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전 세계가 앞다퉈 인공혈액을 개발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핵심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코로나19와 같이 혈액이 부족한 긴급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코로나19 당시 사회적 거리 두기 등의 영향으로 헌혈량은 급격하게 줄었다. 2020년 12월 정부는 급기야 ‘국내 혈액 보유량이 주의 단계에 진입했다’라는 내용의 긴급재난문자를 보냈다. 대한적십자사의 적정 혈액 보유량은 5일분인데, 당시 혈액 보유량이 2.7일분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미국 국방부 산하의 DARPA가 인공혈액 개발에 투자하는 이유도 이와 유사하다. 위험한 전장에서는 부상 당할 일이 많고, 이로 인한 혈액 수요를 헌혈을 통해 모두 감당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에 비하면 HBOC는 실온 보관이 가능하고 실제 혈액에 비해 보관기간이 길어 대량으로 저장할 수 있다. 게다가 인공혈액은 혈액형에 상관없이 투여할 수 있기 때문에 응급상황에서의 수혈이 용이하다.
꼭 전염병이나 전쟁이 아니더라도 헌혈량은 본래 일정하지가 않기 때문에 이에 전적으로 의지하기 어렵다. 한송이 한마음혈액원 혈액기획국 차장은 “여름철에는 외출 감소, 해외 여행 등으로 헌혈자가 줄어드는데, 반대로 수술은 여름방학 기간에 늘어나는 경향이 있어 혈액 수급이 불안정하다”고 말했다. 그는 “인공혈액이 개발된다면 혈액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은 물론, 혈액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의료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한국, 일본 같은 저출산 고령화 국가는 혈액 부족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저출산으로 인해 헌혈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하지만, 고령화로 혈액 수요는 증가하기 때문이다. 김 단장은 “혈액이 점차 부족해지는 상황에서 인공혈액은 꼭 필요한 미래 대응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인공혈액의 또 다른 목표, 혈소판

인공혈액으로 모방하고자 하는 혈액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적혈구의 산소 전달 기능이지만, 혈액의 다른 기능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중 하나가 ‘혈소판’ 기능이다. 혈소판은 혈액에서 많은 양을 차지하진 않지만, 지혈 작용을 하는 중요한 구성 성분이다. 혈소판 감소증 환자들은 혈액 중 혈소판만 따로 수혈 받기도 한다.
2021년 창업한 듀셀바이오 테라퓨틱스(이하 듀셀바이오)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를 이용해 혈소판을 개발하는 기업이다. 7월 23일 듀셀바이오 사옥에서 만난 이민우 대표(사진 오른쪽)는 “혈소판은 보관 기간이 5~10일 정도로 짧고, 채취하기도 어려워 적혈구에 비해 재고가 부족하다”며 “수혈용 혈소판을 공급하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듀셀바이오는 iPSC에서 혈소판을 제조하는 과정을 이미 재작년에 완성했다. 하지만 혈소판 대량 생산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 전체적인 과정을 반복하며 조금씩 변화를 주고 있다. 김치화 듀셀바이오 전무(왼쪽)는 “우리 몸에서는 거대핵세포(혈소판이 만들어지기 직전 단계) 1개당 4000~5000개의 혈소판이 만들어진다고 알려져 있다”며 “현재 듀셀바이오의 기술로는 거대핵세포마다 약 200~500개의 혈소판이 생성된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혈소판이 생성되는 골수 환경을 모방한 공정 기술을 통해 생산 수율을 높일 것”이라며 “2025년까지 혈소판 생산 기술을 완비하고, 2026년 본격적인 임상시험에 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공혈액 상용화의 꿈
한국이 앞장설까
인공혈액 개발을 넘어 상용화까지 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가격이다. 현재 한국에서 혈액 한 팩을 수혈받는 데 드는 비용은 2만 원 정도다. 국민이 자발적으로 기부한 혈액 값 외에 주사기 등 최소한의 부대 비용만 고려해 가격이 매겨지기 때문에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인공혈액이 실제 혈액보다 수십 배 이상 비싸다면 환자 입장에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김 단장은 “인공혈액을 대량 생산하면 단가가 떨어질 것”이라며 “현재 사업단은 GMP(우수의약품생산기준)에 맞는 생산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두 번째는 임상시험 제도 마련이다. 특히나 줄기세포 기반 인공혈액은 전 세계적으로 새롭게 생산되는 바이오의약품인 만큼 아직 임상 적용에 대해 필요한 가이드라인이 수립되지 않은 상황이다. iPSC를 이용해 혈소판을 개발하는 듀셀바이오 테라퓨틱스의 김치화 전무는 “우리나라도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본격적인 논의를 거쳐 연구비 지원뿐만 아니라 임상시험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등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업단은 2023년부터 2027년까지 임상 연구에 적용할 수 있는 인공혈액을 생산하는 1단계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후 두 단계를 추가로 거쳐 최종적으로는 인공혈액을 생산, 제조하는 기술을 확보해 2037년 내로 실용화하는 것이 목표다. 총 15년에 걸친 장기적인 프로젝트지만, 국가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인공혈액 개발에 투자해야 한다는 게 김 단장의 전언이다.
김 단장은 “국민 누구에게나 안전한 혈액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자 복지”라며 “다른 나라에 기대지 않고 우리만의 인공혈액 기술을 개발해 국민들이 인공혈액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지금의 기술로 일본, 미국은 물론 한국도 실험실에서 줄기세포를 이용해 극소량의 인공혈액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대량 생산을 해야 합니다. 그 목표를 이루는 길에 한국이 앞장서길 꿈꿉니다.”

사진은 2021년, 코로나19 여파로 서울 강서구 대한적십자사 서울중앙혈액원 혈액 보관 냉장고가 비어 있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