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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SF를 현실로, 2024 과학 SF를 닮다

    GIB, Shutterstock, 박주현

     

    포털(Portal), 정문 또는 입구란 뜻이다. 창작물에서 포털은 현실과 다른 세계를 잇는 문이다. 과학적인 상상을 통해 수많은 세계를 실감나게 그려내는 SF는 포털과 닮았다. 2024년, 우리는 인공지능,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민간 우주여행 등 SF의 상상이 빠른 속도로 이뤄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과학기술로 인해 변화하는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날카롭게 성찰하는 SF의 시선이 여느 때보다 더 중요한 시점이다. 올해의 SF 트렌드를 정리했다.
    이제 포털을 통과해 SF가 연결한 내일로 찾아가자.  

     

     

    “오늘의 과학 소설은 내일의 과학 사실이 된다.”

    -아이작 아시모프

     

    거대한 워프 게이트 속으로 들이닥친 우주선.

    물론 그림이지만, 언젠가 이 모습도 현실이 될지 모른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말처럼 과학기술은 착실하게 SF가 내다본 미래를 하나씩 이루고 있다. 워프 게이트? 진지하게 이론적 모델을 제시한 과학자들이 이미 많다. 우주선? 스페이스X의 우주선 스타십은 이제 추진체를 곱게 발사대 위에 다시 끼워 넣을 수도 있다.

    이 다음은 뭘까. SF가 과학기술에 영감을 불어넣고, 과학이 SF를 닮아가는 사례를 통해 함께 예측해보자.

     

     

    그 해, 인공지능(AI)이 인간만큼이나, 때론 인간보다도 더 인간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한 유명 기업가는 AI가 탑재된 휴머노이드 로봇을 5년 안에 상용화시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사람들은 집집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냉장고처럼 필수 가전제품으로 활약할 미래를 그렸다. 한편 의학계에선 인간의 뇌에 칩을 이식해 생각만으로 컴퓨터 게임을 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붉은 진짜 혈액 대신 보라색 인공 혈액이 개발됐고, 우주에서 약물을 합성하는 기술도 실증에 성공했다.

     

    그해에는 돛을 단 우주선이 태양계를 항해했다. 서울과 부산을 단 4분 만에 오가는 극초음속기가 개발 중이라는 소문도 퍼졌다. 그리고 세계는 우주선이 발사됐다가 다시 발사대에 그대로 착지하는 광경을 봤다. 지구는 재앙을 맞이했다. 세계 곳곳에 홍수나 폭염이 일상처럼 찾아왔다. 사람들은 기후위기를 앞두고 정부가 할 일을 제대로 못 했다며 소송을 걸었다.

     

    SF 소설의 도입부처럼 보이는 이 이야기는 2024년의 현실로, 한 해 동안 과학동아가 다룬 과학기술계 소식들을 쭉 나열한 것이다. 과학기술이 SF를 현실로 만들고 있다. 그 속도가 요즘 들어 더 빨라진 것처럼 느껴지는 건 오해가 아니다. 이를 증명하는 연구가 하나 있다. 2018년 6월 미국, 호주, 스웨덴, 포르투갈 등 국제 공동연구팀이 컴퓨터과학 분야의 국제학회인 ‘디자인, 사용자 경험, 사용성 학회’에 발표한 연구 결과다. doi: 10.1007/978-3-319-91803-7_2

     

    1977년 첫 개봉한 ‘스타워즈’ 속 광선검은 36년이 지나 광자 단위에서 구현됐다. 언젠간 광선검으로 사과를 깎는 날이 올까.

     

    SF, 과학에 미치는 영감의 크기는?

     

    공동연구팀은 실제로 SF가 과학기술 연구에 얼마나 많은 영감이 되는지 객관적인 수치로 나타내고자 했다. 그래서 이들은 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연결을 연구하는 HCI(Human-Computer Interaction) 분야에서 1982년부터 2017년까지 발표된 논문을 데이터베이스화했다. 그리고 그중에서 Science fiction, Sci-fi 등 SF 관련 키워드가 언급된 논문 83편을 추려냈다.

     

    83편의 논문에서 SF는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됐다. 연구의 이론적인 디자인을 하기 위해 참고 자료로 쓰이거나, 인간과 컴퓨터 사이에 어떤 새로운 상호작용이 가능할지 상상하는 데 도움이 되거나, 기계로 인해 인간의 몸이 어떻게 바뀔 수 있을지 예측해 보는 식이다. 그리고 SF가 논문에서 등장하는 횟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아졌다. 연구팀은 1982~2007년 사이엔 SF가 논문에서 매해 두세 번씩 언급되다가 2008년부터 숫자가 급증해 2017년에는 14건에 이르렀다고 분석했다. 논문에서는 이 증가세를 “2010년대 들어 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새로운 상호작용 방식이나 인간의 몸을 컴퓨터로 증강하는 연구 분야가 급성장했고, SF는 근미래에 필요할 기술에 대한 적절한 영감을 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늘날 SF는 과학의 훌륭한 스파링 파트너인 셈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SF 작품 속 과학기술들이 그 이름 그대로 현실에 구현되는 사례는 HCI 외 다양한 분야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1996년 출시돼 폴더형 휴대폰의 유행을 이끈 모토로라의 ‘스타택(StarTAC)’은 SF 드라마 ‘스타트렉’ 속 폴더형 통신장치에서 디자인 영감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스타택과 스타트렉, 둘의 발음이 비슷한 건 우연이 아니다).

     

    2013년 미국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 초저온 원자 공동연구센터는 영화 ‘스타워즈’ 속 광선검을 구현했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원자 구름을 절대 영도에 가깝게 냉각한 다음 레이저를 이 원자 구름에 쏘아 광선이 상호작용하는 현상을 이끌어냈다. 마치 광선검이 맞부딪히듯, 레이저 속 광자가 서로 부딪혀 밀어낸 것이다. doi: 10.1038/nature12512 연구를 이끈 미하일 루킨 하버드 물리학과 교수는 당시 “이걸 광선검과 똑같다고 말하긴 어렵다”면서도 “우리가 구현한 분자 사이의 물리적 현상은 영화에서 보던 장면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1989년 개봉한 영화 ‘백 투더 퓨처2’의 주인공은 2015년의 미래로 날아가 손대지 않고도 끈을 조일 수 있는 운동화를 받는다.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나이키에서는 2015년 실제로 영화 속 신발을 세상에 공개한다. 그 이름은 나이키 맥(Mag). 나이키 맥을 판매해 얻은 수익금은 파킨슨 연구재단에 전액 기부됐다는 훈훈한 소식도 전해진다.

     

     

    1 2024년 9월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4’에서 LG전자는 자사의 인공지능(AI) 스마트홈 서비스가 불러올 미래 집의 모습을 상상하기 위해 김초엽 SF 작가와 협업했다. 한국 SF 프로토타이핑의 대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2 김초엽 작가는 보도자료를 통해 “AI가 개인의 삶을 획일화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고유한 색과 개성을 더 잘 살려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고 설계 의도를 전했다.

     

    SF의 쓸모, 그중 최고는 ‘미래를 내다보는 창’

     

    SF의 쓸모는 많고도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가치는 미래의 삶을 미리 내다보게 한다는 점이 아닐까.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미래를 상상하는 SF의 특성은 과학기술의 미래와 이로써 변모하는 사회의 모습을 예측하는 데 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SF의 상상력을 빌어 미래 기술과 이에 따른 사회의 변화를 예측하는 SF 프로토타이핑(SFP)라는 분야가 탄생했다. 미래 전략을 세우는 데 SFP를 이용한 대표적 사례로는 미국의 IT 기업 인텔이 꼽힌다.

     

    “우리가 당신의 TV나 컴퓨터, 핸드폰에 들어갈 컴퓨터 칩을 디자인할 때는 5~10년 후를 내다봐야 합니다. 그 미래에서 사람들이 뭘 하고 싶어 할지 이해해야 하죠. 여기서 SF는 우리가 만드는 기술이 어떻게 활용될지 예측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인텔의 미래학자 브라이언 데이비드 존슨이 2011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당시 그는 ‘투모로우 프로젝트’를 열며 영국의 SF 작가 레이 헤이몬드를 비롯한 다양한 SF 작가를 대거 기용했다. 그 외에도 일본의 도요타는 SF 작가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미래 자동차에 대한 비전을 얻고, 미국 공군사관학교는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군사적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SF 프로토타이핑을 활용하고 있다.

     

    2025년이 다가온다. 내년엔 또 어떤 말도 안되는 과학기술이 나와 소설보다 소설같은 현실을 만들까. SF를 통해 미래를 상상해보는 것도 좋겠다. SF는 다가오는 미래를 상상하고 준비하는 데에도 탁월하지만, 무엇보다 재미있으니까! 

     

    과학동아와 함께

     SF 오늘의 명작 큐레이션

     

    SF 그렇게 재밌다는데, 뭐부터 봐야 할지 몰라 아직 입문을 망설이는 당신을 위해 과학동아가 준비했다. 최신 SF 트렌드가 반영된 산뜻한 소설부터, SF 하면 떠오르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스케일 큰 정통 SF까지! SF 오늘의 명작 큐레이션을 통해 나만의 

    SF 취향을 찾아가보자.

     

     

    BBC

     

    짐리원 작가의 추천 ‘닥터 후’

     

    흔히 세계적으로 두터운 팬층을 자랑하는 ‘메이저 SF 프랜차이즈’로 닥터 후와 스타워즈, 스타트렉을 꼽습니다. 모두 우주를 배경으로 한 모험을 소재로 한 스페이스 오페라죠. 특히 닥터 후는 지구인을 사랑하는 까칠한 외계인 ‘닥터’가 지구인들과 함께 우주선 타디스를 타고 떠나는 여행 이야기를 담습니다. 입문자가 쉽게 도전해 볼만한 SF예요. 닥터 후는 평화와 선함의 가치를 크게 강조하고, 이야기와 캐릭터 그 자체의 매력을 극대화한다는 게 특징입니다. 마침 12월이니 여러 닥터가 함께 등장하는 ‘크리스마스 스페셜’을 보는 것도 좋겠죠?

     

    황금가지

     

    연여름 작가의 추천 ‘종이 동물원’

     

    켄 리우 작가는 SF와 함께 동북 아시아인의 정체성과 그 역사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능숙하게 엮습니다. 단편집 ‘종이 동물원’에 수록된 단편 소설들에는 SF의 다양한 세부 장르인 대체 역사물, 스팀펑크, 사변소설 등 요소가 포함돼 있어요. 다양한 스펙트럼의 SF를 경험할 수 있는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해요. 표제작인 ‘종이 동물원’은 주인공의 어머니가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담아 접어준 살아 움직이는 종이접기 동물을 추억하는 내용이에요. 한편 단편소설 ‘레귤러’의 경우 뇌에 레귤레이터라는 장치를 단 주인공이 탐정으로 활약하는 내용이죠. 

     

    알에이씨코리아(RHK)

     

    밀리의 서재 연간 전체연령대 SF 베스트 ‘프로젝트 헤일메리’

     

    영화로도 제작된 소설 ‘마션’으로 잘 알려진 앤디 위어의 장편소설입니다. 앤디 위어는 유명한 하드 SF 맛집이예요. 하드 SF는 과학적 정합성에 큰 무게를 두는 SF의 한 갈래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공학을 공부한 ‘뼛속까지 공대생’ 작가가 말아주는 정통 SF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추천합니다. 멸망 위기의 지구를 구하기 위해 우주로 나아간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는데, 주인공은 사실 우주에서 죽을 운명이에요. 그럼에도 지구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전작 마션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와 겹쳐 보이죠. 낙관적인 마음과 차가운 이성을 무기로 절대로 희망을 잃지 않는 주인공이 매력적인 소설입니다.

     

    CJ엔터테인먼트

     

    김소연 기자의 추천 ‘설국열차’

     

    기후변화로 인해 인간의 삶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요즘, SF에는 ‘Cli-fi’라는 세부 장르가 등장했습니다. 모종의 이유로 기후가 급변한 배경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며 적응한 인간과 생태계의 모습을 담죠. 기상이변으로 빙하기가 온 뒤 17년이 지난 시점을 배경으로 하는 설국열차 또한 Cli-fi에 포함되는 작품입니다. 생존자들을 태우고 끝없이 달리는 설국열차 안에서 나뉜 계급도를 다루죠. 이런 면에서 설국열차는 인물의 내면과 사회상에 초점을 맞추는 SF의 갈래인 소프트 SF에 속하기도 합니다.


    아, 봉준호 감독의 신작 SF 영화인 ‘미키 17’이 2025년 1월 28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니 설국열차를 보고 미키 17을 보러 가도 재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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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소연
    • 디자인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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