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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TEST][PART01] 소행성 충돌에 맞선 긴박했던 순간들 역대 최고 확률 3.1%

▲ NOIRLab
ATLAS 칠레 세로 톨로로 천문대의 모습.
ATLAS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소행성 지상충돌 최종 경보 시스템이다. 하와이에 2대, 칠레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1대씩 총 4대의 망원경으로 근지구 소행성을 탐지하며, 2024 YR4의 존재를 처음으로 발견했다.

‘역대 최고’에서 ‘제로(0)’가 된 소행성 충돌 확률. 지난 다음에야 단순 해프닝으로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당시 전 세계의 천문학자들은 긴급 대응 태세였다. 우리가 평온한 일상을 누리는 동안, 그들은 뒤에서 긴밀하게 협력하고 조용하게 계산하고 있었다. 2024 YR4 발견부터 국제회의까지, 그 과정을 한국천문연구원의 문홍규 우주탐사그룹장, 조성기 우주위험감시센터장과 함께 복기해 봤다.

 

평화로운 성탄절, 한 소행성이 섬광처럼 지구를 스쳐 갔다. 이후 ‘2024 YR4’라고 명명된 이 소행성은 지구와 최근접했던 25일 기준, 지구에 약 82만 8800km까지 접근했다. 이는 지구와 달 사이 평균 거리(38만 4400km)의 2배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반면, 2024 YR4가 지구에 가장 근접했던 그날도 대부분의 사람은 2024 YR4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지냈다. 직경만 40~90m에 달하는, 인도 타지마할 규모의 커다란 소행성이 자칫 지구와 충돌할 뻔했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2024 YR4가 지구 코 앞을 스쳐 지나간 지 이틀이 지난 27일, 지구에서 2024 YR4의 존재가 파악됐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소행성 지상충돌 최종 경보 시스템 ‘아틀라스(ATLAS)’의 칠레 관측소와 ‘카탈리나 전천 탐사 프로젝트(CSS)’에 25일부터 26일까지 2024 YR4의 접근 기록이 남은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27일ATLAS 칠레 관측소 영상과 CSS의 사전 검출 영상을 과거의 데이터와 비교한 결과, 목록에 없었던 근지구 천체가 나타났다는 걸 확인했다. 망원경이 순차적으로 하늘의 어떤 지역을 향했는지 적은 기록을 ‘포인팅 히스토리(pointing history)’라고 한다. 연구자들이 포인팅 히스토리를 확인해 보니 25일과 26일 찍은 영상에 2024 YR4가 담겨 있었고, 그것도 지구에 매우 가깝게 접근했다. 발견 당시 2024 YR4의 충돌 확률은 1.34%로, 이는 소행성 충돌 경보 기준인 1%를 이미 넘긴 수치였다.


오늘날 지구와 충돌 가능성이 있는 소행성 탐지는 ATLAS와 CSS 등의 프로젝트가 도맡고 있다. CSS는 혜성과 소행성을 발견하기 위한 천문학적 탐사로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 근처에 있는 스튜어드 천문대의 카탈리나 관측소에서 수행한다. CCS는 지구에 충돌할 위험성이 있는 소행성 탐색에 초점을 맞춘다. ATLAS는 아주 작고 어두운 소행성 등 근지구 천체가 지구에 다가오기 직전에 자동으로 탐지한 뒤,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즉각 보고하도록 설계됐다. 현재 ATLAS는 하와이에 망원경 2대, 칠레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1대씩 총 4대의 망원경을 배치해 소행성을 찾는 중이다. 그중 칠레 세로 톨로로 천문대의 망원경 ‘ATLAS-CHL’에서2024 YR4의 지난 25일 움직임이 처음으로 포착됐다. ATLAS가 빠르게 지나가는 소행성을 포착하는 데 특화된 망원경이라 가능했던 일이다.

 

▲ NASA
밤하늘의 ‘초고속카메라’ ATLAS 망원경에 처음 포착된 2024 YR4의 경로
칠레 세로 톨로로 천문대의 망원경 ‘ATLAS-CHL’은 2024년 12월 25일 2024 YR4의 움직임을 처음으로 잡아냈다. 사진은 25일부터 26일까지 2024 YR4가 지나간 흔적이 시간 순으로 찍힌 4장의 사진을 하나로 합친 결과다.

 

충돌 확률 1%가 넘는 근지구 천체가 등장하자 전 세계 연구자들은 곧장 관측 자료 분석에 돌입했다. 그 중심에는 ‘국제소행성경 보네트워크(IAWN·International Asteroid Warning Network)’와 ‘우주임무기획자문(SMPAG·Space Mission Planning Advisory Group)’이 있었다.

 

IAWN은 국제연합 우주사무국(UNOOSA)의 지원을 받아 운영된다. 2013년 러시아 첼랴빈스크 유성체 낙하 이후 조직됐다. 소행성 등근지구 천체를 감시해 궤도와 충돌 가능성을분석하며, 충돌 위험이 있는 소행성을 대상으로 경보를 발령한다. 실제 위협이 있다고 판단하면 UN에 보고해 대응 전략을 마련한다.


IAWN에는 주로 국가를 대표하는 천문대와 연구기관이 참여하는데,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을 비롯해 미국항공우주국(NASA), 유럽남방천문대(ESO) 등이 속해있다. NASA가 의장을 맡아 각국의 천문 기관들이 각자의 망원경 데이터를 공유하며 협력한다. 개인 아마추어 천문가도 힘을 보태고 있다.


SMPAG는 소행성 충돌 위협이 현실화됐을 때 대응 계획을 마련하기 위해 IAWN과 함께 2014년에 결성됐다. IAWN이 주로 소행성을 관측하고 궤도를 계산한다면, SMPAG는 소행성 충돌 시나리오에 따른 대응 계획 수립에 방점을 찍는다. SMPAG에는 NASA, 유럽우주국(ESA), 러시아우주국(ROSCOSMOS), 중국국가항천국(CNSA) 등 각국을 대표하는 우주기관이 참여한다. 소행성 충돌을 막기 위한 기술적·법적 대책을 논의하는 전문가 그룹이다.

 

2024 YR4가 지구와 충돌할 확률이 1%가 넘는다는 사실을 발표하면서 IAWN은 2014년 설립된 이후 최초로 소행성 경보를 발령했다.

 

▲ GIB, Shutterstock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도 천문학자들은 묵묵히 소행성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망원경은 24시간 꺼지지 않을 겁니다"

 

IAWN이 경보를 발령하자 세계 곳곳의 망원경이 일사불란하게 소행성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천문학자들은 신속히 국제소행성센터(MPC)에 관측 데이터를 보고했으며, MPC는 그 궤도를 계산했다. NASA와 ESA 등은 데이터를 비교 검증하며 충돌 확률 파악에 나섰다. 첫 발견 이후 한 달이 지난 2025년 1월 29일, IAWN은 그간 분석한 내용을 담은 ‘충돌 가능성 보고서(POTENTIAL ASTEROID IMPACT NOTIFICATION)’를 발표했다. 발견 직후 MPC는 소행성에 2024 YR4라는 이름을 붙였다.


‘2032년 12월 22일, 충돌 확률 1.3%.’ IAWN은 8년 후, 직경 40~90m에 달하는 소행성 2024 YR4가 1.3%의 확률로 지구와 충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충돌 가능성이 있는 지역으로는 동태평양, 남아메리카 북부, 대서양, 아프리카, 아라비아해, 남아시아 등 적도 부근이 꼽혔다. 보고서에는 “충돌 시 엄청난 폭발이 예상된다”는 내용이 적혔다. 만약 확률이 더 오른다면 SMPAG의 주도 하에 전 세계의 대응 계획을 세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같은 시각, IAWN 한국 대표인 천문연 문홍규 우주탐사그룹장에게도 해당 내용을 담은 e메일이 날아왔다. “2024 YR4의 충돌 확률이 1%가 넘어 이를 IAWN 회원 기관에 통보한다”는 내용이었다. 문 그룹장은 “IAWN 설립 후 처음 발령된 경보”라며 “약간 흥분됐던 게 사실”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보고서를 발표한 지 일주일 뒤인 2월 4일, IAWN은 2024 YR4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긴급 화상 회의를 열었다. 그 사이, 여러 나라의 크고 작은 망원경을 동원해 촘촘하게 추적 관측을 하고 있었다. 문 그룹장 또한 한국 대표로 이 회의에 참여했다. 그는 “당시 각국의 관측자들이 자료를 공유했고 궤도 전문가들은 각자 계산 결과를 비교 검증해 확인한 시나리오를 발표했다”며 “아주 작은 가능성으로 (충돌 확률이) 올라가는 시나리오까지 포함시켜 차분하고 냉정하게 논의를 이어 갔다”고 전했다. 이어 “화상 회의였지만 참가자들이 평소와는 다른 내심 흥분한 상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의 관측 데이터도 회의에서 공유됐다. 문 그룹장은 당시 회의에서 “천문연 외계행성탐색시스템(KMTNet)의 2015년부터 10년 치 포인팅 히스토리를 발표했다”면서 “남아공, 칠레, 호주에 설치된 KMTNet 망원경에는 지난 10년 동안 2024 YR4가 지나간 흔적이 포착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이 회의에서 IAWN은 지상 망원경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을 긴급 투입한다는 계획을 알렸다. 2024 YR4는 3월 이후 지구에서 점차 멀어져 지상 망원경으로는 관측이 어려워진다. 이 시기에 적외선 관측을 통해 2024 YR4의 크기와 궤도를 정밀하게 측정하기 위해서다. IAWN은 지상 망원경과 JWST 데이터를 통합해 2024 YR4의 정확한 크기, 궤도와 같은 자료를 2025년 5월까지 수집할 계획이다.

 

▲ GIB, Shutterstock
 

 

▲ UNOOSA
우주공간 개발과 사용에 대해 논의하는 국제 기구, 국제연합 우주사무국(UNOOSA)은 지난 2월 6일 열린 우주공간 국제협력 회의에서 이례적으로 2024 YR4에 대한 소식을 공유했다.

 

 

2월 중순, 2024 YR4의 충돌 확률은 3.1%라는 전무후무한 수치를 기록했다. 소식을 들은 세계인을 잠시나마 아찔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수치였다. 지금까지는 2004년 6월에 발견된 소행성 아포피스의 지구 충돌 확률이 2.7%로 최대였는데 이를 순식간에 뒤집은 숫자였다. 최고점을 찍었던 확률은 20일 1.5%로, 2월 24일에는 0.005%까지 급격히 하락하며 ‘충돌 소동’은 일단락을 맺었다.


현재(기사 작성일 3월 12일 기준), 2024 YR4의 충돌 확률은 여전히 0%대에 머물러 있다. 사실상 지구와 충돌할 확률은 사라진 셈이다. 그렇지만 여러 나라 천문학자들은 여전히 2024 YR4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발견 당시 충돌 확률이 1%였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이례적이라는 뜻이다.

 

위기 앞에 ‘한 팀’ 된 전 세계 과학자

 


소행성 충돌을 막기 위해 전 세계는 국경과 이념을 넘어 하나로 뭉쳤다. 그동안 미국과 유럽 등의 자유주의 진영과 중국과 러시아가 주를 이룬 사회주의 진영은 수많은 분야에서 툭하면 이념 대립을 보여왔다. 중국이 독자적인 우주정거장을 건설하고, 러시아가 국제우주정거장(ISS) 공동 연구에서 탈퇴를 선언하는 등 우주 패권을 위한 의제 갈등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2024 YR4 분석에서는 전 세계가 ‘한 팀’이 됐다. 문 그룹장은 이를 소행성 분석에서 전 지구적 협력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한 나라의 감시 자산만으로는 소행성을 제대로 찾기 어렵거든요. 지구는 자전을 하니까 밤낮이 되풀이되고, 흐린 날씨 때문에 아무것도 관찰하지 못할 수도 있죠. 북·남반구를 포함해 위경도 상으로 망원경을 촘촘하게 배치해야 제대로 감시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골목 구석구석까지 CCTV를 가동하는 셈이죠.”

 

국제 협력은 소행성 충돌로 인한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소행성 충돌이 설사 한두 국가에만 일어나더라도 지진과 쓰나미 등의 형태로 전 지구에 피해를 일으킵니다. 소행성 충돌 위협이 닥치면 공고히 협력하는 이유죠.” SMPAG에 한국 대표로 참여 중인 천문연 조성기 우주위험감시센터장은 덧붙였다.

 

세계 각지의 천문학자들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 묵묵히 분투하고 있다. 문 그룹장은 설령 충돌 확률이 3%를 훌쩍 넘는 소행성이 발견되더라도 세계에선 국제기구 활동을 통해 긴밀하게 대응하고 있다면서 안심시켰다. “지구를 위협하는 소행성을 감시하기 위해, 천문연을 비롯한 전 세계 천문대 망원경은 24시간 꺼지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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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과학동아 정보

  • 박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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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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