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OC는 캡슐을 통해 안전성을 높였지만, 여전히 안심하긴 이르다. 인공혈액을 연구 중인 이승엽 전북대 의대 교수는 “HBOC는 계속 투여하면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며 “우리 몸은 현재의 혈액세포에 맞게 진화해왔기 때문에 외부 물질이 체내에서 어떤 작용을 일으킬지 정확히 모른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등장한 다른 방법이 줄기세포로 만든 인공혈액이다. 줄기세포는 다양한 형태의 세포로 변화할 수 있는 분화 전의 세포다. 줄기세포를 이용하면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과 같은 혈액세포도 만들 수 있다. 즉, 배양한 줄기세포를 적혈구로 분화시켜 혈액으로 사용한다는 논리다. 이 교수는 “자연 혈액세포를 그대로 재현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부작용이 가장 적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고 전했다.
2022년 영국 국민건강보험 혈액장기이식센터(NHSBT)는 세계 최초로 영국 브리스톨대, 케임브리지대 등과 함께 줄기세포로 만든 적혈구의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해당 연구팀은 기증받은 혈액에서 줄기세포를 골라낸 뒤 실험실에서 18~21일간 배양해 적혈구를 얻었다. 처음에 줄기세포는 약 50만 개였으나 배양한 뒤 500억 개의 적혈구로 늘어났다. 그중 150억 개를 선별해 최종적으로 건강한 사람 2명에게 5~10mL의 적혈구를 이식했다. NHBST 측은 “이것이 실험실에서 배양된 것일 뿐 체내에서 성장한 정상 세포와 동일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줄기세포 배양 방식으로는 아직 아주 적은 양의 적혈구밖에 생산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이 교수는 “체내에서는 호르몬, 단백질, 영양 성분 등이 상호작용하며 혈액세포의 성숙 과정을 돕는 반면, 체외에서는 인공적으로 체내 환경을 모사해야 하기 때문에 혈액세포를 완벽하게 배양하기 매우 어렵다”며 “이는 줄기세포와 관련된 기술에서 극복해야 할 주요 과제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NHSBT
영국 국민건강보험 혈액장기이식센터(NHSBT)는 영국 브리스톨대, 케임브리지대 등과 함께 줄기세포를 이용해서 체외에서 적혈구를 생산한다(오른쪽 아래 사진). 2022년 이 적혈구를 가지고 세계 최초로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한국도 2023년 개발 뛰어들어
유도만능줄기세포에 주목
한국 정부는 2023년 4월부터 세포기반인공혈액기술개발사업단(이하 사업단)을 출범해 본격적으로 줄기세포를 활용한 인공혈액 개발을 지원하고 나섰다. 7월 22일 사업단 회의실에서 만난 김현옥 사업단장은 “사업단이 기획된 가장 큰 계기는 2020년 코로나19 발생으로 헌혈량이 상당히 감소한 것”이라며 “당시 보건복지부에서 다른 나라의 혈액 수급 상황을 조사하던 중 영국, 일본, 미국 등에서 이미 인공혈액 연구에 투자하는 것을 인지하게 됐고, 우리나라도 인공혈액 생산 기술을 보유한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본 사업단이 추진됐다”고 전했다.
사업단은 줄기세포 중에서도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를 눈여겨보고 있다. iPSC는 체세포를 역분화시켜 다시 줄기세포처럼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도록 유도한 세포다. 김 단장은 “iPSC의 가장 큰 장점은 인공혈액을 생산하기 위한 무제한적인 공급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iPSC를 이용한 인공혈액 개발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모든 체세포에서 iPSC를 만들 수 있지만, 인공혈액을 만들 때는 혈액에서 추출한 체세포를 사용한다. 이 교수는 “iPSC는 과거의 특성을 기억하는 경향성이 있어 혈액세포를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혈액은 초기 단계에 소량만 필요하다”며 “줄기세포는 자가증식을 계속하기 때문에 한번 iPSC를 만들어 놓으면 추가적인 혈액이 필요하지 않다”고 덧붙였다.