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처럼 하늘을 날고 싶은 욕망을 가졌던 인간의 도전은 벌써 2백년이 넘게 계속되고 있다. 1903년 12월 미국의 라이트 형제가 비행체의 동력 비행에 처음 성공한 뒤 하늘로 향한 인간의 도전은 ‘더 높이, 더 멀리 그리고 더 빠르게’날아 오르는 것이었다. 지난 한세기 사이에 발명된 초음속 제트기나 로켓은 이런 인간의 욕망을 대변해왔다.
그러나 최근 이와는 좀 다른 새로운 경향이 생기고 있어 주목된다. ‘더 높게’ 날고 ``‘더 느리게’ 움직이는 매머드급 비행선의 시대. 성층권 비행선의 개발은 바로 그 핵심에 있다.
비행선 시대의 개막
비행선의 모체는 1783년 몽골피에 형제가 만든 열기구였다. 공기 팽창의 원리를 이용한 이 기구는 고도 2천4백m까지 날아오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하늘을 날고자 하는 인간의 꿈은 기구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공중에 가만히 떠있는 기구로는 인간 의지대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곧 동력을 이용해 프로펠러를 돌려 추진되는 비행선에 관심을 갖게 됐다. 1852년 프랑스 앙리 지파르는 증기기관과 프로펠러를 유선형 기구에 장착시켜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했다. 그의 성공에 힘입어 프랑스 전역과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각지에서는 새로운 비행선을 고안하려는 연구자들의 움직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비행선 시대를 연 나라는 독일이었다. 평소 비행선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독일 육군중장 출신 체펠린은 1900년 7월 최초의 경식 비행선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그의 이름을 딴 이 비행선은 본격적인 민간항공시대를 연 최초의 비행체였다. 체펠린호의 성공 직후 중형 비행선들이 잇따라 개발되면서, 비행선은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정기 교통 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대형 비행선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모델은 독일의 ``LZ-129 힌덴부르크(Hindenburg)였다. 지금까지 하늘을 날았던 비행체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이 비행선은 한편에서는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힌덴부르크는 1928년 첫운항을 시작한 이래 10여년 동안 대서양 횡단을 비롯해 세계 곳곳을 누비며 그 위용을 과시했다.
그러나 1937년 미국 레이크허스트 공항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힌덴부르크를 포함한 비행선들의 시대는 급격히 쇄락한다.
한편 이런 와중에도 미국과 소련 등 일부국가들은 비행선을 요긴하게 사용했다. 이들 나라는 2차대전이 발발하자 대서양과 태평양을 오가는 수송로를 보호하는데 비행선을 적극 활용했다. 선단과 함께 움직이는 비행선은 잠수함들의 천적이었다.
한편 우리나라는 ``‘짧지만 굵은’ 비행선의 역사를 갖고 있다. 최초의 국산 비행선은 지난 1986년 한국기계연구소가 제작한 8m급 무인 비행선이었다. 이 비행선은 설계부터 풍동시험, 가장 중요한 재질인 헬륨 기낭용 원단 개발까지 모두 국내 순수 기술로 이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그뒤 1993년 열린 대전 국제엑스포에서는 한단계 진보한 형태의 비행선이 선보였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이 제작한 비행선은 공기기낭 2개와 공기흡입장치, 압력조절 밸브, 지상 관측용 무인 CCD 카메라를 탑재해 ``‘비행선 완전 국산화 시대’를 예고했다.
최적의 조건과 최악의 조건 갖춰
1970년대 들어서자 비행선 연구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소재·재료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신개념의 비행선들이 착안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최근 과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성층권 비행선이다.
통상적인 비행선은 공기보다 가벼운 비행체로 저공에서 느리게 움직이며 광고나 방송중계용으로 활용된다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최근 개발되고 있는 성층권 비행선은 장기간 체공하며 통신중계, 원격탐사, 지구관측과 감시 등의 고난도 임무를 수행한다.
현재 기술력에서 가장 앞서 있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 이들 나라와 비슷한 시기에 개발에 착수한 우리나라도 상당 수준에 올라있다. 한국은 3단계 비행선 개발 과정을 통해 첨단 비행선 산업을 선도한다는 중장기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현재 1단계 계획으로 50m 규모의 중형 무인비행선이 개발돼 시험 비행을 준비 중이다.
본격적인 성층권 비행선의 개발은 통신 주파수가 배정되면서 시작됐다. 2000년 세계전파통신회의(WRC)가 47-48GHz대역을 성층권 통신 주파수 대역으로 사용키로 함에 따라 각국 정부는 이를 방송 통신에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들을 앞다퉈 내놨다. 그동안 성층권에 관한 연구는 방송 통신 분야는 물론 지구관측, 감시분야 등 응용 범위가 매우 넓은 것으로 인식돼 왔다.
성층권은 지구상공 약 8-56km까지 형성돼 있는 대기층을 말한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류권에 비해 기상이 매우 안정적이어서 비행선이 장시간 체공하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하지만 지상의 7% 정도인 공기 밀도와 -50。C 이하의 혹독한 악조건은 아직까지 성층권 연구의 장애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초경량 설계 필요한 성층권 비행선
성층권 비행선은 고도 20km 부근 하부 성층권에 장기간 체공하면서 통신 중계, 원격탐사 등의 다목적 임무를 수행하는 비행체를 말한다. 성층권은 공기밀도가 지상에 비해 매우 낮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비행선의 크기는 매우 커진다. 실제 1t 정도의 실험 장비를 싣고 성층권으로 올라가려면 길이가 최소 2백m 이상, 총 중량은 20-30t은 나가야 한다.
때문에 비행선 개발에는 저밀도 고공 운용을 고려한 첨단 설계 기술들이 적용된다. 공기주머니(기낭) 속 헬륨 부피를 줄이는 것은 이 가운데 대표적 기술에 속한다. 기압이 낮은 성층권에 오래 떠있으려면 헬륨의 부피를 비행선내 전체 기낭 부피의 7% 수준으로 유지해야만 한다.
이 때문에 전체 기낭 부피의 70%를 헬륨으로 채우는 일반 저고도 비행선과 구조부터 달라져야 한다. 헬륨 부피를 줄이는 것과 동시에 안전성 확보를 위해 기낭을 여러개로 분리해야 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성층권 비행선에는 또 초경량 구조 설계 기술이 적용된다. 헬륨 기낭의 표면적이 늘어나게 되면 그만큼 전체 중량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현재 비행선 재료로 널리 쓰이는 폴리에스테르 합성섬유는 무겁고 강도도 약하기 때문에, 앞으로 더 가볍고 강한 신소재의 개발은 필수적이다. 비행선용 소재는 강도 1백kg/cm 이상, 무게 2백g/m2 이하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밖에 장기 체공을 위해 재생형 자체 동력원을 확보하는 일도 관건이다. 연료의 추가 공급이 어려운 성층권에서의 장기 체공을 위해선 연료 소모가 없는 연료시스템이 필요하다. 현재 태양전지, 연료전지, 수전해 장치 와 연료(수소, 산소)탱크가 조합된 시스템 등 다양한 추진체계들이 연구되고 있다.
최소 항력의 외형 설계 역시 비행선 제작의 핵심 부분. 비행선에서 공기역학적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은 본체를 이루는 기낭이다. 기낭은 전체 비행선의 하중을 감당하는 부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부피가 크고, 표면적 또한 넓다. 형상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공기역학적 항력을 줄이는 부분이다. 기존 비행선 본체는 항력계수가 약 0.04-0.05인데 반해, 성층권 비행선은 0.025 정도를 목표로 한다. 항력계수를 이렇게 낮추면 비행하중을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다.
이밖에 낮과 밤의 온도차로 생기는 내부 과열과 압력 상승 문제를 해결할 열 제어기술, 통신 중계와 정교한 관측 임무 수행을 위한 정점체공기술의 확보도 중요한 과제다. 주위 환경에 의한 온도와 압력상 승은 기낭 내부 온도의 불균형을 일으켜 부력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정점 고도 이탈을 막으려면 열을 효과적으로 제어해야만 한다. 또 비행선이 통신중계용으로 활용될 경우 정점 체공을 위한 정밀 조종 시스템은 필수적이다. 성층권 비행선은 일반 저고도 비행선이 올라갈 수 없는 높이에서 다양한 특수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륙 준비 이상무
2000년 산업자원부는 차세대 신기술 개발사업의 하나로 성층권 비행선 시제기 개발을 결정했다. 이 계획에 따라 항우연은 1단계로 성층권 비행선의 축소형인 50m급 ‘비아50’ 제작에 착수하게 된다. 비아50의 개발은 향후 계속될 성층권 비행선의 후속 연구를 위한 시범적인 성격을 띤다. 이미 풍동시험을 비롯한 각종 비행 시험을 성공리에 마쳤으며 무인 비행을 위한 지상 관제, 무선 통신시스템도 모두 개발이 끝난 상태다. 비아50은 체계 설계부터 각종 테스트, 성능 입증까지 전 과정을 국내 기술로 모두 소화해낸 최초의 비행선으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일본의 LAS 비행선을 제치고 세계 최초의 자가발전 전동 모터 추진 방식의 초대형 무인비행선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성층권 비행선을 이용할 경우 경제적 효과는 매우 크다. 우선 지상에서 20km 상공에 체공하며 신호를 주고받기 때문에 그만큼 지연시간을 줄일 수 있다. 또 고해상도 분해능을 갖춘 카메라와 각종 센서를 탑재해 적조의 분포나 동식물의 상태, 화산의 분화, 산불 감시, 기상 관측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도 있다.
사실 한국이 항공 우주 전 분야에서 선진국과 전면 경쟁을 벌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인증을 전제로 한 민간항공기 분야의 경우 항공 선진국들이 만든 진입장벽을 피해 틈새시장 쪽을 노려야만 한다. 특히 성층권 비행선 분야는 선진국들도 이제 막 개발을 시작한 단계이고, 제작 시스템 또한 항공기들에 비해 단순하기 때문에 빠른 국산화와 고부가가치화가 가능하다. 현재 정부 예산으로 추진되고 있는 비행선 사업이 큰 국책사업으로 발전해 해외 수출길을 활짝 열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