서 어떤 별들이 있는지, 또 그 별들의 나이는 얼마인지를 조사해 보기로 했다. 이들이 특히 관심을 갖고 있었던 천체는 나이가 많은 적색 거성 단계에 있는 별이다. 이런 종류의 별이 존재하는지의 여부가 곧 이 은하의 나이의 상한선을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허블우주망원경에는 2002년 3월에 ‘탐사용 고해상 카메라’(ACS)가 새롭게 설치돼 해상도가 크게 향상되고 시야가 많이 넓어져서 더욱 선명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됐다. 바로 이 관측 장비를 사용해서 ‘I 쯔비키 18’을 무려 19시간 동안 노출하면서 관측을 수행해 자료를 얻었다. 지금까지 얻은 관측 자료 중 가장 정확하고 질 좋은 자료임은 물론이다.
그 결과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더 어두운 별까지도 관측할 수 있게 됐다. 남은 작업은 과연 나이가 많은 적색 거성 단계의 별들이 이 은하 내에 존재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분석 결과 적색 거성은 존재하지 않았고, ‘I 쯔비키 18’의 나이 상한선이 5억살임이 확인됐다.
그렇다면 확실한 증거를 하나 더 보태기 위해서 갤렉스가 발견한 아기 은하들도 허블우주망원경으로 관측해서 나이 많은 별인 적색 거성이 있는지 확인해 보면 어떨까? 아기 은하들까지의 거리는 20억∼40억 광년으로 ‘I 쯔비키 18’보다 훨씬 멀리 떨어져 있다. 그 결과 아쉽게도 허블우주망원경으로도 별들이 개별적으로 보이지 않아 분석이 불가능하다.
아기 은하의 존재에 대한 멋진 발견이 이어졌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첫 번째 별이 생성되기까지 왜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그 이유는 아직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이제 막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아기 은하 연구를 시작한 천문학자들이 어떤 대답을 찾아낼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