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날아다니는 과학상자 엘리베이터

고층건물 '대동맥'에 속도, 지능, 감성 녹여


2000년 미국 항공우주국의 과학자들은 적도에 위치한 높이 50km의 승강장에서 고도 3만5000km 상공의 인공위성을 연결하는 우주엘리베이터를 구상 중이라고 발표했다.


누군가에겐 넘치는 ‘장난기’로 엘리베이터 안의 층 버튼을 모두 누르고 달아나던 경험이 있을지도 모른다. 뉴밀레니엄을 맞으며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들은 “지구 표면에서 우주궤도까지 올라갈 수 있는 어마어마한 높이의 엘리베이터 탑을 건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고, 영화 ‘찰리와 초콜릿공장’에서 초콜릿재벌 윌리 윙카는 구름 속을 뚫고 나는 유리 엘리베이터를 선보였다.

윙카의 탐나는 ‘물건’과 달리 현실 속의 엘리베이터는 무거운 추와 함께 고정도르래에 매달려 매순간 치열하게 균형을 맞춰야 한다. 추의 무게는 최대 정원의 40~45% 정도 나가도록 설계하고, 엘리베이터와 추를 잇는 로프는 최대 정원의 10배를 견딜 만큼 튼튼해야 한다. 흔히 승객이 타는 밀폐된 공간인 ‘카’(car)를 엘리베이터의 전부라고 여기기 쉬운데, 보이지 않는 곳에는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승강로와 수많은 안전장치가 숨어있다. 엘리베이터는 한 대를 만드는 데 3만~5만개의 부품이 들어갈 정도로 덩치가 크고 정밀한 기계다.

2006년을 기준으로 세계에서 활약하는 엘리베이터는 약 790만대. 국내에만 33만대가 있다. 이제 엘리베이터는 속도와 지능, 감성으로 무장하고 상상력을 덧칠하며 눈부신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이 바벨탑을 쌓았던 것처럼 인류의 마천루 경쟁에는 끝이 없다. 현재 세계 최고 높이의 건물은 대만에 있는 타이베이금융센터(508m). 그 뒤로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타워(452m), 미국의 시어스타워(443m)가 버티고 서있다. 2007년 6월 10일을 기준으로 134층(484.1m) 높이까지 올라간 버즈두바이는 2009년 완공될 무렵이면 154~189층(705~950m)에 이를 전망이다. 정확한 건물의 높이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세계 최고층 건물의 왕좌를 호락호락 내놓지 않겠다는 속내다.


아랍에미리트 주메이라비치호텔의 엘리베이터는 버즈 알 아랍 호텔의 아름다운 전망을 한눈에 보여준다.


고층건물 ‘대동맥’


초고층 건물이 중력을 이기고 우뚝 솟기 위해서는 ‘대동맥’ 격인 엘리베이터의 속도도 함께 빨라져야 한다. 현재 타이베이금융센터에는 30초면 옥상까지 주파하는 초고속 엘리베이터가 설치돼있고, 최근에는 초속 180m의 스릴 넘치는 엘리베이터도 등장했다. 20층 정도의 중층 건물이나 아파트에 주로 설치하는 중저속 엘리베이터의 속도는 분당 45~120m. 만약 이 속도로 타이베이금융센터의 꼭대기까지 오르려면 최대 11분이 걸리니 엘리베이터 안에서 지쳐버리기 십상이다.

엘리베이터가 초고속으로 비상하기 위해서는 공기의 저항과 진동을 줄이는 일이 우선이다. 한국미쓰비시엘리베이터 기계설계팀 최명호 팀장은 “초고속 엘리베이터의 소음을 줄이고 공기 저항을 덜기 위해 카의 상?하부를 유선형으로 설계하고, 벽과 바닥을 이중으로 만들어 진동을 줄인다”고 말했다. 이때 공기의 흐름과 압력이 변하는 모습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한다.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엘리베이터에도 ‘승차감’이 중요한 셈이다.

높은 건물을 빠르게 오르내리다보면 사람의 몸이 기압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여러 부작용이 생긴다. 귀가 멍멍해지면서 두통이 생기거나 속이 더부룩해질 수도 있다. 특히 귀의 고막과 달팽이관 사이의 중이는 기압 변화에 민감하다. 엘리베이터가 상승하면 주위 기압이 낮아지면서 고막이 팽창하고 뭔가 귓속에 가득 차는 느낌이 든다. 만약 고막 안팎의 기압차가 1만Pa(파스칼, 1Pa=1N/㎡)을 넘어서면 침을 삼키거나 귀를 손가락으로 막았다 열었다 하는 동작으로도 중이의 압력을 조절하기 힘들어진다.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 기술안전본부 최일섭 본부장은 “엘리베이터가 빠르게 움직이더라도 고막 양쪽의 기압차를 1800Pa 이하로 유지하면 불쾌감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우주비행사가 기압 적응훈련을 받을 때 적용하는 수학 모델을 통해 나온 결과다. 실제로 일본 랜드마크타워(296m)의 최상층에서 최하층에 이를 때 고막 안팎의 기압차는 최대 1655Pa, 미국의 시어스타워는 1769Pa로 모두 귀에 부담을 주지 않는 정도다.


01목적지예고시스템은 로비에서 승객이 가고자 하는 층의 버튼을 누르면 가장 빨리 도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보내준다. 물론 카 내부에 층 버튼은 없다.


승객은 40초 이상 기다리지 않는다

출퇴근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지쳐 비상구 계단으로 뛰어가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한국미쓰비시엘리베이터 전기설계팀 정우식 팀장은 “본사의 ‘심리적 대기시간 평가’에 따르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승객의 조급한 기분은 대기시간의 제곱에 비례하고, 승객은 40초 이상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가 좀 더 똑똑해질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현재 몇몇 인텔리전트빌딩에서는 ‘목적지예고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승객이 로비에서 가고자 하는 층의 버튼을 누르면 엘리베이터의 두뇌 격인 제어시스템이 수학적 알고리즘을 풀어 가장 빨리 도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보낸다. 이때 행선층이 같은 승객들이 함께 탈 수 있어 에너지도 절감된다.

시간에 따른 교통량을 통계적으로 분석하면 엘리베이터를 더 효율적으로 운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출근시간에는 1층에 여러 대의 엘리베이터를 배치하고 점심시간에는 식당이 있는 층으로 향하는 고객의 호출을 먼저 해결해주는 식으로 말이다. 게다가 엘리베이터가 매일매일 벌어지는 교통상황을 꼼꼼히 기억해두면 비슷한 상황에서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다. 이는 뇌신경세포의 학습메커니즘을 그대로 흉내낸 ‘신경망 응용제어 방식’으로 수많은 ‘경우의 수’를 거미줄처럼 연결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길을 찾아낸다. 엘리베이터에 지능을 추가하는 데 알게 모르게 과학의 활약이 큰 셈이다.


02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메인트라이앵글빌딩에는 하나의 승강로에 두 개의 카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트윈엘리베이터가 설치돼있다. 시간과 공간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경우다.


심리적 불안과 지루함 덜어내는 거울


010203핀란드 헬싱키의 코네엘리베이터 본사에는 디자인회사 마리메코그룹이 사계절을 콘셉트로 내부 장식을 한 엘리베이터가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우리는 낯선 이웃에게 처음 눈길을 던지고 불특정 다수와 조화롭게 ‘카풀’을 한다. 잠시 머무는 공간으로 치부하기에는 이제 엘리베이터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졌다. 그래서일까. 1.5m2의 차가운 공간이 ‘디자인’의 날개를 달고 감성적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엘리베이터 안에 붙어있는 거울만 해도 넓어 보이려는 목적뿐만 아니라 심리적 불안과 지루함을 덜기 위해 고안됐다. 보통 좁은 공간에 낯선 사람과 아무 말없이 있다 보면 시선을 어디에 둬야할지 어색하다. 하지만 거울이 있을 경우 자연스레 그곳을 바라보게 되고 엘리베이터의 속도도 잘 느끼지 못한다. 게다가 거울은 휠체어를 탄 사람이 몸의 방향을 바꾸지 않고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수 있도록 해준다.

사실 인상적인 건물은 있어도 기억에 남는 엘리베이터는 드물다. 티센크루프동양엘리베이터 강구준 디자인 팀장은 “가전제품이나 자동차의 경우 디자인이 구매를 결정하는 주요 변수로 떠올랐지만 아직 엘리베이터는 산업기기로 여기기 때문에 디자인보다는 성능이나 가격을 따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독특한 콘셉트의 디자인으로 눈길을 끄는 엘리베이터가 국내에도 등장하고 있다. W서울워커힐호텔에는 한번 보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독특한 엘리베이터가 있다. 엘리베이터의 천장에 버스 손잡이 모양의 조명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는데, 승객이 매달려도 끄떡없다. 남산의 N서울타워는 빛과 소리, 재미를 테마로 우주선 같은 엘리베이터를 선보인다. 천장에는 별자리 조명이 빛나고 음악이 흐르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순간을 촬영한 사진을 내부 LCD모니터로 보여준다.

사용자를 예측할 수 있는 건물의 경우 아예 맞춤형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도 한다. 강 팀장은 “노인용 실버타운에는 큰 버튼과 등받이형 핸드레일을 갖추고, 시내 중심의 호텔에는 젊은 층을 사로잡는 감각적인 디자인을 선보인다”고 설명했다. 엘리베이터에 ‘배려’와 ‘개성’이란 ‘디자인 옵션’을 추가한 셈이다. 어느 날 아침 평소와 다름없이 엘리베이터에 오른 당신, 때론 투명하게 때론 화려하게 다가오는 엘리베이터의 변신에 주목해보는 건 어떨까.


04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푸에르타 아메리카호텔은 각층마다 테마를 달리한 엘리베이터로 유명하다.

01미국 뉴욕의 애플스토어에는 지상에서 지하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유리 엘리베이터가 눈길을 끈다.02W서울워커힐호텔 엘리베이터의 천장에는 형광빛 조명이 매달려있다. 손잡이에 매달리며 장난을 쳐도 끄떡없다.
 

당신의 엘리베이터는 안전합니까?

초고속 엘리베이터일수록 한번 사고가 나면 크게 나기 때문에 절대로 안전을 소홀히 할 수 없다. 흔히‘엘리베이터 사고’하면 로프가 끊어지면서 추락하는 장면을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로프는 최대 정원의 10배 무게까지 견디도록 설계하므로 로프가 끊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엘리베이터의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라지는 경우나 정해진 층에서 멈추지 않는 경우, 엘리베이터의 문을 밀치며 추락하는 사고가 대부분이다.


엘리베이터의 구성요소


엘리베이터의 구성요소

01카
승객을 운반하는 부분으로 내장재를 제외한 모든 부분을 불에 타지 않는 소재로 제작한다. 최근에는 철망을 넣어 만든 그물유리나 보통 유리보다 3~8배 충격을 잘 견디는 강화유리로 만든다.

02도어
지난 5월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이 마련한 엘리베이터 검사기준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제작되는 엘리베이터는 450J의 충격을 견디도록 설계해야 한다. 운동에너지로 따져봤을 때 체중63.4kg인두 사람이 초속 2.65m의 속도로 달려와 부딪혀도 견딜 수 있는 수준이다.

03로프
여러 겹의 강철을 꼰 선을 또 다시 꼬아 섬유 소재의 심 주위로 감아 만든다. 최대 정원의 10배까지 무게를 견딜 수 있다.

04균형추
금속만 사용하거나 금속에 콘크리트를 섞어 최대 정원의 40~45% 정도의 무게로 만든다.

엘리베이터의 안전 장치

05조속기
카와 같은 속도로 회전하며 카의 속도가 정상속도의 1.3배를 넘었을 때 전동기의 브레이크를 작동시킨다.

06비상정지장치
카의 속도가 정상속도의 1.4배를 초과했거나 전동기의 브레이크가 작동해도 멈추지 않을 때 카를 빨래집게처럼 물어 정지시킨다.

07도어인터록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지 않게 하는 잠금장치로 승객이 승강로로 추락하는 것을 막는다.

08하부 리미트 스위치
카가 최하층에 멈추지 않고 그대로 지나갈 때 전동기의 브레이크를 작동시켜 엘리베이터를 멈추게 한다.

09파이널 리미트 스위치
카가 멈추지 않으면 다시 한 번 속도를 줄인다.

10완충기
엘리베이터의 최종적인 안전장치로 카와 균형추 아래에 각각 설치한다. 엘리베이터의 속도가 분당 60m 이하일때는 스프링 완충기를, 분당 60m 이상일 때는 유압식 완충기를 쓴다.스프링 완충기는 최대 정원의 2.5~4배 무게를 견딜 수 있다. 유압식 완충기는 카의 속도가 정상속도의 1.15배를 넘으면 중력가속도(9.8m/s2) 이하의 가속도로 카의 속도를 줄인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07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신방실 기자

🎓️ 진로 추천

  • 기계공학
  • 전기공학
  • 컴퓨터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